게오르기 말렌코프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bgcolor=#cd0000><width=15%> 초대 ||<width=35%>
인민위원장

블라디미르 레닌 ||<bgcolor=#cd0000><width=15%> 제2대 ||<width=35%>
이오시프 스탈린 ||
||<bgcolor=#cd0000><width=15%> 임시 ||
게오르기 말렌코프 ||<bgcolor=#cd0000><width=15%> 제3대 ||
니키타 흐루쇼프 ||
||<bgcolor=#cd0000><width=15%> 제4대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bgcolor=#cd0000><width=15%> 제5대 ||
유리 안드로포프 ||
||<bgcolor=#cd0000><width=15%> 제6대 ||
콘스탄틴 체르넨코 ||<bgcolor=#cd0000><width=15%> 제7대 ||
미하일 고르바초프 ||





게오르기 말렌코프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제5대 장관회의 주석
게오르기 막시밀리아노비치 말렌코프
Гео́ргий Максимилиа́нович Маленко́в
Georgy Maximilianovich Malenkov

파일:Georgy_Malenkov.jpg
출생
1902년 1월 8일
러시아 제국 오렌부르크현 오렌부르크
(現 러시아 볼가 연방관구 오렌부르크주 오렌부르크시)
사망
1988년 1월 14일 (향년 86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現 러시아 모스크바 연방시)
재임기간
제5대 소련 장관회의 주석
1953년 3월 6일 ~ 1955년 2월 8일

[ 펼치기 · 접기 ]
부모
아버지 막시밀리안 표도로비치 말렌코프
어머니 아나스타샤 게오르기예브나 셰먀키나
배우자
발레리야 알렉세예브나 골룹초바
학력
모스크바 고등기술학교 (전기공학부 / 중퇴)
종교
정교회무종교 (무신론)정교회
소속 정당

주요 서훈
사회주의노력영웅
레닌훈장 (3회)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편집]



파일:말렌코프-1.jpg


파일:말렌코프-2.jpg


소련정치인이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 장관회의 주석을 역임한 인물.


2. 생애[편집]


1902년 러시아 제국 오렌부르크현 오렌부르크에서 오흐리드 출신의 마케도니아인 이민자 후손인 막시밀리안 표도로비치 말렌코프(Максимилиан Фёдорович Маленков)와 러시아인 대장장이의 딸인 아나스타시야 게오르기예브나 셰먀키나(Анастасия Георгиевна Шемякина) 부부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920년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하여 내전이 끝난 후 모스크바고등공업학교에 들어가 지구당 서기를 맡았으며,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1925년부터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근무하였다. 대숙청 시기에 소련 공산당의 당조직을 뒷받침하는 관료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그 이후 1939년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중앙위원과 소련 공산당의 중앙서기국원, 그리고 1941년 소련 공산당의 정치국 후보위원, 1946년 정치국원이 되었다. 1952년 제19차 소련 공산당대회에서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보고를 맡아, 스탈린의 후계자로서 유력시되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 장관회의 주석이 되었다. 말렌코프는 경공업을 육성과 농민 세금감면, 통행증 발급 대상자 확대를 비롯한 자유화 조치의 프로트 타입이 될만한 정책을 시행했으나, 곧이어 소련 공산당 내부의 지도권 다툼에서 패배하자, 그 해 9월에 최고지도자 직을 흐루쇼프에게 넘겨주고, 1955년 2월에 는 소련 장관회의 주석 직 마저 사임하였다. 그 후 얼마 동안 발전소 담당장관으로 있다가, 1957년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라자리 카가노비치와 함께 '반당그룹'이라 하여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추방당하여 벽지인 카자흐스탄외스케멘에 위치한 수력 발전소의 수력발전소장으로 좌천되었으며[1], 1961년 당에서도 추방되어 복권되지 못했다.

86세로 장수했으며 말년에는 신앙심을 회복하여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되어 살았다고 한다.[2]


3. 기타[편집]


특징이라 할 만한 점은 소련 최고권력자 중 재임 기간이 매우 짧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3] 대한민국으로 치면 장면 국무총리윤보선, 최규하 대통령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한국사에서는 그의 재임기에 6.25 전쟁이 휴전되었기에 중요한 부분이 있다.[4]

4. 대중 매체에서[편집]


스티브 부세미가 흐루쇼프로 나온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에서 영미권 영화에 조연으로 자주 나오는 제프리 탬버가 말렌코프 역을 맡았다. 나름대로 야심은 있지만 소심하고 눈치가 심각하게 없는데다가 어벙한 면도 있어 어색한 상황을 자주 만드는 작중 최고의 개그 캐릭터. 베리야의 바지사장에 가깝게 이용 당하다가 나중엔 흐루쇼프에게 휘둘리는[5] 한 끗 모자란 캐릭터로 나온다.

선아전자에서 출시한 퀴즈 아카데미 6000에서 문제 출제자 중 한 명으로 나왔는데 '말랭코프'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정치깡패 이정재별명 중 하나가 이 사람의 이름이다. 다만 말렌코프가 흐루쇼프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뒤 유유자적 평당원으로 살면서 천수를 누린 것과 달리, 이정재는 비교적 젊은 향년 44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1 10:40:56에 나무위키 게오르기 말렌코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 때 서방측에서는 스탈린 시대의 관행대로 총살되었을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다. 말렌코프가 총살당했다고 보도한 1958년 11월 18일자 기사.[2] 재밌는 사실은 스탈린 사후 후계자 다툼을 하다가 흐루쇼프에게 숙청당한 이들은 사형당한 라브렌티 베리야를 제외하면 전원 흐루쇼프보다 장수했다. 니콜라이 불가닌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물론이요, 라자리 카가노비치는 소련 해체 5개월 전인 1991년 7월에서야 사망했다. 살벌한 중앙정치에서 벗어나 다시는 그런 권력을 누릴 수 없다고 현실을 인지하고 유유자적 살아서인지 스트레스를 덜 받은 모양이다. 실제로 흐루쇼프는 서기장을 역임하면서 건강을 크게 해쳤고, 미국 방문 시에 그가 사용한 화장실에서 CIA가 몰래 변을 채취해 검사했는데, 반응이 "이 사람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수준이었다고 한다.[3] 애초에 권한대행으로 직에 잠시 오른 거라 소련 역대 서기장을 표시할 때도 빠져 있는 경우가 많고(이오시프 스탈린 바로 다음을 니키타 흐루쇼프로 표기할 정도), 스탈린과 흐루쇼프가 훨씬 유명한지라 묻힐 수밖에 없다.[4] 사실 스탈린이 전쟁 후반에 자꾸 전쟁을 포기하지 않으려 드는 태도를 보일 때, 반대로 소련 내부에서는 끝내고 싶은 사람이 많았기에 그가 죽자마자 바로 정전협정을 방치해버린 것이었다.[5] 작중에서 스탈린 장례식 당일에 베리야 제거작전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정치국원 전원이 동의해야 일을 진행하겠다고 주코프와 몰로토프가 고집하자 말렌코프가 아무 것도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렌코프가 동의했다고 구라를 친다. 일단 일부터 진행시킨 다음 소심한 말렌코프를 윽박질러 승인만 받아내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다만 실제 역사에는 말렌코프도 베리야 숙청에 적극 가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