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혜왕(주)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주 국왕)] || '''[[시호]]''' ||혜왕(惠王) || || '''[[성씨|성]]''' ||[[희]](姬) || || '''[[휘]]''' ||랑(閬) || || '''아버지''' ||[[희왕(주)|희왕]] || || '''생몰 기간''' ||기원전 ???년 ~ 기원전 652년 || || '''재위 기간''' ||기원전 676년 ~ 기원전 652년 || [목차] == 개요 == [[주나라]]의 제17대 [[왕]]. [[희왕(주)|희왕]]의 아들이며, [[양왕(주)|양왕]]의 아버지. 위나라를 빼앗아 거기서 야수를 기르는데,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자 주 희왕의 아우인 [[희퇴]]가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여공|정 여공]](鄭厲公)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진압했다. == 생애 == === 즉위 초기 === 혜왕 원년(기원전 676년) 봄, 괵공과 [[진헌공|진 헌공]](晉獻公)이 주나라에 입조해 혜왕을 알현했다. 이때 혜왕은 이들에게 단술을 주어 대접하였다. 이들이 혜왕에게 술을 올리자 혜왕은 이들에게 옥 5개와 말 4필을 내렸다. 혜왕은 제후들에게 명을 내려 봉지와 작위 등에 따라 예를 다르게 했다. 같은 해 괵공, 진 헌공, 정 여공을 보내 원 장공과 함께 진(陳)나라로 갔다. 혜왕은 진나라 여자[* [[진선공(규성)|진선공]](陳宣公)의 딸]를 왕후로 맞으니 역사에서는 '혜후'라 했다. === 왕자 퇴의 난 === 혜왕은 왕자 퇴의 스승인 위국(薳國)[* 위국(蔿國)이라고도 하는데, 薳자는 원래 애기풀 '원'이라고 보통 일컬으나 성씨로 쓰일 때는 蔿자와 통하므로 '위'라고 발음한다. 뜻도 애기풀이라는 뜻으로 같다. 즉 이형 동자인 것.]의 토지를 부당하게 몰수하고는 채마 밭에서 야수를 길렀다. 그리하여 위국을 위시한 5명의 대부들이 혜왕을 원망했다. 혜왕 2년(기원전 675년) 가을, 위국과 변백(邊伯), 첨보(詹父), 자금(子禽), 축궤(祝跪) 등의 5명의 대부와 사(士) 석속(石速)이 연합해 왕자 희퇴를 왕위에 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기에 [[위나라|위(衛)나라]]와 [[연나라]]를 끌어들였다. 그러자 혜왕은 달아나고, 희퇴가 왕이 되었다. 혜왕 3년(기원전 674년) 봄, 정 여공은 희퇴와 혜왕 사이에서 중재를 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정 여공은 연나라의 군주인 중보를 체포했다. 같은 해 여름, 정 여공은 혜왕을 정나라의 역 땅에 머물게 했다. 가을, 정 여공과 함께 오 땅에 가서 성주 즉 낙읍에서 천자가 쓰던 물건을 가져왔다.[* 성주는 낙읍 즉 낙양의 다른 이름이다.] 혜왕 4년(기원전 673년) 봄, 정 여공은 괵공과 함께 미(弭) 땅에 머물렀다. 그리고 찬탈자 희퇴를 토벌하기로 했다. 같은 해 겨울 정나라와 괵나라의 연합군은 성주의 왕성을 쳐서 희퇴와 그를 추대한 5명의 대부들을 죽였다. 그리하여 혜왕이 복위하게 되었다. === [[제환공]]과의 갈등 === 혜왕 10년(기원전 667년), 제 환공을 방백으로 세웠다.[* 즉 [[패자]](霸者)가 되었다는 말이다.] 혜왕 11년(기원전 666년) 봄, [[제환공|제 환공]]은 위나라를 쳤는데, 혜왕의 명을 받든다는 명분을 세웠다. 그리고는 거기서 재물을 가져갔다. 혜왕 13년(기원전 664년) 봄, 혜왕은 괵공에게 명해 번피(樊皮)를 치게 했다. 같은 해 14일 괵공은 번나라에서 번피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를 성주로 압송했다. 혜왕 22년(기원전 655년) 여름, 제 환공은 [[노희공|노 희공]](魯僖公), [[송환공|송 환공]](宋桓公), 진 선공(陳宣公), [[위문공|위 문공]](衛文公), [[정문공|정 문공]](鄭文公), 허 희공(許僖公), 조 소공(曹昭公) 및 혜왕의 태자 희정(姬鄭)과 함께 위나라 수지 땅에서 만났다. 그리고 태자 희정에게 왕위를 물려준다고 선포하였다. 그런데 혜왕은 정 문공의 말을 듣고 제나라를 배신한 후 초나라와 연락했다. 그리고는 진(晉)나라에도 사람을 보내 연락하였다. 그리하여 주나라는 초나라, 진나라와 연맹을 맺고 제나라에 대항했다. 이에 화가 난 제 환공은 정나라를 쳤고, 결국 이 일로 혜왕이 제나라를 견제하려는 계책은 실패하게 되었다. 혜왕 25년(기원전 652년), 혜왕이 죽고 그 아들인 희정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양왕(주)|양왕]]이다. [각주] [[분류:주 국왕]][[분류:기원전 652년 사망]][[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