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브뤼헤/인구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유럽의 도시/인구]] [include(틀:상위 문서, top1=브뤼헤)] [[파일:20190119_020807.jpg]] [목차] == 역사 == === [[브뤼헤]]의 성립 === [[브뤼헤]]가 처음으로 발전을 시작한 시기에는 [[플란데런]] 지역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플란데런]] 지역은 해양과 인접한 저지대 지역에서도 가장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한 지역이었다. 이렇게 발전한 도시 중에서도 가장 인구가 많았던 대표적인 도시는 상대적으로 해양에 가깝던 [[겐트]], [[브뤼헤]]였고 해양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안트베르펜]], [[브뤼셀]]도 대표적인 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런 도시의 발전을 바탕으로 [[플란데런]] 지역은 엄청난 가치를 가진 지역으로 부상했고 독립적인 영향력도 행사하기 시작했다. [[브뤼헤]]는 당시부터 많은 영향력을 가진 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세력의 공격을 받았는데 결국 [[플란데런 백국]]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브뤼셀 백국]]이 [[브라반트 공국]]을 선포하고 [[림부르크 공국]]을 병합한 상황에서 [[룩셈부르크 공국]]이 [[브라반트 공국]]과 동군 연합을 결성하자 강력한 도시였던 [[겐트]], [[브뤼헤]]를 지배하고 있던 [[플란데런 백국]]이 영향력이 커져가는 [[브뤼셀]]을 저지하기 위해 [[브라반트 공국]]을 침공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지속적인 갈등이 일어났고 [[브라반트 공국]]은 영토를 확대해 영향력이 늘어났던 [[부르고뉴 공국]]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것을 기회로 [[부르고뉴 공국]]은 오히려 [[브라반트 공국]]을 점령해 버렸고 1450년 무렵에는 [[플란데런 백국]]까지 차지해 다른 지역과 합쳐버렸다. [[부르고뉴 공국]]은 [[플란데런]] 지역을 비롯한 저지대 지역을 대부분 점령했지만 이후 [[부르고뉴 공국]]이 없어졌고 저지대 지역이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넘어가서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가 될 때 [[브뤼헤]]도 같이 지배를 받게 되었다. === [[브뤼헤]]의 반란과 쇠퇴 === [[브뤼헤]]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기 전부터 [[플란데런]]의 다른 대표적인 도시처럼 이미 수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번영하는 도시였다. 그렇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이 저지대 지역을 모두 점령하고 영토를 새로 개편하려고 하자 [[브뤼헤]]는 다른 [[플란데런]] 지역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과거 경쟁하는 관계였던 [[플란데런]]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들은 같은 입장이 되었다. 이어서 저지대 지역을 지배하게 된 합스부르크 가문의 [[스페인령 네덜란드]]가 저지대 지역을 모두 합치고 직접 지배를 할 것을 선포하자 [[네덜란드]] 지역의 여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플란데런]] 지역은 처음에는 개입을 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에게 지속적으로 침탈을 당하자 결국 [[겐트]], [[브뤼헤]]가 있는 [[플란데런]], [[안트베르펜]]이 있는 [[안트베르펜]], [[브뤼셀]]이 있는 브라반트가 반란에 가담해 버렸다. 저지대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들이 가담했지만 [[플란데런]] 지역은 제압을 당해 다시 [[스페인]]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반란이 끝나고 해양에 가까웠던 [[겐트]], [[브뤼헤]]는 인구가 조금 줄어들어 버렸지만 [[안트베르펜]], [[브뤼셀]]은 인구가 조금 늘어나 [[플란데런]] 지역의 핵심 지역이 [[브뤼헤]] 등에서 바뀌게 되었다. [[네덜란드]] 지역과 일어났던 전쟁이 끝난 1609년 [[브뤼헤]]의 인구는 30,000명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 [[스페인]]의 지배와 해방 === 다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 [[브뤼헤]]는 영향력이 떨어진 [[플란데런]] 지역의 재건을 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종결되고 [[플란데런]] 지역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계속 받았는데 전쟁이 시작된 1700년에 [[브뤼헤]]의 인구는 40,000명으로 증가했다. 유럽에서 혁명이 시작되자 [[벨기에]] 지역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되었고 이후 잠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가 [[네덜란드]]에 편입되었다. 당시 [[플란데런]]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브뤼헤]]도 인구가 조금 감소되는 타격을 받았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의 지배에서 다시 벗어났는데 당시 [[벨기에]] 지역의 도시들은 여전히 인구가 많았지만 [[네덜란드]]의 도시에는 미치지 못했다. === 현대 [[브뤼헤]]의 성립 === [[벨기에]]가 독립했을 시기에는 유럽의 도시에서 엄청난 성장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브뤼헤]]도 엄청난 인구 성장이 진행되었다. 원래부터 [[브뤼헤]]는 [[벨기에]]에서 인구가 많은 편인 상당한 규모를 가진 도시였지만 이 시기에 [[브뤼헤]]는 인구 수십만명에 달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현재는 [[브뤼헤]]가 주의 주도기는 하지만 관광 도시의 역할이 더 많은 편이다. 근처에 제브뤼헤(Zeerbrugge) 항구가 있고 전기 통신과 금융 관련 산업도 있기는 하지만 주변의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그 비율이 높지 않은 편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노동 인구가 브뤼헤를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도시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브뤼헤]]는 대부분의 젊은 계층이 [[브뤼헤]] 밖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브뤼헤]]에 살면서 직장을 가지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그것도 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주에서 [[브뤼헤]]보다 큰 도시로 휴양 도시로 알려져 있는 편인 오스텐드가 있다. 주의 많은 도시들이 플란데런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 대도시 수준으로 큰 경우가 별로 없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