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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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능


軻比能
?~234


1. 개요[편집]


후한 말과 삼국시대선비족의 대인.

용맹하고 굳세면서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것에 공평하면서도 재물을 탐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대를 받아 '대인'이 되었다고 하며, 부중을 통솔해 중국의 양식을 본따서 출입하거나 사냥할 때 깃발을 세우면서 북을 울려 진격하거나 퇴각했다고 한다.


2. 정사[편집]



2.1. 조조 시절[편집]


건안 연간에 조조가 유주를 평정하자 보도근 등과 함께 오환교위 염유를 통해 공물을 바쳤으며, 조조가 관중을 정벌할 때 전은이 하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염유와 함께 3,000여 명의 기병으로 전은을 격파하고, 대군에서 오환이 반란을 일으킬 때 이를 격파했다.

218년에 오환의 능신저가 후한에 반기를 들어 부라한 부족에 복속하려고 했지만, 부라한이 대업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 보아 가비능을 부르자 그는 10,000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도착하여 능신저와 맹세했으며, 부라한을 죽여 그의 아들인 설귀니와 그 부중을 복속시키면서 설귀니의 부친을 죽였기 때문에 그를 특별히 대우했다.


2.2. 조비 시절[편집]


220년에 가비능은 오환의 보도근과 서로 싸웠다. 보도근이 가비능의 부장 설귀니를 설득하여 귀부시키자 가비능은 설귀니를 추격했지만 잡지 못했다. 보도근의 공격으로 동생인 저라후, 오환의 귀의후, 왕동, 왕기 등이 죽자 원수가 되었다. 운중의 옛 군에서 견초에게 격파당했으며, 같은 해에 조비에게 사자를 보내 말을 바쳐 부의왕에 봉해졌다.

221년에 가비능은 선비에 포로로 있던 위나라 사람 500여 가구를 돌려 보내 대군에서 거주하게 하였다. 222년에 가비능이 오환족의 수무로와 부락의 대인, 소자, 대군 등 3,000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소와 말 70,000여 구를 몰고 와 교역했다. 동부 선비 대인 소리와 보도근 등과 서로 싸웠다가 호오환교위 전예의 중재로 화해했다. 이 싸움은 영역에 관한 분쟁에서 비롯되었는데, 동부 선비 대인 미가, 소리 등과 영지를 분할해 지배할 때에 그 경계를 나눠 공동으로 서약을 하였다. 이 서약에서 그들은 중원으로 말을 보내지 않도록 하였다. 소리가 이를 위반하자 가비능은 소리를 공격했으나 224년에 전예가 그 배후에서 견제하자 가비능은 소수 쇄노에게 지시해 전예를 막게 하였다. 쇄노가 이를 격파하자 자신감을 얻은 가비능은 위나라를 배반하려고 했으며, 보국장군 선우보에게 오환의 보도근이 여러 차례 침략해 자신의 동생을 죽였고, 보도근이 자신을 무고한 내용으로 참소하였다는 주장을 담은 서신을 보냈다.

이후 궁병 10만여 기에 이를 정도로 강성해졌으며, 매번 위나라를 약탈하면서 재물을 얻을 때마다 고르게 나눠 선망을 받았다. 또한 눈 앞에서 스스로 바로 결정하여 사사로이 하는 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리들이 그를 따르거나 다른 부의 대인들이 그를 경애했다고 하지만 단석괴에게는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225년에는 병주자사 양습에게 격파되었다.


2.3. 조예 시절[편집]


228년에 사위인 울축건이 위나라에서 보낸 역관 하사를 죽인 사건으로 전예가 울축건을 격파하자 마성에서 30,000명의 기병을 이끌어 전예를 7일간 포위했으며, 상곡태수 염지가 타이르자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고 한다.

기병을 대대적으로 모아 옛날 평주 관소 북쪽에 이르렀지만 격파되었다. 231년, 가비능이 교활해 견초는 가비능이 촉한의 제갈량과 연합할 것이라는 상주문을 올렸다. 의논하는 자들은 제갈량과 가비능이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견초의 말대로 가비능은 231년에 제갈량이 기산을 포위할 때 부르자 옛 북지 석성에 이르러 그에게 호응했으며, 조예가 견초에게 알맞은 시기에 가비능을 토벌하라고 했을 때는 이미 가비능은 사막의 남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유주자사 왕웅이 여러 차례 가비능을 위로하자 이에 가비능은 여러 차례 찾아와 교류하면서 유주에 공물을 바쳤다고 하며, 233년에 막북에 자리잡을 때, 위나라에 항복해서 장성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오환의 보도근을 회유해 화친을 하면서 병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사주했으며, 병주자사 필궤가 음관에 주둔하자 10,000명의 기병을 이끌면서 보도근과 연합을 시도해 필궤가 장군인 소상, 동필 등을 누번에 보내자 아들을 보내 이를 격파하여 전멸시켰다.

같은 해에 효기장군 진랑의 공격으로 전투에서 패해 설귀니가 위나라에 항복하자 보도근을 죽였으며, 진랑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기 위해 막북으로 달아났다. 234년에 왕웅이 보낸 용사 한룡에게 암살당했다.

가비능은 단석괴가 선비 제국을 세운 이래 선비족을 재통합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단석괴만큼 충분한 역량이 없었고, 시대의 흐름 또한 그에게 유리하지 않아서, 이후 모용선비, 탁발선비우문선비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3. 연의[편집]


정사에서는 제갈량의 북벌에 호응했고 위나라에 적대적인 인물이었지만, 연의에서는 조비사마의의 계책에 따라 다섯 방면에 걸쳐서 촉한을 공격할 때 협력하여 다섯 방면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나오는데 여기서 설정이 심하게 오락가락한다. 사마의가 계책을 내놓을 때에는 요서 선비국의 국왕 가비능서강병 10만을 이끌도록 했는데, 제갈량의 서술에서는 강왕 가비능·서번왕 가비능 등 오락가락한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강인은 강족이라는 특정된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북서쪽 유목 민족들을 싸잡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이렇게 쓰이던 단어로 강호(羌胡)가 있다.

여튼 10만을 이끌어 서평관을 공격했지만 제갈량이 강족들의 아이돌이었던 마초로 카운터를 치자 (강인들이 마초를 신위천장군이라고 부를 만큼 존경했기 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물러나버리며 촉과 동맹을 맺은 정사와는 반대로 됐는데, 어떻게 보면 《삼국지연의》의 피해자다. 사실 이 50만 연합군 시점에서는 엄연히 위나라의 적대국인 손권오나라도 끼어 있다.[1] 당시 위나라가 여기저기에서 군대를 긁어모으던 것에 착안하여 창작된 에피소드다.


4. 미디어 믹스[편집]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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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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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패도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삼국지 9편과 삼국지 11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84/지력 38/정치력 22/매력 35. 보유 진형은 장사, 봉시. 특기는 혼란, 무쌍, 화계, 고무, 복병, 분기.

삼국정립(219년) 시나리오에서 출현하며, 철리길의 부하로 나온다. 철리길군 에이스로 돌격이 가능한 봉시에 무쌍을 갖추고 있어서 나름대로 전쟁에서 쓸만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7/무력 69/지력 52/정치력 59/매력 68로, 통솔력을 제외하면 평범하며 특기 6개(기술, 돌격, 기습, 회복, 기염, 반격) 중 돌격, 기습을 제외하면 3개가 일기토 특기고 지력이 50대인데 기술 특기를 받는 등 대접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사기 병과인 돌기병을 사병으로 들고 재야로 나오기 때문에 일단 등용할 가치는 충분하다.

삼국지 12 PK에서의 일러스트는 말을 탄 채 검을 앞으로 치켜들면서 호통치고 있으며 능력치는 B급 장수 수준이지만 병과가 오환이라 매우 쓸만하다. 전법은 전의고양.

중후반부에 오환족의 군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비능은 오환족이 아닌 선비족이고, 가비능이 군주가 되었을 때에는 오환족 장수는 모두 사망한 상태다. 부하로 보도근이 있는데 서로 혐오무장으로 설정되어 있다. 구력거가 오환군주로 되어 있어 포획의 책을 발동시킨 상황에서 본진에 못 들어가게 막기만 하면 포로로 만들 수 있다. 답돈이나 올돌골 보다는 통솔력이 낮지만 정치력 만큼은 이민족 중에서 2위다. 이민족이면서 정치력이 높은 무장이 좀처럼 없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훈련 2, 신속 4, 전수특기는 신속이며 전법은 공격명령.

보통은 다른 이민족 무장처럼 재야로 등장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사이육국 시나리오에서는 기주와 유주를 지배하는 군주로 원소 세력을 휘하에 둔 강국이 되었다. 원래 그 시나리오가 이민족들이 깽판피우는 가상 시나리오여서 그렇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7, 무력 72, 지력 51, 정치 57, 매력 66으로 전작과 달리 무력이 3 상승한 대신 지력이 1, 정치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선비, 동원, PK에서는 향도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패도, 정책은 추행강화 Lv 3, 진형은 봉시, 장사, 추행, 전법은 화시, 교란, 친애무장은 선우보, 염유, 혐오무장은 없다.

삼국지 패도에서 SSR 등급의 무장으로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82/72/56/59/74다.


4.2. 영걸전 시리즈[편집]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연의를 반영하여 강족병들을 이끌고 강족병 클래스로 등장하며 이 전투에서 마초가 서쪽성채근처로 접근하면 본인과 부하들의 공격력이 2단계 저하된다. 초반에 클래스업을 못한 상황에서 강족병은 꽤나 강하기 때문에 알아두면 유용. 단 방어력은 보병계열이라 꽤 단단한 관계로 그래도 잡기가 쉽지 않다.


4.3. 삼국전투기[편집]


울프 호크필드로 나온다. 30년을 넘게 한족과 대항하여 싸운 선비족의 영웅이자, 선비족 최고의 전사로 묘사된다. 다만 그렇게 크게 띄워 줬음에도 정작 작중에서 승리한 적은 별로 없다. 그 밖에는 소패2 전투 (2)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소패2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이석으로 향하던 원상 일행을 기습했다. 전예와 함께 행동하고 있던 걸로 묘사되는데, 한족인 그와는 여러 가지로 안 맞아서 한족의 명령 따윈 들을 생각 없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한중 전투 편에서 재등장. 선비족을 완전히 복속시킨 뒤 오환의 무신저를 후원하여 남침을 사주했다고 언급된다. 이후 무신저조창에게 탈탈 털리자 그걸 멀리서 수만 기병과 함께 지켜보던 가비능은 조조군은 강하니 귀순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성산 전투 편에서 간만에 재등장. 그 동안 견초와 전예 등과 싸우기도 했고, 언급으로 제갈량이 기산을 점령했을 무렵 촉과 연대를 꾀하기도 했다고 언급되었다. 그리고 전예가 오환교위에서 물러나고 왕웅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서 그가 보낸 군에 사살됐다고 묘사되며 사망처리 된다.

[1] 단, 이때 손권은 육손의 건의에 따라 조비의 제안을 수락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 군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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