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정무수석비서관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대통령비서실)] [include(틀:역대 정무수석비서관)] ||<-2> {{{+1 '''정무수석비서관'''}}}[br]'''政務首席祕書官[br]Senior Secretary for Political Affairs'''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오섭.png|width=100%]]}}} || || '''현직''' ||[[한오섭]] || || '''취임일''' ||[[2023년]] [[12월 4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정무수석비서관'''(政務首席祕書官, 약칭 '''정무수석''').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중 하나로 정무수석비서관실의 장이다. == 상세 == [[대통령]]을 보좌하여 [[행정부]]와 [[입법부]] 간 업무 및 대(對)국회 관계를 총괄적으로 조율한다. 주로 여야의 원내대표와 교섭하고 정치권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한다. 이외에도 '정무'(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담당하는 만큼 업무 영역이 사실상 거의 모든 국정에 걸친다. 여론 파악 등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데에도 정무수석의 보고가 결정적이다. 대통령의 뜻을 잘 헤아리는 복심들이 가는 자리라는 인식이 있다. 여야 정치인들의 지역 숙원사업 등을 들어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여의도 민원수석’이라고 불리기도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50711/72411580/1|한다.]] 대통령의 국정 현안 추진을 원활히 만들기 위해 의원들에게 어떤 당근을 제시할 것인지를 기획하는 자리인지라, 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의원들을 상대로 협상을 하는 만큼 의원직 경험이 있는 인물 중 어느정도 중량감이 있는 인물(주로 재선)들이 주로 맡아왔다. 국회와의 소통은 어느 정부에서나 필요한 만큼, 다른 [[수석비서관]] 자리와 달리 정권 교체 때마다 없어지지 않고 [[박정희|박정희 정부]] 때 설치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 [[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어떤 정권이든 이름이나 권한에 약간에 변화만 있을 뿐 자리가 통째로 사라지지는 않는 자리이다. 극히 이례적으로 [[참여정부]]에서 "정치권에 대통령이 간섭하지 않고 필요한 접촉은 각 장관에게 맡기겠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로 [[2003년]] 새천년민주당 - 열린우리당 분당 시에 잠시 공석으로 비워둔 적은 있지만 아예 폐지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국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대참패 - 한나라당이 압승하면서 야당과의 접점이 필요했기에, 정무수석 자리를 다시 채워서(민정수석이 겸임) 운영하였다. [[박근혜 정부]] 때 [[조윤선]] 전 수석이 최초의 여성 정무수석이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을 얻기도 했으나, 현재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첫 정무수석인 [[전병헌]]도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기준으로 밑에 정무비서관, 자치발전비서관을 두고 있다.[* 2019년 9월 기준. 직위가 자주 변경될 수 있으니 [[https://www1.president.go.kr/about/organization|청와대 홈페이지의 조직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정무수석은 비서실장 산하 [[수석비서관]] 중 최선임으로 비서실장이 자리를 비우면 비서실장의 직무를 대행하였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의 신설 이후 최선임 수석비서관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2023년 11월 30일, 국정기획수석직이 폐지되고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부활시키면서 최선임 수석비서관 자리를 되찾았다. 여담으로 국회와 지방자치단체에도 정무수석직이 있다. 역할은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그것과 비슷하다. == 역대 정무수석 == === [[박정희|박정희 정부]] === * 정무수석비서관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조시형]] (趙始衡) || 1968년 3월 21일 ~ 1969년 2월 17일 || || 임시 || [[김학렬]] (金鶴烈) || 1969년 3월 11일 ~ 1969년 4월 12일 || || 2대 || 김상복 (金相福) || 1969년 4월 12일 ~ 1971년 7월 9일 || || 3대 || [[홍성철]] (洪性澈) || 1971년 7월 9일 ~ 1973년 12월 3일 || * 정무제1수석비서관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류혁인]] (柳赫仁) || 1973년 12월 8일 ~ 1979년 12월 18일 || * 정무제2수석비서관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정상천]] (鄭相千) || 1973년 12월 8일 ~ 1978년 12월 22일 || || 2대 || [[고건]] (高建) || 1979년 1월 10일 ~ 1979년 12월 18일 || === [[전두환 정부]] === * 정무제1수석비서관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우병규]] (禹炳奎) || 1980년 9월 3일 ~ 1981년 12월 22일 || || 2대 || [[허화평]] (許和平) || 1981년 12월 24일 ~ 1982년 12월 20일 || || 3대|| [[정순덕]] (鄭順德) || 1982년 12월 20일 ~ 1984년 10월 19일 || || 4대 || [[허문도]] (許文道) || 1984년 10월 20일 ~ 1986년 8월 27일 || || 5대 || [[김윤환(1932)|김윤환]] (金潤煥) || 1986년 8월 29일 ~ 1987년 7월 20일 || || 6대 || [[이진우(1934)|이진우]] (李珍雨) || 1987년 7월 20일 ~ 1988년 2월 24일 || * 정무제2수석비서관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김창식(1929)|김창식]] (金昶植) || 1980년 9월 3일 ~ 1982년 1월 5일 || || 2대 || [[김태호(1935)|김태호]] (金泰鎬) || 1982년 1월 7일 ~ 1983년 10월 14일 || || 3대 || [[안응모]] (安應模) || 1983년 10월 14일 ~ 1984년 3월 28일 || || 4대 || [[유흥수]](柳興洙) || 1984년 3월 28일 ~ 1984년 10월 19일 || || 5대 || [[김용래]] (金庸來) || 1984년 10월 20일 ~ 1986년 1월 9일 || || 6대 || [[강우혁]] (康祐赫) || 1986년 1월 9일 ~ 1988년 2월 24일 || 국회 소통 업무뿐만 아니라 정무1수석은 외교·군사, 정무2수석 일반행정 업무도 담당해 그 권한을 강화했다. === [[노태우 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최병렬]] (崔秉烈) ||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5일 || || 2대 || [[최창윤]] (崔昌潤) ||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7일 || || 3대 || [[손주환]] (孫柱煥) || 1990년 12월 27일 ~ 1992년 5월 6일 || || 4대 || [[김중권]] (金重權) || 1992년 5월 6일 ~ 1993년 2월 24일 || === [[문민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주돈식]] (朱燉植) || 1993년 2월 25일 ~ 1993년 12월 22일 || || 2대 || [[이원종(1939)|이원종]] (李源宗) || 1993년 12월 22일 ~ 1997년 2월 28일 || || 3대 || [[강인섭]] (姜仁燮) || 1997년 2월 28일 ~ 1997년 7월 11일 || || 4대 || [[조홍래]] (趙洪來) || 1997년 7월 11일 ~ 1998년 2월 24일 || === [[국민의 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문희상]] (文喜相) || 1998년 2월 25일 ~ 1998년 5월 18일 || || 2대 || [[이강래]] (李康來) || 1998년 5월 18일 ~ 1999년 2월 5일 || || 3대 || [[김정길(1945)|김정길]] (金正吉) || 1999년 2월 5일 ~ 1999년 11월 23일 || || 4대 || [[남궁진]] (南宮鎭) || 1999년 11월 23일 ~ 2001년 9월 11일 || || 5대 || [[유선호(정치인)|유선호]] (柳宣浩) || 2001년 9월 11일 ~ 2002년 1월 29일 || || 6대 || [[조순용]] (趙淳容) || 2002년 1월 29일 ~ 2003년 2월 24일 || 당초 김대중 대통령은 "정무수석은 군사정권의 유산이고, 선진국에는 없는 기형적 조직이다"라는 측근 장성민의 주장에 동감해 정무수석을 폐지하려 했으나,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김중권 비서실장의 완곡한 설득으로 존치시켰다고 한다. === [[참여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유인태]] (柳寅泰) || 2003년 2월 25일 ~ 2004년 2월 13일 || 정무수석이라는 자리가 대통령의 복심으로 정당과 청와대의 사이에서 사실상 정당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지적이 일자, 국회의 도움을 요구하는 정무 업무는 각 부서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공석으로 뒀다'''.[* 때마침 유인태 수석도 [[17대 총선]] [[도봉구 을]] 출마로 방향을 굳히면서 문제는 없었다.]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말하기를 노 전 대통령은 비서실 내에 굳이 정무 업무를 따로 둬야 하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국회의 도움 요청은 알아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무수석 출신의 [[박형준]]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맡기도 했던 만큼 정무 업무는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발끈했다.[* 결과적으로는 참여정부가 중반부터는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면서 그 정무업무가 단순한 일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안드로메다 관광 보낸 이후에는 민정수석이 정무수석의 직무를 겸무하는 식으로 이게 부활을 했다.[* 민정수석 중에서 [[전해철]], [[이호철(정치인)|이호철]] 수석이 정무수석을 겸무한 인물이다.] 한나라당과의 협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이명박 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박재완]] (朴宰完) || 2008년 3월 1일 ~ 2008년 6월 20일 || || 2대 || [[맹형규]] (孟亨奎) || 2008년 6월 23일 ~ 2009년 9월 1일 || || 3대 || [[박형준]] (朴亨埈) || 2009년 9월 1일 ~ 2010년 7월 16일 || || 4대 || [[정진석(정치인)|정진석]] (鄭鎭碩) || 2010년 7월 16일 ~ 2011년 6월 10일 || || 5대 || [[김효재]] (金孝在) || 2011년 6월 10일 ~ 2012년 2월 10일 || || 6대 || [[이달곤]] (李達坤) || 2012년 2월 15일 ~ 2013년 2월 24일 || 초대 정무수석인 박재완부터 마지막 정무수석인 [[이달곤]]까지 모두 전현직 국회의원[* 박재완: 17대 의원, 맹형규: 15~17대 의원, 박형준: 17대 의원, 정진석: 16~18대 의원, 김효재: 18대 의원, 이달곤: 18대 의원]들이 임명된 것이 특징이다. 정무수석이 주로 여야 간의 관계 조율 등을 맡은 것을 생각하면 나름 취지에 맞는 인선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만 막상 여야관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 [[박근혜 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이정현(정치인)|이정현]] (李貞鉉) || 2013년 3월 25일 ~ 2013년 6월 3일 || || 2대 || [[박준우(정치인)|박준우]] (朴晙雨) || 2013년 8월 5일 ~ 2014년 6월 11일 || || 3대 || [[조윤선]] (趙允旋) || 2014년 6월 12일 ~ 2015년 5월 18일 || || 4대 || [[현기환]] (玄伎煥) || 2015년 7월 10일 ~ 2016년 6월 7일 || || 5대 || [[김재원(정치인)|김재원]] (金在原) || 2016년 6월 8일 ~ 2016년 10월 30일 || || 6대 || [[허원제]] (許元齊) || 2016년 11월 3일 ~ 2017년 4월 3일 || '박근혜 = 불통' 이라는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인식될 정도로 소통 능력이 안 좋은 대통령을 모신 탓인지 국민들에게나 국회에게나 썩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 중에서 이정현 수석[* 다만 이정현은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서 책임을 지고 윤창중의 상급자인 [[이남기(1949)|이남기]] 홍보수석이 사임하면서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임기간도 짧은 편.]의 경우에는 고향 곡성에서 2014년 재보궐선거, 그 옆동네인 순천에서 20대 총선까지 내리 재선을 하고 당대표가 되었으나 탄핵 사태의 책임을 지고 탈당, 정치적 유배 생활을 했고 윤정부 출범 직전인 5년 후에야 복당할 수 있었다.[* 탄핵 사태의 똥물을 제대로 뒤집어썼고 논란도 적지 않았던 것과는 별개로 지역구 관리 능력은 상당히 탁월했던 덕에, 정치 기반인 순천곡성에서는 여전히 지지율이 높아 [[8대 지선]]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순천곡성에서는 높은 득표율을 얻어 총 19% 근접한 득표율로 선거비 전액 보전을 받고 현재는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기했다. 현재로서는 국민의힘 전신 정당 역대 대표들 중에는 단 둘뿐인 현역 정치인 중 1명이다. 나머지 1명은 [[홍준표]] 대구시장.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대표들은 모두 은퇴했거나 정치 생명이 끝났다.] 조윤선, 현기환 전 수석은 재판을 받는 등 말년이 영 좋지 못했다. 김재원 전 수석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 때문에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나마 언론인 출신인 허원제 前 수석은 탄핵 정국 이후에 부임해서 그런지 존재감이 없는 편. === [[문재인 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 초대 || [[전병헌]] (田炳憲) || 2017년 5월 14일 ~ 2017년 11월 16일 || || 2대 || [[한병도]] (韓秉道) || 2017년 11월 28일 ~ 2019년 1월 8일 || || 3대 || [[강기정]] (姜琪正) || 2019년 1월 8일 ~ 2020년 8월 11일 || || 4대 || [[최재성(정치인)|최재성]] (崔宰誠) || 2020년 8월 11일 ~ 2021년 4월 15일 || || 5대 || [[이철희(1964)|이철희]] (李哲熙) || 2021년 4월 16일 ~ 2022년 5월 9일 ||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안 하나 통과 시킬 수 없는 만큼 정무 업무의 중요도 커 3선에 [[원내대표]]까지 역임했던 중량감 있는 [[전병헌]] 전 의원을 임명 했지만, [[롯데홈쇼핑]]에게 e스포츠협회 후원금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사임했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시민당이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정무수석의 역할이 임기 초에 비해 다소 낮아졌었으나 4선의 중진인 최재성 전 의원이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보통 정무수석 자리는 재선이 주로 임명되는 자리 였기 때문.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2021년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를 해서 레임덕 관리도 해야하고 야당과 협치도 필수가 되면서 당-청을 조율하는 정무수석비서관이 중요한 자리로 급부상됐고 정부에서는 친문 색채가 옅은 이철희를 임명하였다. === [[윤석열 정부]] === ||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 초대 || [[이진복]] (李珍福) || [[2022년]] [[5월 10일]] ~ [[2023년]] [[12월 3일]] || 전 국회의원(3선) || || 제2대 || [[한오섭]] (韓吳燮) || [[2023년]] [[12월 4일]] ~ [[현직]] || 전 국정상황실장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신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으로 민선3기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동래구 지역구 국회의원(3선), 국회 정무위원장을 지낸 [[이진복]] 전 의원을 내정했다. 이진복 의원은 [[친무]]계의 핵심 인물로 뽑히며[* [[이진복]]은 [[박관용]] 전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 보좌관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한 인물이다. 박관용이 민주계 출신이었던 만큼 같은 민주계 출신인 김무성의 라인이 된 것은 당연한 부분.], 총리실 및 총리 직속기구를 관할하는 정무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만큼 적임자라는 하마평이 있다. 그와 호흡을 맞출 정무비서관은 [[SBS]] 앵커와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지만]], 자치행정비서관은 [[서승우]] 충청북도 행정부지사가 임명되었다. == 창작물에서의 등장 == *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신성준 * [[wavve]]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드라마)|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엄대협 [[분류:정무수석비서관]]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