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폐후 왕씨(당현종)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당 황후)] ||<-2> '''{{{#fff 당나라의 황후[br]{{{+1 廢后 王氏 | 폐후 왕씨}}}}}}''' || || '''{{{#fff 별칭}}}''' ||<(> 폐후(廢后) || || '''[[성씨|{{{#fff 성}}}]]''' ||<(> 왕(王) || || '''{{{#fff 사망}}}''' ||<(> 724년 || ||<|2> '''{{{#fff 재위}}}''' ||<(> '''{{{#fff 당의 황후}}}''' || ||<(> 712년 ~ 724년 || || '''{{{#fff 배우자}}}''' ||<(> [[현종(당)|현종]](玄宗) || || '''{{{#fff 부친}}}''' ||<(> [[왕인교]](王仁皎) || [목차] [clearfix] == 개요 == [[현종(당)|당현종]]의 황후. 현종에 의해 폐위되었기 때문에 칭호는 폐후이다. == 생애 == 동주 하규현 출신으로 [[양(육조)|양나라]]의 관리를 지낸 왕신념의 후손이자 [[왕인교]]의 딸이었다. 선조 왕신념(王神念)은 본래 [[북위|위(魏)]] 사람이었으나 영천(潁川)의 태수를 지내던 중 양으로 도망쳐왔다. 현종이 임치왕으로 있을 때 왕씨를 임치왕비로 맞이하였으며, 현종이 예종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되면서 왕씨도 황태자비가 되었다. 이윽고 712년에는 [[예종(당)|예종]]이 현종에게 양위하고 현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후가 되었다. 현종이 임치왕으로 있었을 때, 혼인한 황후는 [[위황후]]를 주살하고 [[태평공주]]를 제거할 당시 밀모에 가담해 대업의 성공에 일조했다. 그녀의 아버지 왕인교와 오빠 왕수일(王守一) 또한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모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현종을 지지했다. 하지만 문제는 현종과 왕씨는 오랫동안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고, 현종도 장차 황후를 폐위하려고 하였다. 또한 현종의 총비 [[정순황후 무씨|혜비]]와의 갈등도 있었다. 여기에 황후의 오빠였던 왕수일은 자신의 여동생이 황후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부적 사건을 일으켰다. 왕수일은 결국 개원 12년(724년)에 사태가 발각되어 사사되었고, 왕수일의 동생인 왕씨도 결국 황후 자리에서 쫓겨나 폐서인되었고, 왕수일이 사사되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왕씨는 사후 38년 뒤인 보응 원년(762년)이 되어서야 황후로 복위되었다. == 참고문헌 == 임사영, 류준형 옮김, 『황제들의 당제국사』, 푸른역사, 2016. == 둘러보기 == [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폐후 왕씨(당), version=11, paragraph=2)] [[분류:수당시대/황후]][[분류:724년 사망]][[분류:오환 왕씨]]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