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호에이 대지진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ffffff {{{+1 1707년 호에이 대지진}}}}}}|| ||<-3> [[파일:1707_Hoei_Intensity.png|width=100%]][br]호에이 대지진 당시 일본 각지의 추정 최대진도(사후분석). || ||<:>{{{#ffffff 발생일시}}}||||<(>1707년 10월 28일 오후 2시경|| ||<:>{{{#ffffff 진앙}}}||||<(>[[일본]] [[와카야마현]] 남쪽 해역|| ||<:>{{{#ffffff 규모}}}||||<(>'''M,,L,, {{{#brown 8.6}}}''' / '''M,,w,, {{{#8000bb 9.3}}}'''|| ||<:>{{{#ffffff 최대진도}}}||||<(><#B50068> {{{#fff '''7'''[* '''진도 7 분류는 1949년에 신설되었다. 따라서 호에이 대지진이 발생한 1707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난 지 300여 년이 지나 사후해석을 한 경우이므로 편의상 진도 7로 기록한다.][br]시즈오카현, 아이치현, 오사카부, 고치현}}} || ||<:>{{{#ffffff 쓰나미}}}||||<(>고치현 나카토사정: {{{#8000bb '''25.7 m'''}}}[br]고치현 고치시 다네자키항: {{{#8000bb '''23.0 m'''}}}[br]평균 7.7~10m|| ||<:><|4>{{{#ffffff 피해}}}||<:> 사망자 ||'''최소 5,000명 이상''' || ||<:>이재민||불명 || ||<:>재산피해||가옥 약 29,000채 파괴 || ||<:>기타 주석||49일 뒤 후지산 대분화 발생|| [목차] [clearfix] == 개요 == '''1707년 호에이 대지진'''은 [[난카이 해곡]]에서 발생한 역사적 대지진으로 규모는 '''M 8.6-9.3'''에 육박했다. 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 셋 다 연동하여 발생해, '''난카이 해곡의 모든 단층이 다 파열'''되게 한 유일한 지진이다.[* 난카이 해곡 거대단층대는 A, B(이상 난카이), C, D(이상 도난카이), E(도카이) 등 총 5가지 세그먼트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 지진 한 방으로 A, B, C, D, E가 전부 파열되었다.] 지진이 일어난 1707년이 일본의 연호로는 호에이(宝永) 4년이었기에 '호에이 대지진'이라고 부른다. 2011년 3월 11일 전까지만 해도 일본 지진학계는 호에이 대지진(M 8.6)이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라 보았다. 그러나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도호쿠 대지진의 규모는 M 9.0~9.1.[* 다만 규모 최대치를 9.3까지 잡는 만큼 호에이 대지진이 더 컸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정설은 M8 중후반대이다. 현실적으로 해구도 아닌 난카이 해곡에서 일본 해구나 페루-칠레 해구, 알류샨 해구, 쿠릴-캄차카 해구, 수마트라 해구 등에서나 발생할 법한 M9 이상 지진이 일어나기가 가능하냐는 것 주된 반론이다. 지진 활동이 비교적 적은 해곡 및 마이너 해구들과 달리 소위 메이저 해구들에서는 지진 활동이 일상다반사이다. 구글 지도에서 이런 메이저 해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일본, 칠레, 러시아 캄차카~미국 알래스카 등의 연안에 위치한 굵고 긴 선들이 바로 이 메이저 해구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중에서도 가장 깊고 큰 해구인 [[마리아나 해구]]에서는 거대지진이 거의 없는데, 마리아나 해구가 특이하게도 섭입면에서 마찰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메이저 해구들은 섭입면의 마찰이 굉장히 크기에 중소규모 지진은 심심하면 일어나고 대지진도 드문드문 발생하며 M8~9를 전후하는 거대지진도 1세기에 최소 한 번 이상 발생한다.] 지진은 호에이 4년 음력 10월 4일(1707년 10월 28일) 오후 2시에 발생했다. 2007년 도쿄대 소속 츠지 요시노부(都司嘉宣) 교수 및 나메가야 유이치(行谷佑一)는 오사카부 가와치국에서 진도 '''7'''짜리 진동이 일어났으리라 추정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지진으로 가옥 2만 9천여 채가 파괴되었고, 시즈오카현에서는 대형 산사태가 발생해서 '''1억 2천만 m^^3^^''' 부피에 달하는 토사가 쏟아져 1.8 km^^2^^에 달하는 면적이 파묻혔다. 거기에다가 나라현에서는 토양액상화까지 발생하는 등,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재앙이었다. 쓰나미 역시 발생해서 고치 현 남서쪽 해안에서는 평균 7.7~10 m짜리 파도가 덮쳤다. 고치현 나카토사정에는 25.70 m 높이 쓰나미가 덮쳤고, 지금의 고치시 다네자키항 지역에 23 m 높이 쓰나미가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조선에서는 [[제주도]]에 [[쓰나미]]가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탐라지에 있다. 또한 1707년과 1708년에 제주도에 군발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호에이 대지진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진짜 제주도에서 지진이 났을 수도 있지만, 규모가 좀 큰 여진들도 난카이 해곡이 제주도와도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호에이 대지진의 여진들이 느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 지진으로 후지산이 영향을 받아 지진이 일어난 지 정확히 7주가 되는 양력 12월 16일부터 이듬해(1708) 1월 초까지 대규모로 분화하였다. 이를 '''호에이 대분화(宝永大噴火)'''라고 부른다. 후지산은 이후로는 대규모로 분화한 적은 아직 없다. == 이전의 타임라인 == || 발생일자 || 추정최대진도 || 추정규모 || 발생지 || 사망자 || 비고 || 출처 || || 1643. 7. 24. || '''VIII~X''' || '''M7.4''' || [[1643년 울산 대지진|울산광역시 인근 해안]] || 불명 || 쓰나미 발생 || 조선왕조실록[br]한국기상기록집[br]NOAA || || 1668. 7. 25. || '''XII''' || {{{#brown '''M8.5'''}}} || 중국 산둥성 || 사망자 42,758명 || '''진도 XII''' || NOAA || || 1668. 7. 31. || '''VI''' || M6.4 || 황해 || 불명 || || 김소구 교수 논문[*A 김소구, 1982년, '한반도와 그 인접지역의 지진'] || || 1681. 6. 12. || '''VIII''' || M6.5 || [[1681년 양양 대지진|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 불명 || || 한국기상기록집[br]KMA 지진연구소 논문[*B 2002년, '1681년 6월 12일, 17일, 그리고 26일 양양-삼척 근해에서 발생한 지진기록의 분석'] || || 1681. 6. 26. || '''VIII~IX''' || '''M7.5''' || [[1681년 양양 대지진|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 불명 || 쓰나미 발생 || KMA, NGDC || || 1703. 12. 31. || '''7''' || {{{#brown '''M8.2'''}}} || [[겐로쿠 대지진|일본 보소 반도 남서쪽 바다]] || 사망자 5,233명 || 쓰나미 발생[br]최대높이 10.50m || NOAA || || 1707. 10. 28. || '''7''' || {{{#8000bb '''M9.3'''}}} || 일본 난카이 해역 || 사망자 5,000여 명 || 쓰나미 발생[br]최대높이 '''25.70m''' || NOAA || ||<-7><:> 1668년 4월과 1702년에는 '''[[백두산]]이 분화'''하였다. || == 관련 문서 == * [[난카이 대지진]] * [[도난카이 대지진]] * [[도카이 대지진]] * [[후지산]] * [[겐로쿠 대지진]] * [[1643년 울산 대지진]] * [[1681년 양양 대지진]] == 둘러보기 == [include(틀:지진/19세기 이전)] [include(틀:지진/9.0 이상)] [[분류:지진/일본]][[분류:18세기 이전 지진]][[분류:진도7]][[분류:쓰나미]][[분류:시즈오카현의 사건사고]][[분류:아이치현의 사건사고]][[분류:와카야마현의 사건사고]][[분류:오사카부의 사건사고]][[분류:고치현의 사건사고]]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