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2차 세계대전/이탈리아 항공기)] [include(틀:2차 세계대전/독일군 항공기)] [Include(틀:항공병기 둘러보기)] [목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0px-Two_Savoia-Marchetti_S.M.79_over_Sciacca.jpg]] ''' Savoia-Marchetii SM. 79 'Sparviero' '''[* 사보이아-마르케티 SM. 79 스파르비에로] == 개요 == 별명인 스파르비에로는 [[새매]]를 뜻한다. SM.79는 폭격기뿐만이 아닌, [[뇌격기]]로도 활동했다. 기본은 3발이지만, 쌍발 엔진형도 생산되어 쓰였으며, 전간기 최고의 고속폭격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나름 명작폭격기이자 베스트셀러이다. 다만 '전간기'라고 쓰인 걸 보면 알겠지만 2차 대전중에 빠르게 성능이 따라잡히고 [[앨리슨 V-1710|V12]] [[롤스로이스 멀린|엔진]]이 강력해지면서 몰락하게 된다.[* 다만 이건 SM.79만 그런 게 아니라 전간기 중에 설계된 폭격기들이 다 그랬다. 게다가 SM.79는 그나마 1942년 정도까지는 일선에서 문제없이 쓰인 걸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전간지 폭격기들 중에서는 상황이 가장 나았다. 당장 [[Do 17]]은 전간기에는 나름 괜찮은 고속 폭격기였으나 2차 세계 대전 당시, 그것도 비교적 초기였던 1941년에도 엔진힘도 약하고 속도는 금장 따라잡히며 내구도 역시 별로고 폭장까지 적은 쓰레기 취급받았으며, 같은 이탈리아 왕국의 병기였던 [[SM.81]]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 제원 == === SM. 79 Serie III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0px-Savoia-Marchetti_SM.79.svg.png]] ||'''SM. 79''' 분류: 3발 6인승 중폭격기 제작국가: 이탈리아 사용국가: 이탈리아, 브라질, 나치 독일[* 이탈리아 항복이후 수송기로 개조하여 운용], 크로아티아, 이라크[* 루마니아와 같은 쌍발 엔진형으로 영국-이라크 전쟁때 전 기체가 지상에서 파괴당함. 운영국으로 적혀는 있지만 사실상 영국의 괴뢰국이었음.(그에 대한 반발로 친독세력이 많았다.)], 루마니아[* 직도입은 아니고 면허생산한 쌍발엔진형을 운용했다. 참고로 나중에는 엔진을 [[He 111]]의 엔진으로 교체해서 계속 써먹었다.],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영국[* 유고슬라비아산을 운영하였다.], 레바논, 크로아티아 독립국[* 영국과 마찬가지로 유고슬라비아산을 운용했다.] 승무원 : 6명 전장 : 16.2m 전폭 : 20.2m 전고 : 4.1m 자체중량 : 7,700kg 최대이륙중량 :10,050kg 최대속도 : 460km/h 엔진: [[알파 로메오]] 128-RC 18 엔진(860 마력) 3기 최고 고도: 7,500m 상승 속도: 5.3m/s 항속거리: 2,600 km 폭장량: 1,200kg 또는 450mm 외부 장착 어뢰 2발 무장: [[MG 151]] 20mm 기관포 전방 1문[* 전방고정무장이다. 초,중기형은 12.7mm [[M1919 브라우닝#브레다-사파트|브레다-SAFAT]]] 12.7mm [[M1919 브라우닝#브레다-사파트|브레다-SAFAT]] 기관총 동체 2문[* 아래는 선택 사항], 7.7mm 측면[* 선택사항]|| |||| 운용과 퇴역 || ||초도비행 ||[[1934년]] [[9월 28일]]|| ||도입 ||[[1936년]]|| ||퇴역(이탈리아) ||[[1952년]]|| ||최종 퇴역 ||[[1959년]]|| === SM. 84 === ||'''SM. 84''' 제작국가: 이탈리아 사용국가: 이탈리아, 나치 독일, 크로아티아 승무원 : 5명 전장 : 17.93m 전폭 : 21.10m 전고 : 4.59m 자체중량 : 8,846kg 최대이륙중량 :13,288kg 최대속도 : 432km/h 엔진: 피아지오 P.XI RC 40 14기통 복렬 공랭식 엔진(1,000마력) 3기 최고 고도: 7,900m 항속거리: 1,830 km 폭장량: 2,000kg 또는 450mm 외부 장착 어뢰 2발 무장: [[M1919 브라우닝#브레다-사파트|브레다-SAFAT]] 12.7mm 기관총 동체 상부에 1정, 하부에 1정, 측면에 2정|| == 개발 == SM. 79는 1934년, 사보이아-마르케티 사가 런던-멜버른 레이스(London-Melbourne race)를 위해 S.73을 기반으로 설계한 비행기였다. 당시 경주의 조건에서 승객 8명이 들어가면서가 있기때문에 소형기체로는 불가능하며, 빨라야하고 항속거리가 넉넉해야 했다. 당연하지만 빠르면서 크고 항속거리가 충분할려면 상당히 어려운 요구조건에 속한다.[* 당장 [[B-29]]를 생각해보자. B-29는 폭장, 항속거리, 속력을 전부 가지고 있지만, 그 대가로 고출력엔진을 자주 갈아줘야한다는 ~~정비공들의 애환이 담긴~~ 큰 단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사보이아-마르체티 사는 고출력엔진 2개대신에 저출력엔진 3개를 달아서 출력을 내는 설계를 자주 해보았는데, 이를 이용해서 꽤 만족스러운 속력과 항속거리가 나오게 되었다. 거기에 선진적인 설계를 한 날개와 플랩을 통해 유연한 움직임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런던-멜버른 레이스에서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해서 이대로면 실패작일줄 알았는데, 레이스 초반 [[밀라노]]-[[로마]] 구간을 410km/h로 1시간 10분만에 지나갔다는 점에 이탈리아의 [[높으신 분들]]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군용폭격기로 탄생하게 된다.[* 410km/h가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다면 [[Do 17]] 항목을 참고하자. Do 17이 처음 채택될 때는 무려 고속폭격기라고 불렸다.] 그렇게해서 사보이아-마르케티 사가 SM. 79의 프로토타입을 내보았고 실험비행을 해보았는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날아서 이탈리아령 [[에리트리아]]까지 12시간만에 도착했다.(중간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료보충을 좀 했다.) 당시 이탈리아 공군은 이 결과를 아주 긍정적으로 봤고 1916년, 채택되어 기존의 피아트 [[BR.20]] 치코냐(Cicogna)나 자사의 [[SM. 81 피피스트렐로]] 같은 폭격기를 능가 할 수 있다 보고[* 참고로 시코냐나 피피스트렐로 둘다 SM. 79보다 폭장이 많지만, 최고속력이나 비행성능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30년대 초반형 비행기들이었다.] 양산에 들어갔다. 이때, CANT(Cantieri Aeronautici e Navali Triestini - 트리에스테 조선사 및 해양 항공사)사의 3발 폭격기 Z.1007 알시오네(Alcione)와 경쟁했으나 이탈리아 공군은 두 폭격기 전부 우수하다고 보았고, 사용하는 엔진이 다르니(SM. 79는 알파-로메오 엔진, Z. 1007은 피아지오 엔진을 썼다.) 이탈리아의 부족한 공업력으로 적절한 수의 폭격기를 보유하기 위해 둘다 생산하게 된다. 슬프지만 이 비행기들은 영국의 [[호커 허리케인]]처럼 목재-금속 혼합기인데 불구하고 제작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어쨌든 SM. 79 스파르비에로는 총 1,270대 만들어져서 이탈리아 항공기중에 전쟁중 가장 많이 생산된 폭격기가 된다. 이후 사보이아-마르케티 사는 SM. 79의 설계를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민간용 대형버전인 SM. 75를 생산했고 이 SM. 75의 군용 수송기 버전이 SM. 82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SM. 79]]를 개량한 [[SM. 84]]가 있다. SM. 84는 SM. 79의 후계작으로 CANT 사의 Z. 1007의 후계작인 Z. 1018 레오네(Leone)와 경쟁했다.[* Z. 1018은 ~~잘생긴~~ 쌍발 폭격기로 15대 생산되고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양산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SM. 84는 총 329대 생산되었다. == 특징 ==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역시 3발 엔진일 것이다. 알파-로메오 128 RC 18은 당시 [[MC. 200 사에타]]나 [[CR.42]]에도 쓰는 공랭식 엔진으로 전간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운영되었던 엔진이었다. 특별하게 힘이 좋은 엔진은 아니였으나 정비가 쉽고 튼튼했기 때문에 큰 신뢰를 받았다. SM. 79는 이 엔진을 3개를 달아서 빠른 속력과 경쾌한 기동성을 손에 얻었다. 만약 쌍발기였으면 그저 평범한 전간기 폭격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해외 수출형중에 쌍발버전은 엔진이 다르다. 유고슬라비아 수출버전은 프랑스제 엔진을 달았고, 루마니아 버전은 독일제 엔진을 사용했다. 두 엔진다 원본보다 출력이 좋기 때문에 큰 성능저하는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3발엔진을 단 비행기는 [[Ju 52]]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편인데 왜냐하면 [[전투기]]에 비해 항공기의 높이가 높은 [[폭격기]]들은 이륙시에 전방시아가 꽤 나쁘다.[* 현재 여객기들도 트리포드식 랜딩기어를 쓰는데도 시아가 불량하다고 할 정도인데 테일노즈식이면 더 할 것이다.] 그래서 기수하단에 유리창을 달고 폭격수나 전방기총사수가 대신 전방을 보기도 했는데, SM. 79는 기수에 엔진이 떡하니 달려있어서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동체 전방 하단에 유리창이 있다곤 하나 이륙시에 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었다. 방어기총은 그다지 선진적이지 못했다. 이 비행기를 보면 동체 전방이 볼록 튀어나와 있는데 이부분이 기총사수가 타는 곳이다. 터렛이 아니다 보니 사격각이 상당히 비좁았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당시 이탈리아 조종사들은 이걸보고서 '''il gobbo maledetto'''(일 고보 말레데토, 망할 굽은등짝[* 곱추라고도 해석 할 수 있다.]) 동체 하단의 곤돌라는 평범했다고 하나 동체 상단의 기총이 썩 믿을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 화력은 12.7mm [[M1919 브라우닝#브레다-사파트|브레다-SAFAT]]이여서 평균은 하지만 쏠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폭장은 250kg 폭탄 5발 또는 500kg 2발, 외부무장으로 어뢰 2발이다. 독특하게도 폭탄창에 폭탄을 세워서 수납하는 특징이 있다. == 실전에서의 활약 == 군용 폭격기로 탄생했지만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가 통치하는 이탈리아에서는 민간 행사등에 자주 참가했다고 한다 그탓에 다양한 신기록을 세우고 다녔으며 이걸 통해 자국 항공기술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프로파간다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밀어줘서 성능이 모자른 기체를 띄어준 것은 아니다. 애초에 성능이 부족했으면 수출이 부진했을 것이다.] 덕분에 상당한 비행기록을 확보해서 사보이아-마르체티사가 자잘하게 손을 봤는데 첫 실전은 [[스페인 내전]]이었다. 바르셀로나 공습등에 동원되어서 스페인 공화국군을 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으로 악명이 높다. 나름 이색적인 기록이 남았는데, 공화국군의 [[I-16]] 12대와 이탈리아 공군의 SM. 79 3대가 조우해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나, 한대도 격추되지 않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 [[제2차 세계대전]] 中, 폭격기로서의 활약상 === 간단히 요약하면 이탈리아군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넉넉한 항속거리와 적절한 폭장, 적절한 속력의 3박자로 언제나 이탈리아군이 가면 하늘에 나는 존재로 공군에서 사실상 '망할 곱추' 니 '빌어먹을 굽은등짝'이니 까였지만 지상군의 참 딱한 화력탓에[* 야포는 [[제1차 세계대전]]때 쓰던 것이고 전차는 [[M11/39]], [[M13/40]] 등을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성능이 매우 좋지 않았다. ] 날렵한 창공의 스파르비에로([[새매]])로 칭송받는 존재였다. 50kg 폭탄 12발을 퍼부어주고 적 토치카에 250kg 폭탄을 투하해주는 몇 없는 고화력으로 당시 이탈리아는 적절한 [[공격기]]나 [[급강하폭격기]]가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은 SM. 79뿐이었다. BR.20 치코냐나 SM. 82 피피스트렐로는 너무 느려서 지상포화에도 잘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첫 등장은 [[프랑스 침공]]때였고 복엽기인 [[CR. 42]]의 호위를 받고 프랑스군을 폭격했다. 프랑스가 아주 빠르게 항복했기 때문에 프랑스 공군과의 교전같은 것은 없다. 그 다음은 [[유고슬라비아 침공]]이었다. [[알바니아]]에서 이륙했고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광속으로 [[유고슬라비아]]가 항복해서 유고슬라비아 공군 소속 SM. 79를 [[노획]]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삽질인 [[그리스 침공]]이었다. 이탈리아 육군은 고전을 했으며 SM. 79는 폭탄만 쏟아붓고 다녔다. 일단 지금까지는 SM. 79의 전성기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SM. 79는 적수를 만났다. 바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면서다. 당시 영국군은 [[호커 허리케인]]을 주로 운용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SM. 79의 날렵함이 빛나게 되었다.[* 그마저도 사선안에 들어가면 분쇄되기 십상이었다.] 특히나 적절한 항속거리는 전장과 다음 전장의 거리가 먼 아프리카에서 유용했으며 이점은 독일군도 좋게 보았다. 물론 당시 아프리카 사단은 항공기가 몇 대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 폭격기를 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였더라도 몇 없이 우호적으로 본 이탈리아 무기였다고 한다.[* 전투기는 많이 깠다고 한다. 애초에 독일군 입장에서 보면 멀쩡해보이는 전투기는 [[MC. 202 폴고레]]'뿐'이다.] 하지만 전성기도 미제 [[P-40]]의 대규모 등장으로 끝났다. 영국은 북아프리카에 많은 전투기를 보낼려고 노력했는데, 마침 미제 키티호크를 수입하는 게 스핏파이어 1대 생산가격의 5분의 1수준이라 많이 수입해 왔는데, 후질구질한 전투기가 많은 이탈리아 입장에는 대재앙이었다.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은 SM. 79를 찢어버리는데 충분했고 호위기들조차 버티질 못하는 판이었다고 한다.[* 근데 노련한 파일럿들은 [[CR. 42]]를 타고 선회전을 유도해서 잡아내곤 했다고 하나, 이러면 폭격기 호위는 물 건너간 이야기다.] 결국 SM. 79는 저고도 비행을 해서 폭탄을 던지고 후딱 도망치거나 하는 식의 운용을 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북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운용을 한 것은 [[엘 알라메인 전투|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후퇴하면서 독일군을 엄호하기 위해 목숨걸고 이탈리아 파일럿들이 영국군과 미군은 공습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북아프리카 전선]]이 무너진 이후로는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때 몇 대가 출격했다가 격추되고 이탈리아 항복이후에는 새 주인을 찾아가거나 민수용으로 쓰이게 된다.[* 일단 폭격기로써의 마지막 출격은 [[안치오 상륙작전]]으로 남아있다.] === [[제2차 세계대전]] 中, 뇌격기로서의 활약상 === ''' [[제국의 역습|곱추의 역습]] ''' 이탈리아는 항공모함의 필요성을 덜 느낀 이유가 본토에서 날면 [[지중해]]에서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별로 없는 탓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지상에서 운용하는 뇌격대가 있었다. 첫 뇌격대는 1940년, 7월 모이올리(Moioli) 대령이 주도했었고 첫 활동은 그해 8월이었다. 토브룩 인근 비행장에서 이륙해서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 항으로 가는 영국 보급선을 공격하는 것이 작전목표였다.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때부터 항공기로 어뢰를 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정작 전간기때 전술연구나 훈련이 전혀 되지않아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항공어뢰가 꽤 나쁘지 않았다는 점인데, 사정거리는 3km, 속력은 40노트, 뇌격시에는 좀 위험하지만 해수면에서 40m~120m 상공에서 투하를 해야 하며 항공기는 300km이상이면 안된다였다. 어뢰의 성능은 둘째치고 보금선을 공격하는 것은 좋은데, 파일럿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지만, 신설부대로 뭔가 보여줘야했기 때문에 출격했는데, 알렉산드리아 항구 인근에서 선박을 발견,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이와중에 대공포 사격에 피해를 입기도 했다. 첫 출격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이후 꾸준히 출격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에이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1940년, 9월 당시 뇌격대에서 유능한 파일럿인 부스칼리아(Buscaglia)[* 카를로 에마누엘레 부스칼리아(Carlo Emanuele Buscaglia) 이탈리아의 파일럿으로 최종계급은 [[소령]]. 폭격기 파일럿중 가장 뛰어난 사람중 한명으로 당시 이탈리아의 뇌격대 에이스였다. 1942년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에 격추되었으나 살아남았지만, 이탈리아가 [[북아프리카 전선]]의 붕괴때 포로가 되었다. 이후 전향했지만 1944년, 새 비행기를 타고 이륙중 추락,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사망했다. 현재 이탈리아 공군에서도 이 이름이 사용될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와 로보네(Robone)가 출격했다가 허탕을 치고 밤에 귀환하는데 영군 함선이 보였고 곧장 어뢰를 투하했다. 당시 영국은 컴퍼스 작건으로 이탈리아군을 이집트에서 싹 쓸어버릴려고 했기 때문에 진격하는 육군의 지원을 하기 위해 해군이 연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공격을 당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영국군 [[카운티급 중순양함]] HMS 켄트(Kent)가 어뢰에 맞았고 켄트는 1941년 9월까지 항구에서 수리를 하게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뇌격대가 감을 잡았는지, 10월 영국군의 신형함이었던 [[타운급 경순양함]] HMS 리버풀(Liverpool)을 뇌격해 전치 13개월을 끊어 줬다. 여담으로 해가 바뀌기 전에 더 큰 공을 세우기 위해 1940년 마지막 출격을 했는데 [[크레타]]에 정박해있던 리버풀의 자매함인 HMS 글래스고(Glasgow)를 발견, 비록 방뢰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치 9개월로 만들어 줬다. 1941년은 최고의 해였다. 독일의 [[유보트]]가 지중해에서 큰 도움을 줬고[*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HMS 바험(Barham), 항공모함 HMS [[아크로열급 항공모함|아크로열]]이 격침되었다.] 이탓에 영국 해군은 대공장비와 대잠장비 둘다 설치해야 했으며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점때문에 상당힌 피로를 느끼게 되었다. SM. 79또한 큰 활약을 해서 대형 수송선(1만톤 이상급)을 여러척 격침시켰고 타운급 경순양함 HMS 멘체스터(Menchester)를 공격해서 9개월간 수리하게 만들었다.[* 멘체스터는 운이 좀 없어서 항공뇌격의 피해를 복구한 뒤 다시 지중해로 돌아왔는데, 이때 이탈리아의 M,A,S 어뢰정을 운용하는 특공대의 필살뇌격에 당해 함을 살릴 수 없다고 봐서 자침한다.] 거기에 F급 구축함 HMS 피어리스(Fearless)를 격침시켰으며 디도급 경순양함 HMS 포에베(Phoebe)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포에베는 피해가 크지 않아서 적당히 수리했고, 나중에 U-보트에 당해서 도크로 들어간다.) 한해 동안, 9척의 영군함선이 격침되었고 30번의 공격을 성공했다.(뇌격이니 최소한 중파이다.) 마침 신형기인 SM. 84를 수령받을 때이도 하며[* 다만 익숙하지 않다고 선호하진 않았다.] 계속되는 영국 함선의 격침과 피해가 누적되어 활동이 위축되었을 때이기도 하다. 1942년은 SM. 79의 화려한 황혼기였다. 41년내내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뇌격대에 대한 지원도 늘어 SM. 79가 100대 이상 배치되었다. 이때부터는 숙련된 승무원들과 여유로운 예비기체의 증가로 뇌격만 고집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폭탄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해군을 위해 근접항공지원도 했다. 그렇지만 41년의 피해로 영국해군의 움직임이 좀 잠잠해져서 6개월동안 [[연합국]]소속 [[그리스]] 상선 테르모필레를 격침시킨것을 제외하면 딱히 대단한 활동이 없었다. 1942년도 중순이 지나가자 [[몰타 항공전]]이 오래 지속된 결과 몰타가 상황이 썩 좋지 않자 영국은 하푼 작전(Operation Harpoon)을 통해 몰타를 강화해 이탈리아와 독일의 압박을 밀어낼려고 했다. 이전과 다르게 하푼 작전은 대규모였으며 항공모함 2척에 전함 1척([[퀸 엘리자베스급 전함|HMS 말라야]])까지 동원해 몰타에 반드시 보급을 하겠다는 영국의 의지가 보였다.[* 다만 항공모함은 [[이글#s-3.1|HMS 이글]](1918)과 [[아거스급 항공모함|HMS 아거스]]는 탑재량이 모자르고 느리기 때문에 정규항공모함 1척정도의 가치였다.] 그에반면 이탈리아 해군은 준비가 덜 돼서 [[콘도티에리급 경순양함]] 라이몬도 몬테쿠콜리와 에우제니오 디 사보이아 2척과 구축함 5척이 동원되는 상황이라 이탈리아 공군의 지원이 필수적이였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f/SM_79_attacking_Malta_convoy_MIWM_FLM_003795.jpg]] 해당 사진은 격추되는 것이 아니라 뇌격 직전의 상황을 촬영한 것이다.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이탈리아 공군은 충분이 제 일을 해냈다. 6월 14일, 또 [[타운급 경순양함]] HMS 리버풀에 뇌격을 성공해서 다시 항구로 돌려보냈다(...)[* 리버풀은 그래도 전후까지 생존했다(!!)] 수송선에 대한 뇌격또한 성공적이었으며 기습에 성공한 이탈리아 수상함대에게 난타당해 대파된 [[트라이벌급 구축함]] HMS 베두인의 숨통을 끊어주기도 했다.[* 이후 항공대는 베두인의 격침위치를 보고해 이탈리아 해군이 생존자를 구조해줬다. 영국측도 이 뇌격을 'Coup de Grace'로 기록했으며 덕분에 생존자가 늘었다고 기록했다.] 영국은 의외로 SM. 79를 비롯한 이탈리아 공군에 대한 요격이 힘들었는지 실패적이었다고 회고했으며 수송선단은 괴멸했고 수상함의 피해가 커서 하푼 작전은 추축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f/fb/The_Sinking_of_HMS_Bedouin.jpg]] 격침되는 HMS 베두인. 영국은 그만두지 않았다. 1942년 8월, 주춧대 작전(Operation Pedstal)을 실행해 다시 한번 몰타에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기도 결심한다. [[넬슨급 전함]] HMS 넬슨과 HMS 로드니에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HMS 빅토리어스, HMS 인도미터블, 그리고 계속 활동중인 HMS 이글이 주축이 된 대함대였다.[* 작전중,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 HMS 퓨리어스도 합류한다.] 이번에는 이탈리아도 나름 준비를 했지만 여전히 전함은 어디갔는지 순양함들로 막아야했다.[* [[자라급 중순양함]] 고리치아, [[트렌토급 중순양함]] 트리에스테, 볼차노가 있었다.] 이번에는 독일군의 지원도 와서 더 화려한 공중지원을 통해 영국해군을 저지하게 되었다. 이번 작전중에는 SM. 79의 화려한 결과는 없었지만 소소하게 [[F급 구축함]] HMS 포어사이트와 유조선 SS 오하이오를 격침시켰다. 주춧대 작전은 HMS 이글이 [[유보트]]에 의해 격침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고 영국은 주춧대 작전은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1942년 겨울, [[횃불 작전]]이 실행되자 이탈리아는 뭔가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한 듯 했다. 에이스였던 부스칼리아소령이 '이번 크리스마스까지 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 할 만큼 활발한 영국 해군의 활동은 강력했다. 1942년은 [[아레투사급 경순양함]] HMS 아레투사를 대파시킨 것으로 끝이 났다. 1943년, 전황의 악화로 SM. 79의 활동은 줄어들었다. 이제 스파르비에로(새매)라는 별칭은 한물갔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신형 항공기는 막강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와중에 HMS 인도미터블에 대해 뇌격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일부 뇌격대 파일럿은 독일편을 들거나 연합군으로 전향하는 식으로 뇌격대는 해체되었고 이휘 SM. 79의 활동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 [[워 썬더]] - 이탈리아 트리의 2랭크 폭격기로, 세리에 1, 세리에 8, AS, bis/T.M, SM.79B까지 총 5기가 등장한다. 유저들 사이에선 피자 배달기로 통한다. 기체 비행성능이 특출나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500kg 폭탄 2발은 지상군 모드에서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이탈리아 테크트리가 추가되기 이전에는 독일 항공트리에 있었다. * [[함대 컬렉션]] - 2021년 여름 이벤트에서 SM.79가 육상공격기로 추가되었다. 기본형인 SM.79와 개량형인 SM.79bis, 그리고 대공사격회피 버전인 SM.79bis(숙련) 3가지로 구현되었다. 이 중 숙련판은 여름 이벤트 최종해역 갑작전 클리어로만 입수 가능하다. [[분류:폭격기]][[분류:항공 병기/세계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