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하루오 레멜리크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1933년 출생]][[분류:1984년 사망]][[분류:팔라우 대통령]][[분류:일본계 인물]][[분류:암살된 인물]][[분류:총기에 죽은 인물]] [include(틀:역대 팔라우 대통령)] ||<-2> '''{{{#ff0 팔라우 공화국 제1대 대통령[br]{{{+1 하루오 레멜리크}}}[br]Haruo Remeliik}}}'''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하루오 레멜리크.jpg|width=100%]]}}} || ||<|2> '''출생''' ||[[1933년]] [[6월 1일]] || ||[[팔라우]] [[펠렐리우]] || ||<|2> '''사망''' ||[[1984년]] [[6월 30일]] (향년 51세) || ||[[팔라우]] || ||<|2> '''재임기간''' ||제1대 [[팔라우 대통령|대통령]] || ||[[1981년]] [[3월 2일]] ~ [[1984년]] [[6월 30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학력''' || [[하와이 대학교]] 졸업 || || '''배우자''' || 레지나 레멜릭 || || '''정당''' || [[무소속|{{{#!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808080; font-size: .8em" {{{#fff '''무소속'''}}}}}}]] ||}}}}}}}}} || [목차] [clearfix] == 개요 == [[팔라우]]의 제1대 [[팔라우 대통령|대통령]]. 팔라우 최초로 암살된 대통령이기도 한다. == 생애 == === 어린 시절 === 그는 [[팔라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팔라우]] [[펠렐리우섬]]에서 보냈다[* 이름에서 알수 있다 싶이 일본계 혼혈이다.] 그는 크고나서 미국의 [[하와이 대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팔라우(당시에는 [[태평양 제도]]의 팔라우)에 돌아와 팔라우의 지역 담당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또한 법원 서기까지 담당했다. 그러다 대통령에 출마하였는데 그가 그다지 존재감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팔라우 제헌위원회의 위원장 취임을 계기로 이름을 알리게 되어 [[1981년]] [[3월 2일]]에 대통령에 당선하는데 성공한다. === 대통령 시절 === 그가 대통령 재임 당시 [[자유연합협정]] 조기 체결을 추진했으나 팔라우 법에 명시된 비핵조항 때문에 팔라우에 핵을 즐비하고 싶었던 미국과의 협상은 사실상 좌초하였다. 또한 영국의 IPSECO 사와 계약을 맺어 발전소를 건설하였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면서 약 7000만 달러의 채무를 가지게 되었다. 이 같은 정책 실패로 공무원의 파업과 테러사건이 발생하는 등 팔라우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나, 1984년 제2회 대통령 선거에서 50.9%의 득표율로 가까쓰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 사망 === 그가 재선하고 나서 얼마 후인 [[1984년]] [[6월 30일]] 레멜리크가 본인의 집으로 들어갈려할 때 어떤 한 남자가 총격 태러를 하여 그는 그자리에서 사망했다. 대통령이 죽었기 때문에 토마스 레멩게사우가 7월 2일까지 이틀간 임시 대통령을 맡았다. 총기 태러가 일어난지 6개월 뒤 팔라우의 다른 정치인인 로만 트메투치와 다른 남성 1명이 살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치만 총기 태러를 지시시킨 존 응기라케드(팔라우의 다른 정치인)이 총기 태러를 방조시킨 죄로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쏘고 간 사람은 [[미제사건|잡지 못하였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