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한국-가봉 관계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대한민국의 대외관계)] [include(틀:가봉의 대외관계)]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100%]] || [[파일:가봉 국기.svg|width=100%]] || || [[대한민국|{{{#ffffff '''대한민국'''}}}]][br]''{{{#fff République de Corée}}}'' || [[가봉|{{{#fff '''가봉'''}}}]][br]''{{{#fff Gabon}}}''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과 [[가봉]]의 관계. == 역사적 관계 == === 21세기 이전 === 박정희 정권에서 [[오마르 봉고]]에 대해 국빈으로 엄청나게 잘 대우했고, 오일쇼크를 맞아 해외에서 기회를 찾던 한국기업들도 가봉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친정부그룹의 대표주자였던 [[쌍용그룹]][* 김성곤이 박정희와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나중에 항명파동으로 김성곤이 말년에 고생을 험하게 했지만 박정희와 쌍용그룹 일가간의 친분관계는 남아있었다.]이 가봉 국영기업들과 합작하여 가봉에 15층짜리 4500평 규모로 첨단 [[백화점]]([[http://yoksa.aks.ac.kr/jsp/ci/ImageView.jsp?ci10no=CI_00072&ci20no=CI20_08422-01|유신백화점]])을 세워주고 [[한국인]] 직원과 상인들이 가서 일했지만 이는 엄청난 정책 실패로 끝나게 되는데. 이는 모회사인 [[쌍용그룹]]이 애초에 백화점 운영경험이 없었던데다가 현지로 파견온 [[한국인]] 직원들이 가봉 현지 [[흑인]]들을 무시하고 [[유럽]]계 [[백인]]에게만 과도하게 친절하게 대하는 몰상식한 [[인종차별]]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백화점은 애초에 수익을 보려고 만들었다기보다는 정관계 로비용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실패가 예상되었다 할만하다. 이때 [[한국인]] 간부들이 흑인 종업원도 무시했기 때문에 흑인 종업원들은 아예 대놓고 물건 값을 싸게 계산하거나 아예 장부 조작을 하거나 조직적으로 물건을 빼돌리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인 직원들이 계산대 뒤에서 흑인 직원들을 감시해야 했다. 즉, 이상한 우월감에 빠져서 자기 회사 직원들도 피부색이 까맣다고 차별하다가 '''일만 더 늘어나게 된 셈'''. 참고로 당시 가봉의 1인당 국민소득이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한국의 세 배를 넘기던 시절로 비록 가봉의 빈부격차가 심하기는 했다만 그럼에도 당시까지만 해도 '''가봉이 한국보다 잘 살았고''' 한국이 가봉의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을 넘기게 된것은 1987년도의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흑인들을 무시, 홀대하고 백화점을 운영하는것도 매우 웃기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가봉에 체류하던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은 이 유신백화점에서는 쇼핑은 일절 하지 않았는데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게 유신백화점에서 팔았던 물품들 태반이 한국에서 팔다 남은 재고를 가져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메이드 인 코리아하면 세계적으로 알아주지만, 당시에는 그저 [[듣보잡]]에 불과했고 좀 알려졌다 해도 짝퉁으로 악명(?)이 자자했거나 아니면 그냥 싸구려 제품 정도의 취급을 받았던 터였다. 차라리 팔던 한국산 물건들조차도 짝퉁이나 싸구려 제품 취급만 받았다면 또 모르겠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국에서 수입해온 옷과 바지들의 사이즈가 당대 한국인들의 체형에 맞추었기에 당연히 백인들이 입기에 너무 '''작았다'''. 이러니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이 물건을 제대로 살 리가 없고 간단한 요깃거리 정도나 하는 정도가 고작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가봉 대다수 흑인들도 당연히 이 백화점으로 쇼핑올 일은 없었고 당연히 백화점은 파리를 날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가봉에서도 [[봉고차]]가 봉고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소문이 나돌고 현지 교민들이 [[태권도]] 보급 등의 사업으로 겨우 뒷수습을 했기에 망정이었지 쌍용그룹 출신 간부들과 직원들이 얼마나 얼척없는 짓이나 했는지 알 만하다. 한편 가봉 정부와 당시 가봉의 국회의원들도 이에 대하여 항의하자고 이를 갈았지만 그마저도 독재자 봉고가 반대 여론을 무시하면서 억지로 이 백화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봉고도 이런 차별을 불쾌하게 여겨 이 백화점에서 아무 것도 사지 않았고 정부 요인들이나 부유층도 외면해버렸다. 결국 1년도 못 가 엄청난 손해를 보며 팔려고 해도 도통 판매자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운영했다가 1986년에 현지인 사업가에게 헐값으로 백화점을 넘겨버렸으며, 이 일이 [[1980년대]] 이후 위축된 한-가봉 외교적 관계로도 이어졌다는 분석까지 있다. 여담으로 가봉에서 이 무렵에 어린 시절을 살던 한국계 의사가 있었는데 [[1990년대]] 후반 책을 내며 당시 가봉인들에게 이 백화점 때문에 한국이 얼마나 혐오를 받았는지 [[한국인]]들도 가봉에서 생활할 때 굉장히 안 좋게 지냈다고 하며 이 [[인종차별]]을 무척 비난한 바 있었다. 1982년에 [[전두환]]이 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하면서 가봉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당시 환영 행사에서 대한민국의 [[애국가]] 악보를 북한 공작원들이 [[북한의 애국가]] 악보로 바꿔치기하는 바람에 북한 애국가가 연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심히 난처해진 봉고 대통령은 "완전히 진절머리가 난다."라는 직설적인 표현까지 쓰며 북한을 비난했다고 한다. === 21세기 === 불확실한 사업성과 노동문화의 차이로 한국 기업의 투자활동 및 관심이 미미해졌다. 그래도 뉴스기사를 보면 아직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모양.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4&aid=0000031898|#]] 2015년에 알리 봉고 대통령이 한국의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05174?sid=100|#]] 2019년 5월 13일에 한국선급은 가봉 해사청으로부터 정부대행검사권을 받았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0821926|#]] ==== 2020년대 ==== 2020년 4월 9일에 주가봉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코로나19]] 진단키트 5만개를 실은 비행기가 도착했다고 밝혔고 가봉내의 교민 4명도 특별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1537451|#]] 4월 18일에 가봉으로 한국산 진단키트 5만개가 항공편으로 도착했다고 주가봉 한국대사관이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557338|#]] 5월 3일에 가봉 해역에서 한국인 1명을 비롯해 선원 6명이 해적들에 의해 납치([[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52&aid=0001436522|#1]][[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215&aid=0000868740|#2]])되었다가 피랍 37일째인 6월 8일에 [[세네갈]]·[[인도네시아]] 국적 선원 5명과 함께 석방([[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020&aid=0003290947|#]])되었다. 10월 6일에 주 가봉 대한민국 대사관은 [[추석]]연휴와 [[개천절]]에 현지 고아원과 장애인들을 돌봤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925320|#]] 12월 22일에 주 가봉 대한민국 대사관은 가봉의 고등학교 8곳에 한국을 소개하는 교과서 3천여권을 전달했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096814|#]] 2021년 6월 19일에 코이카 클럽은 [[리브르빌]]의 루이 보건소를 방문해 코로나19 방역용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을 전달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471049|#]] 주 가봉 한국 대사관은 K-pop행사를 가지면서 [[한지]]관련 행사도 진행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554209|#]] 가봉에 한국산 코로나19, [[에이즈]], [[말라리아]] 진단키트가 지원됐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720449|#]] 가봉의 [[구개열]] 환자가 한국에서 치료를 받았다.[[https://www.yna.co.kr/view/AKR20211201172300099?section=international/middleeast-africa|#]] 2022년 7월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알리 봉고 가봉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323437?sid=104|#]] 2023년 8월 30일, 가봉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가봉 대통령 부인의 비서관으로 일하던 한국인 1명이 군부에 의해 체포(!)된 일이 발생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5064885?sid=104|#]] ==== 가봉 쿠데타 이후 ==== [[2023년 가봉 쿠데타]]로 반서방 친러 친중을 표방하는 군부가 집권하면서 그동안 봉고 부자와 관계가 좋았던 한국과는 관계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 문화 ==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했으며 [[가나]] 다음으로 입장했다. == 대사관 == 대한민국은 [[리브르빌]]에, 가봉은 [[서울특별시|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 여담 == [[대한민국 제3공화국|박정희 정권]] 당시 남북한간의 제3세계 수교경쟁을 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을 국빈으로 대우하였고, 그 덕에 승합차를 당시 봉고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기아 봉고|봉고]]차라 부르게 되었다는 소리가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기아자동차|기아산업]]과 일본 [[마쓰다]]의 기술 제휴로 만들어진 차가 봉고인데, 실은 마쓰다의 승합 차량 모델명이 '''Bongo'''였다고 한다. [[마쓰다 봉고|봉]][[기아 봉고|고]] 문서 참고.[* 봉고 대통령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정작 본인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생각했고, 이에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생각해 줘서 고마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한간 제3세계 수교경쟁을 한 것과 오마르 봉고 대통령을 국빈으로 대우한 것은 사실이다.[* 봉고 대통령은 1975년에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1977년에는 북한도 방문했다.] 지금이야 남북한의 경제 및 외교력 차이가 어마어마하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남북간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졌었고 당시 한국과 북한은 서로 [[라이벌]] 관계였다. 때문에 남북한은 [[유엔|UN]]에서 지지를 얻기 위하여 치열한 외교전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한국과 가봉은 의료 협력 협정과 경제·기술·문화·과학협정 등을 맺으면서 우애를 다지게 된다. 여기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김창훈 가봉 대사는 1977년 가봉 공화국 수교 훈장을 받았다. 지금 [[서울대학교]]에 가면, 오마르 봉고 대통령의 기념 식수가 있다. 가봉 공화국의 2대 대통령 오마르 봉고는 [[독재자]]였다. 1967년 취임한 이래로 사망한 해인 2009년까지 '''42년''' 동안 [[독재자/장기집권|장기집권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워낙 국빈 대접을 해왔던 인물이기에... 그의 사망으로 2009년에는 대통령 투표가 이뤄졌고, 알리 봉고 온딤바가 당선되어 집권 중이다. 이름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면 잘 맞춘 것. 알리 봉고 온딤바는 오마르 봉고의 아들이다.[* 오마르 봉고는 말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으며, 알리 봉고 온딤바도 같이 개종해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여담으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배달의 무도]] 특집에서 박명수가 가봉 대통령 환영 인파에 있었고, 얼굴을 보고 낯이 익다고 했으나 돌아온 건 유재석의 잔소리...] 그래서 야당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소요사태까지 일어난 탓에 재투표를 실시. '''[[E카드|알리 봉고 온딤바가 당선]]'''되었다. 무한도전에서 방영된 바로는 오마르 봉고의 대통령 경호실장을 맡았던 한국인 박상철씨가 계속해서 경호실장을 역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지배층 간에서는 한국에 대한 호감은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478830|#]] 여담으로 알리 봉고 온딤바는 2017년 재선에 성공[* 2023년에 3선에 성공했지만, 바로 [[쿠데타]]를 당했다.]했고, 박상철씨는 2021년까지 경호실장을 맡았다. == 관련 문서 == * [[대한민국/외교]] / [[한국-아프리카 관계]] * [[가봉/외교]]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중앙아프리카 국가]]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가봉, version=258, paragraph=8.1)] [[분류:대한민국의 대국관계]][[분류:가봉의 대국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분류:나무위키 아프리카 프로젝트]]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