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카밀라 파커 보울스 (r1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영국 왕비)] ---- ||<-2> '''이영학의 왕비[br]{{{+1 카밀라 파커 보울스}}}[br]Camilla, Queen Consort'''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497245161ebd3e30fda98de9ba481d4.jpg|width=100%]]}}} || || '''이름''' ||카밀라 로즈마리 파커 보울스[br]Camilla Rosemary Parker Bowls[* 앤드류 파커 보울스와 결혼하기 전의 성씨는 섄드(Shand)로, 이혼 후에도 전 남편의 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2> '''출생''' ||[[1947년]] [[7월 17일]] ([age(1947-07-17)]세)|| ||[[잉글랜드]] [[런던]] 킹스 컬리지 병원|| || '''학력''' ||퀸즈 게이트 스쿨[br][[런던 대학교 그룹]] 파리 분교|| ||<|2> '''배우자''' ||앤드루 파커 보울스 ,,(1973년 결혼 / 1995년 이혼),,|| ||[[찰스 3세]] ,,(2005년 결혼),,|| || '''자녀''' ||톰, 로라[* 모두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다.]|| || '''아버지''' ||브루스 섄드|| || '''어머니''' ||로잘린드 큐빗|| || '''형제''' ||애너벨, 마크|| || '''신체''' ||167cm|| || '''종교''' ||[[성공회]] {{{-2 ([[잉글랜드 국교회]])}}} || || '''서명''' ||[[파일:UK-Royal-Signature_CamillaR.svg.png|width=150]]|| [목차] [clearfix] == 개요 == [[영국]] [[찰스 3세]]의 정부[* mistress, 불륜녀를 의미한다. 서양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첩실제도가 없었기 때문.] 출신 왕비. 찰스 3세가 왕세자였던 시절부터 관계를 이어오다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자녀까지 낳았음에도 불륜을 지속했다. 결국 이혼을 통해 늦은 나이에 서로 결혼했고 오랜 기간 내조를 통해 왕실과 국민으로부터 인정을 받게되어 왕비가 된 인물이다.[* 사실 영국 왕실 입장에서 카밀라를 찰스의 배우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카밀라 때문에 다이애나랑 이혼까지 했는데, 왕세자비 자리에 다른 여인을 둘 수는 없고, 그렇다고 비워둘 수도 없기 때문.] == 작위 == || [[파일:Coat_of_arms_of_Camilla_Shand,_Queen_consort(2).svg.png|width=100%]] || [[파일:Queen_Camilla_Cypher_(cropped).png|width=100%]] || || 문장 || 모노그램 || 일단 [[찰스 3세]]가 즉위하기 전 왕세자 시절에 정해진 호칭은 다음과 같다. '웨일스 공비, 체스터 백작부인, [[콘월 공작]]부인, 로스시 공작부인, 캐릭 백작부인, 렌프루 남작부인, 아일스의 레이디, [[스코틀랜드]]의 공비, [[빅토리아 여왕]] 훈장의 데임 그랜드 크로스 전하(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and Countess of Chester, Duchess of Cornwall, Duchess of Rothesay, Countess of Carrick, Baroness of Renfrew, Lady of the Isles, Princess of Scotland, Dame Grand Cross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위에서 보다시피 카밀라는 일단은 웨일스 공비 작위를 공식적으로 가지고는 있었지만 공식석상에선 쓰지 않았다.[* 쓰지 못한 건 아니다. 쓸 수는 있지만 합의를 통해 쓰지 않은 것.] 웨일스 공비라는 칭호가 [[다이애나 스펜서|다이애나]]의 대표적인 작위였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각각 한 단계 낮은 작위인 콘월 공작부인과 로스시 공작부인이라고 불렸다. * 카밀라 섄드 양 Miss Camilla Shand (1947년 7월 17일 ~ 1973년 7월 3일) * 카밀라 파커 보울스 부인 Mrs Camilla Paker Bowls (1973년 7월 3일 ~ 2005년 4월 9일) * 웨일스 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체스터 백작부인 Countess of Chester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콘월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Cornwall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Rothesay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캐릭 백작부인 Countess of Carrick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랜프루 남작부인 Baroness of Renfrew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아일스의 레이디 Lady of the Isles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의 공비 Princess of Scotland (2005년 4월 9일 ~ 2022년 9월 8일) *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보통 Queen이라고 하면 왕비를 뜻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전대 국왕]]이 여왕(Queen Regnant)이었던 관계로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왕의 배우자를 뜻하는 단어를 붙여 본 문서의 상위 인물표와 버킹엄 궁전에서는 그녀를 표하는 단어에는 Queen Consort로 쓴다.다만 이는 선왕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2023년 대관식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Consort를 칭호에서 삭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https://amp.marca.com/en/lifestyle/uk-news/2022/10/15/634aba30268e3e14578b45ff.html|#]]] (2022년 9월 8일 ~ 현재) == 일생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 파커 보울스 젊은시절.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왕비_노년.jpg|width=100%]]}}} || || {{{-1 청년}}}[* 오른쪽은 어머니 로잘린드 큐빗] || {{{-1 노년}}} || === 어린시절과 신분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 어린시절.jpg|width=100%]]}}} || || {{{-1 4살 때 남동생 마크 섄드[* 환경 운동가로 활동했으며, 2014년에 사망했다.], 여동생 애너벨과 함께 찍은 사진}}}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 청년시절.jpg|width=100%]]}}} || || {{{-1 16살 때 크리켓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카밀라 파커 보울스.}}} || 카밀라 로즈마리 섄드[* 결혼 전 이름]는 1947년 7월 17일 킹스 칼리지 병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군 장교를 지내다 사업가로 전향한 브루스 섄드 소령, 어머니는 3대 애쉬컴 남작 롤랜드 큐빗의 딸인 로잘린드 큐빗이다. 외증조모인 [[앨리스 케펠]]은 [[에드워드 7세]]의 정부였다. 잘 부각되지 않지만, [[귀족]] 혈통으로 [[다이애나 스펜서]]처럼 엄연히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며느리들인 다이애나 스펜서, 카밀라 파커 보울스, [[사라 퍼거슨]]은 그 안에서 격차가 갈리긴 했지만 모두 [[상류층]]에 속했다. 다만 그 중에서 다이애나가 넘사벽으로 으뜸이고, 유일하게 진짜배기 평민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막내며느리인 [[소피 리스존스]]이나 그녀 역시 미약하게나마 귀족의 피가 섞여 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완전한 평민은 그 다음 대인 윌리엄 왕세손의 아내인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의 경우로, 미들턴 가에게는 영국 왕실에서 문장을 새로 하사했다.] 다만 다이애나 스펜서는 [[백작]]의 딸로 명백한 귀족 출신이었으나, 카밀라는 [[남작]]의 외손녀였기 때문에 평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영국은 직계-방계, 친가-외가를 엄격히 구분하는데, 당장 왕족만 해도 왕자의 자손들은 전하의 경칭(HRH)과 더불어 왕자/공주 칭호를 받지만 공주의 자손들은 해당 사항이 없다. 엘리자베스 2세의 아들인 앤드류 왕자의 딸들은 Princess 칭호를 가지고 있는 왕족이지만 앤 공주의 딸들은 아버지가 평민이기 때문에 귀족도 아닌 평민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다이애나의 친정은 일개 귀족 가문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문 스펜서 백작가였으며,[* [[조지아나 스펜서|조지아나 공작부인]]이 이 가문 출신이다.] 백작의 딸인 다이애나는 레이디(lady) 작위를 가진 반면, 카밀라의 어머니인 로잘린드는 남작의 딸로 한단계 낮은 아너러블(honourable)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로잘린드가 작위없는 남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카밀라는 귀족이 될 수 없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부모 둘 다 작위가 있다고 해서 그 자녀들이 무조건 귀족이 되는 것은 아니고, 부친이 [[오등작]] 작위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했다.] 한마디로 '상류층이긴 하지만 작위를 보유한 귀족인 하이본은 아닌' 케이스인 것이다. 의전서열로 따져도 백작의 딸이 남작부인보다 높다.[* 같은 [[남작]] 가문 식구들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남작부부와 후계자인 아들, 차남 이하의 아들들과 그 며느리, 딸들은 서열이 천양지차다. 다만 딸들은 결혼으로 작위 상승이 가능했다. 이건 모든 귀족 가문에 동일한 사항. 공작의 차남은 후작의 장남보다 아랫서열인 식이다. 이건 생득권을 더 중시하는 영국 여성 의전과도 관련이 있지만.] [[양판소]]의 영향으로 [[남작]] 작위가 상당히 하찮게 여겨지는 부작용이 생겨버려서 그렇지, 일단 유작귀족 자체가 영국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도 서열이 갈리는 것 뿐이지 남작의 외손녀만 되더라도 흔히 보는 사람들은 아니며, 하다못해 [[준남작]]의 딸도 일반인들은 살면서 만나볼 일 없는 사람이다. 정리하자면 카밀라는 상류층으로서 좋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고급 교육만 받고 자랐지만 [[넘사벽]]인 '''최상류층''' 스펜서 백작영애인 [[다이애나 스펜서|다이애나]]에 비해서는 뒤쳐진다는 얘기. 카밀라의 아버지 브루스 섄드는 군에서 제대한 후 다양한 사업을 하였는데, 와인 유통 업체인 'Block, Gray and Block'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다. 카밀라는 귀족 혈통과 더불어 아버지가 사업으로 축적한 재산으로 여타 귀족들과 다를게 없는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당시 카밀라의 집에는 집안일을 하는 가정부와 정원사, 아이들을 키우는 보모까지 있었다. 또 매년 여름마다 집 안의 정원에서 가든 파티까지 개최했다.] 승마나 독서, 그림, 원예와 같은 귀족적인 취미를 어릴 때부터 즐겼다. 브루스 섄드는 카밀라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줬는데, 이 영향으로 독서가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개와 고양이와 함께 자랐으며, 어린 나이에 포니 클럽 캠프에 가입해 조랑말을 타며 승마를 배웠다. 카밀라는 5살 때부터 마을에 있는 공립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10살부터는 [[켄싱턴]]의 퀸즈 게이트 스쿨을 다녔다. 카밀라의 학교 친구들은 카밀라를 '''내공이 깊고 자기 확신에 찬 남자아이(tomboy) 같은 여학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친구들은 카밀라를 'Milla'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1964년부터 [[스위스]]의 몬 프로빌리 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며,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런던 대학교 그룹]] 파리 분교에서 6개월 동안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카밀라는 1965년 3월 25일, 런던 [[사교계]]에 데뷔한 311명의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사교계 데뷔 후 집에서 독립해 [[켄싱턴]]의 작은 아파트에서 친구와 동거 생활을 하기도 했다. 런던 [[웨스트엔드]] 지역의 다양한 회사에 취업해 비서로 일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장식 회사의 안내원으로도 일했다. 하지만, 무도회에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었다고 한다. === [[찰스 3세|왕세자]]와 불륜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 찰스 데이트.jpg|width=100%]]}}}|| >[[앨리스 케펠|우리 증조할머니]]가 [[찰스 3세|당신]] [[에드워드 7세|고조할아버지]]의 [[정부(관계)|정부]]였던 거 알아요? >---- >[[찰스 3세]]와의 첫 만남에서. >[[다이애나 스펜서|당신]]은 모든 걸 손에 넣었잖아요.[br]더 원하는 게 뭐죠? >---- >[[찰스 3세|남편]]과 만나지 말라고 말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1971년 당시 친구의 소개로 [[찰스 왕세자]]를 만났다. 두 사람의 관계는 발전하여 연인이 되었고, 가족들에게 서로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3년 찰스가 입대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찰스가 카밀라에게 "기다려달라고 하지 않았다"라는 설도 있고,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스펜서 가문의 여자와 결혼시키고 싶어해서 헤어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 웨딩사진.jpg|width=100%]]}}} || || {{{-1 1973년 첫 남편 앤드루 파커 보울스와의 결혼식}}} || 찰스가 군대에 가고, 그와 헤어진 이후 카밀라는 8살 연상의 앤드루 파커 보울스와 결혼했다.[* 이에 대해 양가 부모가 모르는 사이 앤드루와 카밀라의 약혼 소식이 [[더 타임스]]에 먼저 보도되었고, 앤드루가 카밀라에게 청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 있다.] 앤드루는 왕실 기병대 장교로, 카밀라와 결혼 당시에는 [[소령]]이었으며, [[찰스 3세|찰스 왕세자]]의 여동생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앤 공주]]의 첫 남자친구이기도 했다. 카밀라와 앤드루의 결혼 소식은 찰스에게 큰 충격을 줬다고 한다.[* 찰스는 이 소식을 서인도제도를 향하는 배에서 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찰스는 자기 방에 들어가 6시간을 울었고 이틀을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식사도 안 할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카밀라를 깊게 사랑했는지 알게 되었다고 나중에 친구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카밀라와 앤드루의 결혼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앤 공주, [[마거릿 로즈|마거릿 공주]],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엘리자베스 왕대비]]가 참석하는 등, 당해 사교계에서 가장 큰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이때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와 결혼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이다"란 이야기가 많다. 재혼하고 왕비 자리에까지 오른 현재로서는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나 당시엔 카밀라의 신분 자체가 미래의 왕인 왕세자와 결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게 여겨졌다고. 찰스 왕세자 이전까지 영국의 왕위 후계자는 모두 왕족이나 공족과 결혼했으니, 일개 남작의 외손녀였던 카밀라가 왕세자비가 되기에는 한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당장 [[테크의 메리]]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도 귀족 출신이었으며,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 공]]도 비록 불안정한 체제의 왕실이긴 했으나, 엄연히 일국의 왕자 출신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왕세자비 자리에 [[순결]]한 [[처녀]]를 원했는데, 카밀라는 찰스와 만나기 이전에 이미 여러 남자와 교제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본래 찰스의 유력한 신붓감은 부계로 자신의 6촌이자 영국과 [[헤센 대공국]] 등 통치가문의 후손으로, [[루이 마운트배튼]]의 외손녀이자 차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여백작 퍼트리샤 내치불의 딸 아만다였다. 매년 여름 휴가를 마운트배튼 백작의 별장에서 함께 보냈을 정도로 어릴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찰스가 아만다에게 정식으로 청혼했을 정도로 꽤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가 오갔었다. 그러나 IRA 폭탄 테러로 가정이 파괴된 아만다는 왕실과 결혼할 생각을 접게 된다.] 카밀라의 결혼 이후 찰스와 카밀라는 친구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1979년 [[IRA]] 폭탄 사고로 찰스가 의지했던 [[루이 마운트배튼]] 경[* [[필립 공]]의 외삼촌이다.]이 사망하자 '''찰스는 카밀라에게 깊이 의존하게 되었고''', 카밀라는 앤드루와의 사이에서 아들 톰과 딸 로라를 낳았음에도 [[불륜]] 행각을 계속 이어갔다. 앤드루 또한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등,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파국에 이르렀다.[* 당시 카밀라와 앤드루의 결혼생활은 서로가 연인을 만나는 것을 묵인해주는 자유 연애 형태에 가까웠다고 한다. 때문에 찰스도 앤드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카밀라와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 다이애나 1.jpg|width=100%]]}}} || || {{{-1 카밀라는 내연남의 아내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와 겉으로는 친근해보이는 관계를 유지했다.}}} || 그러다 1981년에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했다.[* 이때 카밀라의 남편 앤드루는 기병대 장교로서 찰스와 다이애나를 호위하며 같이 입장했다.] 원래 다이애나의 언니인 사라 스펜서가 왕세자비가 될 뻔하였으나 사라와 찰스가 헤어지고, 사라의 여동생인 다이애나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왕실 어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다이애나가 왕세자비가 되었다.[* 참고로 다이애나는 초기에는 찰스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결혼식 준비 당시,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거식증]]이 생길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했다.] 카밀라는 겉으로는 둘의 결혼을 적극 지지하는 척 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카밀라는 왕세자와 불륜을 지속하고 있었고, 왕세자 부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사실 결혼 직전까지 다이애나는 찰스가 약혼자인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보며 결혼을 몹시 망설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미 찰스가 카밀라와 주고 받은 편지며 선물을 발견했다고. 그러나 이미 약혼이 발표된 상태였고 그 당시만 해도 왕실에서 [[파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친정 식구들까지 가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결혼하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결국 반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그렇게 결혼한 후 겉으로는 잘 사는 듯했지만 찰스는 여전히 카밀라를 만나고 다녔고, 결국 다이애나는 왕자들을 낳고 성실한 공무로 [[영국인]]들의 인기를 얻어 입지를 다지기 전까지 찰스의 불륜을 알고도 묵인하며 살아야 했다. 참고로 카밀라가 찰스 왕세자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앨리스 케펠|증조할머니]][* [[에드워드 7세]]의 마지막 정부. 이 사람은 카밀라가 태어날 때까지 살아있었지만, 카밀라가 태어나고 2달 뒤에 [[이탈리아]]에서 사망했다.]가 [[에드워드 7세|당신 고조할아버지]]의 [[정부(관계)|정부]](情婦)였던 거 알아요?"[* 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왕의 [[정부(관계)|정부]](情婦)는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지위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전세기들에 비해 낮아지긴 했지만.]라고 말했다. 그리고 찰스 3세와 카밀라는 조상님들의 바람기 습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를 이어 [[간통]] 행각을 보였고, 파렴치하게도 '세기의 사랑을 나눴지만 세간의 비난에 희생당한' 피해자 행세를 철저히 했다.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의 불륜 행각은 10년이 지난 1992년 다이애나의 자서전이 발간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1993년에는 둘 사이의 대화를 폭로한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실 오래 전부터 부부 사이가 끝난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1992년부터 공식적으로 별거에 들어갔다. 그러다 1996년에 다이애나가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 사실을 직접적으로 폭로하면서 어떻게든 이혼만은 막으려 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포기하고 찰스를 불러들여 이혼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해 중순 찰스와 다이애나는 [[이혼]]하게 되었다. 겨우 자유를 되찾은 다이애나에게는 많은 동정과 응원이 따랐고, 찰스와 카밀라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카밀라 또한 폭로의 여파로 인해 1995년 남편 앤드루와 이혼했고 앤드루는 1996년 로즈메리 피트먼이란 이름의 여성과 재혼했다. 설상가상으로 이혼하고 고작 1년 뒤인 1997년 8월 31일에 '''다이애나가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급사하면서,''' 다이애나를 아꼈던 [[영국인]]들과 전 세계 사람들이 비통해하며 찰스와 카밀라를 더욱 비난했다.[* 물론 죽음 자체는 찰스의 잘못이 아니다. 다이애나는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려다 죽은 것이니 객관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죽음'''은 찰스의 탓이 아니다. 오히려 찰스는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전 부인인 다이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몹시 비통해했으며, 왕실 가족들이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때 카밀라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강렬했는데, 관계자들은 부인했으나 베이커리에서 카밀라를 알아본 사람이 빵을 던졌다는 소문도 퍼질 정도였다. 심지어는 당시에 카밀라와 찰스 왕세자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종이 가면까지 출시되었다고 한다. 찰스가 몇십 년이나 카밀라와 불륜을 지속한 이유는, "카밀라와는 말이 잘 통해서"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중퇴였던 [[다이애나 스펜서|다이애나]]와 달리 카밀라는 학구열 높은 찰스 왕세자와 얘기가 잘 통할 정도로 교양도 있고 화술도 좋았다. 뿐만 아니라 카밀라는 왕실에 대해 잘 알고 왕실 어른들을 살뜰히 대우했기에 '''정작 [[엘리자베스 2세]]도 카밀라를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맏아들 찰스보다 사랑받는 맏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를 견제했다는 말이 있다. 심지어 다이애나가 남편의 불륜 행각에 대해 시어머니에게 하소연하며 중재를 바랐을 때조차, 엘리자베스 2세는 말로만 "왕세자는 구제불능이구나."라고 할 뿐 아들의 불륜을 '''방관했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 또한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의 외도를 묵인했다는 소문이 있고, 전통적으로는 자식을 낳는 의무를 다 하면 각자 정부를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한 것일 수 있다. 남편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둘이나 낳고 최선을 다해 공무를 수행하는 등 왕실에 순종적이었던 다이애나는, 왕실과 시어머니에 대해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이혼 발표 후 다이애나가 매스컴에 대고 왕실에 들으란 듯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는 늘 셋이 있어서 좀 시끄러웠어요."라고 인터뷰한 것은 그 때문이다. === 콘월 공작부인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_리츠칼튼.jpg|width=100%]]}}} || || {{{-1 1999년, 런던 리츠칼튼 호텔에서 [[찰스 3세]]와 함께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카밀라.}}} || 각종 스캔들로 망실살을 뻗친 카밀라는 찰스 3세와 재혼하기 위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1995년 카밀라는 유명 홍보 전문가인 마크 블랜드를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고용했으며,[* 이후 마크 블랜드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찰스 3세]]의 부비서관 직을 맡았다. 홍보 전문가였던 블랜드는 [[다이애나 스펜서]]와의 이혼으로 추락했던 찰스 3세의 대중적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20%까지 떨어졌던 지지도가 블랜드의 재임 기간동안 '''무려 75%까지 상승'''했다. 덕분에 찰스는 항간에서 돌았던 왕세자 교체설을 무력화시키고 차기 국왕으로서의 입지를 회복하고, 카밀라와 재혼하는데도 성공했다. 또한 블랜드는 찰스 3세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의 사생활에 대한 민감한 언론 보도들을 관리하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1999년 런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열린 한 생일 파티에서 처음으로 [[찰스 3세]]와 공식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부터 카밀라는 왕세자의 공식적인 연인이 되었다.[* '리츠 작전'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시기부터 장소, 의상, 심지어 표정까지 사전에 모두 철저하게 조율된 프로젝트였다.] 2000년부터는 [[찰스 3세]]의 공무에 동행하기 시작했으며, 2001년에는 국립 골다공증 협회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현재는 왕립 골다공증 협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회장으로 임명되기 이전부터 이미 회원으로 활동중이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골다공증으로 사망해 해당 질병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콘스탄티노스 2세]] 전 국왕의 60세 생일 파티에 찰스 3세와 동반 참석해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나기도 했다. 이처럼 몇몇 민간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카밀라는 2002년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 50주년 [[골든 주빌리]] 행사에 초대되어 왕족들이 앉는 로열박스에서 함께 콘서트를 관람했다. 2003년부터는 아예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찰스 3세와 동거 생활을 시작했으며, 개인 보좌관까지 고용해 사실상 왕세자비와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렇다 보니 찰스와 카밀라의 재혼을 지지하는 여론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_약혼.jpg|width=100%]]}}} || || {{{-1 약혼 반지를 끼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카밀라.}}} || 2005년 2월 10일, 클래런스 하우스는 찰스 3세와 카밀라의 약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찰스 3세가 카밀라에게 준 약혼 반지는 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엘리자베스 2세]]를 임신했을 때 [[조지 6세]]가 선물했던 반지라고 한다. 당시 차기 왕위를 계승해야하는 왕세자가 이혼녀와 재혼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당장 찰스 3세의 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도 이혼녀인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로완 윌리엄스]] 캔터배리 대주교가 모두 성명을 통해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결혼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후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약혼 발표 후 2개월 만에 결혼식이 열렸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gettyimages-115370222-1518303716.jpg|width=100%]]}}} || || {{{-1 2005년에 치뤄진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의 결혼식.}}}[br]{{{-1 왼쪽부터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해리]],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윌리엄]]}}}, {{{-1 [[찰스 3세|찰스]], 카밀라, 로라, 톰}}} || 세간의 비난과 각종 논란 속에서 2005년 4월 9일에 결국 찰스 왕세자와 정식으로 재혼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후이자 찰스 왕세자의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살아있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엘리자베스 왕대비는 심슨 부인과의 트러블로 인해 이혼녀와 불륜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에게 준 약혼 반지는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소유하고 있던 반지였다.][* 여담으로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식에는 카밀라의 전 남편인 앤드루 파커 보울스와 그의 아내 로즈메리도 참석했다고 한다.] 본래 영국 [[성공회]]에서는 살아있는 전 배우자를 둔 자의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고, 영국 왕족들은 이혼 후 재혼을 할 때 해당 교리가 없는 스코틀랜드 [[장로회]]에서 식을 올려 왔다.[* 대표적으로 카밀라의 시누이인 [[앤 공주]]가 1992년 티머시 로런스와 재혼할 당시 스코틀랜드 장로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헌데 찰스와 카밀라의 재혼을 전후로 '''성공회에서 해당 규정을 폐지하면서''' 성공회 교회에서 인정한 결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는 [[윈저 성]]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하려고 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아 윈저 성 바로 앞에 있는 공회당에서 결혼식을 치뤘다고 한다. 직계 가족만 참석해 조촐하게 치뤘으며, 성직자가 아닌 동네 공무원이 주재하는 시민의례 의식으로 결혼식을 했다. 당시 여왕 부부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찰스 왕세자의 현재 부인이므로 [[전하(호칭)|전하]](Her Royal Highness)의 경칭은 받았지만, 국민의 반발 때문에 왕세자비(Princess of Wales) 칭호는 대외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왕세자비라는 칭호가 [[다이애나 스펜서|다이애나]]를 대표적으로 의미하는 칭호여서 그런 듯 하다.[* 다이애나는 [[테크의 메리]] 이후로 71년만에 왕세자비 칭호를 받았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대부분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 = 다이애나라고 생각했다.] 대신 잉글랜드에서는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으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부인(Duchess of Rothesay)으로 불렸다.[* 해당 작위들은 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에서 왕의 장남에게 주는 작위이다. [[왕세자비]]로 활동하지 않고 제 1왕자의 왕자비로 활동해왔었다는 말.] 재혼한 뒤에도 한동안 부적절한 처신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사치]] 문제. 명품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마구잡이로 구입하고, 한 번에 2만 5천 달러의 수당을 받는 헤어 디자이너를 고용한 것이 알려져 안 그래도 욕을 먹던 차에 몇 배로 더 욕을 먹었다. 대인지뢰 제거운동 등 활발한 사회 운동을 벌이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다이애나 스펜서]]와 대조되며 더더욱 비난받았다. 2005년에 재혼하고 쭉 잘 사는 듯했지만 2015년부터 카밀라와 찰스 왕세자의 불화설이 간간이 돌았다. 다만 저 불화설이 사실이라 해도 "이제 와서 둘이 이혼할 리는 없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다이애나와의 결혼 전부터 해온 불륜을 오랫동안 이어오며 결국 결혼까지 강행했는데 [[황혼이혼]]을 하면 둘 다 비웃음을 사고 망신살만 뻗칠 수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여러 논란은 2005년 4월 9일 부터 2022년 9월 8일 까지 17년간 카밀라가 왕세자비로서 여러 활동을 통해 모범적인 공무를 수행하고, 소탈한 성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 즉위 전 왕비 칭호 논란 ==== 재혼 후에는 찰스 왕세자를 내조하며 왕실의 인정을 받기위해 노력했다 . 2011년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때 윌리엄의 사실상 의붓어머니이자 왕실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게 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결혼 7주년이 되는 2012년 4월 9일에 [[엘리자베스 2세]]가 로열 빅토리아 훈장(Royal Victorian Order)의 여성 최고 서열인 데임 그랜드 크로스(Dame Grand Cross)를 수여함으로서 왕실에서의 카밀라의 입지가 한층 강화되었다.[[http://media.daum.net/society/people/view.html?cateid=1011&newsid=20120410032123507&p=donga|#]] 한때 그녀는 결혼 계약에 의해 찰스가 왕이 되어도 왕비(Queen Consort)의 칭호를 받기는 하지만 위처럼 대외적으로는 한 단계 낮은 Princess Consort라는 칭호를 쓰도록 내정되었다. 역대 영국 역사상 Princess Consort라는 칭호를 받은 왕비는 없다. Princess Consort의 용례 자체가 프린스의 배우자를 위한 작위이기 때문이다. 여왕의 남편을 위해 만들어진 Prince Consort의 경우 [[앨버트 공]] 등에게 하사된 적이 있고, [[빅토리아 여왕]]의 경우 이보다 높은 King Consort를 다시 하사하길 원했으나 거부된 적이 있었다. 앨버트 공이 [[독일인]]이었던 점이 감안된 문제였다. 배우자가 Queen Regnant라도 남편은 Prince일 수 있다는 문제였는데, 남편이 왕인 경우 역대 영국에서 왕비는 예외없이 Queen Consort였다. 사실 헌법부에서는 "[[찰스 3세|찰스 왕세자]]가 즉위한다면 카밀라가 [[왕비]] 칭호를 쓸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으나,[[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6&aid=0000166844|#]][* 영국 내 여론은 카밀라와 찰스 왕세자에게 부정적이며, "찰스 왕세자가 아예 왕위를 장남 윌리엄 왕세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단 법률상으로는 문제가 없기에 실제로 찰스 왕세자가 즉위하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2018년에 Princess Consort를 사용한다는 부분에 대한 언급이 삭제되는 일도 있었으나, 2020년 3월 왕세자 측은 "찰스가 왕위에 올라도 카밀라가 Princess Consort를 사용할 것"이라고 재확인하였다.[[https://www.express.co.uk/news/royal/1249812/royal-family-news-camilla-duchess-cornwall-prince-charles-queen-elizabeth-II|#]] 카밀라를 평생 지극히 사랑한 찰스는 결혼할 때부터 세간의 부정적인 반응은 모조리 무시한 채 "내가 즉위하면 카밀라가 왕비다"라고 공공연히 카밀라를 왕비로 만들어 주려고 선언하고 다녔다. 하지만 영국의 여론은 "찰스가 왕이 되는 사태가 일어나면 [[빠꾸|왕정을]] [[공화제|폐지한다]]"는 여론이 컸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며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같은 큰 공식 행사에서 카밀라가 왕실 맏며느리 노릇을 하며 점점 인정받았다. 다이애나가 살아있었다면 얘기가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이혼 2년여 만에 이미 [[고인]]이 되었다. [[캐서린 미들턴]] 세손비조차 공식석상에서 '좋으신 분'이라고 칭찬할 정도. 하기야 싫어하더라도 공식 석상에서 의붓시어머니에게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했겠지만, 사실 캐서린의 절친한 친구 사라 바이스가 카밀라의 친아들인 톰과 결혼하여 그녀의 며느리가 됐기 때문에[* 그러나 모전자전이라고 현재는 이혼했다.] 전부터 꽤 돈독한 사이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왕세자의 배우자 자리에서 인정받기까지 카밀라도 부단히 노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의 관계는 '세기의 불륜'이라며 비난받는 상태라 카밀라의 이미지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2020년 10월 살아있는 왕실 인물들 중 호감도 조사를 했는데 카밀라의 호감도는 '''[[https://www.fmkorea.com/best/3729472602|1%]]'''가 나왔다. 남편인 찰스는 24%.[* 참고로 1위는 [[엘리자베스 2세]], 2위는 [[윌리엄 왕세손]], 3위는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꼴찌는 [[앤드루 왕자|이 사람]]이다.] 참고로 비호감이라는 의미로 '''마이너스''' 그래프도 있는데, 카밀라가 +1%라는 건 옛날에 비하면 이미지가 정말 많이 회복된 거다. 2021년 11월에는 다수의 영국 언론을 통해 카밀라가 여왕이 정하는 공식 왕실 섭정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행 법상 국왕의 배우자 및 부모를 포함한 21세 이상 왕족들 중 4명은 해외 순방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여왕이 직무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국왕 업무를 대신 수행할 수 있도록 왕실 섭정으로 임명되는데, 현재까지는 규정에 따라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그리고 [[해리 왕자]]와 [[앤드루 왕자]]가 왕실 섭정으로서 임무를 수행해왔다. 하지만, 2021년을 기점으로 해리 왕자가 왕실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해외인 미국에서 거주하고, 앤드루 왕자는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공무에서 은퇴하면서 사실상 섭정으로서의 직무 수행이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공석이 된 왕실 섭정 자리를 바로 다음 순위인 [[베아트리스 엘리자베스 메리|베아트리스 공주]]와 카밀라로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게 되었다. 카밀라가 왕세자비로서 다양한 공무를 수행해 나가며 입지를 넓히고 있는 중이었고, 어차피 찰스 왕세자나 윌리엄 왕세손이 즉위한 이후에는 국왕의 배우자나 국왕의 명목상 부모 자격으로 왕실 섭정에 임명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왕이 카밀라를 미리 왕실 섭정에 임명시켜 왕실 일원으로서의 입지를 더 넓혀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https://www.mirror.co.uk/news/uk-news/camilla-to-step-up-bigger-25339416|#]] 실제로, 2020년을 전후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고령과 건강 문제로 인해 [[엘리자베스 2세]]의 공무가 줄어들면서 카밀라의 공무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여성 단체 지원 활동이나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문맹]] 퇴치나 동물 보호 활동까지 다양한 공무를 수행 중이다. 이 같은 활발한 공무로 인해 현재 영국 내에서는 카밀라의 팬까지 생겼다고 한다. 2021년 12월 31일에는 여왕이 개인적으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훈장인 가터 훈장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https://www.harpersbazaar.com/celebrity/latest/a38648997/queen-elizabeth-appoints-duchess-camilla-order-of-the-garter/|#]] 2022년 2월 6일 여왕의 재위 70주년 기념 성명에서 찰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카밀라가 '''Queen Consort'''라고 알려지는 것이 여왕의 '진지한 소망'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찰스와 재혼한 이후 17년 동안 큰 논란 없이 왕세자비로서의 의무를 충실이 이행한 카밀라에게 왕비의 자격이 주어져도 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이후 시행된 여론 조사에서 55%의 국민들이 카밀라가 왕비가 되는것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10491501/Duchess-Cornwalls-popularity-soars-Majesty-gives-ultimate-blessing.html?ito=social-twitter_dailymailUK|#]]] [[윌리엄 왕세손]] 또한 새어머니 카밀라가 왕비가 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향후 여론에 따라 카밀라가 왕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영국 언론에서는 여왕이 향후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른 이후 카밀라의 지위를 놓고 각종 구설에 오를 것을 우려해 미리 이 문제를 매듭짓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찰스의 즉위 초기에 이 문제로 인해 혼란이 발생할 경우, 자연스럽게 수면위로 다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다이애나 스펜서]] 스캔들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찰스 왕세자로서는 큰 리스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전히 지지도가 견고한 여왕이 나서서 미리 교통 정리를 한 것이다.] 해당 성명이 나온 후, 카밀라가 왕비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해지자 [[BBC]]를 비롯한 영국 언론에서는 카밀라를 '미래의 왕비(Future Queen)'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비슷하게 남편 찰스 왕세자에게는 웨일스 공이라는 공식 칭호 대신 '미래의 왕'이라고 칭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여왕의 이번 성명을 기점으로 미래 국왕으로서 찰스 왕세자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20230116_002142.jpg|width=100%]]}}} || || {{{-1 2022년 6월, 가터 기사단 기사로 임명된 카밀라}}} || 2022년 6월, [[엘리자베스 2세]]에 의해 [[가터 기사단]] 기사로 임명되었다. 왕비도 아닌 왕세자비가 가터 기사단에 임명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이애나 스펜서]]도 가터 기사단 기사로 임명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카밀라가 왕비로 즉위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예측이 나왔는데, '''3개월 후 여왕이 사망하자 진짜로 왕비가 되었다.''' === 영국 왕비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_즉위식사진.jpg|width=100%]]}}} || || {{{-1 [[찰스 3세]] 즉위선포식에 참석한 카밀라 파커 보울스.[br] 왕비로서 참석한 첫 공식 행사였다.}}}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20221002_095515.jpg|width=100%]]}}} || || {{{-1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 전날 밤 촬영된 가족 사진}}} ||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망 직후 [[버킹엄 궁전]]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카밀라 파커 보울스를 'Queen Consort'로 표기함으로써 공식적으로 '''Queen Camilla(카밀라 왕비)'''로 불리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기 전, 카밀라가 왕비 칭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미리 정리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조지 6세]]의 왕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이후 70년 만에 탄생한 영국 왕비이고[* 참고로 보우스라이언은 생전에 손자와 불륜을 저지르던 카밀라를 매우 싫어했다.],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이후 868년 만에 이혼 경력이 있는 여성이 왕비가 된 사례이다. 남편 [[찰스 3세]]의 대관식이 2023년 5월 6일에 열리는데, 카밀라의 왕비 대관식 역시 이때 함께 치러질 예정이다. 왕비 대관식은 국왕의 대관식과 동시에 진행하는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국왕 배우자의 대관식이 열리는 것도 1937년 조지 6세 부부 대관식 이후 '''86년 만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국서인 [[필립 마운트배튼]]은 'Queen Consort'의 남성형에 해당하는 'King Consort' 칭호는 물론 한 단계 낮은 'Prince Consort' 칭호조차 받지 못해서 대관식을 치를 수 없었다. 여왕의 부군이었지만, 공식적인 신분과 호칭은 [[에든버러 공작]]이 전부였다. 때문에 여왕의 신하로서 대관식에서 아내에게 충성 맹세를 해야했다. 필립 공이 'King Consort'가 되지 못한 이유에는 아직까지도 여러 의견이 분분한데, 가장 유력한 설은 국왕에게 주로 쓰이는 칭호인 'King'이 자칫하면 국가원수인 여왕보다 높은 위치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당시 필립 공의 출신때문에 영국 내부에서 논쟁이 많아 여왕이 필립 공에게 적당한 지위를 부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대관식 때는 합의에 따라 [[https://c8.alamy.com/zooms/9/77d87d689f744fc8b4e890f633321f26/k7cyj1.jpg|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왕관]]을 착용하게 된다. 하지만, 왕관에 박힌 '[[코이누르]] 다이아몬드'가 인도 식민지 지배의 상징이기 때문에, 대관식에서 사용하는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도 집권당인 바라티야 자나타 당(BJP)의 공보 관계자는 [[텔레그래프]]에 카밀라의 대관식에서 이 보석이 박힌 왕관이 사용되는 것은 과거 식민지 시대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다시 떠오르도록 하는 일이라며 강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찰스 3세는 이전보다 현대적인 대관식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해당 왕관을 아예 대관식에서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보석으로 교체해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502984?sid=104|#]]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관의 대안으로는 인도 지배 이전인 [[윌리엄 4세]] 대관식 당시 사용되었던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라이드|아델라이드 왕비]] 왕관이 거론되고 있다. [[https://www.1news.co.nz/2022/10/14/little-known-crown-set-for-queen-consort-camilla-coronation/|#]] 다만, 영국 왕실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관을 그대로 착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카밀라는 왕비나 여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명예직 귀족 여성인 시녀를 두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https://www.bbc.com/news/uk-63768031|#]] 대신 여성 비서 6명의 보좌를 받으며, 이들은 공무를 제외한 사생활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중세시대부터 수백년동안 이어져온 시녀 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는데, 이 역시 찰스 3세의 왕실 현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다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녀들은 ''''Ladies of Household(여집사)' '''라는 직책을 맡아 계속 왕실 공무를 도울 예정이라고 한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밀라_패딩턴.jpg|width=100%]]}}} || || {{{-1 [[패딩턴 베어]] 인형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카밀라.}}} || 11월 24일, [[엘리자베스 2세]]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선물한 [[패딩턴 베어]] 인형을 런던의 한 보육원을 찾아 직접 기부했다. 해당 행사에는 영화 [[패딩턴(영화)|패딩턴]] 베어 시리즈의 주연 배우인 [[휴 보네빌]][* 영국드라마 [[다운튼 애비]]의 그랜섬 백작 역으로 유명하다.]이 동행하였다. [[https://youtu.be/tTTmT79CCqA|#]] 12월 22일, 트루핑 더 컬러스(Trooping of the Colors) 행사를 앞두고 찰스 3세에 의해 척탄병 근위대 대령으로 임명되었다. 다만, 명예직이기 때문에 실제로 군 복무를 하지는 않는다. 왕비로 즉위한 후의 여론은 꽤 호의적인 편이다. 영국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의 조사에 따르면, 카밀라의 지지율은 46%로 [[에드워드 왕자]]에 이어서 왕족 지지율 6위를 기록 중이다.[* 부정 평가는 40%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6%p 가량 앞서고 있다.][* 1위는 72%를 기록한 [[앤 공주]], 2위는 70%를 기록한 [[윌리엄 왕세자]], 3위는 68%를 기록한 [[캐서린 왕세자비]], 4위는 62%를 기록한 [[찰스 3세]], 5위는 54%를 기록한 [[에드워드 왕자]] 였다.] == 가족 관계 == === 조상 === ||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13> 카밀라 파커 보울스[br]{{{-2 (Camilla Parker Bowles)}}} ||<|6> 브루스 섄드[br]{{{-2 (Bruce Shand)}}} ||<|3> 필립 모턴 섄드[br]{{{-2 (Philip Morton Shand)}}} || || 알렉산더 포크너 섄드[br]{{{-2 (Alexander Faulkner Shand)}}} || || 어거스타 메리 코츠[br]{{{-2 (Augusta Mary Coates)}}} || ||<|3> 에디스 마거리트 해링턴[br]{{{-2 (Edith Marguerite Harrington)}}} || || 조지 우즈 해링턴[br]{{{-2 (George Woods Harrington)}}} || || 앨리스 에디스 스틸맨[br]{{{-2 (Alice Edith Stillman)}}} || ||<|7> 로잘린드 큐빗[br]{{{-2 (Rosalind Cubitt)}}} || ||<|3> 제3대 애쉬콤 남작 롤란드 큐빗[br]{{{-2 (Roland Cubitt, 3rd Baron Ashcombe)}}} || || 제2대 애쉬콤 남작 헨리 큐빗[br]{{{-2 (Henry Cubitt, 2nd Baron Ashcombe)}}} || || 모드 칼버트[br]{{{-2 (Maud Calvert)}}} || ||<|3> 소니아 로즈마리 케펠[br]{{{-2 (Sonia Rosemary Keppel)}}} || || 조지 케펠[br]{{{-2 (George Keppel)}}} || || [[앨리스 케펠|앨리스 에드먼스톤]][br]{{{-2 (Alice Edmonstone)}}} || === 자녀 === ||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4> 앤드루 파커 보울스[br]{{{-2 (Andrew Parker Bowles)}}} || || '''1남''' || 톰 파커 보울스[br]{{{-2 (Tom Parker Bowles)}}} || [[1974년]] [[12월 18일]] ([age(1974-12-18)]세) || --사라 바이스--[br]슬하 1남 1녀 || || '''1녀''' || 로라 로프스[br]{{{-2 (Laura Lopes)}}} || [[1978년]] [[4월 19일]] ([age(1978-04-19)]세) || 해리 로프스[br]슬하 2남 1녀 || 전 남편 앤드루와의 사이에서 1974년생인 톰([age(1974-01-01)]세)과 1978년생인 로라([age(1978-01-01)]세)라는 자녀를 낳았다. 찰스 3세는 톰의 대부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앤드루는 전 애인이었던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앤 공주]]의 딸인 [[자라 필립스]]의 대부이다. 즉,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남매는 각자 과거 파커 보울스 부부와 연인 사이였고, 결별 이후에도 줄곧 친분을 유지하면서 각자 서로의 친자녀들의 대부가 된 것.] 톰은 음식 평론가로 일하고 있으며, 로라는 큐레이터다. 카밀라가 재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자식들 둘 다 결혼하여 톰은 1남 1녀를, 로라는 2남 1녀[* 외손녀인 일라이자(2008년생, [age(2008-01-01)]세)는 3살이던 2011년에 케임브리지 공작 부부의 결혼식에서 신부 [[화동#s-3]]을 서기도 했는데, 이때 찰스 왕세자가 일라이자를 왕궁 발코니 위에 들고 올리는 것이 찍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를 낳아 5명의 친손주가 있다. 톰은 2018년부터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다. 친자녀들 입장에선 본인들의 엄마가 재혼으로 왕비가 된 것이다. == 기타 == * 어릴 때 아버지가 매일 책을 읽어줘 독서에 취미를 붙여 지적으로 매우 성숙했다고 한다. 독서를 많이 한 덕분에 카밀라는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찰스와도 대화가 잘 통했다고 한다. 이런 독서에 대한 조예를 활용해 왕세자비 시절 문해력 향상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 측근들에 의하면 카밀라는 '''아주 사려 깊고 참을성이 많은 성격'''이라고 한다. 성격 급하고 까다로우면서 외로운 '''[[찰스 3세]]를 어떤 경우에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부드러워 보이지만 대단히 강단있는 성격이라고 한다. 여우사냥 대회에서 사진기자가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촬영을 하자 “조심하지 않으면 내가 채찍으로 후려칠 겁니다”라고 위협을 가해 물러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측근들은 찰스를 감당하고 성격을 눌러앉힐 유일한 인물이 카밀라라고 평한다. 찰스가 국왕이 된 10월 13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 힐스버러성에서 즉위 선언문 서명 시 일어난 사건만 봐도 찰스가 카밀라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 알 수 있는데, 찰스가 서명을 하려고 할 때 탁자 위의 펜과 병 안의 잉크가 손에 묻었다. 이때 찰스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자 카밀라가 옆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사태를 수습해서 상황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장면은 전 세계로 중계되면서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를 잘 말해 주었다.[[https://youtu.be/2Encm187scA|#]] * 왕세자비 시절부터 다양한 자선사업을 주관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골다공증 연구 및 인식 개선 사업과 문해력 향상 운동, 강간 및 가정 폭력, 성폭력 피해 여성 지원 사업, 여성 교육 운동, 승마 후원 활동, 아시아 코끼리 구하기 운동, 예술가 후원 활동, 노인 여가 활동 지원 사업 등을 직접 주관하고 있다. 이러한 활발한 자선 활동 덕분에 영국 대중들로부터 상당히 호의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 남편 찰스가 왕위에 오른 시점을 기준으로 전 세계 [[군주]]의 배우자들 중 군주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지않은 유일한 배우자다. * [[윌리엄 왕세자]]의 자녀들은 카밀라를 '''가가(GaGa)'''라고 부른다고 한다. 첫째 [[조지 알렉산더 루이|조지]] 왕자가 어렸을 때부터 카밀라를 가가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동생들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샬럿]] 공주와 [[루이 아서 찰스|루이]] 왕자도 조지를 따라서 카밀라를 가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카밀라도 모른다고 한다.[* 참고로 윌리엄 왕세자의 자녀들은 카밀라가 아닌 [[다이애나 스펜서]]를 할머니라고 칭한다고 한다.][[https://www.express.co.uk/life-style/life/1562061/Camilla-Parker-Bowles-nickname-Prince-George-Princess-Charlotte-grandma-gaga-royal|#]] * 2022년 2월 14일, 부스터 샷까지 맞았음에도 남편 [[찰스 3세]]에 이어 돌파감염으로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 2022년 3월, [[더 크라운]] 시즌 3~4에서 자신을 연기한 배우 [[에메랄드 페넬]]을 직접 만나 화제가 되었다.[[https://people.com/royals/camilla-duchess-cornwall-meets-the-crown-actress-emerald-fennell/|#]] 실제로, 카밀라는 더 크라운을 즐겨 본 것으로 알려져있다. 카밀라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왕실에서 해당 드라마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인 부분이다. * 2007년 3월에 [[자궁]] 적출수술을 받았다. * 2013년 2월부터 스코틀랜드 [[애버딘 대학교]]의 총장직을 맡고 있다. 애버딘 대학교의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이라고 한다. [[파일:카밀라_헤어스타일.jpg|width=100%]] * 젊은 시절부터 계속 비슷한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을 잘 보면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같은 스타일을 그대로 쭉 유지하고 있다. [[분류:그레이트브리튼 왕비]][[분류:웨일스 공비]][[분류:로얄 미스트리스]][[분류:윈저 가문]][[분류:1947년 출생]][[분류:램버스 출신 인물]] [include(틀:포크됨2, title=카밀라 파커 보울스, d=2023-01-19 22:20:11)]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