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이용규/선수 경력/국가대표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이용규/선수 경력)] [목차] [clearfix] == 개요 == [[이용규]]의 국가대표 경력을 담은 문서. == 참가 대회 ==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야구|2006 도하 아시안 게임]] === 이용규의 커리어 첫 국제대회 참가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06 WBC]] 4강 신화에 힘업어 국민들의 높은 기대를 받고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재박]] 신임감독은 정예선수들이 아닌 어린 [[군미필자]] 선수들을 중심으로 엔트리를 꾸렸고, 이것이 독이되어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아시안게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은 프로선수들이 아니다.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회인 야구 선수들은 [[NPB]]의 2군 외국인선수 무제한 보유규정 때문에 사회인 야구에다 갖다 놓는 경우가 많다. 당장 우리나라도 프로리그 출범 전에는 실업야구 출신으로 금메달을 가져온 사례가 있었다.]에 굴욕패를 당하게 되었다. 결국 대표팀은 [[동메달]]이라는 처참한 최종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이용규 역시 백업 외야수로서 별다른 활약없이 팀의 몰락을 지켜봐야만 했다. ===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2008 베이징 올림픽]] === 2008년 3월에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에서 이용규는 주전 외야수이자 1번타자로서 당당히 활약했다.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용규는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서 역시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이용규는 31타석 동안 0.481/0.581/0.556의 환상적인 슬래쉬 라인과 4타점, 8득점 알찬 영양가를 보여주며 팀의 전승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전 마지막 플라이 타구를 잡고 엎드려 기도하는 세레모니는 지금도 회자된다.[* 다만 당시 마무리 투수였던 기아 타이거즈 동료 윤석민은 그 세레모니 때문에 자신의 세레모니가 완전히 묻혔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이 대회의 맹활약을 통해 이용규란 이름 석자가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확실히 각인되게 되었고 이후 이용규는 전국구 스타이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 [[2009 WBC]] === [[2009 WBC]]는 이용규의 통산 3번째 국제대회 참가이자, 첫 번째 메이저 국제대회 참가였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은 아마추어대회이다. 하지만 WBC는 메이저리거들이 총출동하는 유일한 메이저 국제대회이다.]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 에서 1.137의 엄청난 OPS를 기록한 이용규였지만 이번 대회는 내내 타격 슬럼프를 겪었다. 이용규는 대표팀이 치른 9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0.222/0.348/0.222 의 타격성적을 기록하면서 베이징올림픽 때에 비해서는 다소 공격력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계속해서 출루해주었으며. 본인의 장기인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외야수비와 주루능력을 통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역대 최고성적인 준우승에 기여했다. 한편 대회 동안 일본에게 유독 견제를 많이 받았던 타자 중 한 명 이었다. 3월 20일 본선 1조 순위 결정전 때 일본과 네 번째로 맞붙던 중 3회에 [[우츠미 테츠야]]에게 초구에 뒤통수 쪽으로 사구를 맞으면서 빈볼 시비 여부도 생겼으나, 이후 우츠미가 직접 한국말로 [[https://www.nocutnews.co.kr/news/566960|사과]]를 해왔다고 한다. 또한 3월 24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결승|결승]]에서도 6회에 도루를 시도하다가 일본 수비수의 다소 위험한 포구 위치선정으로 인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도중 헬멧이 깨지는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귀국 후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26/2009032600251.html|사진]]을 보면 눈가 옆에 상처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 지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이어 커리어 2번째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게되었다. 이 대회에서 역시 이용규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외야수로서 활약하며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상대팀 마운드를 맹폭했다. 결국 [[조범현호]] 역시 5전 전승으로 금메달 탈환에 성공하면서 4년전 이 대회에서 당한 굴욕을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 [[2013 WBC]] === 대표팀 붙박이 외야수답게 이번 [[2013 WBC]]에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이용규의 개인 통산 두 번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출전이다. 이번 대회 [[류중일호]]는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에게 발목이 잡혀서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사상 첫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1라운드 탈락이다. 팀으로서는 아쉬운 성과인 것이 분명하나 이용규 개인으로서는 전혀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용규는 대표팀이 치른 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0.250/0.538/0.250, 2타점, 1득점을 기록하였다. 특히 5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팀의 테이블세터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평가받았다. === [[2015 프리미어 12]] === 아마추어 대회를 표방했던 [[야구 월드컵]][*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 KBO 2군 + 군복무 + 대학선수들을 중심으로 출전했었다.]이 폐지되고 WBSC는 새로운 프로 국제대회인 [[프리미어 12]]를 2015년 개최했다. 이용규는 [[2015 WBSC 프리미어 12]] 역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테이블세터이자 중견수로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이용규는 7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주전 외야수로서 활약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총 31타석에 들어섰지만 0.214/0.333/0.250의 성적을 기록하며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보여줬다. 장기인 도루 역시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팀이 [[김현수(1988)|김현수]][* 초대 대회 [[MVP]]], [[정근우]], [[김재호]], [[김광현]]. [[장원준]] 등 팀 동료들의 맹활약에 힘업어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이용규 역시 [[프리미어 12]] 우승반지를 얻게 되었다. === [[2017 WBC]] === [[2017 WBC]]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하며, 통산 세 번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번 대회 역시 주전 외야수로서 팀이 치른 3경기에 모두 선발출전했지만 팀의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을 막지 못했다.[* 1승 2패] 하지만 이용규 개인으로서는 이용규는 총 15타석에 들어서 0.273/0.467/0.273을 기록하며 테이블세터로서 분전한 대회였다. 이 대회 이후 이용규는 대표팀의 세대교체 단행과 개인적 노쇠화, [[한화 이글스]]에 대한 트레이드 요청 파문까지 겹치며 대표팀과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참가한 국제대회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각주] [[분류:이용규/선수 경력]]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