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삼성혈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탐라)] ||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134호}}}''' || || {{{+1 {{{#fff '''제주 삼성혈'''}}}}}} {{{-1 {{{#fff 濟州 三姓穴}}}}}} || ||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 '''{{{#fff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22 (이도일동)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구비전승지 / 구비전승지 || || '''{{{#fff 면적}}}''' || 33\,832㎡ || || '''{{{#fff 지정연도}}}''' || 1964년 6월 10일 || || '''{{{#fff 제작시기}}}''' || 시대미상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22 (이도일동), 너비=36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사적134호제주삼성혈전경.jpg|width=100%]]}}} || || 현재 모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 1914년 국립중앙박물관.jpg|width=100%]]}}} || || 일제강점기 모습 || [목차] == 개요 == {{{+1 [[三]][[姓]][[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에 위치한 화산지형이자 [[탐라]]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문화재로서 [[1964년]]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지반이 꺼졌고 그 안쪽에 구멍 세 개가 움푹 파였는데, 이 구멍에서 제주의 시조이자 수호신인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 삼신인(三神人)이 솟아났다고 전한다. 여타 대륙계 건국 신화에 나오는 [[단군 신화|천손강림]] [[신화소]]와 달리 대지에서 탄생한 신이라는 점이 특이한데, 이들이 [[제주도]]를 다스리면서 [[양(성씨)|양씨]], [[고(성씨)|고씨]], [[제주 부씨|부씨]] 국성의 [[탐라국]]을 건국했다고 한다. 삼성혈은 시내 주택가에 있는데 경내에 큰 [[녹나무]]가 많아 그늘이 많고 여름에도 시원하다. 삼성혈 소개를 보면 나무들이 경배하듯 삼성혈을 향해 있다며 신성을 부여하곤 하는데, '''사실 현대에 심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사진을 보면 나무들은 꼿꼿히 서 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6674#|#]] == 삼성 신화 == === 모흥혈의 삼신인 === 태초에는 [[제주도|제주]]에 사람이 없었다. 약 4300여 년 전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 삼성혈의 옛 이름)에서 영롱한 자주빛 기운이 비추어 세 신인이 솟아나니 맏이를 양을나, 버금을 고을나, 막내를 부을나 즉 삼을나라 칭한다. 그들은 가죽옷을 입고 수렵을 하면서 생활했다. === 벽랑국 삼공주와 혼인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삼신인의 3공주) 제주특별자치도.jpg|width=100%]]}}} || || 벽랑국 삼공주의 모습 ||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 동쪽 바다를 바라보니 붉은 진흙으로 봉한 목함이 떠 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나가서 열어보니 그 속에는 또 석함과 붉은 띠에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가 들어있었다. 석함을 열어보니 [[말(동물)|말]]과 [[소]], 오곡 종자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세 공주가 있었다. 이에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벽랑국[* 고려사 지리지 등에는 '일본국'이라고 나온다.] 사신입니다. 우리 왕이 세 왕녀를 낳고 이르되 서해 한가운데 있는 산에 신자(神子) 3명이 강생(降生)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려는데 배필이 없다 하시고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 왕녀를 모시게 하였습니다.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大業)을 이룩하시옵소서." 하고 홀연히 구름을 타고 떠나가 버렸다.[* 이 설화를 근거로 탐라국이 토착계와 해양계 세력이 연합한 국가였다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제주를 서쪽 바다라고 칭할 나라는 일본국, 더 남서쪽의 유구국(현 오키나와) 밖에 없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혼인지 제주특별자치도(공공누리).jpg|width=100%]]}}} || || 혼인지의 모습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신방굴 제주특별자치도(공공누리).jpg|width=100%]]}}} || || 신방굴의 모습 || 삼을나는 나이 차례대로 나누어 배필을 삼고 삼공주와 연못에서 목욕재계한 뒤 연못 옆 동굴에서 신방을 이루어 살았다. 후세에 사람들은 삼공주를 맞은 곳을 [[연혼포]], 그들이 목욕한 연못을 [[혼인지]], 그들이 신방을 이룬 동굴을 [[신방굴]]이라 부른다. === 탐라국 창건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 삼사석 제주특별자치도.jpg|width=100%]]}}} || || 화살을 쏘는 모습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사석 1914년 국립중앙박물관 수정.jpg|width=100%]]}}} || || 일제강점기 삼사석의 모습 || 삼을나는 사시장올악(살손장오름)에 올라 활을 쏘아 돌 세 개를 맞추니 양을나가 사는 곳을 제일도,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이도,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삼도라 칭하여 제주도를 삼분하여 거처를 옮겨 [[탐라국]]을 세웠다. 비로소 오곡을 파종하고 또한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부유하고 번영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화살이 박힌 세 돌을 한 곳에 모아 단장했는데, 지금도 제주시 화북동 삼사석지에 삼사석(三射石)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한다. 그리고 그들은 제주 양씨, 제주 고씨, 제주 부씨의 시조가 되었다. == 건축물 == || 사진 || 설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 건시문.jpg|width=100%]]}}} ||'''건시문(乾始門)'''[br]삼성혈의 정문. 1971년 복원 후 1997년 5월 중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 전시관.jpg|width=100%]]}}} ||'''전시관'''[br]삼성혈 신화를 표현한 모형도와 도지정문화재인 홍화각, 홍화각기, 급제선생안과 고문서, 제기, 현판 등을 전시한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문.jpg|width=100%]]}}} ||'''삼성문(三聖門)'''[br]삼성전 참배자들이 분향하는 곳. 조선 숙종 24년(1698) 건립 후 1970년 중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 삼성전.jpg|width=100%]]}}} ||'''삼성전(三聖殿)'''[br]삼을나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신라에 입조했던 성주, 왕자, 도내 삼고씨의 위패를 우측에 배향했다. 조선 숙종 24년(1698) 건립 후 수차 중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 전사청.jpg|width=100%]]}}} ||'''전사청(典祀廳)'''[br]제향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집이다. 조선 순조 27년(1872) 건립 후 몇차례 이건 및 중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성혈 숭보당.jpg|width=100%]]}}} ||'''숭보당(崇報堂)'''[br]뛰어난 선비를 두어 가르치던 강당이다. 조선 헌종 15년(1849) 건립 후 1974년 이건. ||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삼성혈|한국어 위키백과: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3235&cid=46618&categoryId=46618|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25372&cid=51955&categoryId=55519|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22283&cid=50222&categoryId=50228|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편: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29525&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제주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1250&cid=43723&categoryId=43730|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7 - 제주도: 삼성혈에 얽힌 사연]]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449&cid=42840&categoryId=42855|답사여행의 길잡이 11 - 한려수도와 제주도: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216&cid=42840&categoryId=42855|답사여행의 길잡이 11 - 한려수도와 제주도: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48668&cid=42865&categoryId=42865|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삼성혈]]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9303&cid=40942&categoryId=33547|두산백과: 제주 삼성혈]] == 사적 제134호 ==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901340000&pageNo=1_1_1_1|문화재청 홈페이지: 제주 삼성혈 (濟州 三姓穴)]]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의 구멍을 말한다. > >3시조들은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사냥해 먹고 살다가, 다섯 곡식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와 각각 결혼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구멍은 품(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만 바다와 통하고 나머지는 흔적만 남아있다. > >조선 중종 21년(1526)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과 비석을 세우고, 주위에 울타리를 쌓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한국 신화/신전]][[분류:한국 신화/장소]][[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관광]][[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문화재]][[분류:제주시]][[분류:제주 양씨]][[분류:제주 고씨]][[분류:제주 부씨]]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