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0021500544_0.jpg|width=500]] 삼보 SE-8001 [[파일:개인용 컴퓨터 SE-8001.jpg|width=500]] [[국립중앙과학관]]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소장본 [[https://www.science.go.kr/board/view?pageNum=3&rowCnt=12&no1=6&linkId=4701996&menuId=MENU00804&schType=0&schText=&schStartDate=null&schEndDate=null&boardStyle=Gallery&categoryId=&continent=&country=|개인용 컴퓨터 SE-8001 이야기]]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국내 최초의 상용 [[PC|개인용 컴퓨터]][* [[컴퓨터]]는 개인용 컴퓨터(PC) 이전에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컴퓨터는 1960년대 초 [[한양대학교]] 이만영 교수가 만들었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상용 컴퓨터는 1970년대 초반에 나왔다.] 제품이다. 2020년 1월 30일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되었다.[[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373529|#]] == 상세 == 1981년 1월 [[삼보컴퓨터]]에서 제조했다. 일본 [[샤프전자|SHARP]]사의 MZ-80 K/C 기종 복제품인 8비트 기종으로, 이후의 관점으로 보면 [[텔레비전]]에 [[타자기]]가 붙어있는 듯한 전혀 컴퓨터스럽지 않은 형태이겠지만 당시에는 저런 외형의 PC가 외국에서도 주류였다. [* 80년대 당시의 8비트 컴퓨터는 거의 대부분 본체와 키보드가 일체형이였고 전용 컬러 모니터가 비쌌기 때문에 주로 모노크롬 모니터(사진속의 모니터는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제조한 12인치 모니터로 TV 금형을 재활용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우 하부의 스피커 틀이 존재하나 실제 스피커는 탑재되지 아니하였다. 애플 II 등은 본체 내에 내장스피커를 탑재했기 때문이다.) 를 사용했는데, 컬러 모니터 대신에 TV와 연결할 수 있도록 RF나 AV 신호를 출력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종도 많았다. SE-8001이 당시 기준으로는 별다르게 컴퓨터스럽지 않은 외양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키보드가 분리된 컴퓨터 디자인은 과거 대형컴퓨터의 터미널이나 IBM PC 및 호환기종(즉 현재의 PC)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외견이나 CPU 1MHz 라는 스펙을 봐도 동시대 컴퓨터인 IBM-5150(인텔 8088 4.77Mhz)에 비해 딸렸고, 1977년에 나온 [[애플 II]] 수준에나 맞춰줄 정도다.[* 그런데 삼보에서 이 기종을 출시할 당시 [[샤프(기업)|샤프]]의 MZ-80은 MZ-80/B라는 업그레이드 모델이 팔리고 있었다.] 초기에는 대량생산을 위한 금형 등도 완비되지 않아서 키보드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키보드가 아닌 [[기계식 키보드|키 하나하나가 버튼스위치인 키를 직접 납땜해서 붙였을 정도였다.]] 같은 해인 1981년 11월 1일에는 [[캐나다]]에 수출되기도 했지만 대량생산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당시 한국에 컴퓨터를 사용할만한 산업 자체가 그다지 없었고, 가정용으로 쓰긴 너무 비쌌다.[* 가격이 1000만원이라는 설이 있으나 이는 [[도시전설]]이거나 공장건설 같은 제조원가 전체를 생산대수로 나눠서 나온 수치로 보인다. 1981년의 1000만원은 [[https://kostat.go.kr/mondyValueCalc.es?mid=b70302000000|소비자물가지수에 의한 화폐가치 계산]]으로는 2023년 환산 4441만원에 해당된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개막되었을 무렵 최고연봉인 선수의 연봉이 2400만원이였다. 참고로 삼보컴퓨터 항목에 적혀있는 '''창업 자본금'''이 1000만원이다. ~~컴퓨터 1대 팔아서 자본금 충당?~~ 애초에 말이 안 된다는 결정적 증거다. 여담으로 당대 세운상가제 마이컴 키트의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았다. 또한 [[대치 은마아파트]] 분양가조차 2000만 원밖에 안 했다! 당시 삼보 측은 "국내 공급 가격은 같은 종류의 수입품보다 20% 이상 저렴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1021600099208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2-16&officeId=00009&pageNo=8&printNo=4599&publishType=00020|#]]] 바로 1년 후인 1982년 삼보의 본격 양산기종이며 가격도 40만원대로 떨어진 [[애플 II]] 호환기종인 Trigem 20이 나오면서 당연히 잊혔다. 어쨌건 한국에서 최초로 어느 정도 대량생산으로 상용화된 PC라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 기종이다. 참고로 한국 최초의 PC라고는 '''볼 수 없다'''. 동시대 외국의 PC를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복제하여 소량 제작하는 공방은 [[세운상가]]에 꽤 많았고 이들 중 어느 누가 제일 먼저 만들었나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Altair 8800[*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처럼 조립 키트 형식의 PC는[* 한국에서는 미국산 Altair 8800보다는 일본 [[히타치 제작소|히타치]]나 [[NEC]]의 TK-80계열이 대세였다. 참고로 이 컴퓨터는 모니터나 [[운영체제|OS]] 없이 기계어로 된 프로그램 수행결과 등을 7-seg LED 등에 표시하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별도의 터미널 콘솔을 연결하면 편하게 사용할수는 있었다.] 그 이전부터 여러 곳에서 나왔고 [[CP/M]] 기반의 풀사이즈 키보드를 장착한 완제품 PC도 이미 1981년이면 여기저기서 만들고 있었을 때이다.[* 월간 전자과학이나 월간 라디오와 모형 등 1980년대 초반 전자계통 잡지를 보면 이들 컴퓨터의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광고를 할 정도라면 실험실에서 실험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적어도 판매하려고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 왼쪽은 월간 전자과학 [[1981년]] 6월호에 나온 SE-8001 광고.[* 회사 명칭이 삼보컴퓨터가 아닌 삼보전자engineering으로 되어 있으며 주소 또한 세운상가 인근인 중구 쌍림동이다.] 오른쪽은 바로 그 다음페이지에 있었던 '''타 업체'''의 각종 키트형식 및 완제품 PC 광고이다. 이것 말고도 같은 잡지에만 해외 완제품 PC 수입상 및 이러한 조립키트형 PC 광고가 몇 개 더 있다.[* 즉 [[1981년]] 즈음이면 이미 일렉트로닉스 매니아들 사이에서 PC가 널리 소개되었던 시기라는 것. 참고로 오른쪽 타 업체 PC광고의 제품들은 대부분 일본 [[히타치 제작소|히타치]]의 것들이다.] [[파일:attachment/SE-8001/sambo.jpg]] [각주] [[분류:컴퓨터]][[분류:1981년 출시]][[분류:1983년 단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