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이근행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다른 뜻1, other1=MBC 출신 PD(연출가)(언론인) 1966년 10월 24일생, rd1=이근행(언론인))] [include(틀:신당서)] [목차] 李謹行 (? ~ 682년) == 개요 == [[당(통일왕조)|당]] 초기의 장수. 말갈계 고구려인 2세로, [[고구려-당 전쟁]], 고구려 [[부흥운동]] 진압, [[나당전쟁]]에서 당군의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 생애 == 아버지 돌지계(突地稽)는 속말말갈족의 수령이었는데 이들을 준동하다가 [[수나라]]로 망명하였고 수당교체기에 무공을 세워 [[태종(당)]]에게 [[국성]] 이씨를 [[사성]]받았다. 무력이 출중하여 요서 일대에서 여러 이민족들의 경외를 받았다고 한다. [[고구려]]에서 내분이 발생해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고 고구려를 쳐 달라고 요청, 제3차 고구려-당 전쟁이 발발했고 이 때 이근행은 좌감문장군으로 참전했다. [[토번]]의 [[가르친링]]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침공했는데 태연하게 성문을 열고 공성계를 구사하여 물리친다. 이후 당나라의 야욕과 의견대립 끝에 [[신라]]와의 [[나당전쟁]]이 발발하자,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황해 바다를 건너는 수군을 [[설인귀]]가 지휘하고 이근행과 [[고간(당나라)]]은 요동 [[평양성]]을 통해 육상으로 신라를 침공한다. 670년부터 673년까지 지금의 [[황해도]] 일대에서 웅거하며 신라를 지원하던 고구려 부흥군을 상대로 호로하 전투 등에서 이기며 승승장구하고, 675년에는 대대적으로 임진강선 건너 신라를 공격했지만 [[매소성 전투]]에서 패배해 큰 피해를 입고[* 당의 기록에는 이근행이 매소성에서 오히려 신라군을 격파한 것으로 나온다. 철군한 이유도 전투에서 패한게 아니라 문무왕이 사죄한 것을 받아들인것으로 나온다.] 나당전쟁을 종결짓게 된다. 매소성 전투 패배 후 이근행은 당나라 서부 [[토번]]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여기서는 상당한 공을 세워 진군대장군(鎭軍大將軍)과 행우위대장군(行右衛大將軍)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졌다. 죽은 뒤에는 공을 인정받아 [[당고종]]의 곁에 묻혔다. == 가족관계 == 할아버지 이눌은 요동 일대의 수령을 지냈다. 같은 고구려계 무장인 이다조와도 묘하게 비슷한 점이 있다. 이근행의 아내 유씨(劉氏)가 있었는데, 삼국지의 [[왕이]]와 같은 역사에 몇 안 되는 실존한 [[여장부]]였던 듯 하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이근행이 [[나당전쟁]] 도중 고구려 부흥군과 싸우러 나가있을 때 유씨는 벌노성(伐奴城)에 있었는데, 고구려부흥군과 고구려를 따르는 말갈족 부대가 벌노성을 공격했다. 유씨는 직접 갑옷을 두르고 무리를 지휘해 오랫동안 수성전을 펼쳤고 결국 부흥군이 물러났다고 한다.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682년 사망]]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