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알바로 오브레곤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멕시코 대통령)] ||<-2> '''[[멕시코 대통령|{{{#fff 멕시코 제46대 대통령}}}]][br]{{{+1 알바로 오브레곤 살리도}}}[br]Álvaro Obregón Salido'''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오브레곤.jpg|width=100%]]}}} || ||<|2> '''출생''' ||[[1880년]] [[2월 17일]] || ||[[멕시코]] [[소노라]] 주 나바호아 || ||<|2> '''사망''' ||[[1928년]] [[7월 17일]] (향년 48세) || ||[[멕시코]] [[멕시코시티]] 산앙헬 || ||<|2> '''재임 기간''' ||제46대 대통령 || ||[[1920년]] [[12월 1일]] ~ [[1924년]] [[11월 30일]] || || '''직업''' ||[[군인]], [[정치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멕시코)] || || '''정당''' ||[[https://en.wikipedia.org/wiki/Laborist_Party_(Mexico)|노동자당]] || || '''경력''' ||후아타밤포 시의회 의장[br]국방장관[br]노동자당 총재[br]'''제46대 [[멕시코 대통령]]''' ,,(1920 - 1924),, || [목차] [clearfix] == 개요 == [[멕시코]]의 제46대 대통령. == 생애 == === 멕시코 혁명까지 === 소노라 주 출신이며, 아버지 대에 집안이 [[막시밀리아노 1세]]를 지지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자 어릴 때부터 고생해서 혁명 이전에 지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멕시코 혁명]]을 일으키자 오브레곤은 마데로의 혁명에 가담했고, [[빅토리아노 우에르타]]가 일으킨 쿠데타로 1913년에 2차 혁명이 발발하자 소노라에서 다시 혁명군을 결성한 뒤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의 헌정군에 참여해서 전공을 쌓았다. 우에르타가 실각한 뒤, 혁명군의 다른 지휘관인 [[판초 비야]] 및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카란사의 대립이 격화되자 오브레곤은 중재를 시도했지만, 결렬되자 카란사와 동맹을 맺고 비야와 사파타가 결성한 아과스칼리엔테스 정부와 내전을 벌였다. 내전 초기에는 비야-사파타 연합군에게 멕시코시티를 잃었지만, 비야가 멕시코시티에서 정적을 숙청하느라 시간을 소모할 동안 베라크루스로 후퇴한 오브레곤은 병력을 모을 수 있었다. 1915년 4월 6일에서 5일에 걸쳐 일어난 셀라야 전투에서, 오브레곤은 기관총과 참호를 활용해서 비야의 주력인 기병을 봉쇄하여 승기를 잡았다. 이 전투에서 오브레곤은 비야군을 쫓다가 포격으로 오른팔을 잃지만, 비야-사파타 연합의 주력인 비야가 약화되면서 카란사-오브레곤 진영은 승기를 잡게 된다. 오브레곤은 카란사가 1917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카란사와의 입장 차이로 인해[* 마데로처럼 대대로 대지주 출신인 카란사는 혁명 초기부터 논의되던 토지 개혁과 농민 및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오브레곤은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그의 부하들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정적이 되어 체포 명령이 떨어지자 1920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카란사는 취임 후 개혁에 소극적이며 권위주의적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혁명가들에게 인심을 얻지 못해서, 멕시코시티를 잃고 도망치다가 배신한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카란사 사후 공석이 된 대통령직은 오브레곤의 부하인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가 물려받은 뒤, 1920년 12월 1일에 오브레곤이 승계했다. 이후 비야가 정계 은퇴를 대가로 장원(아시엔다)를 받는 조건을 받아들여 항복하자 오브레곤은 멕시코 혁명의 승자가 된다. === 대통령 재임 === 대통령이 된 오브레곤은 혁명의 후유증을 수습하면서 혁명의 의의를 국민들에게 알리려면 교육과 미디어가 중요하다는 걸 인지하고, [[https://en.wikipedia.org/wiki/Jos%C3%A9_Vasconcelos|호세 바스콘셀로스]]를 교육부 장관에 기용하여 의무교육 확대에 힘썼다. 또한 카란사 집권과 함께 케레타로 제헌회의에서 의결된 사항 중 하나인 [[가톨릭]]교회의 토지 소유권 제한을 추진했다. 이 정책에 반발한 가톨릭 진영에서는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이 1929년까지 이어진 크리스테로 전쟁이다. 오브레곤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그의 부하 중에서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와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가 차기 대권을 놓고 정쟁을 벌였다. 밀려난 데 라 우에르타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자 미국으로 망명했고, 훗날 오브레곤의 다른 부하인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실권을 잡자 멕시코로 귀국해서 여생을 보냈다. === 암살 === 1928년 대선에서 오브레곤은 4년 단임을 깨고 재선에 도전해 대통령에 당선되나, 미처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크리스테로인 [[https://en.wikipedia.org/wiki/Jos%C3%A9_de_Le%C3%B3n_Toral|호세 데 레온 토랄]]에게 암살당했다. 오브레곤 사후 공석이 된 당선인은 [[에밀리오 포르테스 힐|에밀리오 힐]]이 승계했다. == 참고자료 == * 백종국 저, <멕시코 혁명사> (2000년). 한길사 * 엔리케 크라우세 저, 이성형 역, <멕시코 혁명과 영웅들> (2005년), 까치. * 이순명 저. <멕시코,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 (2013년). 푸른역사 [[분류:멕시코 대통령]][[분류:1880년 출생]][[분류:소노라 주 출신 인물]][[분류:1929년 사망]][[분류:암살된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