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장임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張任 (? ~ 213년)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이자 [[유장(삼국지)|유장]] 휘하의 장수로 익주 촉군(蜀郡) 사람이다. 자(字)는 전해지지 않는다. 정사에서 [[유비]]가 그를 자기편으로 회유하려 했으나 지조가 굳었기에 애석해하며 죽여야 했다. 연의에서는 아예 유장군의 에이스로 격상했다. 유비가 눈독을 들인 걸 보면 활약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숨겨진 인재였을 거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 [[삼국지(정사)|정사 삼국지]] == <선주전>에 주석으로 달린 <익부기구잡기>에 따르면, 장임의 집안은 대대로 한미한 가문이었지만 장임은 어려서 담력과 용기가 있고 지조와 절개를 갖추니, 주의 종사로 복무하게 되었다. <선주전>에 따르면 [[유장(삼국지)|유장]]은 [[유괴(삼국지)|유괴]], [[냉포]], 장임, [[등현#s-1]] 등을 보내 부(涪)에서 유비를 막게 했으나 모두 격파되었고 물러나 면죽현에 의지했다. <선주전>에 주석으로 달린 <익부기구잡기>에 따르면 유장이 장임, 유괴를 보내 정병을 이끌고 부(涪)에서 유비를 막게 했는데, 유비에게 격파되자 물러나 유장의 아들 [[유순(삼국지)|유순]]과 함께 낙성을 지켰다. 장임이 군사를 이끌고 안교로 출전해 싸웠으나 다시 패하고 사로잡히게 되었다. 유비는 장임이 충성스럽고 용맹하다는 것을 듣고 군사들에게 명해 그를 투항하게 했다. 장임이 성내며 외쳤다. >노신(老臣)은 끝내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노장이었다는 근거가 전무한 [[엄안]]과 달리, 장임은 유장 세력에서의 노장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에 그를 죽였는데 [[유비]]가 탄식하며 애석해했다. == [[삼국지연의|연의]] == 별 활약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정사와 달리,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장 세력의 에이스이자 명장으로 묘사된다.[* 어느 정도냐면 장임을 잡아야만 낙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 제갈량의 언급이 있을 정도다. 주요 세력 외의 인물이 이 정도로 버프를 받은 것은 거의 없다.] [[유비]]와 맞섰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연의/수혜자|삼국지연의의 수혜자]]가 된 희귀한 케이스. [[유비]]가 서천으로 침공해 오자 유비군의 공격에도 오랫동안 낙성을 지켜냈다. 낙봉파에 유비를 죽이기 위해 매복했지만 대신 [[방통]]을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렸고, 이후 낙성을 포위하다 지친 유비까지 죽이려고 했으나 때마침 엄안을 항복시키고 구원하러 온 [[장비]]와의 1 대 1 대결에서 승부를 내지 못하고 물러난다. 어쨌든 방통 대신 대책을 세우기 위해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고 파촉에 온 [[제갈량]]의 계략에 빠지고 만다. 제갈량이 일부러 부실한 군사를 데려가서 '네가 이 제갈량을 아냐 모르냐' 운운하며 허세를 부리는 척하자 공격하러 성을 나섰고, 그 순간 매복했던 [[조운]]이 낙성으로 가는 다리인 금안교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산으로 도망치지만 역시 매복했던 장비를 만나 사로잡힌다. 같이 행동했던 [[탁응]]이나 같은 에이스였던 엄안 등이 이미 항복했지만, 유비의 거듭된 권유를 뿌리치고 정사와 비슷하게 "충신은 죽더라도 두 주인은 섬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유비는 그를 기리기 위해 충혼비를 세웠다고 한다. 단, 자치통감에 따르면 정사에서는 '''[[방통]]보다 장임이 먼저 죽었다.''' '낙봉파' 자체가 연의의 창작이므로 방통을 죽인 적도 없고, 장비가 촉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유비에게 처형되었다. 제갈량, [[장비]], [[조운]]은 낙성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고 유비가 자력으로 낙성을 함락시키고 성도를 포위할 무렵에나 유비군과 합류했다. 그러므로 장비와 벌인 단기전 역시 거짓이다. == 미디어 믹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장임/기타 창작물)] [각주]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무관]][[분류:213년 사망]][[분류:청두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인물]][[분류:전쟁 사망자]]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