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KBO 리그/역대 트레이드/2000년대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상위 문서, top1=KBO 리그/역대 트레이드)] [include(틀:KBO 리그 역대 트레이드)]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DisillusionedHypnoticOptimalOwl)] || {{{#ffffff '''토론 합의사항'''}}}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000,#eaeaea 'KBO 리그/역대 트레이드/연대별' 문서의 각 문단명 표기 방식 * 다대다 트레이드 ||'''ㅇㅇㅇ ↔ ㅇㅇㅇ 등 n대n''' 각 팀의 메인 칩 선수 1명만 표기 || (단, 이적 후 메인 칩 아닌 선수의 활약이 기존 메인 칩 선수를 넘어선다고 판단될 경우 2명 모두 표기. 문단명에 이동한 모든 선수가 이미 기록된 경우 '등 n대n' 표기 생략.) * 한 팀이 현금만 지불한 트레이드 ||'''ㅇㅇㅇ 현금 트레이드''' || (단, 이적 선수가 3명 이상일 경우 'ㅇㅇㅇ 등 n명' 으로 축약 표기.) * 현금이 부분 포함된 트레이드 ||'''현금을 'n억 n천n백만' 표기''' || (단, 이적 선수가 3명 이상일 경우 'ㅇㅇㅇ 등 n명' 으로 축약 표기. 총액이 1억 이상일 경우 십만 단위 이하 생략.) * 지명권 트레이드 ||문단명에 '''지명선수 표기 안함''' || * 선수+현금+지명권의 급부 숫자가 '''적은 쪽을 좌변에''' 표기 ---- * 개별 트레이드 문서의 표제어는 '''그대로 유지''' }}} ||}}}}}}}}} || [목차] == 개요 == [[KBO 리그]]에서의 2000년대의 트레이드를 사건별로 기술한다. 세부 제목은 트레이드의 중심이 된 코어 선수 1명으로 최대한 줄여서 서술하고, FA이적이나 방출후 영입같은 선수 이동은 기술하지 않는다. == 2000년 ==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심볼(1994~2005).svg|width=65]]]]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심볼(1999~2009).svg|width=60]]]]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width=65]]]] || || {{{#red,#pink 최익성}}} || {{{#red,#pink 박보현[br]강성우}}} || {{{#red,#pink 김종석[br]김영수[br]이경수}}} || - || || {{{#blue,#cyan 송유석[br]신국환[br]김종석}}} || {{{#blue,#cyan 김영수[br]손석만}}} || {{{#blue,#cyan 박보현}}} || - || || {{{#red,#pink 1}}} / {{{#blue,#cyan 3}}} || {{{#red,#pink 2}}} / {{{#blue,#cyan 2}}} || {{{#red,#pink 3}}} / {{{#blue,#cyan 1}}} || {{{#red,#pink 0}}} / {{{#blue,#cyan 0}}}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red,#pink 김경기}}} || {{{#red,#pink 송유석[br]신국환[br]손혁}}} || {{{#red,#pink 양준혁[br]김정수[br]이호준[br]박계원}}} || {{{#red,#pink 성영재[br]김호[br]손석만}}} || || - || {{{#blue,#cyan 최익성[br]양준혁}}} || {{{#blue,#cyan 손혁[br]성영재[br]김호}}} || {{{#blue,#cyan 김정수[br]이호준[br]박계원[br]김경기[br]이경수[br]강성우}}} || || {{{#red,#pink 1}}} / {{{#blue,#cyan 0}}} || {{{#red,#pink 4}}} / {{{#blue,#cyan 1}}} || {{{#red,#pink 3}}} / {{{#blue,#cyan 3}}} || {{{#red,#pink 3}}} / {{{#blue,#cyan 6}}} || ||<-4> {{{#red,#pink '''Out'''}}} {{{#blue,#cyan '''In'''}}} || 열거된 트레이드 외에도 2000년 3월 24일에 SK 와이번스가 신생팀 전력 보강 차원에서 기존 7개 팀의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들을 한 팀 당 한명씩 지명해, 인 당 10억원을 주며 트레이드 형식으로 데려왔다.[* 이 때문에 연감에서는 이들 모두 트레이드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이 때, 트레이드로 SK에 이적한 선수는 [[김충민]], [[김태석(1967)|김태석]], [[강병규]], [[송재익(야구)|송재익]], [[장광호]], [[권명철]], [[김종헌(야구선수)|김종헌]]. === [[송유석]] ↔ [[최익성]] 등 2대1 [[사인 앤드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0.03.21 ||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 [[송유석]][br][[신국환(야구)|신국환]] || [[최익성]] ||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00321/7518736/1|최익성-송유석 등 트레이드]] 송유석의 선수협 활동으로 인한 보복성 트레이드. 송유석이 FA 신청을 한 이유에서부터 송유석 측과 LG 측의 이야기가 달랐고[* 송유석은 소속팀 LG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고 연봉 문제는 구단에 일임한 채 FA를 선언했다고 밝혔으나 LG 관계자는 FA 신청했으면 팀 떠나겠다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며 송유석에게 다른 팀 알아보라고 전했다.] 이전부터 여러 이유로 선수와 구단 간 마찰이 있었던 지라 사실상 LG가 33세의 노장이었던 송유석을 팽한 트레이드다. 형식은 [[사인 앤드 트레이드]]였다. '''최익성'''은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저니맨이 되었는데 LG에서는 특별한 활약상은 없이 1년만에 [[홍현우]]의 보상선수로 KIA로 떠났다. '''송유석'''은 한화에서 아예 망했고 1년만에 방출되었다. '''신국환'''도 한화에서 백업 내야수로 제한된 출전시간만 가져가다 2002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양준혁]] ↔ [[손혁]] === || '''트레이드 일자''' || 2000.03.24 ||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 [[양준혁]] || [[손혁]] ||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00324/7519642/1|양준혁도 LG로 트레이드]] 흔히 양준혁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으로 인한 보복 트레이드로 알려져있지만, 그보다는 [[김응용]] 해태 감독이 양준혁에게 딱 1년만 뛰고 보내준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행한 트레이드다. 결과적으로 '''양준혁'''은 LG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 김응용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삼성으로 돌아갔고, '''손혁'''만 해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냥 임의탈퇴되었다. === [[김정수(1962)|김정수]] [[사인 앤드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0.03.30 ||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김정수(1962)|김정수]] || 5천만원 || 해태는 FA를 선언한 김정수를 팀 전력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선수로 분류한 상태였고[* 당시 해태에는 지난해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만 7명이 있었을 정도로 나름 풍족했고 좌완 투수로는 [[오철민]]이 상당히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기대주 [[강영식]]도 입단했던 시기였다.] SK는 쌍방울의 처참한 투수 뎁스를 그대로 승계한 지라 시즌을 진행하려면 1군에서 사람 비슷하게라도 던져 줄 투수가 필요했다. 그러한 양측의 요구가 맞아 [[사인 앤드 트레이드]]가 이뤄지게 되었다. 김정수는 SK로 이적한 후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곧바로 방출되어 한화에 입단했다. 이후 2003년에 다시 현금 트레이드로 SK에 재합류하기도 했다. === [[박보현]] ↔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 === || '''트레이드 일자''' || 2000.05.07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0]]]]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 [[박보현]] ||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 || *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00508000093|박보현-김영수 맞트레이드]] '''박보현'''은 두산에서 부진한 성적에도 나름 이닝을 소화하다가 2002년 방출되었고 '''김영수'''는 팀의 좌완 불펜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선발 전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후 SK로 트레이드되었다. === [[성영재]] ↔ [[이호준]] === || '''트레이드 일자''' || 2000.06.01 ||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 [[성영재]] || [[이호준]] ||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00601/7541900/1|성영재-이호준 맞트레이드]] 당시 신생팀으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던 SK가 타선 강화를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 해태는 이강철이 삼성으로 가서 언더핸드 투수가 없었기에[* 이강철의 삼성 이적에 따른 반대급부 [[박충식]]은 재활중이었다.] 성영재를 잡아왔고, 반대급부로 팀에서 고정 포지션을 따내지 못하던 이호준을 보냈다. 그러나 그 결과는 '''KBO 역사상 차악(次惡)의 조공 트레이드'''.[* 이 트레이드 11년 후에는 LG가 투수력 보강에 눈이 어두워 '''[[박병호|이호준을 뛰어넘어 이승엽의 오른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KBO 역사상 최고의 오른손 거포]]를 트레이드하는 대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심지어 이 최악의 트레이드는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뒷돈으로 15억원]]'''까지 준 트레이드였다.] '''성영재'''는 트레이드 이후 2000 시즌 [[최상덕]]과 더불어 무너지는 해태 선발진을 지탱하며 괜찮은 성적을 냈지만 시즌 후 병역비리가 적발되어 은팔찌를 찼고, 그나마 2001시즌 개막 전에 집행유예가 선고되어 풀려나긴 했지만 몇 달을 제대로 훈련하지 못 한 탓에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는 안그래도 하향세를 타던 성영재에게는 치명타였다. 결국 2001년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613 잠실대참사'''[* 2001년 6월 13일 잠실 두산전에서 연장 10회초 당대 최고의 마무리 [[진필중]]을 두들겨 4점을 뽑아내고도 10회말 수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5점을 내주는 대역전패를 당한 사건. 이 1패에 발목을 잡혀 이 해 타이거즈는 단 반게임 차로 [[한화 이글스]]에게 포스트시즌 티켓을 내주었다.]의 원흉이 되더니 2002년은 한 경기 뛰고 방출당했다. 반면 '''이호준'''은 트레이드 직후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2002년부터 포텐셜이 터지며 팀의 19년 역사상 단 6명[* [[호세 페르난데스(1974)|호세 페르난데스]], '''이호준''', [[박경완]], [[최정]], [[제이미 로맥]], [[한동민]]]밖에 없는 30홈런 타자[* 더군다나 30홈런을 2년 연속으로 달성한 선수는 이호준, 최정, 로맥 등 3명밖에 없다.]가 되어 SK에서 13시즌을 뛰고 196홈런을 때려내며 SK를 넘어 KBO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파워히터로 이름을 남겼다. 더군다나 친정팀 KIA와 맞붙은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KIA를 3승 무패로 침몰시키는 데 선봉으로서기도 했고, [[이승엽]]이 일본에 진출한 직후이기는 하지만 2004 시즌에 타점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으며 '''KIA와의''' [[2009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쳐 시리즈를 7차전까지 몰고갔다. 이호준의 트레이드 이후 타이거즈는 2009년 [[김상현(1980)|김상현]]과 [[최희섭]]이 동시에 각성하기 전까지[* 그나마 김상현은 원래 해태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2002 시즌 중반 LG로 트레이드되었다가 2009 시즌 초 KIA로 재트레이드되었고, 1998년 해태의 1차지명 선수였던 최희섭은 해태 입단을 거부하고 대학진학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가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KIA에 입단했다.] 거포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2009 시즌의 김상현과 최희섭 이후 KIA 타자들 중에서 시즌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이범호]](2016년)와 [[프레스턴 터커]](2020년)가 유이하고, 그나마 각각 타팀에서 FA 영입한 선수와 외국인 선수이다. 다시 말하면 '''21세기 들어 KIA가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뽑은 타자들 중에서 시즌 30홈런 이상 타자는 전무하고, 20홈런 이상 타자도 [[나지완]]과 [[안치홍]] 정도이다.'''] 그리고 정신 못차린 타이거즈는 2년 후 좌완투수 보강에 눈이 멀어 [[김상현(1980)|차세대 거포]]를 [[LG 트윈스]]에서 변변찮은 성적을 남기던 투수 방동민[* 1999년 [[이승엽]]에게 KBO 사상 첫 시즌 50홈런의 [[허용투수]]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고교시절 초고교급 투수로 명성을 날렸으나 이미 프로에 올당시 어깨가 완전히 간 상태였다. 이런 투수를 [[김성근]]이 굴리고서는 폐품 취급하며 KIA로 넘긴 것이다.]과 트레이드한 데 이어 중심타선을 보강한답시고 [[정성훈]]에 현금 10억까지 얹어주고 현대에서 [[박재홍(야구)|박재홍]]을 받아오는 대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 [[김종석(1971)|김종석]]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0.06.01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 [[김종석(1971)|김종석]] || 1억원 || 한창 부진하던 김종석은 이 트레이드 후 잠시 부활해 2001년 커리어 하이로 팀을 간신히 4위로 올려놓는 등 활약했지만, 2002년부터 다시 부진에 빠지며 2004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김호(야구)|김호]] ↔ [[박계원]] === || '''트레이드 일자''' || 2000.06.02 ||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 [[김호(야구)|김호]] || [[박계원]] || 이호준-성영재 트레이드에 연달아 발표된 트레이드. '''김호'''가 해태로 트레이드된 이후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방출된 반면 '''박계원'''은 성적은 좋지 않았어도 초창기 암울했던 SK의 내야 상황 때문에 꽤 많은 경기에 나섰다. === [[김경기]]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0.07.07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김경기]] || 2억 5천만원 || *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9&aid=0000027828|현대 김경기, SK로 이적]] 신생팀 SK에 대해 적응을 못한 인천야구팬들이 '인천야구 대부'였던 [[김진영(1935)|김진영]]의 장남이자 인천야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김경기의 이적을 요구한 트레이드. 당시 김경기는 에이징 커브로 인한 기량저하로 현대 유니콘스에서 이숭용과 외국인 타자에게 포지션 경쟁에서 밀린 상태였고, [[전준호(1969)|동료 선수]]와의 불화도 있어서 출장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김경기 본인도 이 트레이드를 반겼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어린 선수를 선호하는 [[강병철]] 감독은 많이 노쇠화된 김경기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았고, 결국 2001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김경기가 인천에서 프로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정도의 의미는 있는 트레이드. === 이경수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0.07.15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이경수 || 현금 || === [[강성우]] ↔ 손석만 === || '''트레이드 일자''' || 2000.12.19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강성우]] || 손석만 || *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989474|SK 롯데 강성우 손석만 1대1 트레이드]] '''강성우'''는 백업 포수로 2005년까지 1군에 활약했으나 '''손석만'''은 1군 기록 없이 방출되었다. == 2001년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심볼(1999~2009).svg|width=60]]]]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 {{{#red,#pink 장광호[br]심재학[br]조웅천[br]조규제[br]김홍집[br]최영필[br]최만호}}} || {{{#red,#pink 심정수[br]강혁}}} || {{{#red,#pink 김주찬[br]이계성[br]신동주[br]김지훈[br]김영진[br]조정권[br]이강철[br]정경배[br]김동수[br]김상진[br]이용훈[br]김태한[br]김기태}}} || {{{#red,#pink 안재만[br]허문회[br]정현택}}} || || {{{#blue,#cyan 심정수[br]이상열[br]정현택}}} || {{{#blue,#cyan 심재학}}} || {{{#blue,#cyan 마해영[br]강영식[br]김승권[br]오상민[br]브리또}}} || {{{#blue,#cyan 장재중[br]유현승[br]한규식[br]최만호}}} || || {{{#red,#pink 7}}} / {{{#blue,#cyan 3}}} || {{{#red,#pink 2}}} / {{{#blue,#cyan 1}}} || {{{#red,#pink 13}}} / {{{#blue,#cyan 5}}} || {{{#red,#pink 3}}} / {{{#blue,#cyan 4}}}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심볼(1994~2005).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red,#pink 마해영[br]한규식}}} || {{{#red,#pink 강영식[br]양현석}}} || {{{#red,#pink 김승권[br]이상열}}} || {{{#red,#pink 장광호[br]장재중[br]유현승[br]이동수[br]가내영[br]오상민[br]브리또}}} || || {{{#blue,#cyan 김주찬[br]이계성[br]허문회}}} || {{{#blue,#cyan 신동주[br]김지훈[br]이동수[br]가내영[br]이강철}}} || {{{#blue,#cyan 김영진[br]조정권[br]김홍집[br]최영필}}} || {{{#blue,#cyan 조웅천[br]조규제[br]강혁[br]안재만[br]양현석[br]정경배[br]김동수[br]김상진[br]이용훈[br]김태한[br]김기태}}} || || {{{#red,#pink 2}}} / {{{#blue,#cyan 3}}} || {{{#red,#pink 2}}} / {{{#blue,#cyan 5}}} || {{{#red,#pink 2}}} / {{{#blue,#cyan 4}}} || {{{#red,#pink 7}}} / {{{#blue,#cyan 11}}} || ||<-4> {{{#red,#pink '''Out'''}}} {{{#blue,#cyan '''In'''}}} || === [[장광호]]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1.02.09 ||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 [[장광호]] || 3천만원 || * [[https://www.khan.co.kr/article/200101211734151|현대 포수 장광호 재영입]] 현대는 [[이재주]]의 부상 이후 백업 포수를 구하고 있었고 SK는 [[강성우]]의 영입 이후 포수 뎁스를 정리하고자 [[양용모]], [[장재중]], [[김충민]]에 밀려 2군으로 내려간 장광호를 내보냈다. 장광호는 2001년 백업 포수로 뛰었으나 2002년에는 2군에 머무르다 은퇴했다. === [[마해영]] ↔ [[김주찬]] 등 1대2 === || '''트레이드 일자''' || 2001.02.01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5]]]] || || [[마해영]] || [[김주찬]][br][[이계성]] ||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10201/7642669/1|'찍힌' 마해영 결국 삼성으로]] 마해영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활동에 대한 보복성 트레이드이자 '''[[8888577]]의 시발점'''이 된 트레이드. 롯데는 당초 포수 진감용, 외야수 강도우를 요구 했다. '''마해영'''은 2001~2003년 3년 연속 30홈런, 그리고 연 평균 .310의 타율과 평균 110타점에 이르는 엄청난 생산력을 보이면서 [[이마양]] 트리오로 대표되는 삼성의 막강 타선에 크게 기여했고, 커리어 유일한 골든글러브도 삼성 시절에 받았으며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며 팀 우승에도 크게 공헌했다. 심지어 뛴 기간이 더 길었던(7년) 롯데 자이언츠 시절보다, 불과 3년밖에 뛰지 않은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로 자신을 인식할 정도로 엄청난 단기 임팩트를 보여줬다. 삼성을 떠나고 급격히 하락세를 탄게 아쉬울 뿐. 반대급부로 롯데에 입단한 '''김주찬'''의 경우는 2001년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테이블 세터로 좋은 성적을 냈으나, 2002년 [[백인천]]에 의해 무리하게 장타자로 스타일 전환을 시도하다가 부진에 빠지고 수비 문제로 여러 차례 포지션 변경[* 처음에는 1루수, 그 이후에 유격수, 3루수, 그리고 외야수를 왔다갔다했다. 외야수로 포지션이 고정된 때는 공익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07년부터다. 그러나 여전히 팀 사정상 1루수 포지션을 병행하면서 뛰었고, 내외야를 오가면서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행동(도루 등)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부상도 잦았다.]을 하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7년 베이징올림픽 예선전 때의 맹활약 이후 포텐이 만개하여 롯데의 테이블세터로 완전히 자리잡고, FA에서 대박을 치고 KIA로 가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위 두 사람과 대조적으로 '''이계성'''은 선수 시절엔 극소수의 올드팬들만 아는 듣보잡이었고, 은퇴 후 KBO 심판으로 전업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 [[심정수]] ↔ [[심재학]] === || '''트레이드 일자''' || 2001.02.09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 [[심정수]] || [[심재학]] ||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10209/7646601/1|심정수-심재학 전격 맞바꿈… "선수협 보복성" 분석]] 심정수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활동에 대한 보복성 트레이드. 이 트레이드도 윈-윈 트레이드이긴 하나,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현대가 더 이득을 봤다. 두산으로 간 '''심재학'''은 2001년 심정수의 공백이 생각나지 않는 맹활약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성공했지만, 2002년 이후 다시 평이한 성적을 기록하다가 기아로 트레이드되었다. 반면 '''심정수'''는 현대로 이적한 첫 시즌 다소 부침을 겪었으나, 이듬해부터 문자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더구나 심정수는 [[우동수]] 트리오의 한 축으로 당대 베어스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심정수의 이적으로 인한 올드 팬 유출도 심각했다. === [[조웅천]], [[조규제]]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1.02.09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조웅천]][br][[조규제]] || 15억원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2/09/2001020970374.html|SK 마운드 업그레이드]] 신생팀 SK가 창단 첫 해를 꼴찌로 마치자, SK에서는 KBO에 [[2000년 한국시리즈]] [[현대 유니콘스|우승팀]]에서 보호선수 20명 외 1명을 현금 트레이드, [[두산 베어스|준우승팀]]에서 보호선수 21명 외 1명을 현금 트레이드 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게 받아들여져 현대에서는 이 두명의 투수를 보냈다. ~~이게 되네?~~ '''조웅천'''은 2001년에는 트레이드 충격으로 부진했으나 그 이듬해부터 다시 제 실력을 내더니 2003년에는 구원왕까지 차지하며 팀의 [[2003년 한국시리즈|첫 한국시리즈 진출]]에 공헌했고 '''조규제'''는 SK 창단 초 암흑기 투수진을 지탱하다가 [[박경완]]의 보상선수로 현대로 돌아갔다. 한편 현대는 당시 모기업인 [[하이닉스]]가 사실상 빚쟁이들의 손에 들어가며 이 때부터 자금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 트레이드로 받은 15억과 [[정민태]] 임대료를 합쳐서 운영비로 사용했다. === [[강혁(야구)|강혁]]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1.03.16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강혁(야구)|강혁]] || 6억 7500만원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3/16/2001031670405.html|강혁, 몸값 6억 7500만원]] 조웅천, 조규제 트레이드에 이어 두산에서는 아마야구에서는 이름을 날렸지만 프로에서는 활약이 그저 그랬던 강혁을 보냈다. 어차피 강혁은 전년도 8월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로 인해 구단에 제대로 찍힌 상황이었다. 강혁은 SK에 와서도 별반 활약이 없다가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때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전에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드러나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특례를 박탈당하면서 선수 생명이 끝났다. === [[강영식]] ↔ [[신동주(야구)|신동주]] === || '''트레이드 일자''' || 2001.03.21 ||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0]]]] || || [[강영식]] || [[신동주(야구)|신동주]] ||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686|신동주·강영식 맞트레이드]] 전년도까지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있다가 2001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응용]]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뤄진 트레이드다. [[강영식]]은 150km/h대 강속구를 던지던 고졸 2년차 좌완 투수로 피지컬 좋은 좌완 투수를 선호하는 김응용이 해태 감독 시절부터 직접 자기 집에 데려다가 햄 구워서 밥 해먹일 정도로 적극적으로 키우려고 시도했던 선수였다. [[신동주(야구)|신동주]] 역시 직전년도에 부진했지만, 그래도 한때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발 빠르고 두 차례나 20홈런을 쳤을 정도로 장타력도 괜찮은 선수였다. 삼성은 외야진 교통정리 겸 김응용 감독이 원하는 좌완투수 보강을, 해태는 타선 보강을 목적으로 양 팀간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어찌보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고졸 2년차 투수를 주전급 외야수 한 명을 내줘가면서 데려온 모험성 트레이드였다. 결론적으로 보면 삼성으로 간 '''강영식'''은 트레이드 2년차인 2002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맹활약했고,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승리투수가 되는 등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으나 이후에는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하고 2006년 [[신명철]]과의 맞트레이드되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신동주''' 역시 해태-KIA에서 주전 외야수로 나왔으나 부상 등이 겹친데다 삼성 시절만큼은 못했다. 이후 2003년 말 [[마해영]]의 FA 보상선수로 다시 삼성으로 돌아와 백업으로 뛰다가 2005년 다시 KIA로 재트레이드되었다. 두 팀 다 소소하게 이득을 본 트레이드라고 평가할 수 있으나 굳이 따지면 강영식을 데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본 뒤 다시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신명철을 데려와 주전 2루수로 써먹은 삼성이 더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겠다. === [[김지훈(1973)|김지훈]]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1.04.16 ||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5]]]] || [[한화 이글스|[[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 [[김지훈(1973)|김지훈]] || 2천만원 || * [[https://mnews.imaeil.com/page/view/2001041714225187406|포수 김지훈 해태 트레이드]] 삼성은 이미 [[진갑용]]이 주전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백업으로는 [[김동수(야구)|김동수]]가 있었던 만큼 김지훈의 자리가 없었다. 반면 해태는 주전 [[김상훈(1977)|김상훈]]이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백업인 황성기도 확실한 옵션은 아니었던 만큼 포수 보강에 나섰다. 이후 김지훈은 해태가 인수되고 KIA로 팀명이 바뀌고서도 3년간 백업포수로 있다가 은퇴했다. === [[김승권]] ↔ [[김영진(야구)|김영진]] 등 1대2 === || '''트레이드 일자''' || 2001.04.27 ||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5]]]] || || [[김승권]] || [[김영진(야구)|김영진]][br]조정권 || * [[https://www.joongang.co.kr/article/900479#home|한화 김승권 삼성과 1:2 트레이드]] 삼성의 골칫덩이였던 김영진을 보낸 트레이드. '''김영진'''은 한화로 트레이드된 후 그 해 7경기에 출전했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함께 트레이드된 '''조정권'''은 트레이드 당해에는 백업 외야수로 1군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이후로는 주로 2군에 머물다가 방출되었다. 그나마 '''김승권'''이 백업이었으나 트레이드 당해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이후 김승권은 트레이드로 다시 한화에 복귀했다. === [[안재만]] ↔ [[장재중]] 등 1대2 === || '''트레이드 일자''' || 2001.04.28 ||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5]]]] || || [[안재만]] || [[장재중]][br]유현승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4/29/2001042970063.html|안재만과 '유현승-장재중' 1대2 트레이드]] 1군 포수가 전부 부상당했던 LG와 부진한 기존 3루수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를 대체하고자 한 SK 간의 트레이드. 여기에 SK가 구위가 부족한 스윙맨 유현승을 얹어주면서 성사되었다. LG에서 '''장재중'''은 무난히 백업 포수 역할을 수행했고 '''유현승'''도 트레이드된 해에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이듬해 은퇴했다. '''안재만'''은 SK에서 2001년 주전 3루수로 준수한 활약을 했으나 이후 외국인 3루수 [[호세 페르난데스(1974)|호세 페르난데스]]를 영입하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외인을 3루로 기용하면서 내야 유틸리티로 밀려났고 [[김재현(1975)|김재현]]의 FA 보상선수로 LG에 복귀했다. === [[양현석(야구선수)|양현석]] ↔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가내영]] === || '''트레이드 일자''' || 2001.05.31 ||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양현석(야구선수)|양현석]] ||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br][[가내영]]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5/30/2001053070463.html|해태-SK, 2대1 트레이드]] 당시 [[신동주(야구)|신동주]], [[김창희(야구)|김창희]], [[장일현]]의 주전 라인에 [[김경언]]이라는 기대주까지 있어 양현석에게 출전 기회를 줄 수 없던 KIA와 [[안재만]]의 영입으로 수비가 불안한 이동수의 자리가 애매해진 SK 간의 트레이드. 여기에 부상 문제로 기량이 떨어졌던 가내영을 SK가 추가로 내주며 성사되었다. '''이동수'''는 2001년 타이거즈의 클린업으로, '''가내영'''은 2002년 롱릴리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으나 오래 가지 못했고 기대를 갖고 영입한 유망주 '''양현석'''은 무난한 성적을 거두다가 [[조경환]]의 영입으로 자리를 잃고 LG로 다시 트레이드되었다. === [[김홍집]], [[최영필]] ↔ [[이상열(야구)|이상열]], 3억 === || '''트레이드 일자''' || 2001.06.16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 [[김홍집(야구)|김홍집]][br][[최영필]] || [[이상열(야구)|이상열]][br]3억원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6/17/2001061770059.html|한화, 현대와 1대2 투수 트레이드]] 인천야구의 산증인이던 김홍집이지만 고질적 어깨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많이 저하된 상태였고, 결국 안터지던 최영필과 묶어서 한화로 보냈다. 현대로 온 '''이상열'''이 2004년까지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반면, '''김홍집'''은 잠깐 부활하나 했지만 2003년 은퇴하고 '''최영필'''은 2005년에 가서야 뒤늦게 포텐셜이 터지기 시작했다. 단기적으로는 현대의 승리, 장기적으로는 윈윈이라고 볼 수 있는 트레이드. === [[한규식]] ↔ [[허문회]] === || '''트레이드 일자''' || 2001.07.13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 [[한규식]] || [[허문회]]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7/13/2001071370079.html|한규식-허문회 트레이드]] 94년 LG 우승멤버이자 백업 1루수였던 [[허문회]]와 내야 유망주였던 [[한규식]] 간 트레이드. 둘 다 백업 멤버들간의 트레이드지만 이례적으로 평소 젊은 선수를 보내고 즉전감인 베테랑 선수를 데려오는 걸 좋아하는 [[김성근]] 감독 답지않게 역으로 베테랑 선수를 내주고 젊은 유망주를 받아온 특이한 케이스. '''허문회'''는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 2001년 후반기에는 3할로 맹타를 휘둘렀고 2002년에는 커리어 중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서며 준주전급으로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반면 '''한규식'''은 2005년을 제외하면 사실상 2군 멤버로 보내다가 KIA로 재트레이드된 뒤 은퇴하며 롯데가 조금 더 이득을 봤다. === [[최만호]] ↔ 정현택 === || '''트레이드 일자''' || 2001.07.24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 [[최만호]] || 정현택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7/26/2001072670007.html|전날은 1루 덕아웃, 오늘은 3루 덕아웃.]] 박용택을 능가하는 유망주인 정현택이 안터지자[* 사실 정현택은 선크림 사건 등 온갖 기행으로 구단에 단단히 찍힌 상태였다.] 최만호와 바꾼 트레이드인데, '''최만호'''가 그럭저럭 백업으로 있었으나 '''정현택'''은 듣보잡이 되어서 은퇴했으므로, LG가 이익을 봤다. === [[이강철]]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1.07.30 ||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5]]]] || [[해태 타이거즈|[[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width=65]]]] || || [[이강철]] || 2억원 || *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620|이강철 다시 호랑이 품으로]] '''FA 이적 1호'''였지만 먹튀가 된 이강철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트레이드.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해태가 KIA로 간판을 바꿔달기 직전에 성사된 트레이드여서 7월 31일 인천 SK전에서 이강철이 해태 유니폼을 입고 투구하는 마지막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이 경기가 우천취소되었다. 그리고 이강철은 KIA에 가서 괜찮은 불펜 요원으로 부활하며 삼성 팬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 [[틸슨 브리또|브리또]], [[오상민]], 11억 ↔ [[김기태(1969)|김기태]], [[정경배]] 등 6인 === || '''트레이드 일자''' || 2001.12.16 ||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5]]]] || || [[틸슨 브리또|브리또]][br][[오상민]][br]11억원 || [[김기태(1969)|김기태]][br][[정경배]][br][[김동수(야구)|김동수]][br][[김상진(1970)|김상진]][br][[이용훈(야구)|이용훈]][br][[김태한]] || * [[https://sports.v.daum.net/v/20011216080712473?f=o|삼성-SK, 김기태 포함 6-2 트레이드]] 삼성은 장타력 있는 유격수 보강과 천적 제거를 통해 이듬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고, SK는 선수단 보강에 성공[* 단, 김동수는 2002 시즌 후 방출되었으며, [[김태한]]과 [[김상진(1970)|김상진]]은 2003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용훈(야구)|이용훈]]은 2003 시즌 중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를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다시 트레이드되었다.]한 윈-윈 트레이드. SK에서도 삼성 시절 못지않은 좋은 타력과 수비를 보여준 '''정경배'''는 정근우가 2루수로 완전히 자리잡기 전까지 주전 2루수로 뛰었으며, '''김기태'''는 팀의 리더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마지막 불꽃을 잘 태우고 은퇴했다. 스탯티즈 WAR로 비교해도 상당히 밸런스가 좋았던 트레이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수가 해당 팀에서 뛰는동안, 삼성은 11.67, SK는 16.55 만큼의 WAR을 얻었다. 삼성 : [[오상민]](3.79) + [[틸슨 브리또|브리또]](7.88) = 11.67 SK : [[정경배]](8.48) + [[김동수(야구)|김동수]](1.76) + [[김상진(1970)|김상진]](2.69) + [[이용훈(야구)|이용훈]](-0.64) + [[김태한]](0.11) + [[김기태(1969)|김기태]](4.15) = 16.55 == 2002년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심볼(1999~2009).svg|width=60]]]]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width=65]]]]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심볼(1994~2005).svg|width=65]]]] || || {{{#red,#pink 이도형}}} || {{{#red,#pink 이명호[br]김태균}}} || {{{#red,#pink 노승욱[br]이재주[br]장정석}}} || {{{#red,#pink 강인권}}} || || {{{#blue,#cyan 강인권}}} || {{{#blue,#cyan 임재철}}} || {{{#blue,#cyan 서한규[br]최익성}}} || {{{#blue,#cyan 이도형}}} || || {{{#red,#pink 1}}} / {{{#blue,#cyan 1}}} || {{{#red,#pink 2}}} / {{{#blue,#cyan 1}}} || {{{#red,#pink 3}}} / {{{#blue,#cyan 2}}} || {{{#red,#pink 1}}} / {{{#blue,#cyan 1}}} ||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 {{{#red,#pink 최익성[br]김상현}}} || {{{#red,#pink 방동민}}} || {{{#red,#pink 박남섭[br]윤재국[br]에르난데스}}} || {{{#red,#pink 서한규[br]임재철[br]조경환[br]매기[br]김인철}}} || || {{{#blue,#cyan 이재주[br]장정석[br]방동민}}} || {{{#blue,#cyan 김상현}}} || {{{#blue,#cyan 조경환[br]매기}}} || {{{#blue,#cyan 노승욱[br]이명호[br]김태균[br]박남섭[br]윤재국[br]에르난데스}}} || || {{{#red,#pink 2}}} / {{{#blue,#cyan 3}}} || {{{#red,#pink 1}}} / {{{#blue,#cyan 1}}} || {{{#red,#pink 3}}} / {{{#blue,#cyan 2}}} || {{{#red,#pink 5}}} / {{{#blue,#cyan 6}}} || ||<-4> {{{#red,#pink '''Out'''}}} {{{#blue,#cyan '''In'''}}} || === [[이도형]] ↔ [[강인권]], 5억 === || '''트레이드 일자''' || 2002.01.17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 [[이도형]] || [[강인권]][br]5억원 || * [[https://www.google.com/amp/s/www.donga.com/news/amp/all/20020117/7779890/1|두산, 이도형 한화로 트레이드]] 2001년 한화는 강인권, [[조경택]], [[신경현]] 등 여러 포수들을 돌려가며 기용해봤지만 누구 하나 확실한 주전 포수 감이 없었고 결국 주전 포수로 이도형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반면 두산은 이미 [[홍성흔]]이라는 확고한 주전 포수가 존재했기에 이도형을 내주는 대신 백업 포수로 수비가 좋은 강인권을 영입하고 5억원을 챙겼다. 한화는 '''이도형'''을 세 시즌 정도 주전 포수로 활용하고 2004년 어깨 부상 이후로는 지명타자로 주로 기용했는데 좋은 성적을 거뒀다. 두산 역시 '''강인권'''을 무난한 백업 포수로 2006년까지 잘 기용했고 현금 5억을 확보하면서 양 팀간 윈-윈 트레이드로 남았다. === [[노승욱]] ↔ [[서한규]] === || '''트레이드 일자''' || 2002.04.03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 [[노승욱]] || [[서한규]] || 태평양 시절인 1993년에 데뷔했으나 갈 수록 출장기록이 적어지던 언더핸드 계투자원 노승욱, 당시 롯데의 터지지 않던 유격수 자원 서한규가 트레이드 되었다. '''노승욱'''은 롯데 이적 후 등판이 많아졌으나, 경기 중후반 불안한 피칭을 자주보이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 이전 "지나가던 '노승 욱' 하며 하는 말"로 롯데의 방화범 리스트에 기억될 정도... '''서한규'''는 2004년 시즌 후 확고한 주전 유격수인 [[박진만]]이 FA로 떠난 후 유격수 주전으로 출장하였다. 수비 능력은 어느 정도 탄탄해서 주전으로 낙점되었으나, 현대가 해체된 후 바로 은퇴하여 주전으로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박진만 이후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임팩트 때문인지 서한규가 롯데에서 트레이드 된 선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 [[이재주]]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2.04.04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이재주]] || 3억원 || KIA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 현금 트레이드. 당시 현대에서 포수 자리는 주전 [[박경완]]에 후보로는 동국대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준 신인 [[강귀태]]가 입단했고 지명타자 자리는 외국인 선수에게 주어졌던 만큼 이재주의 자리가 없었다. 이때의 현대는 중복자원을 뎁스로 데리고 있을 만큼 팀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했던 지라 결국 이재주는 현금을 댓가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이후 이재주는 김상훈의 백업포수와 대타로 쏠쏠히 활약하며 대타 최다홈런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06년부터는 마해영의 트레이드로 인해 공석이 된 지명타자 주전자리를 꿰차면서 KIA의 4번타자로 자리잡았고 침체기 시절 타이거즈의 중심타자 역할을 했었다. 이후 09년까지 기아는 이재주를 쏠쏠하게 잘 써먹었고, 이재주 본인도 KIA에서 우승반지를 하나 더 껴보게 된다. === [[김태균(1971)|김태균]] ↔ [[임재철]], 8천만 등 2대1 === || '''트레이드 일자''' || 2002.04.29 ||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5]]]]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 [[김태균(1971)|김태균]][br][[이명호(야구)|이명호]] || [[임재철]][br]8천만원 || *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6480|삼성-롯데 1대2 트레이드]] 당시 삼성 입장에서는 틸슨 브리또의 영입으로 팀 내 입지가 좁아진 김태균을 롯데로 보내고, 반대로 외야 백업자원을 보강하기 위해 임재철을 영입한 트레이드이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김태균'''은 롯데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군 내야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반대로 '''임재철'''은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자마자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가 되었고, 그 다음시즌에 한화로 트레이드된다. 이 트레이드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호인데, '''이명호'''는 좌타 외야 유망주였으나, 롯데로 트레이드되어 [[백인천]]에 의해 좌완 사이드암 투수로 전향하면서 커리어에 큰 피해를 입고 처량하게 은퇴하고 만다. === [[장정석]] ↔ [[최익성]] === || '''트레이드 일자''' || 2002.06.16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장정석]] || [[최익성]]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6/16/2002061670078.html|기아 최익성-현대 장정석 '맞트레이드']] === [[조경환(야구)|조경환]] ↔ [[윤재국]] 등 2대3 === || '''트레이드 일자''' || 2002.07.20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조경환(야구)|조경환]][br][[대니얼 매기|매기]] || [[박준서|박남섭]][br][[윤재국]][br][[페르난도 에르난데스|에르난데스]] || * [[https://sports.v.daum.net/v/20020720091710459?f=o|롯데-SK, 2대 3 트레이드]] 이 트레이드를 주도 및 실행한 사람은 부산에 들어오면 시체로 나가실 '''[[백인천]]'''이다. 이 트레이드 직후 위엄 넘치는 금지어 백골퍼는 시즌 포기를 선언했고 롯데 팬들은 구단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그라고 말하고 있다. '''조경환'''은 백인천감독 타격폼 교체 했으나 성적이 안 나왔으나 다시 예전폼으로 돌아 갔으나 자신의 말 거역으로 알고 트레이드 이후 SK에서 2003년 엄청난 타격 능력으로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롯데가 대체자로 데려간 '''윤재국'''은 특출난 것 없이 평범한 수준의 활약만 보여주며 SK 쪽으로 완전히 기운 트레이드가 되었다. '''에르난데스'''는 SK에서 5월 8일에 어깨 부상 당한 후 SK에서도 웨이브 공시 예정이 이었던 선수 였다. 그러나 SK에서 웨이브 공시 안하고 롯데에서 웨이브 공시를 했다. 그나마 '''박남섭'''이 박준서로 개명한 후 2012년, 2013년 특급 대타 자원으로 활약하며 조금은 위안거리가 됐지만, 이는 무려 트레이드 10년 후의 일인데다가 당시 조경환의 활약상을 생각하면 재평가의 여지는 없다. === [[김상현(1980)|김상현]] ↔ 방동민 === || '''트레이드 일자''' || 2002.07.31 ||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 [[김상현(1980)|김상현]] || 방동민 ||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8/12/2002081270142.html|기아의 '밑지는 장사']] LG는 김성근 감독이 김상현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김상현은 이 시리즈 직전인 28일 LG와의 잠실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쳤다.] 기아는 좌완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두 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트레이드.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완벽한 루즈-루즈 트레이드가 되었다. '''김상현'''도 LG에서는 드넓은 잠실구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형적인 [[2군 본즈]]의 모습만 보여줬고, 한 때는 포텐셜이 있었지만 1군에서는 별다른 모습을 못 보여주던 '''방동민'''은 기아에서도 폭망하고 방출되었다. 타이거즈는 이미 [[성영재]] 트레이드때 비슷하게 투수 영입을 위해 [[이호준|유망한 타자]]를 내보냈다가 대실패를 겪었지만 같은 실책을 반복했다. === [[김인철(야구인)|김인철]]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2.07.31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김인철(야구인)|김인철]] || 2000만원 || *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6335|김인철 영입, 현금 트레이드]] KIA 타이거즈는 [[김장현(야구선수)|김장현]]의 위협구에 얼굴을 맞아 광대뼈가 함몰된 [[이종범]]의 백업요원으로 김인철을 받고 2천만원을 롯데에게 내주었다. 여담으로 이 트레이드는 양 팀간 첫 트레이드다. == 2003년 ==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red,#pink 임재철[br]김승권}}} || {{{#red,#pink 박연수}}} || {{{#red,#pink 박재홍[br]황윤성[* 7월 트레이드][br]권준헌}}} || {{{#red,#pink 김규태[br]정성훈[br]손혁[br]김창희[br]이동수[br]키퍼[br]심제훈[br]박진철[br]황윤성[* 12월 트레이드]}}} || || {{{#blue,#cyan 고지행[br]지승민}}} || {{{#blue,#cyan 허문회}}} || {{{#blue,#cyan 정성훈[br]송지만}}} || {{{#blue,#cyan 박재홍[br]진필중[br]김원섭[br]최용호[br]엄정대[br]허준[br]황윤성[* 7월 트레이드][br]심재학}}} || || {{{#red,#pink 2}}} / {{{#blue,#cyan 2}}} || {{{#red,#pink 1}}} / {{{#blue,#cyan 1}}} || {{{#red,#pink 3}}} / {{{#blue,#cyan 2}}} || {{{#red,#pink 9}}} / {{{#blue,#cyan 8}}}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심볼(1999~2009).svg|width=60]]]]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화이트 심볼(1994~2005).svg|width=65]]]]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width=65]]]] || || {{{#red,#pink 진필중[br]김원섭[br]최용호[br]문동환[br]심재학}}} || {{{#red,#pink 이용훈}}} || {{{#red,#pink 조효상[br]고지행[br]지승민[br]김정수[br]허준[br]송지만[br]채상병}}} || {{{#red,#pink 허문회[br]김영수[br]엄정대}}} || || {{{#blue,#cyan 손혁[br]김창희[br]이동수[br]키퍼[br]채상병[br]박진철[br]황윤성[* 12월 트레이드]}}} || {{{#blue,#cyan 김정수[br]김영수}}} || {{{#blue,#cyan 임재철[br]김승권[br]권준헌[br]문동환}}} || {{{#blue,#cyan 김규태[br]조효상[br]박연수[br]이용훈[br]심제훈}}} || || {{{#red,#pink 5}}} / {{{#blue,#cyan 7}}} || {{{#red,#pink 1}}} / {{{#blue,#cyan 2}}} || {{{#red,#pink 7}}} / {{{#blue,#cyan 4}}} || {{{#red,#pink 3}}} / {{{#blue,#cyan 5}}} || ||<-4> {{{#red,#pink '''Out'''}}} {{{#blue,#cyan '''In'''}}} || === 김규태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3.01.14 ||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width=65]]]] || || 김규태 || 현금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82&aid=0000559001|기사]]나 여러 사이트들을 통해 트레이드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김규태가 1군 경력이 전혀 없는 선수인 만큼 당시의 기사는 확인되지 않는다. 일단, KBO 연감상에서는 무상 트레이드가 아닌 현금 트레이드로 기록되어 있다.[* 연감에서 무상트레이드일 경우에는 *조건없음이라고 따로 표시한다. 참고로, 웨이버 공시 후 트레이드일 경우, 웨이버라 따로 표시하며, 현금 트레이드일 경우에는 구체적인 액수나 현금이라 따로 적지 않고 선수가 이적한 것만 기록한다.] === [[박재홍(야구)|박재홍]] ↔ [[정성훈]], 10억 === || '''트레이드 일자''' || 2003.01.15 || || [[현대 유니콘스|[[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박재홍(야구)|박재홍]] || [[정성훈]][br]10억원 || * [[https://sports.v.daum.net/v/20030115044613473?f=o|현대-기아, 박재홍-정성훈 트레이드]] 당시 KIA는 1루수 장성호, 2루수 김종국, 유격수 홍세완으로 고정된 상황에서, 3루수의 경우 포지션이 겹치는 정성훈과 이현곤 둘 중 하나를 트레이드해 내야진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KIA는 아마 시절부터 '제 2의 이종범' 이라고 불리던 이현곤을 믿고, 이미 가능성을 보였던 정성훈을 현금 10억까지 얹어주며 현대로 트레이드하고 박재홍을 영입해 중심 타선을 보강하고자 했다. 현대는 구멍이었던 3루수 보강 겸 재정난에 빠진 구단 사정상 자금력 확보를 목적으로 단행된 트레이드. 그리고 결과는 현대의 압승. 현대는 '''정성훈'''의 영입으로 오랜 기간 구멍이었던 3루수 보강에 성공하면서 [[KBO 한국시리즈]] [[2003년 한국시리즈|2연패에]] [[2004년 한국시리즈|성공]]했고, 정성훈 개인적으로도 꾸준히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후에 FA 대박도 두 차례나 이뤄낸다. 반면 KIA는 기껏 데려온 '''박재홍'''이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부상과 더불어 태업 의혹까지 받았을 정도로 부진했다. 거기에 과거 해태 입단을 거부하고 지명권 트레이드로 현대에 입단한 박재홍은 예전부터 고향팀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로인해 구단과 사이가 더욱 악화되며 결국 2년만에 SK로 재트레이드, 박재홍 본인에게나 KIA에게나 양쪽 모두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추가로 아마추어 시절 명성을 믿고 정성훈을 보낸 뒤 주전으로 기용된 이현곤은 지병인 갑상선 항진증으로 인해 프로에서는 아마추어 시절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7년 한국프로야구 미스터리|2007년 한 해 반짝 활약한 걸]] 제외하면 나머지 해는 부상으로 골골대다가 완전히 주전에서 밀려나 신생팀 NC로 이적, 거기서도 얼마 못 가 은퇴하고 말았다. 당시 KIA 단장이자 한동안 KIA 팬들에게 욕을 먹었던 [[정재공]] 단장의 명백한 삽질 중 하나. === [[진필중]] ↔ [[손혁]], [[김창희(야구)|김창희]], 8억 === || '''트레이드 일자''' || 2003.01.16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진필중]] || [[손혁]][br][[김창희(야구)|김창희]][br]8억원 || * [[https://sports.v.daum.net/v/20030116110327069?f=o|기아, 진필중도 영입]] 박재홍 트레이드 다음날 또한번의 충격을 안겨준 트레이드였다. 임창용 이적 이후 확실한 마무리투수 부재로 어려움을 겪던 KIA는 뒷문 보강을 위해 현금 8억에 손혁과 김창희까지 얹어주며 리그 최강의 마무리였던 진필중을 데려와 기대를 모았으나[* 당시 구단이 해태 산하에서 [[기아자동차]]로 인수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신인 김진우에게 계약금으로만 7억을 안겨주고,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박재홍과 진필중을 영입하는 등 해태 시절에 비해 모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자 해태 때부터 응원해 왔던 타이거즈 팬들의 기대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진필중'''은 전년도부터 슬슬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하락세 조짐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KIA 입단 후에도 팀 분위기 적응에 실패한 것부터 시작해 [[KIA 타이거즈/2003년/5월/27일|이 경기]]의 원흉이 되기도 하는 등 기대치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03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서울 연고 팀에서 뛰어야 한다' 라는 말을 하는 등 KIA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한편 진필중을 보낸 두산은 대신 받아온 '''손혁'''이 1년 만에 돌연 은퇴해버렸고, '''김창희'''는 준주전에 그쳤다가 삼성으로 재트레이드되는 등 양 팀 모두 이득을 보지 못한 루즈-루즈 트레이드로 볼 수 있으나, 두산은 진필중을 보내며 현금 8억을 확보했고, KIA는 진필중이 FA로 이적하자 보상선수로 [[손지환]]을 받아 몇 년동안 잘 써먹었으니 두 팀 모두 나름 이득을 본 셈도 있다. === [[조효상]]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3.04.19 ||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width=65]]]] || || [[조효상]] || 4천만원 || * [[https://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349|한화 조효상 롯데로 트레이드]] [[백인천]] 당시 롯데 감독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트레이드로 이후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기회를 받았지만 부진한 모습이었다. 감독이 양상문으로 바뀐 이후 2005년 잠시 기용되기도 했으나 이렇다 할 기록은 남기지 못하고 은퇴했고 은퇴 후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살았다. === [[고지행]] ↔ [[임재철]] 등 2대2 === || '''트레이드 일자''' || 2003.04.24 ||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삼성 라이온즈|[[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width=65]]]] || || [[고지행]][br][[지승민]] || [[임재철]][br][[김승권]] || * [[https://sports.v.daum.net/v/20030424092312761?f=o|삼성-한화 2대2 맞트레이드]]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wowolf&logNo=220096070556&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query%3D%25EA%25B3%25A0%25EC%25A7%2580%25ED%2596%2589%2B%25EA%25B9%2580%25EC%258A%25B9%25EA%25B6%258C%26where%3Dm%26sm%3Dmob_hty.idx%26qdt%3D1|고지행 관련 블로그]] 2003 시즌을 앞두고 한화는 내야진 보강 겸 타격에도 재능이 있었던 재일교포 고지행을 영입했지만 팀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유승안 감독과 마찰을 빚은 뒤 일본으로 무단 출국해 버리는 바람에 임의탈퇴를 걸고 말았다. 한편 삼성은 전술한 SK와의 6:2 트레이드 후 주전 2루수를 맡은 박정환이 타선에서 구멍이 되자,[* 이 당시 삼성은 타자 친화적인 홈구장의 이점을 적극 활용해 부족한 투수진의 공백을 장타력을 앞세워 공격으로 메꾸는 적극적인 공격야구를 했었다. 클린업 트리오에는 [[이마양]]이 버티고 있었고, 실제로 공격야구를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02년에는 주전 라인업 중 강동우, 박정환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이 '''모두 두 자릿 수 홈런을 치는 등''' 공격력은 타 팀에 비해 상당히 월등한 팀이었다.] 고지행의 타격 재능을 눈여겨보고 타선 보강을 위해 한화에게 고지행 트레이드를 제안하였고, 마침 한화도 부실했던 내야진 보강 겸 외야수를 받기 위해 트레이드 카드를 맞췄고, 고지행과 좌완투수 지승민을 삼성에 보내고 대신 내야 유틸리티 김승권과 외야수 임재철을 받게된다. 한편 삼성은 일본으로 무단 출국한 뒤 잠적했던 '''고지행'''을 데려오기 위해 당시 재일교포였던 삼성 2군 감독 신용균을 급파해가면서까지 고지행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고, 삼성 선수단에 합류하자마자 박정환을 밀어내고 테이블세터 겸 주전 2루수를 차지하면서 공수 양면으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2003 시즌 종료 후 삼성이 박종호를 FA로 데려오면서 졸지에 고지행은 밀려났고, 이후 노장진과 무단이탈한 뒤 술을 마시다가 김응용 감독에게 걸려 구단에 제대로 찍혔고 결국 2004 시즌 후 방출당했다. 이후 한화로 복귀했지만 한 시즌 만에 다시 방출당한 뒤 한국을 떠났다. 더불어 고지행과 같이 삼성으로 온 '''지승민'''은 병역비리에 연루된 데 이어 교통사고로 인해 커리어가 꼬인 후 채상병과 트레이드. 반대로 한화가 받아온 '''김승권'''은 내야가 부진했던 한화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부진하며 방출, 이후 현대에 입단했음에도 거기서도 얼마 못 버티고 방출되었고, '''임재철'''은 고향 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서 그 유명한 롯데보다 더 X같은 팀은 처음 본다는 말을 남겼다.] 1년만에 차명주와 맞트레이드되어 두산으로 이적한다. 결론적으론 2003년 한정으로 고지행을 주전으로 잘 써먹고 이후 지승민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포수 채상병을 받아온 삼성의 소소한 이득이 됐다. 만일 삼성이 FA로 박종호를 영입하지 않아 고지행이 오랫동안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면 한화는 후술할 송지만 트레이드 이상으로 더 철저히 손해를 보고 팬들에게 욕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 [[허문회]] ↔ [[박연수(1974)|박연수]] === || '''트레이드 일자''' || 2003.04.25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width=65]]]] || [[LG 트윈스|[[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65]]]] || || [[허문회]] || [[박연수(1974)|박연수]] || [[허문회]]를 다시 친정팀 LG로 돌려보내기 위한 트레이드. 허문회는 2년 만에 친정팀 유니폼을 다시 입었지만,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얼마 못 가 2군으로 내려간 뒤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면서 그대로 은퇴한다. 반대급부로 롯데에 건너간 [[박연수(1974)|박연수]]는 평범한 백업 내야수였으나, 그래도 선수층이 얇았던 롯데에서 2006년까지 준주전으로 뛰었다 보니 롯데의 근소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허문회는 17년 뒤 감독으로 롯데에 [[허문회/2020년|돌아]][[허문회/2021년|왔다.]] === [[김원섭]] ↔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 || '''트레이드 일자''' || 2003.05.06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김원섭]] ||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 * [[https://sports.v.daum.net/v/20030506091245110?f=o|기아 이동수-두산 김원섭 맞트레이드]] 동무로 불리는 '''김원섭'''은 원래 타이거즈 출신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KIA 유니폼을 입었고 이후로는 롱런하며 기아 외야의 한 축을 지키는 타자가 되었다. 반대로 '''이동수'''는 2003시즌을 끝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 [[김정수(1962)|김정수]]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3.06.09 || || [[한화 이글스|[[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김정수(1962)|김정수]] || 5000만원 ||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20&aid=0000191427|김정수 SK에 현금 트레이드]] 41세의 나이로 이미 제 몸상태가 아닌 김정수였으나 SK에 좌완이 [[이승호(1981)|이승호]] 하나였고 그마저도 선발이었던 만큼 현금 트레이드 되었다. 트레이드 후 원포인트로 33경기에 나섰으나 12이닝에 안타 17개를 맞으며 부진했다. 그래도 당시 SK의 허접한 좌완 불펜진 덕에 한국시리즈 명단에도 승선하여 등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 ↔ [[이용훈(야구)|이용훈]] === || '''트레이드 일자''' || 2003.06.10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width=65]]]] || [[SK 와이번스|[[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0~2005).svg|width=60]]]] || ||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 || [[이용훈(야구)|이용훈]] ||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0389648|롯데.SK, 김영수-이용훈 맞트레이드]] [[조규제]]가 [[박경완]]의 보상선수로 이적한 2003년 SK는 좌완투수가 부족했고 이를 보강하고자 삼성에서 데려왔던 선발 유망주였으나 부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이용훈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김영수를 데려왔다. '''김영수'''는 SK에서 패전처리만 2년간 맡다가 병역비리 사건으로 망했고 '''이용훈'''은 롯데로 간 뒤 스윙맨으로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며 이 트레이드는 명확히 롯데의 이득으로 끝났다. 여담이지만 이용훈은 이 당시 트레이드가 확정됐을 때 고향팀인 롯데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보니 부산으로 운전하면서 내려가는 내내 콧노래를 부르면서 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2군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 [[최용호(야구)|최용호]] ↔ [[마크 키퍼|키퍼]] === || '''트레이드 일자''' || 2003.07.09 || || [[두산 베어스|[[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최용호(야구)|최용호]] || [[마크 키퍼|키퍼]] || * [[https://sports.v.daum.net/v/20030709034152415?f=o|기아, 용병 투수 존슨 영입]] 트레이드 발표 직후 최용호가 KIA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돌연 잠적해버리는 등 소란이 있었고, 결국 '''최용호'''는 KIA에서도 시원찮은 성적만 남기고 2년만에 삼성으로 다시 트레이드된다. 반대로 두산으로 간 '''마크 키퍼'''는 트레이드 후 다시 살아나며 재계약에도 성공했으나 다음 해 다시 부진하며 퇴출되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나마 키퍼를 반 시즌정도 잘 써먹은 두산이 소소하게 이득을 본 트레이드. 여담으로 키퍼가 떠나며 생긴 KIA의 외국인 슬롯에 영입된 투수 마이클 키트 존슨은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이후 2005년에는 다시 KIA에서, 2009년에는 SK에서 뛰었다. === [[엄정대]] ↔ 심제훈 === || '''트레이드 일자''' || 2003.07.16 || || [[롯데 자이언츠|[[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width=65]]]] || [[KIA 타이거즈|[[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width=65]]]] || || [[엄정대]] || 심제훈 ||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00410337|기아 심제훈, 롯데 엄정대와 맞트레이드]] 흔치 않았던 타이거즈와 자이언츠 간의 트레이드로 서로 외야 자원을 교환했으나 KIA는 이미 외야가 백업까지 꽉 찬 상태였고 롯데도 외국인 타자 [[마리오 엔카르나시온|이시온]]부터 [[손인호(야구)|손인호]], [[이계성]], [[신종길]], 시즌 중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연수(1974)|박연수]]까지 있어 1군에는 자리가 없었다. === [[허준(1970)|허준]] 현금 트레이드 === || '''트레이드 일자''' || 2003.07.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