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테무르부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고려 출신 환관, rd1=박부카)] [include(틀:원사)] [목차] == 개요 == [[원나라]]의 황족. 원세조 [[쿠빌라이 칸]]의 손자로, 진남왕 토곤의 4남이다. == 생애 == 아버지 토곤 사후 큰형 루장(老章)이 왕위를 물려받았고, 큰형 사후에는 둘째형 토크부카(脫不花)가 진남왕이 됐다. 둘째형에게는 볼로트부카(孛羅不花)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직 나이가 어렸으므로 테무르부카에게 왕위가 돌아오게 됐다. [[문종(원)|문종]] 투그테무르 칸 천력 연간 초에 조정으로부터 황금과 백금 50냥씩, 그리고 교초 30필을 받았다. 천력 2년(1329) 조카 볼로트부카가 장성했기에 진남왕위를 돌려줬고, 대신 선양왕(宣讓王)에 임명돼 진영을 회남 여주(廬州)로 옮겼다. [[혜종(원)|혜종]] 토곤테무르 칸 지원 원년(1335) 여주를 진압하고, 상경도의 요주(饒州)에 목지 100경(頃)을 하사받았다. 혜종 지정 2년(1136) 시택전 4,000정(錠)을 하사받았고 선양왕 왕부 관리의 반차가 유사의 오른편에 서게 됐다. 지원 5년(1139) 승상 [[메르키트 바얀]]이 집권할 때 황제의 말을 꾸며내 테무르부카와 위순왕(威順王) [[콘체크부카]][* 위순왕 역시 진남왕 토곤의 아들로, 테무르부카와는 형제가 된다.] 두 왕을 폄직했다. 메르키트 [[토크토아]]가 승상이 된 뒤에야 비로소 혜종에게 말해 두 왕이 바얀에게 무고당했던 것임을 밝혔고, 둘은 진영을 돌려받았다. 지정 12년(1352) 여주 경내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회서염방사(淮西廉訪使) 진사겸(陳思謙)이 테무르부카에게 말했다. >王以帝室之冑, 鎮撫淮甸, 豈宜坐視, 且府中官屬及怯薛丹人等, 數甚多, 必有可使摧鋒陷陣者, 惟王圖之. >왕께서는 황실의 투구로 회(淮) 지역을 진무하셔야 하거늘, 좌시하는 것이 가당합니까? 또한 부중의 관속과 케식 단인(丹人) 등은 수가 아주 많으니, 선봉을 꺾고 진영을 함락시키도록 할 수 있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왕께서는 이를 도모하십시오. 테무르부카가 진사겸의 조언에 크게 깨달으며 말했다. >此吾責也. >이것이 나의 의무다. 테무르부카는 휘하 병사들과 제왕(諸王) 걸탑대(乞塔歹) 등에게 명해 길을 나누어 적들과 싸우게 하고 적들의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여주 경내를 평정하는데 성공했다. 대도의 황제가 이를 듣고는 금 허리띠와 은 교초를 하사해 공로를 포상했다. 지정 16년(1356) 콘체크부카와 군사를 거느리고 회경로(懷慶路)를 방어한 공으로 금•은 각 한덩이, 폐백 9필, 그리고 교초 20정(錠)을 받았다. 회수 서쪽 상류의 여수(汝水), 영수(潁水) 도적들이 남쪽을 장악하자 작피(芍陂)에 주둔한 병사들로 도적들을 막았다. 그러나 더이상 여주를 지킬 수 없게 되자 대도로 돌아갔고, 이후 계속 머물렀다. 지정 27년(1367) 일자왕인 회왕(淮王)에 봉해졌고, 금인을 받았으며 휘하에 관직이 설치됐다. 지정 28년(1368) [[명나라]] 군세가 대도에 이르자 혜종은 북쪽으로 몸을 피하면서 회왕 테무르부카에게 수도를 맡겼고, 경동(慶童)을 중서우승상에 임명해 보좌하게 했다. 얼마 뒤 성은 함락됐고 테무르부카는 83세의 나이로 죽었다. [[분류:원나라의 인물]][[분류:보르지긴 가문]][[분류:1286년 출생]][[분류:1368년 사망]][[분류:전쟁 사망자]]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