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진송 (r1 버전으로 되돌리기) 秦松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삼국시대)|손오]]의 인물이며 자는 문표(文表)로 서주 광릉군 사람. == 생애 == [[장소(삼국지)|장소]], [[장굉]], [[진단(후한)|진단]]과 함께 모주가 되어 [[손책]]의 밑으로 들어가 대계를 정하는 일에 참여해 손책과 장굉에게 대우를 받아 상빈이 되었는데, 진송은 장소, 장굉 등과 함께 사해를 평안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력을 길러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이 때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던 [[육적]]이 [[관이오|관중]]과 [[공자]]의 예를 들면서 이를 비난하자 놀랐다고 한다. 202년에 [[조조]]가 [[원소(삼국지)|원소]]와의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손권]]에게 아들을 조정에 인질을 보낼 것을 요구하자 이에 대해 상의했지만 장소 등과 함께 뚜렷한 계책을 내지 못해 손권은 주유의 말에 따라 아들을 보내지 않았으며, 208년에 조조가 형주를 정복하고 손권에게 이제 곧 수군 80만을 이끌고 오나라를 정복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진송은 사신을 보내 격문을 받아 영접해야 한다고 했지만 [[오나라의 요절징크스|요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송이 요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적벽대전|적벽에서 크게 승리했다]]. 이후 손권이 같은 항복파인 [[장소(삼국지)|장소]]와 진송을 항복 건으로 까는것을 감안한다면, 진송은 적벽대전 이전에 죽지 않았어도 손권에게 숙청당할 수 있었다. == 미디어 믹스 ==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 [[파일:진송.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일러스트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 15, 무력 17, 지력 66, 정치 75, 매력 60이다. 개성은 소심, 우유, 주의는 명리, 정책은 묵수연구 Lv 3, 진형은 학익, 전법은 없고 친애무장은 [[장소(삼국지)|장소]], 혐오무장은 없다. 생년은 165년, 몰년은 209년까지 설정되어 있다. 잡문관이라 내정용으로 쓰인다. ===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 === 강하에서 [[황조(삼국지)|황조]]를 죽인 이후에 등장해 반백이 넘은 나이로 나오며, 고향이 그리워 조조에게 투항하고 싶어하면서도 패업에 열중하는 손권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했다. [[손책]]이 죽고 나서 피난 인사들이 강북으로 돌아가 조조에게 투항했다는 생각을 하는 분위기인지라 손권도 그 속내를 알고 있었다. [[육적]], [[오찬(삼국지)|오찬]]이 투항을 주장하자 손권이 두 사람을 곤장으로 치고 내쫓으려 하자 진송은 그들의 말에도 일 리가 있다고 말하며, 손권은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을 거론하냐고 했다. 그러자 진송은 산월족 등 내부의 우환이 끊이질 않은 이런 상황에서 외부의 적을 막아낼 수 없고 전란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휘말린다면서 투항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 소설 전공 삼국지 === 197년에 [[도응]]이 현자들을 모집한다는 벽보를 붙이자 [[장간(삼국지)|장간]]과 함께 도응에게 임관한 인재로 나온다. === 소설 삼국지 [[서영(삼국지)|서영]]전 === 서영군이 [[원술]]과 싸우면서 원술을 수춘에서 쫓아내고 여강을 점령하자 원술이 궁지에 몰렸지만 만만한 자가 아니라면서 이번 기회에 멸망시킬 것을 주장했다. [각주] [[분류:후한의 인물]][[분류:손오의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