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고려) (r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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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공 (徐恭, 1101년 《고려사》 상에는 사망 연도 당시의 나이가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묘지명〉에는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에 따른다.
1171년 8월 23일(음력 7월 20일)
《고려사》에는 이 날짜보다 하루 빨리 되어 있으나, 〈묘지명〉의 기록을 따른다.
〈서공 묘지명〉은 고려의 문신이다. 본관은 이천이며, 서희의 현손 〈묘지명〉에는 4대손으로 되어 있다.

이천 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서씨일가연합회 https://band.us/@seosarang



1. 생애[편집]


1145년(인종 23년) 합문통사사인으로서 금나라 동경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고려사》 권17, 〈세가〉17, 인종 23년(1145년) 3월 5일(경술)
고려 의종 때 음서로 경령전판관이 되었다.
《고려사》 권94, 〈열전〉7, 서희 부 서공
1163년(의종 17년) 추밀원부사를 거쳐
《고려사》 권18, 〈세가〉18, 의종 17년(1163년) 12월 30일(병술)
1164년(의종 18년)에는 병부상서 동지추밀원사가 되었다.《고려사》 권18, 〈세가〉18, 의종 18년(1164년) 12월 22일(임인)
1165년(의종 19년) 지추밀원사를 거쳐 판삼사사에 올랐다.《고려사》 권18, 〈세가〉18, 의종 19년(1165년) 5월 13일(신유); 12월 30일(을사)

왕을 호종해 서경에 갔을 때, 왕이 개경과 서경의 문관·무관 관료들에게 활을 쏘게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큰 촛불을 과녁 위에 꽂고 쏘게 하였는데, 서경 사람들은 많이 맞혔으나 개경에서 따라온 신하들 중에는 맞히는 사람이 없었다. 왕의 기분이 자못 좋지 않은 터에 서공이 첫 번째 화살로 촛불을 맞히고 두 번째 화살로 과녁을 맞히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비단을 하사하였다.
담력과 책략이 뛰어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여섯 번이나 양계병마사로 부임하니 사졸들이 잘 따랐다.
1171년(명종 원년) 8월 23일(음력 7월 20일)에 죽었다.


2. 가족[편집]


* 증조할아버지 : 서유걸(徐惟傑)(정2품 좌복야)
** 할아버지: 서정(徐靖) (정2품 평장사.종1품 판삼사사)
** 작은할아버지: 서존(徐存) (정3품 병부상서 태원군)
*** 아버지: 서균(徐鈞) (정2품 상서우복야.판장작감사)
**** 형: 서원 (徐元)(정2품 평장사)
**** 형: 서영관(穎觀) (헌화사 대사)
**** 본인: 서공(徐恭) (정2품 평장사.종1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