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미시마 사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쇼와 시대/사건사고]][[분류:인질극]][[분류:일본의 자살 사건]][[분류:자위대/사건 사고]][[분류:1970년/사건사고]][[분류:치요다구의 사건사고]][[분류:할복]] [include(틀:사건사고)] || [[파일:attachment/mishima.jpg|width=100%]]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200px-ScarlettJohanssonFeb07.jpg|width=100%]] || [목차] == 개요 == 三島事件(みしまじけん) [[1970년]] [[11월 25일]]에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주장하며 [[인질극]]을 벌이다 [[할복]]한 사건. [[다테노카이]]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은 일본의 저명한 문학인이 매우 자극적인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해외에서는 유키오의 [[자살]]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주제가 가장 많이 나왔다. 다만 대다수 평론가들은 영향이 없을 거라고 일축하였다. == 사건 전개 ==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는 [[다테노카이]] 멤버 4명과 [[이치가야]]에 있는 [[육상자위대]] 동부 방면 총감실을 방문했다. 명목은 우수 대원의 포상이었지만 그곳에서 총감인 [[중장|육장]] 마시타 카네토시(益田兼利) 총감과 이야기를 나누던 유키오는 자신이 가진 명검 [[마고로쿠 카네모토|세키노 마고로쿠]]를 마시타에게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마시타가 칼집에 손을 댄 순간 다테노카이 멤버들이 그를 포박해 인질로 삼았다. 소란이 일어나자 자위대 [[간부]] 8명이 사태를 파악하려고 총감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이들은 [[일본도]]로 맞서 쫓아냈다. 간부 중 어떤 이는 심각한 장애를 입을 정도로 손목에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youtube(6gMZmnmOlNQ)] 당시 영상 이후 유키오는 모여든 자위관들과 언론인들을 상대로 30분간 연설을 하겠다고 나서서 발코니로 나가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가 궐기할 것을 주장하는 일장 연설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위대 [[장교|간부]]들과 [[사병|조사]]들은 '''"[[치킨 호크|자위대하고 상관도 없는 일개 작가가 나대느냐]]"라고 불만을 터트리거나 일부는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왜 점심 때 쳐들어와가지고 밥도 못 먹게 지랄이냐]]", "비겁하게 총감님을 인질로 잡느냐"'''는 등 미시마의 연설에 온갖 비난과 야유를 터트렸다. 유키오의 연설 내용 자체에 동감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서 일부에선 "머리 좀 식히쇼!"라고 하거나 바보라고 하는 등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더군다나 헬리콥터 소리까지 겹쳐서 처음 30분을 연설하겠다고 선포한 유키오는 결국 7분 만에 연설을 접었다. 당시는 종전된 지 겨우 25년 정도 지난 시기였으므로 [[제국주의]] 시기 [[일본군]]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많았다. [[미국]]도 그와 관련해 일본이 제국주의 부활 같은 소리를 그것도 병력을 동원해서 한다면 경고 수준이 아니라 [[더글러스 맥아더|맥아더]]의 원래 계획처럼 농업국가로 돌려놓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 대놓고 말도 안 되는 [[극우]]적인 주장에 동조한다는 건 자위대로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자위대는 정치적 중립에 대해 강조하고 계급 명칭에서 관(官)을 사용하는 등 군대색을 배제하여 군대보다는 경찰에 더 가까운 조직이다. 자위관들도 월급 받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전부 지원해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자위대를 군으로 바꾼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식사 시간 동안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편히 밥 좀 먹고 쉬려는데 군대 코스프레하는 외부인한테 갑자기 지휘관이 인질로 잡히고 칼에 맞아 심한 부상을 입은 대원까지 나온 상황에서 소란의 원흉이 당장 쿠데타를 하자고 외쳐대는 상황이었다. 군인정신보다는 공무원 마인드가 강한 이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처사였다. 유키오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일본의 작가 노가미 야에코(野上彌生子)는 "너무 비통하다. 미시마 씨에게 마이크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쇼와사"라는 [[만화]]를 그린 [[미즈키 시게루]]는 "자위관들이 미시마의 연설을 듣기 싫어한 것은 전후의 [[개인주의]]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2459&cid=40942&categoryId=31507|향락주의]] 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다만 미즈키 시게루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위안부 증언 만화'''까지 그린 양심적인 인물이다.] == 연설문 == 이하는 연설 전문. <>속의 글은 그가 떠드는 군중들에게 호통치는 대목이고[]는 자위대원들의 항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자위대에 이야기해서 유감스럽다. 그러나 나는 [[자위대]]라는 존재를, 자위대를 믿었다. 일본은 경제적 번영에 몰두하여 마침내 정신적 공황에 빠지고, 정치는 모략(謀略)과 기오심(欺傲心)이………. 이것이 일본이다. 자위대만이라도 일본의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위대라는 존재에 ………." >《조용히 들어라! 조용히 들어!》 > >"자위대가 일본의………, 일본의 큰 뿌리(大本)를 고쳐서 나쁠 것은 없다." > >"나는 이러한 현실을 느꼈다. 일본 근본이 왜곡되어 있다. 아무도 이 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 근본이 왜곡되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자위대가 일본 왜곡을 바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 >《조용히 들어라! 조용히 들어!》 > >"그 때문에 나는 자위대를 응원했다." >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겠나? 조용히 해라!》 > >"그래서 말인데, 지난해 10월 21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지난해 10월 21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지난해 10월 21일, [[신주쿠구|신주쿠]]에서 반전 데모가 일어났는데 경찰력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 일을 목격한 날에 나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다고 헌법이 개정되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 >"왜냐하면 소위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이라는 것이, 자민당이라는 것이 경찰 권력을 가지고 어떤 데모든 진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 >"[[계엄령#s-6.2|치안 출동]]은 필요 없어졌다. 치안 출동이 필요 없어졌단 말이다. 치안 출동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은 곧 헌법 개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이해가 되는가?………." > >"제군은 이미 지난 해 10월 21일 이후로 헌법을 지키는 군대가 되었다. [[자위대]]가 지난 20년간 피와 땀으로 기다린 헌법 개정 기회는 사라졌다. 헌법 개정은 이미 정치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다. 마침내 사리지고 말았다. 왜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는가?" > >"나는 지난해 10월 21일부터 1년 동안 자위대가 화내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더 이상 헌법 개정 기회는 없다! 자위대가 국군이 되는 날은 사라졌다! 건군 본의는 없다! 그것이 가장 개탄스럽다. 자위대에게 건군 본의는 무엇인가? 일본을 지키는 일.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 >《잘 들어라! 잘 들어! 조용히! 조용히 해! 얘기를 들어라! 여기 남자 한 놈이 목숨을 걸고 제군에게 외치고 있다. 알겠는가? 알겠는가?》 > >"지금 [[일본인]]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위대가 일어나지 않으면 헌법 개정은 없다. 제군은 영원히 [[미군|미국 군대]]가 되고 만다." > >"[[문민통제|시빌 컨트롤(civil control)]]……… 시빌 컨트롤에 중독되었다. 시빌 컨트롤이란 새 헌법 아래에서 억압받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 >"……… 그래서 나는 4년을 기다렸다. 4년을 기다렸단 말이다. 자위대가 일어나는 날을……… 그랬던 자위대의……… 최후의 30분, 최후의 30분을……… 기다리겠다." > >"제군은 [[무사(역사)|무사]](武士)다. 제군은 무사(武士)다. 무사(武士)가 [[평화헌법|자기를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는가? 왜 자기를 부정하는 헌법을 위해 일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헌법에 순종하는가? [[헌법]]이 존재하는 한, 제군은 영원히 구제받지 못한다." > >"[[일본국 헌법#s-3.4|지금 헌법]]은 끝없는 정치적 모략을 통해 제군이 합헌(合憲)인 것처럼 위장했으나, 자위대는 위헌(違憲)이다. 자위대는 위헌(違憲)이다. 너희들도 위헌(違憲)이다. 마침내 자위대가 [[헌법]]을 지키는 군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가! 나는 제군이 그것을 부정하는 날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제군은 사소한 것에 눈이 어두워 진정 일본을 위해 들고일어날 때를 놓쳐버렸다." > >【그럼 왜 우리 총감(總監)님에게 부상을 입힌 건가?】 > >"저항했기 때문이다. 제군이 일본을 허수아비로 만든 헌법에 순종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제군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와 함께 들고 일어날 놈은 없는가?" > >"…한 놈도 없군. 좋다! 무(武)는 칼이다. 자신의 사명이지………." > >【그래도 무사인가! 그래도 무사인가!】 > >"이제 제군이 헌법 개정을 위해 들고 일어나지 않겠다는 것을 충분히 알겠다. 이것으로 자위대에게 품은 내 꿈은 사라졌다. 여기서 천황 폐하만세를 부르겠다." >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 사망 == 경시청 검사결과에 따르면 계획한 대로 [[할복]] 자살을 결심한 유키오는 상의를 벗고 자신의 배에 [[탄토|단도]]를 찔러넣었다. 원래는 할복하고 배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피로 유서를 쓸 생각이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글씨를 쓰는 것은 무리였다고 한다. 대신 칼로 배를 가른 뒤 스스로 내장을 꺼냈고 이 고통을 이기려고 혀를 깨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할복한 유키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유키오의 [[카이샤쿠]]로 예정된 모리타 마사카쓰는 유키오의 목을 내리치는 데 2번이나 실패했다. 결국 검도 유단자인 고가 히로야스가 유키오의 목을 내리쳤다.[* 결국 히로야스는 자살 방조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모범수로 가석방되었다. 1947년생으로 현재도 생존 중이다.] 이후 미시마 유키오를 가장 믿고 따르던 충신 모리타 마사카쓰도 곧바로 할복 후 “어서 목을 쳐!” 소리치고 나서 목이 내려쳐 사망했다. 구글 검색 등 통해 볼 수 있는 유키오의 시신이나 자살 현장 사진을 보면 흑백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처참함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당사자인 유키오는 그저 편안한 표정을 짓고 최후를 맞았지만 할복 현장은 완전히 흥건한 피바다에다 엉망이 된 시신이 뒹구는 바람에 지옥 그 자체였다. 이후 참수된 유키오의 머리와 시신을 봉합한 뒤 장례를 치렀다.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유키오가 할복한 이유를 두고 갖가지 분석이 제기되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야 미시마가 외친 대로 일본의 [[평화헌법]]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지만 유키오 자신도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유키오는 "내가 나가이 가후[* 일본의 대표적인 관능 소설가.]처럼 늙는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는 [[영웅주의]]에 심취해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다. 어떤 글에 따르면 미시마는 "[[사이고 다카모리]]는 50살에 [[영웅]]으로 죽었다. 지금의 나이라면 나도 영웅의 최후 연령에 도달한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적었다고 한다.[* 참고로 사망 당시 유키오는 45세였다.] 그를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일본과 일본인을 향한 애정이 자기애를 초월한 달관적인 경지에 도달해서 죽음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사건 이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총감실 현장을 방문했다. 유키오와 절친이었던 [[이시하라 신타로]][* 이때까지만 해도 소설가로 명망이 있었다.]도 현장을 찾긴 했지만 총감실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시마가 자살할 때 쓴 [[마고로쿠 카네모토|세키노 마고로쿠]]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로 한때 미시마와 [[검도]]로 친분을 쌓았던 [[후나사카 히로시]]에게서 받은 것으로 미시마 사건 3년 뒤인 1973년 후나사카는 '''세키노 마고로쿠-미시마 유키오, 그 죽음의 비밀(関ノ孫六―三島由紀夫、その死の秘密)'''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순박했던 미시마와의 추억을 회고하는 동시에 미시마가 어떻게 그러한 인간이 되었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미시마 사건을 계기로 1973년에 자위관 복무선서에 '[[일본국 헌법]] 및 법령을 준수하며'라는 문장이 들어갔다. 자위대 내부에서 미시마의 의견 자체에는 공감하는 자위대원들이 상당수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위헌의 여지가 있는 자위대의 입장상 주저하고 있었지만 미시마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 덕분에 자위대가 헌법 준수를 확실히 하게 된 것이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