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소련령 다롄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소련의 역사]] [include(틀:만주의 역사)] ||<-3><#CC0000> '''{{{#FFD700 {{{+1 관동주}}}[br]Квантунская область[br]달니[br]Дальний}}}''' || ||<-3>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width=50%]] || ||<-3><#CC0000> '''{{{#000 국기}}}''' || ||<-3><#CC0000> '''{{{#000 1945 ~ 1955}}}''' || ||<#CC0000><-2> '''{{{#000 성립 이전}}}''' ||<#CC0000> '''{{{#000 해체 이후}}}''' || ||<#ffffff><-2> [[관동주|'''{{{#b0313f 일본 제국령 관동주}}}''']] ||<#ee1c25> [[중국|'''{{{#FFD700 중화인민공화국}}}''']] || ||<#CC0000> '''{{{#000 위치}}}''' ||<-2>[[랴오둥 반도]][br][[다롄]] || ||<#CC0000> '''{{{#000 정치체제}}}''' ||<-2>[[공산주의]][br][[군정청|군정체제]] || ||<#CC0000> '''{{{#000 정부수반}}}''' ||<-2>[[사령관]] || ||<#CC0000> '''{{{#000 언어}}}''' ||<-2>[[러시아어]], [[관화|중국어(관화)]] || ||<#CC0000> '''{{{#000 통화}}}''' ||<-2>[[소련 루블]] || [목차] == 개요 == [[일본 제국]] 패망 이후, 일본의 조차지 요동 반도의 [[관동주]]를 소련이 인수하여 중국으로 반환하는 1955년까지 존재한 조차지. == 역사 == 1895년 [[청일전쟁]]에 따른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로 랴오둥 반도는 일본에 넘어갔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을 위시한 [[프랑스]], [[독일]]의 [[삼국간섭]]으로 중국에 다시 반환되었다. 러시아가 일본이 반환한 랴오둥 반도에서, 1898년에 항구인 [[뤼순]]과 [[다롄]]을 1923년까지 25년 기한으로 조차한 것([[러시아령 다롄]])이 관동주의 시초였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고, 러시아는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만주와 조선에서 손을 뗀다. 조약 결과에 따라서 러시아령 다롄은 [[일본]]으로 양도됐다. 이것이 [[관동주]]이며, 이어서 1915년에 조차 기한을 25년에서 100년으로 연장해 1997년까지 일본령일 예정이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벌인 [[관동군]]의 본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 40년 뒤, 1945년 8월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소련이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하고, 소련군이 만주의 [[관동군]]을 분쇄하며 남하한다. 일본 본국이 항복하고 8월 20일 관동군도 항복하였다. [[만주국]]은 멸망했고, 만주 전역은 소련의 통제로 들어간다. ([[소련 점령하 만주]]). 이 과정에서 소련은 40년 전에 잃은 조차지 관동주를 다시 [[중화민국 국민정부]]로부터 조차하여 수복했다. 소련은 이곳을 다시 이전처럼 극동의 해군 기지로 사용할 심산이었고, 조차권이 일본에서 이전됐기에 1997년까지 소련령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이기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일단 중공과 조차 협약을 연장하긴 했다. 그러나 소련으로서는 중화민국이 [[제1세계]] 진영에 속한 국가였으므로 이 지역을 차지했지만,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더이상 이 지역을 가질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1955년 중공에 반환했고 [[뤼순커우구]]와 [[다롄시]]가 됐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