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치 시게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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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7 - 1581
蒲池鎮漣(구자체 蒲池鎭漣), 蒲池鎮並(구자체 蒲池鎭竝)[1]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 지쿠고국(현 후쿠오카현 남부) 야나가와시의 야나가와 성주. 가마치 아키모리와 다지리 지카타네의 딸의 아들.

아키모리의 적장자로, 은거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 가마치 가문의 총수가 되었고 오토모 가문에 속했다. 이름인 시게나미도 오토모 요시시게의 '시게'(鎮)에서 따서 지었다. 1578년, 오토모 가문이 휴가로 침입한 시마즈 가문을 몰아내려 출진하자 아버지와 동생 가마치 무네야스(蒲池統安)과 함께 3천 병사를 이끌고 종군했으나, 도중에 칭탈하고 2천 명을 빼돌려 본거지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동생은 미미가와 전투에서 전사했다.

미미가와 전투의 패배로 오토모 가문이 급속도로 쇠락해지고 히젠의 류조지 타카노부가 흥성해지자 류조지 타카노부의 수하로 들어갔으나, 사이가 벌어져 야나가와 성에서 농성하며 류조지 타카노부와 싸웠다. 이 싸움은 류조지도 가마치도 지쳐, 류조지측에 속한 외삼촌 다지리 아키타네(田尻鑑種)의 중개로 화해했다.

그러나 가마치 시게나미는 시마즈 가문과 관계를 맺었고, 지쿠고 지배의 중핵인 야나가와 성이 시마즈 가문에 넘어갈 것을 꺼린 류조지 타카노부는 시게나미를 모살하기로 작정하고 나베시마 나오시게·다지리 아키타네와 의논해 연회를 열고 시게나미를 초대했다. 시게나미는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다지리 아키타네의 동생인 어머니와 중신들의 설득으로 서형 가마치 시게히사(蒲池鎮久) 등 200여 가신들과 함께 연회에 참여했다. 연회 후, 류조지 가문의 매복병에 포위되어 서형과 200여 가신들과 분투 끝에 전멸해 시게나미는 할복했다. 야나가와 성은 류조지 가문에게 함락되었고, 하 가마치 가문의 잔당은 시게나미의 조카인 시오즈카 시게사다(塩塚鎮貞)가 성주로 있는 시오즈카 성으로 도망가서 항전했으나 다지리 아키타네를 앞세운 류조지 가문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아버지 가마치 아키모리의 도움으로 류조지 가문이 위기를 두 번이나 벗어났음에도, 류조지 타카노부가 인정 없이 은인의 가문을 주멸한 이 사건은 류조지 가의 가신들과 휘하 호족들의 충성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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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竝만 구자체로 쓴 蒲池鎮竝으로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