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석천문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양서)] [include(틀:남사)] ||<-2> {{{#ece5b6 '''{{{+1 소량의 대신[br]상서위백(湘西威伯)[br]{{{+1 釋闡文 | 석천문}}}}}}'''}}} || || '''{{{#fff 시호}}}''' ||위(威) || || '''{{{#fff 작호}}}''' ||산양현백(山陽縣伯) → 상서현백(湘西縣伯) || || '''{{{#fff 성}}}''' ||석(釋) || || '''{{{#fff 이름}}}''' ||천문(闡文) || || '''{{{#fff 본관}}}''' ||안정군(安定郡) 임경현(臨涇縣)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제(남조)|제나라]], [[양(남조)|양나라]]의 인물. == 상세 == 안정군(安定郡) 임경현(臨涇縣)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는 고아였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서사를 섭렵하였다. 제나라에서는 옹주(雍州) 자사 소적근(蕭赤斧)의 중병참군(中兵參軍)이 되었고 소적근의 아들인 소영주(蕭穎胄)와 친해졌다. 뒤에 다시 서중랑장 중병참군이 되었고 성국참군(城國參軍)을 겸했다. 소연이 거병할 때 석천문은 소영주와 함께 소연의 거사에 찬동했고 전조공(田祖恭)을 보내 개인적으로 소연에게 보답하며 은장도를 바쳤고 소연은 뒤에 금으로 보답했다. [[화제(남제)|화제]]가 즉위한 뒤 급사황문시랑, 위위경을 역임하였다. 소영주가 갑자기 죽고 형주에서 소요가 발생하자, 석천문은 화제가 유약함을 알고 시흥왕 소담(蕭憺)이 옹주에 주둔할 때 소담을 형주 자사로 추대하였다. 소연이 즉위한 뒤에는 도관상서, 보국장군이 되었고 산양현백(山陽縣伯)에 봉해졌다. 이후 동양군 태수로 전출되고 상서현백으로 개봉되었다. 석천문은 2년 동안 태수를 맡으면서 청렴함으로 알려졌다가 죽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시호는 위(威). [[분류:양(남조)/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