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홍(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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賈洪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고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조위의 인물이며 자는 숙업(叔業)으로 옹주 경조군 신풍현 사람.


2. 생애[편집]


어려서 공부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었으며, 특히 춘추좌씨전에 대해서 해박했다.

건안(196-220)초기에 공무를 시작해 계연에 추천되었다가 주의 부름에 응했으며, 주에서는 참군사 등 여러 명이 있었지만, 재능과 학식은 가홍과 빙익 출신인 엄포가 최고 수준이었으며, 3개의 현령을 지내 임지마다 학교를 열어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 마초가 반란을 일으켜 가홍을 체포해 그를 화음으로 데려가서 포고문을 만들게 했는데, 가홍은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종요가 이 때 동방에 있다가 포고문을 보고 가홍이 만든 것임을 알았으며, 나중에 마초가 패해 달아나자 조조가 가홍을 군모연으로 삼았다가 이전에 마초를 위해서 글을 쓴 것으로 인해 즉시 임명되지 않다가 간신히 음천장이 되었다.

연강 연간인 220년에 백마국의 상으로 옮겼고, 언변이 뛰어나 말장난을 잘했으며, 조표가 문학을 좋아해 가홍을 항상 스승으로 모셔 삼경을 뛰어넘는 대우를 받았다. 수 년 후에 병들어 나이 50에 사망했고, 당시 사람들은 그의 관직이 2천 석을 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했다.

『위략』에 따르면 가홍을 포함해 동우, 한단순, 설하, 외희, 소림, 악상 등 일곱 사람을 유종(儒宗)으로 삼아 태학을 다시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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