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임방울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2> '''{{{#ffc700 {{{+1 임방울}}}[br]林芳蔚}}}''' || || '''{{{#ffc700 본명}}}''' ||임승근(林承根) || || '''{{{#ffc700 출생}}}''' ||[[1904년]] [[4월 20일]][br] [[전라남도]] [[광주군]]|| || '''{{{#ffc700 사망}}}''' ||[[1961년]] [[5월 10일]][br] [[서울특별시]] (향년 57세) || || '''{{{#ffc700 가족}}}''' ||고모부 [[김창환(소리꾼)|김창환]], 5촌 조카 김오채|| [목차] [clearfix] == 개요 ==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국악인. 소리꾼 [[김창환(소리꾼)|김창환]]이 그의 고모부이다. == 상세 == 1904년 전라남도 광주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박재현에게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고 유성준에게 수궁가, 적벽가, 심청가를 익혔다. 25세 때, 조선박람회에 전라남도 응원대로 상경했다. 이 때 매일신보사 내청각에서 조선명창 연주회가 개최되었고, 임방울은 고모부인 판소리 명창 [[김창환(소리꾼)|김창환]]의 주선으로 대회에 참가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 해에 바로 경성방송국 라디오방송에 출연하고, 유성기 음반을 취입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당시 일본에서 취입한 ‘쑥대머리’ 음반은 한국·일본·중국 등에서 120만 장이나 팔리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당시는 현대가 아닌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자. 이 것은 말도 안되는 기록이다.] 52세에 적벽가, 53세에 수궁가를 완창했으며 국악인 김연수와는 라이벌이었다. 1961년 김제장터에서 공연 후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해 5월 10일에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분류:국악인]][[분류:1904년 출생]][[분류:1961년 사망]][[분류:광산구 출신 인물]][[분류:나주 임씨]]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