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곽현신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郭玄信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로 예주 영천군 양적현 사람. == 생애 == 알자를 지냈고 아버지인 곽탄이 [[조조]] 휘하에서 감군이었는데, 218년에 [[길본]] 등이 허도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이에 연좌되어 형벌을 받아 집에 머물게 되었다. 전농사마에게 수레를 몰 사람을 청해 [[등애]], [[석포]]가 수레를 몰게 되어 10여 리 길을 가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두 사람에 장래에 대성해 좌상이 될 것이라 했다. == 창작물에서 == 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영천 곽씨로 곽가의 친척으로 나오고 조조가 [[유비]]를 상대하기 위해 한중에서 싸우는 와중에 천자의 시종에 관한 일을 아뢰기 위해 왔는데, 조조가 [[경기(삼국지)|경기]] 등이 허도에서 군사를 일으킨 사건으로 황궁의 시위를 내쫓자 곽현신은 시종을 새로 선발하기 위해 수 개월에 걸쳐 2명의 적합한 인물을 뽑아 [[조비]]에게 허가받으려다가 허락해주지 않아 한중에 있는 조조를 찾아갔다. 조조가 황상은 특별히 처리할 정무도 없이 궁궐에서 평안히 계시는데 굳이 많은 시종이 필요하겠냐고 묻자 곽현신은 2명만 뽑았다면서 등애, 석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조조는 안 된다면서 나이가 어린 자일수록 더 경계하고 비천한 출신일수록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면서 마부나 목동이면 야심도 없냐고 반문했다. 곽현신이 나이가 많은 사람을 뽑을 수 없지 않냐고 하자 조조는 그만 뽑으라고 했으며, 조조가 형주 남양군 출신을 뽑았다면서 [[위풍(삼국지)|위풍]]의 사건을 거론하면서 질책하자 시무룩해진 채로 물러갔다. [[분류:후한의 인물]][[분류:몰년 미상]]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