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에두아르도 다실바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크로아티아 前 축구선수'''}}}}}}}}}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duardo_CRO.jpg|width=100%]]}}} || ||<-2> '''이름''' || '''{{{+1 에두아르도 다실바}}}[br]Eduardo da Silva''' || ||<-2> '''본명''' ||에두아르도 알베스 다실바[* 브라질 출신인 점을 감안해 포어 표기법을 적용할 경우 '에두아르두 아우베스 다시우바'가 된다.][br]Eduardo Alves da Silva || ||<-2><|2> '''출생''' ||[[1983년]] [[2월 25일]] ([age(1983-02-25)]세)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2>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크로아티아)] || ||<-2> '''신체''' ||[[키(신체)|키]] 178cm|| ||<-2> '''포지션''' ||[[스트라이커]], [[윙어]] || ||<-2> '''주발''' ||왼발 || || '''소속''' || '''선수''' ||'''[[디나모 자그레브]] (2001~2007)'''[br]{{{-1 → 크로아티아 세스베트 (2001 / ^^임대^^)}}}[br]{{{-1 → 인테르 자프레시치 (2003 / ^^임대^^)}}}[br]'''[[아스날 FC]] (2007~2010)'''[br] '''[[샤흐타르 도네츠크]] (2010~2014)'''[br][[플라멩구]] (2014~2015) [br] [[샤흐타르 도네츠크]] (2015~2016)[br][[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2017~2018)[br][[레기아 바르샤바]] (2018) || ||<-2> '''국가대표''' ||62경기 29골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 / 2004~2014)^^ || ||<-2> '''링크''' ||[[http://www.instagram.com/_eduardofficial/|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0]]]] [[http://www.facebook.com/eduardo23fla/|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0]]]] || ||<-3> '''정보 더 보기'''[br]{{{#!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애칭''' ||두두(Dudu), 크라질리언(Crazilian) ||}}}}}}}}} || [목차] [clearfix] == 개요 == [[브라질]] 태생의 [[크로아티아]]로 '''[[귀화]]'''한 [[축구]] 선수로, 일명 '''[[두두]]'''(Dudu)라고 한다.[*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두두를 크로아티아와 브라질리언의 합성어인 '''크라질리언'''(Crazilian)으로 부르는 팬들도 있다.] 브라질 선수답게 괜찮은 테크닉을 보유했으며, 유럽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며 몸싸움에 잘 단련되어 있다. 여기에 골 결정력이 높으며, 매우 빠른 스피드를 가졌다. 게다가 투쟁심이 강하고 직선적이며, 팀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장점이 있다. == 클럽 경력 ==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이며, 방구 AC에서 유스 시절을 지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해 1999년 [[크로아티아]]로 건너와 [[디나모 자그레브]] 유스에 소속된 이래로 2001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2002/03 시즌 2부 리그에 소속된 인테르 자프레시치에 1시즌동안 임대되었다. 임대 기간 동안 15경기에서 10골을 넣는 좋은 활약을 펼쳐 시즌 종료 이후 디나모 자그레브로 복귀한 뒤 [[니코 크란차르]] 등과 함께 팀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2003/04 시즌 팀의 컵대회 우승에 일조했다. 이후 2005/06 시즌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한 뒤 2006/07 시즌에 '''32경기 34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리그 2연패에 큰 공헌을 했으며,[* 참고로 34골은 크로아티아 리그 창설 이래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이며, 이전까지는 고란 블라오비치가 1993/94 시즌에 기록한 29골이었다.] 본인도 두 시즌 연속으로 '리그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참고로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라이벌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만났는데, 에두아르도는 [[해트트릭]]을 기록해 '영원한 더비'에서 유일하게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2006/07 시즌 [[아스날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당시에는 2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했으나 팀은 1, 2차전 합계 1:5를 기록하며 [[UEFA 컵]]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참고로 당시 에두아르도가 기록한 골은 2006년 개장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가진 유럽 대항전에서 나온 첫 골이다.] [[AJ 옥세르]]와의 UEFA 컵 1라운드에서는 총 2골을 넣었으나 팀이 1, 2차전 합계 2:5를 기록해 탈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스날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덕분인지 2007/08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 [[티에리 앙리]]의 대체자로 선택되어 75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아스날로 이적했으며,[* 당시 디나모 자그레브 구단주가 에두아르도를 1600만 유로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앙리에 비유한 것이 오역되어 한 때 에두아르도의 이적료가 1600만 유로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명 '저주받은 등번호'로 불리는 9번을 달게 되었다.[* [[니콜라 아넬카]]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등번호 9번을 달았던 [[다보르 수케르]], 프랜시스 제퍼스,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줄리우 밥티스타]] 모두 아스날에서 성공을 맛보지 못 했다.] 입단 이후 한동안 부상에 시달리다 8월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얼마 뒤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데뷔골을 넣어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다. 이후 [[세비야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이적 이후 2번째 득점에 성공해 팀의 3:0 승리를 견인했으며, 블랙번 로버스와의 [[풋볼 리그 컵]] 8강전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데뷔골을 터뜨리지 못했는데, 박싱 데이 기간에 있었던 [[에버튼 FC]]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포함해 2골을 넣으며 팀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및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해 팀의 1위 수성에 일조했으며, [[번리 FC]]와의 [[FA컵(잉글랜드)|FA컵]]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로빈 반 페르시]]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와의 주전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alls.co.uk/1-Hacker.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metrouk2.files.wordpress.com/eduardoinjuredai_450x300.jpg|width=100%]]}}} || 하지만 2008년 2월 23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3분만에[[마틴 테일러]]의 태클이 문제였다. --두번째 사진 테일러의 표정을 자세히 보라...[[인면수심|웃고 있다...]]-- --사이코인가-- 테일러의 태클은 발목도 아니고, 디딤발인 왼쪽 다리 정강이 부위에 드롭킥을 하듯이 들어갔고, 이 충격으로 에두아르도의 '''왼쪽 [[발목]]이 90도로 돌아가서 탈골이 되었고, 이걸로도 충격흡수가 완전히 안 되어서 종아리 뼈가 부러져서 피부를 뚫고 나오는 개방성 [[골절]] 사고'''가 발생했다. 그 직후 테일러는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굉장히 끔찍한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종아리 뼈가 부러져서 피부와 양말을 뚫고 튀어나온 장면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해 [[방송국]]에서 [[리플레이]]조차 보여주지 못할 정도였다. [[http://s1.dmcdn.net/F_U2Z/x240-Kzq.jpg|혐짤주의]].][[http://tophet.egloos.com/1764878|당시 사고 상황.]] 부상당한 직후 에두아르도는 그라운드에 쓰러진 채 발목을 붙잡고 신음했으며, 곧바로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들 것에 실려 나가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당시 아스날 선수들 중 [[질베르투 실바]]만이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병원까지 함께 동행했다.] 경기 직후 아스날의 감독인 [[아르센 벵거]]는 테일러에게 "다시는 축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까지 말했으며, 테일러는 에두아르도의 병문안을 가며 자신의 태클은 결코 고의적인 것이 아니었다며 사과했다. 비록 수술 이후 [[버밍엄]]에서 [[런던]]의 병원으로 옮겨진 뒤 나흘 뒤에 퇴원했지만 시즌 아웃으로 리그를 마쳤으며, 아스날은 이후 최고조의 상승세에서 추락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FC]]에게 밀리며 3위로 시즌을 마쳤다.[* 2007-08 시즌이 무패우승 이후 아스날이 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했었던 시즌이었다. 승점 83점은 무패우승 이후 아직까지도 최다 승점으로 남아있으며 1위와의 승점차도 가장 적었던 시즌이다.] 당시 어린 선수들이 많았던 아스날은 기세로 성적을 올리고 있었는데, 경기장에서 개방형 골절상을 입은 동료의 모습을 본 이후에 거친 태클로 달려드는 상대에게 멘붕해버렸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팀의 주장이던 [[윌리엄 갈라스]]는 아스날에 입단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이 때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이었던 그조차도 충격을 받아 주저앉을 정도였으니 다른 동료들의 멘탈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마틴 테일러도 그 뒤에 그다지 빛을 못 보았고 2년 뒤에 방출되어 2부리그이던 왓포드에서 뛰다가 2~3부리그를 오고가던 [[셰필드 웬즈데이 FC]]에서 은퇴했다. '''2007/08 시즌: 31경기(선발 22경기) 12골 6도움'''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프리미어 리그]] || 17 || 13 || 4 || 4 || 3 || || [[UEFA 챔피언스 리그|챔피언스 리그]] || 5 || 3 || 2 || 2 || 0 || || [[FA컵(잉글랜드)|FA컵]] || 3 || 2 || 1 || 1 || 1 || || [[리그컵|EFL컵]] || 5 || 3 || 2 || 4 || 1 || || [[UEFA 챔피언스 리그|챔피언스 리그 예선]] || 1 || 1 || 0 || 1 || 1 || || '''합계''' || '''31''' || '''22''' || '''9''' || '''12''' || '''6''' || 이후 4월 1일부터 재활 훈련을 시작했지만, 부상 상태가 심각해 2008/09 시즌 시작 이후에도 한동안 복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포츠머스 FC]]와의 리저브 경기에 출전해 복귀하는가 했지만 전반전 이후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1군 복귀가 무산되었으며, 2009년 2월 17일 [[카디프 시티]]와의 FA컵 32강전에서 1년여만에 1군으로 복귀한 뒤 두 골을 넣어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다만 골절된 왼쪽 발목이 완치된 것이 아니어서 복귀 이후에 왼쪽 발목을 교정하기 위한 간단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후 번리와의 FA컵 16강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며 득점을 기록했지만, 햄스트링 부상이 재발하는 등 잔부상에 시달려 결국 리그에서는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008/09 시즌: 2경기(선발 0경기)'''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UEFA 챔피언스 리그|챔피언스 리그]] || 2 || 0 || 2 || 0 || 0 || || '''합계''' || '''2''' || '''0''' || '''2''' || '''0''' || '''0''' || 2009/10 시즌에는 에버튼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골을 기록해 팀의 6:1 승리에 일조했지만, [[셀틱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셀틱의 골키퍼인 [[아르투르 보루츠]]의 손에 걸려 넘어진 척 하며 [[할리우드 액션]]을 취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는 의혹을 받아 [[UEFA]]로부터 유럽 대항전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아스날 측에서는 셀틱과 [[스코틀랜드]] [[축협]]에서 에두아르도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며 UEFA에 항소했고, UEFA가 이를 받아들여 징계가 무효 처리되었다. 이후 징계로 나오지 못할 뻔 했던 [[스탕다르 리에주]]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에 큰 공헌을 했으며, 그 해 11월 구단과 장기 계약에 합의했다. 이후 리그에서 [[헐 시티]]와 포츠머스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과의 FA컵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2009/10 시즌: 31경기(선발 16경기) 4골 5도움''' ||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 [[프리미어 리그]] || 24 || 13 || 11 || 2 || 4 || || [[UEFA 챔피언스 리그|챔피언스 리그]] || 4 || 1 || 3 || 1 || 1 || || [[FA컵(잉글랜드)|FA컵]] || 2 || 1 || 1 || 1 || 0 || || [[리그컵|EFL컵]] || 1 || 1 || 0 || 0 || 0 || || '''합계''' || '''31''' || '''16''' || '''15''' || '''4''' || '''5''' || 하지만 골절로 1년간 뛰지 못한 이후 지속적으로 잦은 부상을 입어 이전의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자 주전 경쟁을 통해서 재기하기 위해 2010/11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기로 결정했으며, [[아스톤 빌라]], [[발렌시아 C.F.]], [[올랭피크 리옹]]과의 경쟁 끝에 7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기로 합의한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의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하였다. 이적 이후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켰으며, 팀의 리그와 컵대회 [[더블]]에 기여하였다. 또한 공교롭게도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전 소속팀인 아스날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는데,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킨 데 이어 홈 경기에서는 결승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에 공헌했다.[* 아스날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자신이 부상당했을 당시 진심을 다해 회복을 기원해준 구단과 팬들을 생각해 별다른 골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았으며, 팬들 또한 아스날에서 에두아르도가 뛸 당시의 [[유니폼]]을 관중석에 걸어두고 에두아르도가 교체될 때 기립[[박수]]를 보내며 이에 화답했다. 또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에두아르도가 득점했을때 관중들은 아스날 선수가 득점한것처럼 환호했고 구장 아나운서도 아스날 시절 에두아르도가 득점했을때의 멘트를 했다.] 이후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일조해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한 뒤, [[AS 로마]]와의 16강 2차전에서 골을 넣어 팀의 3:0 승리에 일조하며 1983/84 시즌 이후 25년여만에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2014년 7월 17일 고향 브라질의 [[플라멩구]]로 이적하였다. 2015년 7월 12일 [[샤흐타르 도네츠크]] 이적이 확정되었다. == 국가대표 == 크로아티아에서 6년 동안 생활한 뒤 2002년 크로아티아 시민권을 취득해 귀화에 성공했으며, 2004년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어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6년 칼스버그 컵 대회 당시 [[홍콩]]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이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대회에 참여해 크로아티아와 경기를 가졌으며, 에두아르도도 출전했으나 팀은 대한민국에 0:2로 패했다.] 하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FIFA 월드컵]] 당시에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즐라트코 크란차르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정작 에드아르도보다 어린 [[니코 크란차르]] ~~아버지 백~~, [[루카 모드리치]]는 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다.],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의 수장이 된 [[슬라벤 빌리치]]에 의해 다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다. 이후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0 승리를 견인했으며, [[유로 2008]] 예선 당시에는 선두 경쟁을 벌이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팀의 2:0 승리에 공헌한 뒤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하는 등 13경기에서 10골을 넣어 [[북아일랜드]]의 데이비드 힐리에 이은 득점 랭킹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본선을 앞두고 왼쪽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해 본선에는 나오지 못했으며,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2010 FIFA 월드컵]] 당시에는 팀이 본선 진출에 실패해 메이저 대회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끝에 에두아르도는 [[UEFA 유로 2012]]의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 발탁되어 3경기에 교체 출전하였고, 2년 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2014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대회 이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 플레이 스타일 == 문전 앞에서 매우 침착하고 차분한 선수였다. 귀신같을 정도로 차분하게 슛 동작을 가져가는 데다가, 신체 밸런스도 좋아서 슛 자세가 엉클어지지도 않았다. 신장의 한계로 제공권을 따낼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무결점의 스트라이커였다고 할 수 있다. 아스날 시절엔 [[아데바요르]]나 [[벤트너]]같은 빅맨들과 투톱을 이뤄서 시너지가 상당했었다. 기술이 뛰어나고 발도 빠른 편이라 윙어도 소화했고, 날카로운 패싱 능력도 있어서 세컨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냥 축구 자체를 잘 하던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유명했던 버밍엄 시티전 장기 부상 이후로 원래부터 부상을 잘 당했던 신체가 급속도로 유리몸화 되면서 빅리그에서 뛸 신체 지속성을 잃어버린 게 그의 커리어에서 오점으로 남았다. 그 외에는 모든 면에서 클래스가 무척 높은 선수였다. [각주] [[분류:1983년 출생]][[분류:2001년 데뷔]][[분류:2018년 은퇴]][[분류:리우데자네이루 출신 인물]][[분류:브라질계 크로아티아인]][[분류:크로아티아로 귀화한 인물]][[분류:크로아티아의 축구선수]][[분류:GNK 디나모 자그레브/은퇴, 이적]][[분류:아스날 FC/은퇴, 이적]][[분류:FC 샤흐타르 도네츠크/은퇴, 이적]][[분류:CR 플라멩구/은퇴, 이적]][[분류: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은퇴, 이적]][[분류:레기아 바르샤바/은퇴, 이적]][[분류:크로아티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2012 참가 선수]]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