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나카지마 사토시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오릭스 버팔로즈/간략(코칭스태프))] ---- || '''{{{#ffffff 나카지마 사토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일본프로야구 감독)] ---- [include(틀: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 ||<-5> [br][[파일:오릭스 블루웨이브 심볼.svg|width=70]][[파일:2006닛폰햄우승.png|width=auto&height=70]][br]'''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 '''[[1996년 일본시리즈|{{{#FFC74B 1996}}}]]''' || '''[[2006년 일본시리즈|{{{#ffffff 2006}}}]]''' || ---- ||<-5>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우승 엠블럼 V5.svg|width=70]][br]'''NPB 일본시리즈''' '''우승감독''' || || '''[[2022년 일본시리즈|{{{#9e751e 2022}}}]]'''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 230609 나카지마 사토시.jpg|width=100%]]}}} || ||||<:><#000019>{{{#ffffff '''오릭스 버팔로즈 No.78'''}}}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fff; font-size: .8em" {{{#000000 '''★'''}}}}}} || ||<-2> '''{{{#ffffff {{{+2 나카지마 사토시}}} [br] 中嶋聡 | Satoshi Nakajima}}}''' || ||<:> '''생년월일''' ||[[1969년]] [[3월 27일]] ([age(1969-03-27)]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 ||<:> '''출신지''' ||[[아키타현]] [[기타아키타시]] || ||<:> '''학력''' ||아키타현립 타카노스 농림고등학교[* 2011년에 아키타현립 아키타호쿠요 고등학교에 병합되어 2013년 폐교했다.] || ||<:> '''포지션''' ||[[포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1986년 드래프트 3위 || ||<:>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즈|한큐/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1987~1997)''' [br][[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세이부 라이온즈]] (1998~2002) [br][[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3) [br]'''[[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4~2015)''' || ||<:> '''지도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군 배터리코치 (2007~2015, 2018) [br][[오릭스 버팔로즈]] 2군 감독 (2019~2020) [br][[오릭스 버팔로즈]] 감독대행 (2020) [br]'''[[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2021~)''' || ||<:> '''프런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프런트 (2016~2017)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전 야구선수, 현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현역시절 포지션은 포수였으며, 1987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29년동안 오랜 선수생활을 해온 걸로 유명하다.[* 다만 2007년부터는 선수와 1군 배터리코치를 겸직하는 사실상 플레잉코치 신분이었다. 이유는 후술.] == 선수 경력 == [[파일:나카지마 한큐.jpg]]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 [[파일:나카지마 블루웨이브.jpg]]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파일:나카지마 세이부.jpg]]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파일:나카지마 베이스타스.jpg]]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 [[파일:나카지마 닛폰햄.webp]]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 오릭스 블루웨이브 === 아키타현립 타카노스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드래프트 3위로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했으며, 입단 2년차였던 1988년 10월 23일 한큐의 에이스 투수 [[야마다 히사시]]의 은퇴 경기이자 [[한큐 브레이브스]]의 이름을 걸고 치루는 마지막 경기(vs [[롯데 오리온즈]],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개최)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우에다 토시하루]]의 추천 하에 야마다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 [[한큐 브레이브스]] 최후의 포수로써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팀명이 [[오릭스 브레이브스]]로 바뀐 1989년부터 강한 [[어깨]]를 앞세워[*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강한 [[어깨]]로 유명했으며, 선수생활 후반기였던 2006년에도 [[한신 타이거스]]와의 [[교류전]]에서 개최된 스피드건 콘테스트에서 '''구속 146km/h'''를 찍었을 정도였다.] 기존 레귤러였던 후지타 히로마사를 제치고 주전 포수로 자리잡아 그 해 121시합에 출장하여 [[골든글러브(일본프로야구)|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다음 해인 1990-91시즌엔 2년 연속으로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했다. 이후엔 타격 부진 등으로 레귤러에서 밀려나 타카다 마코토[* 동명의 [[혐한]]과는 상관 없는 인물로, 나카지마와 같은 해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의 드래프트 3위 지명을 받았으나 [[무라타 신이치]] 등에게 밀려 1992년 오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나카지마 등과 주전 경쟁을 벌이면서 1996년에 오릭스의 2연패를 이끈 공로로 포수 [[골든글러브(일본프로야구)|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은퇴 후엔 데뷔팀 요미우리에서 장기간 코치직을 역임했다.], 미와 타카시와 출장기회를 나눠가며 주전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1995-96시즌에 다시금 주전포수로써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퍼시픽리그]] 2연패에 공헌하면서 [[베스트나인]]을 1차례(1995[* 같은 해 [[사토 요시노리]]와 [[배터리]]를 짜 역대 최초 40대 투수 [[노히트 노런]](8월 26일 vs [[킨테츠 버팔로즈]], [[후지이데라 구장]] 개최)을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사토 요시노리의 고향팀인 니혼햄에서 재회해 다르빗슈의 포텐만개에 함께 기여한적 있다. 그리고 10년만에 또다시 우승반지를 득템했다.]) 수상하기도 했다. === 세이부 라이온즈 === 1997년 시즌 종료 후에 [[FA 제도|FA]]를 선언하여 [[MLB|메이저리그]]에 도전하였고,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한때 계약 직전까지 갔었으나 주전이 아닌 3순위급 포수로써의 기용에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는 조건 때문에 결국 입단 교섭이 결렬되어 메이저리그 도전을 단념하고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게 된다. 세이부에서는 부동의 주전포수 [[이토 쓰토무]]와 병행하여 출장했고 주로 [[마츠자카 다이스케]]가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에 주전 포수로 나섰으나[* 마츠자카가 갓 입단한 직후의 [[시범경기]]에서 이토와 배터리를 짠 경기에선 호흡이 잘 맞지 않았던 반면 나카지마와 배터리를 짠 경기에선 결과가 잘 나오자 세이부 수뇌진들이 '''"아직 신인인 마츠자카에게 있어선, 자신의 리드대로의 투구를 요구하는 이토보다는 투수의 상태에 따라 리드를 조정하는 나카지마가 더 좋은 결과를 낼 것 같다"'''라고 결론을 내리며 마츠자카와 나카지마가 함께 배터리를 짜게 했다고 한다.]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계속되는 타격 부진과 세이부 구단의 리빌딩 체제 돌입으로 점차 출장기회가 감소한 끝에 2003년 이시이 요시히토와의 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이적했다. 그러나 요코하마에서도 [[나카무라 타케시]]와 아이카와 료지에게 밀려 19시합 출장에 그쳤다. === 닛폰햄 파이터즈 === 시즌 종료 후 현금 트레이드로 2004년부터 [[홋카이도]]로 연고지를 옮기게 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이적했다. 이미 선수로써의 기량이 한계에 달한 탓에 닛폰햄에서도 백업에 머물렀지만 베테랑 포수로써의 경험을 살려 주전 포수인 타카하시 신지, 츠루오카 신야의 백업 겸 마무리 투수인 마이클 나카무라의 전담 포수로써 팀내 입지를 어느 정도 확보했고 2006년 시즌엔 닛폰햄의 25년 만의 [[퍼시픽리그]] 우승과 함께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맛보게 된다. 2007년 시즌부터는 1군 배터리코치를 겸직하면서 선수 겸 코치를 맡게 되었고, 이 시기부터 사실상 코치 업무에 전념하면서 1군에 등록된 [[포수]]가 부족해질 때마다 간간히 경기에 출장하는 정도로[* 플레잉 코치를 역임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110경기에만 출장했는데, 그마저도 절반이 넘는 60경기를 코치 첫 해인 2007년에 출장했고 그 이후론 나머지 8년을 다 합쳐서 50경기만 뛰었다. 이마저도 거의 대수비로만 나왔다 보니 타석에는 9년 간 26번밖에 나오지 않았고 2011~2012년, 2014~2015년에는 아예 타석에 들어서지 않았다. 참고로 프로 마지막 안타는 2009년에 기록.] 선수생활을 이어오다 2015년 시즌을 끝으로 '''29년''' 간의 선수생활을 끝마치고 은퇴했다. 무려 29년이나 선수로 뛴 덕분에 은퇴 시점에서는 [[한큐 브레이브스]] 재적 경력을 보유한 마지막 선수이기도 했다. 나카지마가 이렇게 오래 뛸 수 있었던 이유는 현역 후반기를 보냈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1군 구장인 [[삿포로 돔]]과 2군 구장인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단점이 컸다.[* 그래서 닛폰햄의 1-2군 선수 교체는 수도권 원정 때 주로 진행된다.] 1군-2군 간 엔트리 교체가 힘들다보니 이러한 팀 사정상 특히 수급이 가장 힘든 [[포수]] 포지션이 부족해지는 것을 대비하여 베테랑 [[포수]]인 나카지마를 선수 겸 코치로 등록시켜 1군 경기에서 뛸 [[포수]]가 부족할 때마다 나카지마를 긴급히 보충용 포수로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덕분에 무려 29시즌이나 현역 선수로 뛰며 연속 1군 등록 시즌 최고기록, 통산 1군 등록 시즌 최고기록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 지도자 경력 == === 닛폰햄 파이터즈 === 2015년 10월 1일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홈 최종전에서 9회 대수비로 출장한 게 그의 고별 경기가 되었고, 시즌 후 선수로써 완전히 은퇴함과 동시에 코치직에서도 물러나 닛폰햄 구단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 닛폰햄의 1군 배터리 코치로 복귀했으나 1년 만에 사임했다. === 오릭스 버팔로즈 === 2019년 시즌부터 [[오릭스 버팔로즈]]의 2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블루웨이브에서 버팔로즈로 팀명이 바뀐 친정팀에 22년만에 복귀했다. 2020년 시즌 도중 [[니시무라 노리후미]]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퇴하자 감독대행으로 잔여 시즌을 지휘했고, 잔여시즌에서 29승 35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추락한 팀을 잘 추스른 공적을 인정받아 2021년 시즌부터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했다. 정식으로 감독에 취임한 첫해인 2021년엔 늘 그렇듯 하위권으로 처지며 좋지 못한 출발을 보였지만, [[교류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상승세를 타며 팀을 예상 밖의 [[퍼시픽리그]] 선두로 이끌면서 주목받았다. 후반기에 다소 주춤하면서 매직넘버를 [[치바 롯데 마린즈]]에 넘기는 등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끝내 시즌 막판에 치바 롯데의 자멸로 자신이 주전 포수를 맡았던 전신 [[오릭스 블루웨이브|블루웨이브]]의 1996년 우승 이래 25년 만의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2014년부터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이후 생긴 [[비밀번호(스포츠)|비밀번호]]를 완벽하게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2021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로 직행해 롯데를 상대로 압도적인 투수력을 바탕으로 완승을 거두며 [[2021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에 진출했다. 상대는 [[1995년 일본시리즈]]에서 대결했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당시의 패배를 갚을 기회를 잡게 되었으나 아쉽게도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패배하면서 25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는 이뤄내지 못했다. 2022년엔 전년도에 비해 하락한 타선 지표와 [[코로나19]] 전력이탈 등으로 시즌 중순까지 하위권에 머무르는 등 힘든 싸움을 이어갔으나 전반기 막판부터 연승을 거듭하면서 단박에 [[소뱅 호크스|소프트뱅크]], [[라쿠텐 이글스|라쿠텐]], [[세이부 라이온즈|세이부]]와 함께 우승후보로 등극했다. 이후 8월부터 [[라쿠텐 이글스|라쿠텐]], [[세이부 라이온즈|세이부]]가 하락세를 탄 것을 틈타 시즌 막판까지 꾸준히 승수를 올리며 유력한 우승후보인 [[소뱅 호크스|소프트뱅크]]보다 잔여시합이 모자라는 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소뱅을 배후에서 추격해 왔고, 9월 24일엔 [[오릭스 버팔로즈]] 체제 이래 처음으로 2년 연속 A클래스 및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 구단 역사상 2년 이상의 연속 A클래스는 [[오릭스 버팔로즈|오릭스 브레이브스/블루웨이브]] 시대였던 1989~1999년 이래 무려 23년 만이다. 21세기 이후로는 2021년 우승 이전까지 단 2차례(2008, 2014)만 A클래스에 들어갔고 이마저도 단년에 그쳤으나 이번 2021-22시즌에 연속 A클래스를 기록하게 되었다.]지으며 다음날 재계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일 [[라쿠텐 이글스|라쿠텐]]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5-2로 역전승을 거두고 같은 날 소프트뱅크가 [[치바 롯데]]에게 3-5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구단 역사상 26년만의 [[퍼시픽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이날 경기로 양팀 모두 76승 65패 2무, 승률 .538로 동률이 되었으나 오릭스가 소뱅에게 상대전적 우세를 기록했기 때문에(15승 10패) 동률 계산에서 우선적으로 [[승자승|상대전적 우세팀을 상위팀으로 간주한다는]] [[퍼시픽리그]] 규정에 따라 오릭스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뒤이어 2년 연속 동일 매치가 된 [[야쿠르트 스왈로즈|야쿠르트]]와의 [[2022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에선 초반 3차전까지 강타선을 앞세운 야쿠르트에게 압도당했으나, 이후 출중한 투수진을 앞세워 팀을 추스렀고 때마침 야쿠르트의 타선 악화와 수비진의 자멸까지 겹치면서 4차전 이후 4연승을 거두며 4승 1무 2패로[* 2차전이 연장 12회 무승부] 작년의 스코어를 그대로 되돌려주면서 우승 실패를 설욕함과 동시에 '''26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해냈다!''' 이로써 선수, 감독으로써 오릭스의 우승을 모두 경험하게 되었다.[* 현지에서도 마무리 [[제이콥 웨그스펙]]이 우승을 확정짓는 삼진을 잡자 배터리가 아닌 나카지마 감독을 비추기도 했다.] 2023년에도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3파전 상황에서 실속해버린 소프트뱅크, 치바 롯데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승수를 쌓아나갔고, 결국 9월 20일 홈 경기에서 리그 3연패를 확정지었다. 한큐-오릭스 프랜차이즈로써 3연패를 달성한 감독은 [[니시모토 유키오]], [[우에다 토시하루]]에 이은 3번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여전한 투수력을 자랑하며 지바롯데를 제압하고 3년 연속 [[2023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간사이 라이벌인 [[한신 타이거스]]에게 투수 기용에서 아쉬움을 남기면서 3승 4패로 패하며 일본시리즈 2연패는 무산되었다. == 여담 == * 별명은 '''[[상어]](サメ)'''로, 상어와 눈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 오릭스와 한신에서 뛰었던, 느린 구속을 엄청난 제구력과 고각도 커브로 커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좌완투수 [[호시노 노부유키]]의 투구를 '''맨손으로''' 받았다는 포수가 바로 나카지마 사토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카지마는 올스타전 부대행사인 스피드왕 콘테스트에서 마운드에 올라 최고구속 146km/h를 기록할 정도로 강견이었다. * 상술했듯 [[야마다 히사시]]의 은퇴 경기이자 [[한큐 브레이브스]]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에다 토시하루]] 감독의 천거로 야마다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다. 이후 나카지마가 하위권에 머물던 팀을 2021년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어내자 야마다는 그의 지도력을 칭찬하면서 나카지마가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벤치에서 어떤 퍼포먼스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하나로 잘 뭉치고 활기찬 분위기의 팀으로 오릭스를 바꿨다고 평했다. * 2008~2011년에 닛폰햄 감독을 역임한 [[나시다 마사타카]]는 재임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나카지마의 선수를 보는 안목을 높게 평가했다. 당시 주전 포수였던 [[츠루오카 신야]]가 부진하자 당시 백업포수였던 오노 쇼타를 천거하여 이후의 주전 포수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 일화를 언급하며 나카지마가 오릭스 감독으로 부임 후 신예 선수들의 발굴에 노력한 점이 팀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 인터뷰 때 선수를 따뜻하게 격려하는 한편 팀 상황에 대해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등 신중한 언행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대신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플레이에는 강하게 쓴소리를 한다고 한다. [[https://bunshun.jp/articles/-/56982|#]] * 스프링캠프에서 베테랑들에게는 더 고강도 연습메뉴를 소화하도록 요구하는 편인데, 세트수를 걸고 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모리 토모야]]에게 은근슬쩍 가위를 내라고 압력을 넣은 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2e2hKUBKmI| ]]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1969년 출생]][[분류:1987년 데뷔]][[분류:2015년 은퇴]][[분류:기타아키타시 출신 인물]][[분류:우투우타]][[분류:포수]][[분류:일본의 야구감독]][[분류:오릭스 버팔로즈/은퇴, 이적]][[분류: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은퇴, 이적]][[분류: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은퇴, 이적]][[분류: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은퇴, 이적]]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