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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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욕관의 일몰 풍경. 쿤룬 산맥의 만년설과 진흙 성벽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욕관에서 베이다강 방면으로 6km 가량 뻗어 있는 명대 성벽
1. 개요[편집]
중국 서부 간쑤성의 지급시인 자위관시(嘉峪关市, 가욕관시)에 위치한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 중국5A급여유경구로 지정되어있다.
2. 상세[편집]
내성을 중심으로 된 설명 지도. 적이 관문을 정면으로 뚫으려면 두개의 옹성을 포함하여 무려 5개의 성문을 통과해야 한다.
가욕관은 자위관시에서 남서 6km에 위치하는 하서회랑의 서쪽 가장 좁은 땅에 있다. 그곳에 두 개의 언덕 사이의 땅을 가욕산(嘉峪山)이라고 한다. 그 산의 험준한 주변 지세와 잘 어울려 천하제일웅관(天下第一雄關)[1]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성벽의 일부는 고비사막을 횡단하고 있어 험준한 지형에 그 요새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에 위치한 관문[2] 이며 홍무 5년(1372)에 토성으로 지어졌고 1539년 현재의 모습으로 보강되었다.[3]
가욕관(嘉峪关)은 둘레 733m, 높이 11m의 성벽에 둘러싸여 성 내부 지역은 33,500m㎡ 이상이다. 황토를 판축으로 하여 굳힌 성벽이며, 서쪽은 벽돌을 겹쳐 쌓아서 만들었다. 동서로 각각 누각과 옹성을 가지는 성문을 갖추어 동쪽을 광화문(光化門), 서쪽을 유원문(柔遠門)이라고 한다. 광화문은 `상서로운 빛이 두루 비춘다'는 의미이고, 유원문은 `서쪽의 변방 민족을 회유한다'는 의미이다. 서문에는 '嘉峪關'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관의 남북은 만리장성과 연결되어, 성벽의 구석 각부에는 노가가 설치되어 있다. 2개의 문의 북측에는 관의 최상부에 오를 수 있는 통로가 있다. 가욕관의 방어 설비는 크게 나누어 내곽, 외곽, 굴의 3개가 되고 있다. 만리장성으로 연결되는 관 중에서 유일하게 건설 당시 그대로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동서 실크로드의 요충지 가운데 하나이고, 주위에는 돈황의 막고굴과 같이 유명한 유적이 존재하며, 많은 벽화가 발견되었다.
가욕관 관문성 밖의 낙타들. 이곳이 중원과 서역의 경계라는 점을 상기한다.
과거에는 서역에서 중원으로, 중원에서 서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소수민족과 전쟁을 하던 시기 이곳은 중원의 길목을 지키던 군사적 요충지였고, 평화시에는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출입국 관리소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을 지나려는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여권과 같은 통행권을 소지해야만 했다.
서역의 관문으로써, 비단길을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인 일대일로의 제창자 시진핑 주석이 2019년 8월 가욕관을 방문하였다.
3. 갤러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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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대로 최동단에 있는 산해관(山海關)의 별명은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사실 '천하제일웅관'이란 표현은 가욕관보다는 거용관을 일컬을 때 더 많이 쓰는 편이다.[2] 오늘날까지 잘 보전되어 있는 관문이라는 뜻에서는 이 말도 틀린 것이 아니지만, 역사 유적으로서 만리장성의 끝은 돈황의 서북쪽 98km 지점에 위치하는 옥문관으로 보아야 한다.[3] 이때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설계자인 이개점이 필요한 벽돌 수를 물어보고는 여분 벽돌을 단 한 장만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 장조차 쓸 필요가 없었다고. 그만큼 계획대로 철저하게 지어졌다는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