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이무중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 표창) 추서. == 생애 == [[1925년]] [[2월 26일]] [[평안남도]] [[평양시|평양]] 출생. [[한국광복군]] 제1지대 입대, 제2구대에서 활동하였다. [[1944년]] [[4월]] [[일본제국군|일본군]]이 정주, 낙양 등지를 침공하자 구대장 김준 휘하에서 참전하여 대적 선전활동, 포로심문, 적정수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동년 [[8월]]에는 중국군 제5전구 소속 전시간부훈련반 제2기에 입교해 3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해방 후 [[육군사관학교]] 2기생으로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관했으며, [[6.25 전쟁]] 발발 당시 [[제1보병사단|1사단]] 12연대 3대대장으로 청단-배천 방면을 방어하며 [[북한인민군|북한군]]의 남침을 지연시키고 문산, 인천으로 후퇴하였다. [[인천상륙작전]] 후 [[10월 1일]] 11연대 2대대장으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하며 [[조치원읍|조치원]]에서 [[괴산군|괴산]]으로 진격하던 도중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 당시 직속상관인 11연대장 김동빈에 따르면 인천상륙작전 후 빠르게 진격하느라 패잔병들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고 이들이 후방 게릴라로 활동했는데 이무중 역시 이들에게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290510#home|#]] == 참고자료 == 독립유공자 공훈록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 제6권: 독립군 전투사(하), 355쪽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부 중앙일보, 민족의 증언, [[https://www.joongang.co.kr/article/1290510#home|낙동강아 잘있거라(5)]], 1971년 5월 10일자. 동아일보, 정일권 회고록,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5071800209205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7-18&officeId=00020&pageNo=5&printNo=19628&publishType=00020|북진 당시 각 사단 지휘관]], 1985년 7월 18일자.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광복군/군인]] [[분류:육군사관학교 출신/전신 학교]]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6.25 전쟁/군인]] [[분류:1925년 출생]] [[분류:1950년 사망]] [[분류:건국훈장 애족장]]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