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캬흐타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px-Coat_of_Arms_of_Kyakhta_%28Buryatia%29_%281861%29.png]] || ||||<:>'''캬흐타'''[br]Кяхта,,([[러시아어]]),,[br]Хиагт,,([[몽골어]]),,[br]Kyakhta || || 소속 || [[부랴티야 공화국]] || || 설립 || 1727년 || || 인구 || 19,980 (2016) || || 시간대 || UTC+8 || ||<-2>[include(틀:지도, 장소=Кяхта)]|| [목차] [clearfix] == 개요 == [[러시아]] 동부 [[부랴티야 공화국]] 남부에 있는 [[몽골]]과의 국경 지역의 소도시. == 역사 == [[파일:external/www.stephanie-williams.com/olga02a.jpg]] 한국인들이 그나마 이 도시 이름을 들어본 구석이라면 [[캬흐타 조약]]이 있다. 이 지역은 청나라가 지배하던 [[외몽골]]에서도 북쪽 끝이었기 때문에 청나라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곳이지만, [[러시아 제국]]의 정복자들이 갑툭튀해서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명확한 국경 설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캬흐타 인근에 국경선이 지나가게 되어 캬흐타는 두 나라 간 [[차]], [[모피]] 무역의 창구가 되어 번영했다. 나중에 지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몽골 종단철도]]가 캬흐타를 살짝 비껴가기까지 해서 도시로서는 몰락했지만 제국 시대의 박물관과 성당 등 유적이 지금도 상당히 남아있다. 1911년 외몽골이 독립을 선포하고 [[복드 칸국]]이 수립된 후 외몽골을 다시 복속하려는 [[북양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 제국]]이 이곳에서 [[복드 칸]]의 대표까지 3자 회담을 벌여 1915년 [[캬흐타 협정]]을 체결, 외몽골의 자치를 인정하게 되었지만 1919년 [[외몽골 출병]]으로 외몽골의 자치는 폐기되었고 어릴때 여기서 잠깐 일했던 [[몽골]]의 [[국부]] [[담딘 수흐바타르]]가 몽골인민유격대를 조직하여 북양정부와 외몽골의 자치와 복드 칸의 복위를 돕겠다는 구실로 쳐들어와 깽판을 치던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를 축출하고 외몽골 독립을 달성했다. 적군이 들어오고 나서는 '''트로이츠코삽스크'''(Троицкосавск)로 개칭되었으나, [[레프 트로츠키]]가 숙청되고 나서는 1934년에 옛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 특징 == 철도는 근처의 나우시키-[[수흐바타르]]로 지나가지만 [[도로]]를 통한 국경은 캬흐타 쪽으로 나 있고 철도보다 돈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표를 못 구했거나 할 때 캬흐타를 통해 몽골과 러시아를 오가는 사람도 있다. 부랴티야의 중심도시 [[울란우데]]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왔다갔다하고 있다. [[분류:러시아의 도시]][[분류:부랴티야 공화국]]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