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지묘인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5 '''持明院'''}}} [[파일:지묘인 어소.jpg]] [[일본]] [[교토부]]에 위치한 [[절(불교)|절]]이자 지금의 [[일본 황실]]의 정신적 장소 [목차] == 개요 ==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헤이안쿄 북쪽에 존재했던 [[저택]] 및 그 저택에 있었던 [[사찰]]로 현재의 [[교토시]] 가미교구 안라쿠코오지마치의 코쇼인 부근에 있었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는 [[선동어소]]나 사토우치우라가 되어서 지묘인의 유래가 된다. 저택을 가진 지묘인전과 또 사찰을 안락광원 안락행원이라고도 한다. == 내용 == 처음 진수부 장군을 지낸 후지와라 모토요리의 저택이었다. [[12세기]] 초 모토요리가 저택 안에 지불당을 건립해 지묘인이라 이름 지었다. 모토요리의 아들인 후지와라 미치모토는 지묘인을 확충하고, 절호를 안락행원으로 고쳐 지묘인을 집안의 호로 했다. 가마쿠라 시대, 지메이인 기가의 딸 진자는 모리사다 [[친왕]]의 비가 되어서 시게히토 친왕을 낳았다. 조큐의 난 후 [[고호리카와 덴노]]이 즉위하자 부친 모리사다 친왕에게는 [[상왕|태상천황]]의 [[존호]]가 있었고, 고타카쿠라인을 원호로써 원정을 행하였으며, 지묘인궁이라 하였다. 모리사다 친왕계의 단절 후에도 [[고사가 덴노]]·[[고후카쿠사 덴노]]의 퇴위 후의 [[일본의 어소|고쇼]]가 되어, 고후카쿠사 덴노의 계통에는 [[후시미 덴노]], [[고후시미 덴노]], [[하나조노 덴노]], [[고곤 덴노]], [[고묘 덴노]]가 계통을 지묘인토이라고 한다. 다만, 모리사다 친왕계의 단절후에는 [[고호리카와 덴노]]의 황녀였던 키시 내친왕이 지묘인을 어소로 하였다. 대립 관계에 있던 [[가메야마 덴노]]의 계통는 카메야마 덴노이 퇴위 후에 다이카쿠지를 [[일본의 어소|고쇼]]로 한 것으로부터 다이카쿠사토이라고 불렀다고 여겨지지만 이쪽도 [[고우다 덴노|고우다 상황]]의 거주를 다이카쿠지토의 단서란 설이 유력하다. [[고코곤 덴노]]의 1353년(분화 2년/정평 8년) 2월의 [[화재]]로 소실되자 안락광원 일당을 남겨두고 저택 부분은 이후 황폐해졌다. 안락광원은 광의문원의 명에 의해 재흥됐고, [[무로마치 시대]]에도 지묘인통 관련 불사 등이 행해져 [[에도시대]]에는 센뉴지 탑두로 여겨졌다. [[오닌의 난]] 후에 [[후시미 덴노]]의 황녀 엔메이몬인의 코쇼인이 이전했다고도 전해져 이전 후의 한 시기는 코쇼인도 안락광원을 자칭하고 있다. 또 지묘인에 남은 안락광원을 현 [[교토시]] [[후시미구]]에 옮겨서 심초법화당으로 삼았다는 전승도 있다.고후카쿠사 화당에는 [[고후카쿠사 덴노]] 이하 12명의 능묘가 있으며, [[17세기]] 후반 안락행원으로 재흥하여 폐불훼석까지 잔존했다. [[분류:일본의 역사]] [[분류:일본의 절]]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