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공화인민당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다른 뜻1,other1=약칭이 CHP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경찰 조직,rd1=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 [include(틀:튀르키예 대국민의회의 원내 구성)] ||<-2> [[파일:공화인민당 로고.svg|width=100%]][br][* 공화인민당의 상징은 6개의 화살(Altı Ok)로 각각 [[공화주의]](Cumhuriyetçilik), [[민족주의]](Milliyetçilik), [[대중주의|인민주의]](Halkçılık), [[국가주의]](Devletçilik), [[세속주의]](Laiklik), 혁명주의(İnkılapçılık)를 상징한다.] || ||<-2> {{{#white '''Cumhuriyet Halk Partisi'''}}}[* 줌후리옛 할크 팔티시] || || {{{#white '''약칭'''}}} ||CHP || || {{{#white '''영문명칭'''}}} ||Republican People's Party|| || {{{#white '''한글명칭'''}}} ||공화인민당|| || {{{#white '''창당일'''}}} ||[[1923년]] [[9월 9일]][br][[1992년]] [[9월 9일]] (재창당)|| || {{{#white '''슬로건'''}}} ||사람이 먼저, 단결이 먼저, [[튀르키예]]가 먼저[br](Önce insan, önce birlik, önce Türkiye)|| || {{{#white '''이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케말주의]][br]세속민주주의[* 정의개발당의 [[보수민주주의]]에 대조되는 용어 ][br][[사회민주주의]][br][[친유럽주의]][br][[급진주의]][* 케말 파샤 시절 공화인민당은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보다는 [[좌익]]적 [[자유주의]], [[급진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다. 케말 파샤가 내세웠던 [[라이시테|초강경 세속 정책]]도 [[프랑스]]식 급진주의의 산물이다. 이스탄불 대신 앙카라를 수도로 한 것 역시 당시만 해도 이스탄불은 구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왕당파]] 근거지 느낌이 있었고, 반대로 앙카라는 [[공화주의|공화파]] 세력의 근거지 느낌이 있었기 때문.]|| || {{{#white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좌파]][* [[https://www.aljazeera.com/news/2019/7/15/erdogan-says-turkey-aims-to-produce-s-400s-jointly-with-russia|알자지라 기사]]]|| || {{{#white '''당사'''}}} ||[[앙카라]] 찬카야 구[br]쇠위트외쥐 동 아나돌루 대로 12번지|| || {{{#white '''당원 수'''}}} ||1,257,110명^^(2021년 기준)^^ || || {{{#white '''대표'''}}} ||[[외즈귀르 외젤]]|| || {{{#white '''정당 연합'''}}} ||민족연합(해체)|| || {{{#white '''유럽 정당'''}}} ||[[유럽 사회당]]^^(협의회)^^ || || {{{#white '''청년 조직'''}}} ||청년 공화인민당|| || {{{#white '''국제 조직'''}}} ||[include(틀:사회주의 인터내셔널)][br][include(틀:진보동맹)]|| || {{{#white '''대국민의회 의석수'''}}} ||130석 / 600석|| || {{{#white '''웹사이트'''}}} ||[[http://www.chp.org.tr/|[[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4px]]]] [[https://www.facebook.com/herkesicinCHP|[[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4px]]]] [include(틀:트위터 로고, 링크=herkesicinchp, 크기=24px)] [[https://www.youtube.com/user/chpgenelmerkez|[[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px]]]]|| [목차] [clearfix] == 개요 == [[튀르키예]]의 [[정당]]. 중앙당사는 수도 [[앙카라]]의 찬카야(Çankaya)구에 위치한다. [[1923년]] [[9월 9일]] 인민당으로 출발해 [[1924년]] 10월에 '공화인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튀르키예의 국부로 불리며 존경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동료인 [[이스메트 이뇌뉘]] 초대 총리(이후 제2대 대통령)의 주도로 창당되었으며, 튀르키예 공화국의 모든 역사를 함께한 최장수 정당이다. 아타튀르크와 이뇌뉘의 집권 시절 강력한 [[세속주의]] 정책으로 현대 튀르키예의 기틀을 닦으며 한때 일당우위지배체제를 구축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했으나, [[이슬람주의]]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정권교체로 실각한 이후 이슬람주의 정당과 세속주의 군부 쿠데타 세력이 대립하는 구도 속에 정치적 위상과 지위가 애매모호해져버렸다. 그러면서 민주당 이후 조국당과 복지당 등을 거쳐 탄생한 [[정의개발당]]이 우위를 점하며 야당으로 밀려난 뒤 현재까지 만년 제1야당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세속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하다보니 그 성향도 [[이슬람주의]]가 보수우파로 자리 잡은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도좌파로 이동하였다. 현재 [[정의개발당]] 소속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적·권위주의적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야권연합을 주도하는 원내 제2당, 제1야당이다. 점점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정부와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사회 추세 속에 언제 다시 집권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 역사 == 창립자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로, [[1920년대]] 대국민의회군의 후예가 [[로잔 조약]] 이후 인민당이 되었고, 아타튀르크가 공화인민당으로 바꾼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아타튀르크와 함께 초기 튀르키예 공화국을 이끈 [[이스메트 이뇌뉘]]도 당연히 공화인민당 소속. 그렇게 튀르키예 공화국 초기에는 사실상 [[일당제]] 국가의 집권당이었으나, [[1946년]] 이후 [[다당제]]가 시행되기 시작하고 [[1950년]] 5월에 이뇌뉘가 [[튀르키예 대통령|대통령직]]에서 사임한 이후부턴 절대 다수당 지위에서 내려왔다. [[1990년대]] 이후부턴 다수당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1999년]] CHP-DSP연정 때이다.[* DSP는 [[1980년]] [[케난 에브렌]]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당 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해산되었을 때, 당시 당수이던 뷜렌트 에제비트가 공화인민당의 일부를 이끌고 만든 정당이다. 우리말로는 [[민주좌파당(튀르키예)|민주좌파당]]이다. 다만 이때와 달리 최근 들어서는 서로간 협력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케말 클르츠다르오을루(Kemal Kılıçdaroğlu) 공화인민당 대표가 취임한 이후로 더하다. 클르츠다르오을루는 [[자자족]]이고 [[알레비]] 교도이기 때문에 아무리 [[세속주의]]여도 민주좌파당 입장에서는 좀 어색한 면도 있기 때문인듯 하다.] [[2001년]]이 튀르키예에서 [[세속주의]] 정당이 연립정권으로나마 집권한 마지막 해이고, 세속주의 세력의 방어자로 불린 세제르는 [[2000년]]에 대통령이 되어 [[2007년]]까지 튀르키예를 이슬람화의 물결에서 보호하였다. 허나 2007년 이후부턴 세속주의 세력이 야당 신세이다. 세제르는 세속주의자였지만 [[무소속]] 대통령이였고 [[간선제]]로 선출되었다. === [[2010년대]] 이후 === [[2010년대]] 기준으로 당 지도자는 [[알레비]]교도이자 [[자자인]]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Kemal Kılıçdaroğlu)다.[* 케말의 아들이 [[한국]]에 [[유학]] 비슷하게 간 것이 뉴스로 나온 바 있었다.] 전 당수는 데니즈 바이칼이었으나, 부패 스캔들이 있었다. 사실 튀르키예에서 알레비 교도는 대우가 그닥 좋지 못해 제1야당의 총재가 알레비라고 논쟁이 일기도 했는데, 그는 "튀르키예에서 알레비를 믿는 것이 죄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튀르키예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2016년]] [[7월 15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트윗을 통해 "[[민주주의]]의 주인이 되자"라고 말하면서 당시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튀르키예 쿠데타]]에 반대했다. 허나 쿠데타가 실패한 후 [[에르도안]] 대통령의 숙청 작업에 대해서도 공화인민당은 반대의 입장을 보이며 쿠데타 과잉 숙청 피해 접수 창구를 만들기도 했다. [[2018년]] 4월, 공화인민당 의원 15명이 집단으로 탈당하여 같은 야당인 [[좋은 당]]에 입당했다. 이는 '''당 지도부가 지시한 것'''으로, 튀르키예 정부와 선관위가 '창당 후 6개월이 지나고 전당대회를 개최한 정당만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선거법을 근거로 창당 6개월이 안된 좋은 당의 선거 참여를 막으려 하자[* 사실 튀르키예 정부, 선관위가 좋은당의 선거 참여를 막으려고 일부러 창당 6개월이 되기 전 시점으로 선거일을 잡은 게 크다.] 해당 조항을 무력화할 수 있는 조항인 '20석 이상 의석의 정당은 해당되지 않는다'를 이용하기 위해 '''자당 의원들을 좋은당에 꿔준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이를 '튀르키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였고, 이를 통해 공화인민당과 좋은당의 야권연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선 후보 등록이 끝난 6월 해당 의원 15명은 공화인민당으로 복당, 다시 131석으로 복귀했다. [[2018년]] [[6월 24일]] 튀르키예 대선에서 에르도안이 승리했지만, 무하렘 인제 후보는 30% 이상의 득표를 얻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8673539|#]] [[2019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을 기존의 6석에서 11석까지 늘리는 등 크게 선전했다. 튀르키예에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0/07/777171/|외환위기 경고]]가 나오는 등 에르도안 체제하에서 경제 문제가 불거지자 대도시 중심으로 공화인민당이 꽤 지지를 받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앙카라]]를 25년만에 되찾아왔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 튀르키예 병사의 장례식에 참여했던 공화인민당 대표가 폭행당한 일이 발생되자 공화인민당을 포함한 튀르키예 야당은 반발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0779716|#]] [[2019년]] [[5월 6일]]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를 치름에 따라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항의시위가 발생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11&aid=0003550298|#]][[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28&aid=0002452836|#]] 동년 [[6월 23일]] 실시된 재선거에서 [[에크렘 이맘오을루]](Ekrem İmamoğlu) 후보가 다시 승리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3&aid=0009302162|#]][[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32&aid=0002947587|#]] 3월 선거보다 오히려 더 큰 격차로 공화인민당 후보가 승리함에 따라 이 결과로 [[정의개발당]]은 튀르키예의 주요 도시인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3곳을 모두를 잃었으며 정권심판론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스탄불 지방법원이 공화인민당의 이스탄불 지부장 자난 카프탄즈오을루(Canan Kaftancıoğlu)에게 징역형을 선고하자 공화인민당은 항소하겠다고 밝혔고 지지자들도 반발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068471|#]] [[2019년]] [[9월 8일]] [[에크렘 이맘오을루]] 이스탄불 시장은 전임자의 흥청망청 행정을 고발할 목적으로 호화 브랜드를 포함한 수백대의 [[자동차]]를 전시했고 당연히 이는 전임 시장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을 일으켰다.[[https://news.v.daum.net/v/20190908190835099|#]] 튀르키예 정부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시리아 북동부에서 군사작전을 결정하자 공화인민당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를 비판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130349|#]] [[2021년]] 들어 [[코로나 19]] 방역과 [[시리아]] 관련 정책, 갈수록 보수화되는 사회에 지친 국민들의 여론이 현직 대통령 [[에르도안]]에 등을 돌림에 따라 야권의 지지율이 덩달아 오르고 있다. 공화인민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히는 이맘오을루 이스탄불 시장이나 [[만수르 야바시]] 앙카라 시장이 [[2023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에서 여유롭게 에르도안을 꺾는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고, 공화인민당과 협력 관계인 [[좋은 당]] 소속 후보와 대결해도 에르도안이 패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반에르도안과 [[의원내각제]]로의 복귀를 골자로 야당 6자 연합을 만들어내고 [[3월 6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단일 후보로 선출했다.[[https://www.trthaber.com/haber/gundem/6li-masanin-adayi-kemal-kilicdaroglu-751034.html|#]] 그러나 에르도안이 예상 외 선전을 하면서 [[2023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만다. 결국 대선 패배 후 6개월, 당대표 경선에서 결선투표 끝에 [[외즈귀르 외젤]] 원내부대표가 승리하면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13년만에 당대표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현재 당내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시장이 2023년 7월부터 당내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변화(Değişim) 그룹을 출범하고 외젤 원내대표와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지도부 교체가 예정되어있었다는 평.[* 한편 클르츠다로을루 전 대표는 대선 때 에르도안의 금권선거와 여러 가지 선거부정을 비판하던 모습이 무색하게 정작 자신이 주체가 된 당대표 경선 때는 선거 전 대의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돌렸으며, 투표 전 정견 발표 시간에는 다른 후보의 연설은 시간을 촉박하게 설정해 놓고 압박을 주거나 아예 중간에 연설을 끊어 버리기도 했지만 본인은 투표 개시 시간을 훨씬 넘겨서 40분씩이나 연설을 하는 등 대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에르도안]]이 한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는 추태를 부렸다.] == 성향 == 유럽 국제 사회주의 연맹에 소속되어있으며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사회자유주의]], 케말주의가 강령이다. 당령은 케말리즘의 6대원칙인 공화주의, 민족주의, 인민주의, 국가주의, 세속주의, 혁명주의다. 이는 튀르키예 헌법에 포함된 것이다.[* [[1960년대]]까지는 [[반공주의]], [[권위주의]] 성향도 있던 일종의 [[빅텐트]] 정당이었으나, [[1965년]]을 전후해 초대 총리 겸 2대 대통령 [[이스메트 이뇌뉘|이뇌뉘]] 등 공산당에 유화적인 당내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당권을 잡으며 뷜렌트 에제비트 당수 체제에서 [[사민주의]] 노선이 확립되어 중도좌파 정당으로 분류된다.] 주된 지지층은 [[알레비파]], 세속주의자, 케말주의자이다. 직업으로 보면 군인을 비롯한 공무원, 노조, 지역으로 보면 튀르키예 서부, 연령층으로 보면 고령층[* 중도좌파, 세속주의 정당임에도 청년층보다 고령층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이유는, 원래 튀르키예는 공화인민당이 기성정당으로 인식되다 보니 청년층에선 낡은 정당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때마침 [[2001년]] 창당한 [[정의개발당]]이 청년 친화적 노선을 걸으며 이들을 포섭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정의개발당도 세월이 흐른 [[2020년대]] 들어선 기성정당화 되다보니 지지층을 확실히 구분짓기 애매하다.], 케말주의자들은 도심에서 주로 살며 학력에선 고학력층, 그리고 소득에서는 고소득층 쪽에서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 기타 == 슬로건은 "튀르키예 통합의 힘"(Türkiye'nin Birleştirici Gücü)이였지만, 바뀐 듯 하다. "Önce Türkiye""([[튀르키예어]])가 슬로건[* 발음은 "왼:제 퉐:키예"다.]이며, [[한국어]]로는 "튀르키예 먼저"라는 뜻이다. [[2015년]]에는 "[[아나톨리아]]의 케말"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은근히 케말 아타튀르크를 팔아먹으며 선거유세를 하기도 했다. 건국 주도 세력들이 세워 초기 정치사를 주도했고, 헌법에 당의 이념[* 6개의 화살, [[삼민주의]]]이 들어갔으며 창당 초기에는 당의 이념이 명확하게 정의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만]]의 [[중국 국민당]]과 유사점이 있다. 또 [[2020년대]] 시점에서 [[종교]] [[근본주의]] 성격을 가진 소위 '스트롱맨' 정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나렌드라 모디]]]에 맞서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소속 세속주의 중도좌파 제1야당이라는 점에선 [[인도 국민 회의]]와도 유사점이 있다. [[한국]]과 다르게 선거음악을 [[민중가요]] 비슷하게 만들기도 한다. [[https://youtu.be/_xlPY2gVv3Y|2014년 선거 송이던 Ak dediler kara çıktı(밝다고들 하던데 어둠이 왔네)]][* AK는 튀르키예어로 '하얗다', '밝다'라는 뜻. 한편으론 [[정의개발당]](Adalet ve Kalkınma Partisi)의 약자가 'AKP' 혹은 'AK Parti'다. 그래서 정의개발당이 상징으로 빛나는 [[전구]]를 쓰고 있다. AKP를 [[언어유희]]해서 돌려 까는 선거송이다.] 물론 [[케바케]]라 일반적인 흥겨운 곡도 있는 듯하다. [[https://youtu.be/CxsMq4tAaOs|역시 동일하게 2014년 선거 송인 Güldür Yüzümüzü(우리의 얼굴을 웃게 하라)다.]] [[Hearts of Iron IV]]에서 시작 시점에서는 비동맹주의 정당으로 등장한다. 중점에 따라서 [[민주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정당으로 각각 변모시킬 수 있다. == 출신 정치인 == === 역대 대표 === * 초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튀르키예 대통령|대통령]]이자 [[국부]].] (1923~1938) * 2대: [[이스메트 이뇌뉘]][* 초대 총리이자 제2대 대통령] (1938~1972) * 3대: 뷜렌트 에제비트[* 공화인민당 대표로서 제16대 총리를 역임했다.] (1972~1980) * 공석: 1980~1992[* [[케난 에브렌]]의 [[쿠데타]] 이후 불법화되어 당 조직이 해체되었는데, 직전 대표였던 뷜렌트 에제비트는 민주화 이후 [[민주좌파당(튀르키예)|민주좌파당]] 소속으로 총리직에 복귀했다.] * 4대: 데니즈 바이칼 (1992~1995) * 5대: 히크메트 체틴 (1995) * (4대): 데니즈 바이칼 (1995~1999) * 6대: 알탄 외이멘 (1999~2000) * (4대): 데니즈 바이칼 (2000~2010) * 7대: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2023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2023년 대선후보]]이기도 하였다.] (2010~2023) * 8대: [[외즈귀르 외젤]] (2023~현재) === 기타 === * [[에크렘 이맘오을루]] - 현직 [[이스탄불]] 시장 * [[만수르 야와시]] - 현직 [[앙카라]] 시장 * [[외케스 엘마소을루]] - 현직 [[에르진]] 시장 [각주] [[분류:사회민주주의 정당]][[분류:급진주의 정당]] [[분류:공화주의 정당]][[분류:튀르키예의 정당]][[분류:좌익 내셔널리즘 정당]][[분류:1923년 정당]][[분류: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소속]][[분류:진보동맹 소속]][[분류:과거의 독재정당]]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