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뷔르템베르크 가문]][[분류:독일의 공작]][[분류:1865년 출생]][[분류:1939년 사망]][[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의 원수]][[분류:빈 출신 인물]] [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include(틀:역대 뷔르템베르크 가문 수장)] |||| '''{{{#fff 뷔르템베르크 왕국 왕세자[br]독일 제국군 육군 원수[br]{{{+1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br]Albrecht, Herzog von Württemberg}}}''' ||||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AlbrechtHerzogWürttemberg.jpg|width=100%]]}}} || || 이름 ||<(>'''Albrecht Maria Alexander Philipp Joseph'''[br]알브레히트 마리아 알렉산더 필리프 요제프|| ||<|2> 출생 ||<(>[[1865년]] [[12월 23일]] || ||[[오스트리아 제국]] [[빈(오스트리아)|빈]]|| ||<|2> 사망 ||<(>[[1939년]] [[10월 31일]] (향년 73세) || ||[[나치 독일|독일국]]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 복무 ||<(>[[독일 제국군]] (1885 ~ 1919년)|| || 최종 계급 ||<(>[[육군]] [[원수(계급)|원수]](Generalfeldmarschall)|| ||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백엽 [[푸르 르 메리트]][br][[붉은 독수리 훈장]] 대십자상|| || 종교 ||<(>[[가톨릭]]|| || 배우자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마르가레테 조피[*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둘째 남동생 [[카를 루트비히(1833)|카를 루트비히 대공]]의 장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친여동생이자, [[카를 1세]]의 고모다.][br],,(1893년 결혼),,|| || 자녀 ||<(>[[필리프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필리프 알브레히트]], 알브레히트 오이겐, 카를 알렉산더,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테레자, 마리아 엘리자베트, 마르가리타 마리아|| || 아버지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필리프[* 뷔르템베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2세 오이겐의 증손자이다. 어머니 마리가 [[루이필리프]]의 차녀이므로 루이필리프의 외손자이기도 하며, [[벨기에]] 2대 국왕 [[레오폴드 2세]], [[불가리아 왕국]] 초대 [[차르]] [[페르디난트 1세(불가리아)|페르디난트 1세]]와는 이종사촌간이다.]|| ||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마리아 테레자[* [[나폴레옹 전쟁]] 때의 명장 [[카를 루트비히|카를 대공]]의 손녀다.(장남 알브레히트의 딸) 1차대전기에 오헝제국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프리드리히 폰 외스터라이히테셴 대공|프리드리히 대공]]과,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2세]]의 왕비 마리아 크리스티나와는 친사촌간이다.(숙부 카를 페르디난트 대공의 자녀들) 어머니는 [[바이에른 왕국]] 2대 국왕 루트비히 1세의 3녀 힐데가르트로, 때문에 [[루트비히 2세(바이에른)|루트비히 2세]]와 외사촌간이며 [[오톤]]에게는 조카가 된다.]|| || 형제 ||<(>마리 아멜리에, 마리아 이사벨라, 로베르트, 울리히|| [목차] [clearfix] == 개요 == 알브레히트는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마지막 왕세자로 [[독일 제국군]]의 원수이다. == 생애 == === 제1차 세계 대전 전 === 알브레히트는 [[뷔르템베르크 공작 필리프]]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왕이었던 [[빌헬름 2세(뷔르템베르크)|빌헬름 2세]]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왕세자(정확히는 추정상속인)가 되었다.[* 빌헬름 2세는 알브레히트의 8촌 형에 해당한다. 종교도 개신교도였던 빌헬름 2세 쪽 계통과는 달리, 그의 계통은 가톨릭이었다. 그 이유는, 알브레히트의 할아버지인 알렉산더가 프랑스 왕이었던 [[루이필리프]]의 딸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1885년 입대하여 쉽게 계급을 올렸다. 1893년에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조피 여대공과 결혼하여 3남 4녀를 두었다. 1910년에는 [[에드워드 7세]](7촌 간이다)[* 알브레히트의 증조할머니인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공녀 안토이네테가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이모다.]의 장례식에 참여하였다. === [[제1차 세계 대전]] === 알브레히트는 4군의 사령관이 되었고, [[국경 전투]]에 참여하였다. 게다가 [[빌헬름 2세(뷔르템베르크)|빌헬름 2세]] 휘하에 있던 아르덴의 군대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그의 참모총장은 [[발터 폰 뤼트비츠]]였다.] 그의 군대는 1914년에 있었던 아르덴 전투에서 [[빌헬름 폰 프로이센]]의 5군이 승리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후 알브레히트는 [[마른 전투]], [[예서 전투]], 그리고 [[제2차 이프르 전투]]에서 그의 군대를 지휘하였다. 그간의 공로로 1915년 8월 [[푸르 르 메리트]]를 받고 1년 뒤에는 원수가 되었다. 이후 알브레히트 집단군을 지휘하였다. 그가 지휘하던 제4군은 [[프리드리히 식스트 폰 아르민]]이 지휘하게 되었다. === 전후 === 1921년, 빌헬름 2세(뷔르템베르크)가 죽고 알브레히트는 뷔르템베르크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3년 전에 있었던 독일의 혁명으로 인해 알브레히트는 왕위를 물려받을 수는 없었다. 이후 73세까지 살다, [[나치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죽었다. 가문 수장 자리는 장남 [[필리프 알브레히트 폰 뷔르템베르크]](1893~1975)가 이었다.[* 현재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수장은 필리프 알브레히트의 증손자 빌헬름(1994년생)으로, 2022년 할아버지 카를(필리프 알브레히트의 차남, 카를의 장남이자 빌헬름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는 2018년 사망)이 사망한 후 왕가의 수장이 되었다. 빌헬름은 아직 미혼이고 남자 형제가 없기에, 현재로서는 빌헬름의 숙부 중 한 명이 추정상속인이 된다. 한편 뷔르템베르크 왕가는 바이에른 공작을 칭하는 [[비텔스바흐 가문]]처럼 뷔르템베르크 왕국 멸망 이후 뷔르템베르크 공작위를 사용하고 있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