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위자(삼국지) (r2 버전으로 되돌리기) 衛玆 ?~190 [목차] [clearfix]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자허(子許)로 [[위진(삼국지)|위진]]의 아버지. 연주 진류군 양읍현 사람. == [[삼국지(정사)|정사]] == 같은 고을의 권문생(圈文生)과 함께 덕이 있다고 칭송받았으며, [[곽태#s-1]]가 두 사람과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위자는 값을 그대로 치르고 샀지만 권문생은 흠집이 있는 것이라고 고함쳐 반드시 값을 깎았다. 곽태가 위자에 대해서 욕심이 적고 권문생은 욕심이 많아 이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라면 몰라도 형제지간은 될 수 없다고 평했는데, 나중에 권문생은 부정한 재물로 덕망을 잃었지만 이 일로 위자의 덕은 더욱 알려지면서 장렬한 절개로 명예를 이뤘다. 진류에서 효렴으로 천거되었으며, 위선을 장려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세속의 명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사려는 명료하면서도 심연하고 계략은 광대하고 무한했으며, 거기장군 [[하묘]]와 사도 [[양표]]가 초빙했지만 모두 거부했다. [[조조]]가 처음 진류군에 이르자 위자가 천하를 평정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이라고 했으며, 조조와 여러 차례 대사를 논의했다. 조조에게 오랫동안 혼란이 계속되어 오로지 군사력만이 이것을 평정할 수 있다면서 군사를 일으켜 흥하는 자가 지금부터 나올 것이라고 했으며, 위자가 3천명의 군사를 모으자 또한 조조에게 가산을 대주었고 이에 그 무리가 5천명이 되어 조조는 [[장막]]과 함께 [[동탁]]을 토벌하는 군사를 일으켰다. 190년에 장막의 부장으로 참전하면서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진군해 성고를 차지하려고 했는데, 장막이 위자를 조조에게 파견해 뒤따르게 했다. 형양군의 변수에 도착해 [[서영(삼국지)|서영]]과 만나 싸웠지만 불리해 죽거나 다친 장졸들이 많았는데, 이 때 위자는 [[포도(삼국지)|포도]]와 함께 전사했다. 조조는 진류 경내를 지날 때마다 반드시 사자를 보내 그를 제사 지냈다. [[세설신어]]에서도 곽태, 권문생과 함께 물건을 산 일화가 실려있다. == 미디어 믹스 ==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 [[파일:위자.jpg|width=400]] || || [[삼국지 14]] ||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일러스트는 100만인의 삼국지의 [[황권]]을 재활용했으며 능력치는 통솔 58, 무력 38, 지력 62, 정치 73, 매력 71이며 개성은 명성, 모집, 부호, 절감, 주의는 예교, 정책은 세출개선 Lv 3, 진형은 학익, 전법은 고무, 치료, 친애무장은 [[조조]], 혐오무장은 없다. ===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 [[파일:전략위자.png]] 여기서도 위홍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조조에게 흔쾌히 군자금을 건넨다. 조조는 만약 그가 거절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처치할 생각이었다. === [[영웅조조]] === 조조에게 군사를 일으킬 수 있도록 금을 지원하고 조조가 포신과 함께 서영을 공격하러 나갈 때 나서는데, 조조가 장막과 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자 내 돈 들여 모집한 병사를 가지고 자신을 떼놓고 가냐고 농담을 던진다. 이후 변수에서 포신의 군대를 지원하러 갔다가 포충과 함께 전사했다고 언급된다. === [[비열한 성자 조조]] === 동탁을 치기 위한 의병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조조에게 재물을 털어 군사를 모집하는 것을 지원하면서 양읍에 예주에서 온 유민이 많다면서 진류 대신 양읍으로 군영을 옮겨 그 곳에서 군사를 모집하는 것을 건의해 조조가 3천 명의 장정을 모았다. [각주] [[분류:후한의 인물]][[분류:190년 사망]][[분류:전쟁 사망자]]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