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비왕 장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60202, #820000 20%, #820000 80%, #660202); color: #ffd400" '''위만조선 제후왕[br]{{{+1 裨王 長 | 비왕 장}}}'''}}} || ||<|2> '''출생''' ||[[기원전 2세기]] 추정 || ||[[고조선]]? || ||<|2> '''사망''' ||[[기원전 109년]] || ||[[위만조선]] 패수 || ||<|2> '''재위기간[br]{{{-3 (음력)}}}''' ||'''{{{#ffd400 위만조선 비왕}}}''' || ||? ~ [[기원전 109년]] || || '''휘''' ||장(長) || || '''이명''' ||비왕내장사장(裨王乃將士長) || || '''왕호''' ||'''비왕 장(裨王 長)''' || || '''작위''' ||비왕(裨王) || [목차] [clearfix] == 개요 == 비왕 장(裨[* 고대 동아시아 관직 중에서 裨/卑의 호칭이 붙은 관직은 오늘날 군대 계급으로 따지자면 准과 비슷하게 원래 신분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 장군관직 중에 비장군이 제일 낮은 장군직이었으며 비장군은 오늘날의 [[부사관]]에 해당될 정도로 하위직 군인이었다. 비왕 역시 군주에 버금가는 관직으로 군주보다는 낮고 승상/영의정 같은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 관직보다 높은 관직으로 추측한다. 굳이 따지자면 [[신라]] 내부에서조차 오직 [[김유신]]혼자만 역임했다는 [[태대각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王 長, ? ~ ?)은 [[위만조선]]의 작위로 추정되는 비왕(裨王)에 책봉된 인물이다. 성은 미상이며 이름은 장(長)이다. [[전한]]의 사신 [[섭하]](涉何)에게 살해당했다. 결국 이 때문에 대노한 당시 고조선의 군주인 [[우거왕]]은 자객을 보내 섭하를 죽였고[* 기록 상으로는 군사를 일으켰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객을 보내 암살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이는 한무제에게 고조선을 침공할 빌미를 주게 되어 결국 [[기원전 109년]] [[왕검성 전투]]의 시발점이 된다. == 행적 == 기원전 109년 [[위만조선]]과 [[전한]]의 관계가 나빠지자 한은 섭하(涉何)라는 사신을 보내 당시 위만조선의 군주인 [[우거왕]]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라고 강요를 하였다. 우거왕이 입조(入朝)를 거부하자 섭하는 빈손으로 돌아가 [[무제(전한)|무제(武帝)]]에게 노여움을 사는게 두려워 섭하를 호송하던 비왕 장은 섭하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안사고(顔師古)는 비왕 장의 장(長)은 비왕의 이름으로 보았으며 장수절(張守節)은 장을 우두머리를 뜻하는 단어라고 하였다. == 여담 == '''기록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살해당한 사람'''이다. 비공식적으로는 더 이전에 살해당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기록이 부족해 현재로선 이 사람이 제일 오래되었다. [[분류:기원전 109년 사망]][[분류:고조선의 인물]][[분류:아시아의 왕작]][[분류:살해된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