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창선교 붕괴 사고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사건사고)] ||<-3> {{{#fff {{{+1 '''창선교 붕괴 사고'''}}}[br]昌善橋崩壞事故[br]Collpase of Ch'angsŏn Bridge}}}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10px" [[파일:171CF4204A0E6DF8B4.jpg|width=100%]]}}} || ||<-2> '''{{{#fff 발생일}}}''' || [[1992년]] [[7월 30일]] 오후 5시 20분[br]사고일로부터 '''[dday(1992-07-30)]일''' || ||<-2> '''{{{#fff 발생 위치}}}''' || [[경상남도]] {{{-1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 [[창선면]] 지족리}}}[br]창선교 || ||<-2> '''{{{#fff 유형}}}''' || '''[[건물 붕괴]]''' 및 '''[[추락]]''' || ||<-2> '''{{{#fff 원인}}}''' || 경진건설의 [[부실공사]][br][[해수]]의 [[염분]]으로 인한 [[콘크리트]] [[부식]] || ||<|2> '''{{{#fff 인명피해}}}''' || '''{{{#fff 사망}}}''' || '''2명''' || || '''{{{#fff 부상}}}''' || '''2명''' || ||<-2> '''{{{#fff 결과}}}''' ||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의 직위해제[br]신 창선교 개통 || [목차] [clearfix] == 개요 == [[1992년]] [[7월 30일]] 오후 5시경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남해도)과 창선면(창선도)을 잇는 해협에 위치한 창선교가 붕괴된 사건. 해당 구간은 [[3번 국도]]의 일부를 이루는 구간이다. == 사고 원인 == 1차 조사 결과 사고는 붕괴된 교각의 기반이 바닷물의 [[염분]] 때문에 조금씩 부식되면서 [[콘크리트]]가 [[부식]], 탈락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당시 [[건설교통부]][* 現 [[국토교통부]]]는 전문적인 구조분석기관에 의뢰해 붕괴된 교각의 해저부분에서 채취한 콘크리트 조각을 분석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 한편 나머지 교각들에 대해서도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였다. 진단 결과 사고 원인은 영세업체 및 미경험업체에 의한 시공과 유속(V=2.76m/sec)이 심한 수중에 우물통 기초의 위치를 부정확하게 시공함으로써 편심을 야기시켰으며 우물통 기초의 심도가 낮았고 해수 중에 있는 염분성분 때문에 콘크리트가 중성화되면서 교량의 기초가 부식되었기 때문이었다. == 피해 == 2명이 사망하고 통화선도 끊겼으며 창선도 주민들은 창선교가 재개통될 때까지 한동안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당시에는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창선교만이 유일한 육로교통수단이었다.[* 당시 창선도-삼천포 사이 [[3번 국도]] 구간은 카페리가 운행했다.] 그나마 사람이 자주 다니는 시간대는 아니라서 사상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 조치 == 사고 이후 신창선교를 건설하기로 계획하였다. 신규 건설 기간 중 주민들의 교통 통행과 편의를 위하여 자주식 대형 바지선을 상시 비치하여 차량을 포함한 인원, 화물수송에 대비하였다. 경상남도는 창선면의 1만여 주민들이 [[유람선]], 도선으로 육지와 통행하고 있었으나 승선인원이 30명 내외였던 것 때문에 불편을 겪자 [[대한민국 해군]] [[상륙정]]인 LGM 8선을 추가 투입하였다.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에 지원을 건의하여 2억 5천만 원을 들여 차량 10대, 승객 50명을 운송할 수 있는 40톤 규모 페리선을 건조하였고 유류, 생필품, 가스 등은 도선을 이용해 하루 2차례 공급되었다. == 기타 == 오래 전 일이고 외딴 곳의 다리여서 창선교를 [[창선삼천포대교|창선대교]]와 혼동할 수 있는데 창선대교는 이 사건이 발생하고도 한참 나중인 [[2003년]] [[4월 28일]]에 개통된 [[창선삼천포대교]]의 일부를 이루는 다리다. 창선교와 창선대교는 위치도 다른데 창선교는 창선도 남쪽과 남해도를 연결하는 다리이고, 창선대교는 창선도 북쪽과 [[삼천포]]를 연결하는 다리다. [[국가기록원]]의 보고서에도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showDetailPopup.do?rc_code=1310377&rc_rfile_no=200902344290&rc_ritem_no=000000000001&sitePage=0-0-0|창선교 붕괴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도서낙도에서 벌어진 사고인 데다 발생 시간대도 통행이 활발한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상자 수가 적어 임팩트가 깊은 사고는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개최 중이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연일 선전하여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올림픽]]에 쏠렸던 것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경남 로컬 언론사[* 당시 창원(마산)과 진주의 KBS, MBC 지방국들.]에서는 꽤 크게 다루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중앙언론에서 그다지 조명되지도 않아서 국민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2/nwdesk/article/1747064_30556.html|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된 사고 소식. 지방국인 진주문화방송의 뉴스 리포트를 다음날 서울 본사에 올려 전국 송신한 것이다. 그러니 이 사고가 2년 2개월여 뒤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날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전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창선교 붕괴 사고가 벌어진 바로 다음날, 구 행주대교 옆에 건설중이던 신[[행주대교]]의 상판이 붕괴하는 사고가 잇따라 일어났다. 부실공사 공화국의 전조는 이미 이 때부터 경고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붕괴/한국)] [[분류:1971년 건설]][[분류:1992년 재난]][[분류:1995년 건설]][[분류:교량 사고]][[분류:남해군의 사건사고]][[분류:사천시의 사건사고]][[분류:붕괴 사고]]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