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우문사급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2> {{{#ece5b6 '''{{{+1 당나라의 대신[br]영종공(郢縱公)[br]{{{+1 宇文士及 | 우문사급}}}}}}'''}}} || || '''{{{#fff 작호}}}''' ||<(> 신성현공^^(新城縣公)^^ → 영국공^^(郢國公)^^ || || '''{{{#fff 시호}}}''' ||<(> 공(恭) → 종(縱) || || '''{{{#fff 성}}}''' ||<(> 우문(宇文) || || '''{{{#fff 이름}}}''' ||<(> 사급(士及) || || '''{{{#fff 자}}}''' ||<(> 인인(仁人) || || '''{{{#fff 부친}}}''' ||<(> [[우문술]](宇文述) || || '''{{{#fff 추증}}}''' ||<(>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양주 도독^^(凉州都督)^^ || || '''{{{#fff 출생}}}''' ||<(> ? ~ 642년 || || '''{{{#fff 국적}}}''' ||<(> 수(隋) → 당(唐) || || '''{{{#fff 주군}}}''' ||<(> [[양제(수)|수양제]][br][[양호(수)|진왕]][br][[고조(당)|당고조]][br][[태종(당)|당태종]] || ||<^|1><-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역임한 관직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 .93em;" || '''{{{#fecd21 수}}}''' ||<(> 상연봉어^^(尙輦奉御)^^→홍려소경^^(鴻臚少卿)^^ → 내사령^^(內史令)^^ || || '''{{{#ece5b6 당}}}''' ||<(> 상의동^^(上儀同)^^ →진왕부 표기장군^^(秦王府驃騎將軍)^^ [br]→ 중서시랑^^(中書侍郞)^^ → 검교시중^^(檢校侍中)^^ 겸 천책부사마^^(天策府司馬)^^ → 태자첨사(太子詹事) [br] → 중서령^^(中書令)^^ → 검교양주도독^^(檢校凉州都督)^^ [br] → 전중감^^(殿中監)^^ → 포주자사^^(蒲州刺史)^^ [br] →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 → 전중감^^(殿中監)^^ 겸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 || [목차] [clearfix] == 개요 == [[수나라]]의 인물. 자는 인인(仁人). [[우문술]]의 셋째 아들. == 생애 == 수 양제의 딸 남양 공주와 혼인했다. 612년에 수나라에서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했지만 크게 패했는데, [[수양제]]는 우문술이 [[사돈|우문사급의 아버지이면서]]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라 처형하지 않았다. 항상 공주를 모시고 살아서 두 명의 형 중에서 [[우문지급]]은 가볍게 여겼지만 [[우문화급]]은 가까이 했다. 618년에 우문화급이 반란을 일으켜 수양제를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자 내사령이 되었으며, 사마덕감이 우문화급을 죽이려 하자 우문화급이 이를 사전에 알아냈다. 물론 남양공주에게는 아버지의 원수라면서 이혼당했다. 우문화급이 겉으로 사냥하는 척 속이기 위해 우문사급이 사마덕감에게 파견되었고 우문화급이 사마덕감을 살해했다. 우문화급이 황제를 자칭하자 촉왕이 되었다가 우문화급이 목숨을 잃자 [[당나라]]에 항복했으며, 상연봉어를 지냈다. 620년부터 621년까지 송금강, [[왕세충]], [[두건덕]]을 공격할 때 [[이세민]]의 휘하에서 종군했다. 두건덕 휘하에 있던 전처인 남양 공주를 설득해 항복시키려 했지만 우문씨가 아버지 수 양제를 죽인 일로 원수가 되었다고 해서 실패했으며, 624년에는 중서 시랑을 지냈다. 625년에는 천책 상장부 사마에서 권검교시중에 임명되었으며, 626년에는 태자 첨사, 중서령을 지냈다. 627년에는 파직되어 전중감이 되었고 642년에 영국공의 작위를 지내고 있다가 사망했다. 수 양제의 사위이며, 우문씨란 성을 갖고 형들이 반란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에도 줄타기를 잘해 끝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생존왕]]이다. 우문사급은 사후 공(恭)으로 추시되었지만, 황문시랑 유계가 우문사급이 자택에서는 사치스럽고 방종하니 마땅히 공(恭)으로 추시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하여, 시호가 종(縱)이 되었다. == 대중매체에서 == *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에서는 태자 시절의 수양제가 [[우문술]]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양제(수)|수양제]]의 딸과 결혼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제25회에서 등장하여 [[양현감]]과 인사를 나누고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642년 사망]]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