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밀우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191970> '''{{{#white 주군}}}''' ||||<:> 동천왕(東川王) || ||<:><#191970> '''{{{#white 부족}}}''' ||||<:> 동부(東部) || ||<:><#191970> '''{{{#white 봉토}}}''' ||||<:> 거곡(巨谷), 청목곡(靑木谷) || ||<:><#191970> '''{{{#white 이름}}}''' ||||<:> 밀우(密友)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 ? || [목차] == 개요 == >'''"지금 추격하는 병사가 긴박하고 도망치기 불가합니다. [[여긴 내게 맡기고 뒤로|신이 죽음을 결의하고 막을테니 임금께선 피하십시오.]]"''' >"今追兵甚迫 勢不可脫. 臣請決死而禦之 王可遁矣." >---- >추격병을 결사대와 막으며 한 말. [[고구려]]의 장수. 동부(東部) 사람이며 [[동천왕]]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로, [[위(삼국시대)|위]]의 장수였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해 왔을 때 용감히 싸워 위기에 처한 동천왕을 구했다. == 생애 == 246년, 고구려를 침략해온 [[관구검]]의 군대에 의해 수도 [[환도성]]이 함락당하자 동천왕을 호위하며 남옥저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위나라의 장수 [[왕기(삼국지)#s-2|왕기]]가 추격해오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추격군을 막아 [[동천왕]]을 무사히 피신시켰다. 결국 밀우는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적들에게 포위당하여 부상을 입었지만, 밀우가 적을 막는 사이에 동천왕은 산과 계곡으로 숨어들어가 그 곳에서 다시 군사를 조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였다. 동천왕은 어느 정도 힘을 되찾자 [[유옥구]](劉屋句)를 보내서 밀우를 구출하도록 하였다. 동천왕은 부상을 입은 밀우를 '''직접 자신의 다리에 눕혀''' 보살폈는데, 밀우는 이런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덕분인지 의식을 차리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밀우는 자신이 왕의 다리에 뉘었다는 사실에 놀라 동천왕에게 사죄했으나 동천왕은 오히려 밀우를 칭찬했다. 전쟁이 끝난 후 거곡(巨谷)과 청목곡(靑木谷)을 하사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활약한 [[유유(고구려)|유유]]와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삼국사기]] 열전에도 유유와 함께 열전이 실려있다. == 대중매체에서 == [[삼국전투기]]에는 [[태왕북벌기]]의 인물로 등장한다. 처음 등장한 비류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비류 전투에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반영되었기에 동천왕이 "밀우... 자네의 희생, 내 절대 잊지 않겠네.."라 할 때 나와서 "저기... 저 안 죽었습니다만?"이라며 쩔쩔매는 게 개그. 비류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동천왕이 요동 공략을 결심하고 서안평을 공격하라고 명하자 고구려의 선봉으로 출격해 간단히 서안평을 점령했다. 이후 관구검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는 왕기의 추격대를 결사대를 이끌고 막아내기도 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삼국사기)] [[분류:몰년 미상]][[분류:고구려의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