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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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수의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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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인


파일:강정수 감독.jpg

강정수
姜正秀

출생
1962년 1월 9일 (62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0cm|체중 81kg
포지션
농구선수(가드/ 은퇴)
학력
광주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학사)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전공 / 석사[1])
실업 입단
1986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소속
선수
기아자동차 (1986~1992)
감독
중앙대학교 (1992~1996)
안양 SBS 스타즈 (1997~1999)
중앙대학교 (2002~2004.12)
코치
중앙대학교 (1992)
안양 SBS 스타즈 (1996~1997)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9~2001)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1~2002)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06)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09)
해설자
SBS Sports (2003~2004, 2007~2008)

1. 개요
1.1. 선수 시절
1.2. 지도자 시절
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농구인.


1.1. 선수 시절[편집]


중앙대 시절 정봉섭 감독 밑에서 수학한 가드로 걸출한 동기나 후배들(83학번 김유택, 강정수, 84학번 허재)의 존재로 주로 벤치에서 출전했고, 기아자동차에서도 백업으로 활약했지만 허리 통증으로 인해 1991-92 농구대잔치를 끝으로 은퇴했다.


1.2. 지도자 시절[편집]


은퇴하자마자 모교인 중앙대 코치로 돌아오고서 은사인 정봉섭 감독을 도왔으나, 그해 11월에 정봉섭 감독이 당초 겸직하던 체육과장에 전념코자 사임한 뒤 지휘봉을 잡아 연세대-고려대 양강 구도 속에서 근성 있는 지도력으로 중상위권을 지켰다.

특히,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그의 지도력이 돋보였는데, 정규리그에서는 12개팀중 7위에 그치며 겨우 8강에 올랐지만, 8강에서 만난 전대회 우승팀 기아자동차를 2승 1패로 격파하는 사상 최대 이변을 연출하게 된다. 1991-92 농구대잔치를 끝으로 기아자동차에서 은퇴했고 은퇴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감독이 된 강정수[2]이기에 자기가 지휘하는 중앙대 선수들 뿐 아니라 상대팀인 기아자동차의 선수들의 성향까지 다 알고 있었으니 자신이 뜻하는 대로 작전을 펼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중앙대 선수들은 동문 선배들이 주축인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엄청난 체력전을 펼치며 연신 강압수비 및 속공을 펼쳤다[3]. 전반까지는 -- 트리오의 노련미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던 기아자동차는 후반들어 체력이 다 떨어진듯 걸어다니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며 역전되었으며, 결국 무너져 버렸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현대전자, 삼성전자는 물론 신생팀 SBS와의 스카웃에서도 밀리며 수년간 벤치멤버를 스카웃하지 못한 탓에, 허동택+한기범이 빠지면 믿고 내보낼 만한 선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체력적으로도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중앙대학교가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4강에서 만난 상무를 상대로도 1차전을 먼저 잡는 듯 돌풍을 이어나가나 했지만, 국가대표 콤비 정재근-오성식의 노련미에 밀리며 중앙대학교의 질주는 4강에서 멈추게 된다.

1996년 8월 김동광 감독의 부름을 받고 30대의 나이로 안양 SBS 스타즈 코치로 부임한 이후 1997-1998 시즌부터 1998-1999시즌까지 30대의 나이로 KBL 감독에 데뷔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탈락하여 팀을 떠나게 된다. 인성 문제가 많이 대두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외국인 코치를 말다툼하다가 폭행한 것이 있다.

1999년 박수교 감독의 부름을 받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코치로 부임한 이후 후신인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코치를 맡았지만 성적부진으로 퇴진했다.

2002년부터 모교 중앙대학교의 감독을 다시 맡으면서 2003 농구대잔치 4강진출, 제41회 전국대학농구연맹전 우승, 제59회 여수시장배 전국남녀종별농구선수권대회 준우승, 2004 농구대잔치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겸임으로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2. 관련 문서[편집]



[1] 석사 학위 논문: 고등학교 농구부 운영관리에 관한 연구 : 선수의 반응을 중심으로[2] 당시 최연소 농구감독[3] 특히 홍사붕이 후배 김희선과 번갈아가며 체력이 남아있는듯 했던 허재를 상대로 찰거머리 수비를 펼쳤고, 승부처인 3차전에서 허재를 17점으로 묶으며 무려 30득점(3점 6개)을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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