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이경영(고려) (r2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선원선계)]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ffd400 '''조선 시조고의 9세손'''[br]{{{+1 '''이경영 | 李景英'''}}}}}}}}} || ||<-2><:><#bf1400> {{{#gold '''관직'''}}} ||<(> {{{#000000,#fff 생원(生員), 호장}}} || ||<-2><:><#bf1400> {{{#gold '''본관'''}}} ||<(> {{{#000000,#fff [[전주 이씨]]}}} || ||<-2><:><#bf1400> {{{#gold '''휘'''}}} ||<(> {{{#000000,#fff 경영(景英)}}} || ||<-2><:><#bf1400> {{{#gold '''부친'''}}} ||<(> {{{#000000,#fff [[이충경]]}}} || ||<-2><:><#bf1400> {{{#gold '''모친'''}}} ||<(> {{{#000000,#fff 윤씨(尹氏)}}} || ||<-2><:><#bf1400> {{{#gold '''부인'''}}} ||<(> {{{#000000,#fff 윤씨(尹氏)[* 유수(留守) 윤필인(尹必仁)의 딸이다.]}}} || ||<-2><:><#bf1400> {{{#gold '''자녀'''}}} ||<(> {{{#000000,#fff [[이충민(고려)]] 등 3남}}} || ||<-2><:><#bf1400> {{{#gold '''13대손'''}}} ||<(> {{{#000000,#fff [[태조(조선)|태조]]}}} || ||<-2><:><#bf1400> {{{#gold '''생몰년도'''}}} ||<(> {{{#000000,#fff 미상}}}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의 [[국성]]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신라)|이한]]의 9대손. == 상세 == [[이충경]]의 아들로 벼슬은 생원 호장이었다.배위는 유수(留守) 윤필인(尹必仁)의 딸이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이사십(李四十), 차남은 이삼십(李三十), 3남은 [[이충민(고려)|이충민]]이다. `유수'는 수도 이외의 인근 도시 또는 행궁(行宮)에 두던 특수한 지방장관이다. 고려 ·조선조에 걸쳐 두었는데 중앙 관서의 직속 기관이었다. <완산실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경영이 7세에 부모가 함께 돌아가시니 증조모 정씨(鄭氏)가 등에 업고 구걸하면서 키 워 16세가 되어 유수 윤필인의 딸에게 장가가셨다. 윤씨 부인은 증조모 정씨를 섬길 때, 증 조모 정씨가 나이가 많고 치아마저 없자 윤씨는 자신의 젖을 짜서 지성으로 효도하여 천수 를 마치게 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효성스런 손부라고 칭찬했다.' <동국세기>와 <충효전>에도 똑같은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러하다. 경 영공의 이름이 `직(直)' 또는 `진(進)'으로 표기되고, 증조모가 오씨로, 강남의 큰 장사꾼 최 원(崔元 : 崔遠)에게 발탁되어 16세에 요명궁(寥明宮 : 瑤明宮) 거사(居士) 홍무(洪武 : <충 효전>에는 洪務日)의 사위가 되었다. 부인 홍씨의 효행이 특이하여 97세 된 증조모 오씨가 치아가 없음을 알고 자신의 젖으로 봉양하여 101세까지 사시게 하고 돌아가시자 3년상을 치 르는데 죽만 먹고 그 애통함이 예도를 넘었었다는 점이다. [각주] [[분류:고려의 인물]][[분류:몰년 미상]][[분류:전주 이씨]] [include(틀:포크됨2, title=이경영(고려), d=2022-12-15 19:24:32)]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