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딩즈린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중국어: 丁子霖 영어: Ding Zilin 딩즈린은 1936년 12월 20일 또는 1939년 1월 1일에 태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주화 운동가]]이다. 딩쯔린이라 표기하는 경우도 있고, 중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쪽이 권고에 가깝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주화 운동|중국 민주화 운동]]의 [[대모]]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의 [[인민대학]]에서 철학교수로 근무했다. 1970년에 결혼한 남편인 장페이컨(蔣培坤, 1934-2015)은 미학과 교수였다. 둘째 아들이었던 장졔롄(蒋捷连)은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당시에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http://news.bbc.co.uk/media/images/40921000/jpg/_40921019_dingandson203.jpg|아들과 생전에 찍은 사진으로 BBC에서 제공했다.]] 이후 비슷한 이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과 만나게 되었다. 약 150곳의 가족이 모였고, 이곳은 [[천안문 어머니회]](天安门母亲)로 알려지게 되었다. 딩즈린은 [[유족]] 모임을 이끌었고, 감시와 도청 등에 시달렸다. 1991년엔 출판이 금지되었고, [[중국공산당]]의 당적 또한 박탈당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하면서, [[비폭력주의|비폭력]] 운동을 유지하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인권 문제가 제기될 것을 우려한 중국 정부에 의해 베이징에서 추방되었다가 올림픽 이후에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https://shortwave.tistory.com/6|#]] 2015년에 [[류사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지지하였다.[[https://www.yna.co.kr/view/AKR20110113102700009|#]] 중국 당국이 출판이나 집회는 막아도 천안문 6.4 항쟁 희생자 유족들의 5주년, 10주년, 20주년 추념까지 막지는 않았는데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이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https://www.yna.co.kr/view/AKR20150205171800074|#]] 2019년 천안문 6.4 항쟁 30주년에도 베이징을 떠나 고향인 [[장쑤성]]으로 가도록 압박을 받았다.[[https://www.yna.co.kr/view/AKR20190521094600074|#]] [[분류:1936년 출생]][[분류:중화인민공화국의 민주화 운동가]][[분류:천안문 6.4 항쟁]][[분류:중국의 인권운동가]]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