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유성원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조선의 문관]][[분류:1456년 사망]][[분류:조선의 자살한 인물]][[분류:문화 류씨]][[분류:사육신]][[분류:날붙이에 죽은 인물]] [include(틀:사육신)] [목차] == 개요 == 유성원(柳誠源, ?~1456)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문화, 자는 태초, 시호는 절의이다. == 생애 == 1444년에 [[과거시험|과거]]에 급제하였고, [[세종(조선)|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 학사로 근무하였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조선)|문종]]이 제위 2년 만에 승하하고, 그의 아들 [[단종(조선)|단종]]이 즉위하였지만, 1453년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수양대군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자신의 훈공을 찬양하는 교서(敎書)를 쓰라고 지시하였는데, 다른 학사들은 모두 도망가고 유성원 혼자 잡혀서 [[협박]]을 당한 끝에 교서를 쓴 후, 집에 돌아와 통곡하였다고 한다. 1456년 직집현전(直集賢殿)으로 근무하던 중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였다. 그러나 성균관사예 [[김질]]의 밀고로 이들의 계획이 [[세조(조선)|세조]]의 귀에 들어갔고, 진노한 세조는 당장 역적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성삼문, 박팽년 등이 차례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할 때, 유성원은 [[성균관]] 유생들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이별의 술잔을 나누고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다른 사육신들이 [[거열형]]을 당할 때 그의 시신도 거열형으로 [[부관참시]]를 당했고, 아내와 딸은 [[한명회]]의 [[노비]]가 되었다. 그뒤 1691년 [[숙종(조선)|숙종]]에 의해 복권되었으며, [[영조]] 때 [[이조판서]]로 추승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진승총(기타 사서 포함))]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