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F-15)] [[F-15]]는 1976년 실전배치된 이래 현재까지도 고성능 [[전투기]]로 손꼽히는 기종으로, 특히 실전을 많이 겪는 [[미군]]과 [[이스라엘군]]의 주력기이다 보니 실전기록이 매우 풍부하며 이것이 F-15의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하다. [목차] == [[미국 공군]] == === [[걸프전]] === F-15C와 F-15E가 파견되었으며, F-15C는 총 34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F-15E는 주로 지상 공격 임무에만 투입되었기에 격추 기록이 없다. 사실 몇 번 정도 [[BVR]], WVR를 포함하여 공중전 기회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 격추에는 이르지 못했다.] 공인된 기록은 [[MiG-29]] 5대, MiG-25 2대, MiG-23 8대, MiG-21 2대, [[미라주 F1]] 6대, Mi-8 헬리콥터 2대 등이다. 초반에는 이라크군이 F-15에게 덤벼들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주로 [[이란]]으로 도망치다가 덜미가 잡힌 것들. [youtube(llpae6XqCBQ)]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교전은 시저 "리코" 로드리게스(Cesar "Rico" Rodriguez) 대위[* 베트남전 이후 미 공군 내에서 가장 에이스에 근접한 조종사이다. 1981년에 입대, 1982년 조종기장을 획득한 뒤 A-10 조종사로 수원공군기지에 배치되었고, 1985년부터 3년간 AT-38의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88년 F-15C로 기종전환을 하였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스패로우로 [[MiG-23]]을,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교전에서 MiG-29를 각각 1기씩 격추했고 1999년 코소보 사태 때는 중령 계급으로 참전, 동일한 F-15C로 암람을 사용해 유고슬라비아 공군 소속 MiG-29를 격추하였다. 총 3기를 격추한 셈. 대령으로 전역한 후에는 BVR 격추가 많은 덕인지 레이시온 미사일 부문에 취직했다.]-크레이그 "몰" 언더힐(Craig "Mole" Underhill) 대위의 2기 분대가 자밀 사이후드(Jameel Sayhood) 대위[* 개전 초기 [[영국 공군]]의 [[파나비아 토네이도]]를 격추한 전과를 올렸다.]가 이끄는 MiG-29 2기 분대와 맞붙어 승리한 사례로, 걸프전에선 보기 드물게 이라크 공군기가 GCI의 관제 하에 미군기의 측방으로 기습적으로 접근하여 유리한 상황에서 [[BVR]] 교전을 벌인 경우였다. 여기서 2기 종대대형의 선두에 있던 사이후드의 동료기는 로드리게스의 F-15에 록온하고, 급선회한 언더힐의 F-15도 동시에 사이후드의 요기를 록온했다. 교전수칙상 BVR 공격을 실시할 수 없었던[* 로드리게스 대위는 후일 한 기고문에서 지근거리(10NM)에서 갑작스럽게 출현한 항적에 대해 육안식별을 강제하는 교전수칙 때문에 스패로우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 교전수칙은 F-117에 대한 오인사격 우려 때문에 설정된 것이었는데, 이날의 교전 이후 상당부분 완화된다.] 로드리게스가 [[ECM]], [[채프]] 살포와 빔 기동+급강하를 통해 MiG-29의 레이더 락을 풀려고 노력하는 사이 펄크럼과 좀 더 떨어져 있던 언더힐은 즉각 [[AIM-7]]을 발사해 사이후드의 윙맨을 격추했다. 양측이 동시에 락온을 걸었음에도 F-15의 선제 공격으로 MiG-29 분대가 패하는 결과가 나온 것은 결국 두 기종의 BVR전 성능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로드리게스 대령은 이때 MiG-29의 레이더가 F-15C의 전자전 체계에 재밍당해 자신을 쏘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https://www.thedrive.com/the-war-zone/35765/confessions-of-an-f-15-eagle-driver-with-three-mig-kills|#]] 약 10NM 거리를 두고 후속하던 사이후드는 편대원을 잃었음에도 그대로 돌진, 로드리게스-언더힐 분대에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F-15C 분대가 시계외 전투를 벌이지 못하고 근접전에 돌입했는데[*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에서 언더힐 대위가 회고한 내용에 따르면 [[IFF]] 오작동 문제로 BVR 공격을 포기한 뒤 육안식별을 시도했다. 고속으로 접근하는 펄크럼이 아군기로 표시됐는데, 아마 저 멀리 어딘가에 떠 있던 다른 다국적군 기체의 IFF 신호를 잡은 것 같았다고.], 사이후드는 로드리게스의 [[F-15C]]에게 [[총알]] 한발 안 맞고 격추당했다. 당시 MiG-29는 로드리게즈 대위의 윙맨 언더힐 대위를 포착하고 급격한 대응선회를 시도해 에너지를 왕창 까먹은 상황에서 언더힐 대위 대신 로드리게즈 대위가 공격, 불리한 선회전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이후드의 MiG-29는 나선으로 강하하며 선회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충분한 로드리게스의 F-15C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사이드와인더 공격범위에 들어갔다는 것을 깨닫고 300피트 고도에서 스플릿-S로 무리하게 이탈을 시도하다 지면에 격돌했다. 미군 공식 전과 기록에는 로드리게스 대위의 기동에 의한 격추(maneuver kill)로 기재됐다. F-15E는 지상 공격, 특히 장시간 체공하다가 자체 탑재된 [[레이더]], 혹은 [[E-8]]이 보내주는 정보에 따라 [[스커드]]가 나타나면 잽싸게 파괴하는 스커드 킬러 역할을 주로 맡았다. 당시 F-15E는 개발이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레이저 유도 폭탄(LGB) 무장 테스트(무장 투하시 안전성 여부를 확인하는 테스트)는 마쳤으나 클러스터 폭탄 류의 무장 테스트는 하지 못했고 랜턴도 편대장기만 풀 세팅(AN/APQ-13 타게팅 포드+AN/APQ-14 항법 포드)을 하고 편대기는 AN/APQ-14 항법 포드만 장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전쟁에서 장거리 지상공격은 사실 F-15E보다는 [[F-111]]이 더 많이 맡았다. 걸프전 중 2대의 F-15E가 격추당했는데 두 번 모두 적 레이더 및 [[미사일]]을 [[SEAD|제압해주기로 되어있던]] [[F-4 팬텀 II|F-4G]]/[[F-111|EF-111]]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합류하지 못한 상황이나 저고도 침투-폭탄 투하 후 이탈 과정에서 대공포화에 맞아서 발생한 것.특히 후자의 경우 무척 불운한 케이스였다. 선행 공격편대의 공습으로 치솟는 불길이 구름층에 반사되어 저공으로 접근하는 F-15E 편대가 완전히 노출됐고, 육안으로 조준할 수 있는 모든 화기가 편대를 향해 불을 뿜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추된 기체는 폭탄 투하 후 이탈하다가 대공포탄에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무전 교신이 무장 투하를 완료했으니 이탈하겠다는 것이었고, 편대 전체가 빠져나온 후 점검 도중 실종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공대공 전투에서는 적기를 격추하지 못하였으나 이라크군의 기지를 공격하면서 전투기 상당수를 파괴하였다. 공대공 격추 스코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스커드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다가 이라크군의 반격을 받은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의 [[CAS]]를 맡은 F-15E가 몇백 미터 상공에서 이라크군 증원군을 투입하던 [[Mi-8]] 헬리콥터에 레이저 유도 폭탄을 투하해서 격추한 기록이 있다. 결과적으로, 걸프전에 투입된 F-15E는 SAM에 1기, AAA에 1기, 그리고 비전투 손실 1기로 총 3기가 손실됐고 이 전쟁 후 [[F-111]]을 성공적으로 대체한다. === 이라크 비행 금지 구역 초계 === 1994년 4월 14일 두 기의 F-15C가 [[UN]]직원, 미국 고위 인사, 이라크 내 친미 부족 인사 다수를 태운 미 육군 소속 [[UH-60]] 2대를 이라크군의 [[Mi-8]] 헬리콥터로 오인하여 AIM-120으로 격추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E-3]] 조기경보기의 IFF(피아식별장치)지원까지 받은 상태에서 이 사건의 파장은 더욱 컸다. 여담으로 이때 초계비행을 하던 E-3 77-0354기는 이 사건이 발생하고 1년 5개월이 지난 1995년 9월 22일,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기지에서 이륙 중 발생한 버드 스트라이크로 추락해 승무원 24명 전원이 사망했다. === [[유고슬라비아 내전]] === F-15C가 4대의 MiG-29를 [[AIM-120]]으로 격추했다. 1999년 3월 24일 야간의 격추 사례 두 건은 시저 "리코" 로드리게스 중령과 [[https://en.m.wikipedia.org/wiki/Mike_Shower|마이크 "도저" 샤워(Mike "Dozer" Shower)]] 대위가 암람으로 기록했는데,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 "심야의 공중전" 에피소드에서 이들의 교전을 다룬 바 있다. 로드리게스의 전과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BVR 교전이었지만 샤워 대위의 경우에는 처음 발사한 AIM-120과 AIM-7이 호위대상인 [[F-117]]을 수십 피트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거나, 세르비아군 조종사의 정확한 빔 기동으로 미사일이 두 발 다 빗나가는 등 긴박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샤워 대위는 5.5마일 거리에서 다시 한번 암람을 발사했고, MiG-29를 격추하는데 성공했다. 1999년 3월 26일 저녁에는 제493원정전투비행대대 제프리 "클로" 황(Jeffrey "Claw" Hwang) 대위[* 성을 Huang이 아닌 Hwang으로 적은 데서 알 수 있듯 한국계다[[https://share.america.gov/asian-americans-pacific-islanders-shaping-us-society/|#]]. 2014년 오레건 주방위공군 제142전투비행단 부단장을 끝으로 대령 전역. 마지막까지 기종을 전환하지 않고 F-15C 파일럿으로 남았다.]의 F-15C가 발사한 AMRAAM 2발에 MiG-29 2기가 동시에 격추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윙맨과 동시에 펄크럼 분대를 향해 AMRAAM을 한 발씩 발사한 뒤 다시 한 발을 더 발사했는데, 윙맨의 미사일은 빗나가고 황 대위의 미사일이 모두 명중한 특이한 사례. F-15E는 이번에도 주로 지상 공격 임무를 맡았다. 이때 F-111은 퇴역하였고 F-15E는 모든 무장 통합이 완료된 상태여서 각종 공대지 무장을 사용하여 지상 시설, 비행장 등을 파괴하였다. === [[이라크 전쟁]] === F-15E는 [[이라크 전쟁]] 개전 초기에 다시 이라크의 각종 시설을 공격하였으며 이번에는 피격되는 일 없이 임무를 마무리 지었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엔 [[알 카에다]] 등의 [[게릴라]]를 상대하는 지상부대의 [[근접항공지원]] 임무를 주로 뛰었는데 폭탄뿐만 아니라 [[기관포]]를 통한 항공 지원 기록도 몇 번 있었다. 폭탄류는 아군에게 피해가 갈 위험이 있고, 이라크 반군이 보통은 제대로 된 대공 화기를 갖춘 경우가 없기 때문에 저고도로 비행해도 위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특하게도 폭탄과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하고 공중초계임무-근접항공지원-공중초계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당시 미 공군은 F-15E 1대당 4개조(8명)를 편성했다고 한다.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이 지역은 딱히 공중전을 벌일 일이 없었기 때문에 F-15E는 주로 지상 공격 임무에 나섰다. 2009년에는 미군 소속 [[무인기]]인 [[MQ-9]] 리퍼를 격추시킨 기록이 있다. 오인 사격은 아니고 [[MQ-9]] 리퍼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지상에서 조종이 불가능해져서 잘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 위험이 있었기에 급히 인근에 있던 F-15E가 [[AIM-9]]으로 격추시켜버렸다. 이곳에서도 F-15E가 폭탄류뿐만 아니라 기관포로 지상군을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오디세이 새벽 작전]] === 미 공군의 레이큰히스 기지([[영국]]소재) 소속 F-15E 1기가 추락했다. 발견한 것은 영국인 [[기자]]. 추락 지점이 반군 기지 근처였다. 이게 알려진 것도 [[트위터]] 덕분. 다행히 승무원들은 탈출에 성공했고 추락 지역도 나토 연합군에 우호적인 반군 지역이라 신변엔 이상이 없다. 추락 원인은 일단 펜타곤의 발표로는 기기 오작동. 이 오작동은 미군 선박 USS 마운트 휘크니(Mount Whitney)에 의해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전에도 일어났었던 일이었다고... 승무원 중 조종사는 미군 구조팀에 의해, 무장관제사(WSO)는 [[리비아]] 반군에 의해 구조되었다 한다.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middleeast/la-fg-libya-us-plane-crash-20110323,0,1868071.story|참고]] 이 과정에서 조종사를 둘러싸고 환영해주던 리비아 민간인들을 미국에 적대적인 이들로 간주하여 [[해병대]]가 발포해서 몇 명이 다쳤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곧 구출 과정에서 미 해병대가 발포한 사실은 없으며 [[민간인]] 부상자는 조종사를 엄호하기 위해 출격한 [[AV-8]] 해리어의 근접 지원에서 발생한 파편에 맞은 것으로 정정되었다. 이 문제로 F-15E의 기체 설계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잠시 나왔는데, 이후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1차적인 원인은 플랫 [[스핀]]이었다. 기체가 기수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배면부터 떨어졌기 때문에 파편이 멀리 흩어지지 않았으며 땅속 깊이 박히거나 기수가 박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직꼬리날개는 양쪽 모두 우측으로 꺾여있었다. 이것은 이 기체가 기수 방향 기준으로 좌측으로 플랫 스핀에 빠져있다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 회전이 멈추면서 그 관성력으로 수직 꼬리날개가 모두 반대쪽으로 꺾여버린 것이므로 해당 기체가 플랫 스핀에 빠졌다는 증거가 됐고 구출된 조종사도 플랫 스핀에 빠졌다고 증언하였다. 원래 F-15E는 기관포가 우측에 달려있기 때문에 기본 상태에서도 오른쪽이 더 무겁다. 그런데 미 공군의 F-15E 무장관제용 소프트웨어인 슈트6E에는 6측 CFT 쪽에 탑재된 폭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투하 순서를 뛰어넘어 다음 폭탄을 투하하는 기능에 문제가 있었고(이 문제는 슈트7E에서 패치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당시 작전에 투입된 대부분의 F-15E는 왼쪽에는 3발의 [[JDAM]](GBU-38), 오른쪽에 4발의 [[LGB]](GBU-12)를 탑재했다(JDAM은 미리 계획된 표적 공격용이며, LGB는 긴급 [[CAS]](특히 이동 표적)용). 따라서 처음부터 F-15E는 오른쪽이 무거운 데다가 임무 특성상 JDAM을 달긴 해야 했는데 소프트웨어 문제로 JDAM을 좌측에 달수 밖에 없다 보니 무게중심이 점점 오른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승무원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으나 비행 매뉴얼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선회하면 안된다"는 말은 적혀있지 않았다. 이렇게 무장하고 출격한 해당 항공기는 3만 피트 상공에서 GBU-38 [[JDAM]] 투하 후 적 위협을 피하기 위하여 선회하면서 기수를 돌렸다. 사실 3만 피트 상공은 그 이전까진 이런 폭장을 하고 날 일이 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행 데이터가 많이 부족했으므로 메뉴얼에도 딱히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원래 LGB 계열은 최소 2만 5천 피트 이하에서만 투하가 가능하였다. F-15E가 막 개발되던 시점에는 JDAM이 없었으므로 비행 매뉴얼이 3만 피트 이상에 대해선 기초적인 비행 관련 정보는 있지만 2만 5천피트 이하의 상황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오른쪽''' 연료탱크에도 문제가 생겨서 왼쪽부터 연료가 공급되는 바람에 우측 연료 탱크에는 연료가 2,500파운드(=1톤 가량)가 남은 반면 좌측은 거의 텅 비어있었다. 즉 평소보다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더 크게 쏠려있었던 것이다. 당시 화재에 탄 F-15E의 잔해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다고 하여 대공포나 미사일 공격에 의한 격추라는 주장도 많았으나 이는 화재에 의해 해당부분이 녹아내린 것이다. 알루미늄이 일단 그 자체에 불이 붙으면 워낙 잘 타다 보니...[* 유사한 화재 사고 잔해를 봐도 기체 표면에 구멍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워낙 이슈가 된 내용이라 그런지 미 공군도 직접 사고 조사서를 원본까지 공개했다. === [[시리아 내전]] === 미군의 대[[ISIL]] 작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미국 외의 사례 == === [[이스라엘]] 및 [[시리아]] 분쟁 === [youtube(wjgVOqcu6NE)] ▲ F-15 시리즈 최초의 실전에 관한 영상 F-15 시리즈의 최초의 실전 기록. 1979년에 이스라엘 공군 소속 F-15A가 시리아 소속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최초로 격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에 총 15대의 시리아군 소속 전투기를 격추시켰는데 대부분은 [[MiG-21]]이었으나 [[MiG-25]] 2대도 포함되었다. F-15의 설계 사상이 애당초 BVR과 WVR 모두를 중시한 물건이다 보니 실전 기록도 원거리에서의 격추뿐만 아니라 근거리에서의 격추 기록도 적잖다. 특히 2개의 격추 기록은 20mm [[M61]] 벌컨으로 세운 기록. ===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오페라 작전]] ===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력 발전소]]를 폭격한 작전. 이 작전에서는 F-15는 폭격 임무에 나선 [[F-16]]의 호위만 담당했다. === [[레바논 내전]] === 그 유명한 '''베카 계곡 공중전'''이다. 이스라엘 소속 F-15A/B가 (F-16들과 함께) 시리아군 소속 [[MiG-21]], [[MiG-23]]을 일방적으로 '''도살'''했다. [[전쟁]] 중 F-15는 MiG-21 23대, MiG-23 17대, 총 40기의 시리아군 전투기를 격추했으며, [[에어로스페시알 가젤|가젤]] [[헬리콥터]] 1대도 격추. 베카 계곡 항공전에서 이스라엘 공군 F-15는 단 1개 대대, 제133전투비행대대 "[[트윈테일(항공)|트윈테일]] 기사단(Knights of The Twin Tail)"만이 참전했음에도 3개 대대가 투입된 F-16의 격추전과에 거의 맞먹는 성과를 올리면서 그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특히 개전 초 시리아군의 SAM 포대가 제압되지 않은 상황에서 [[AIM-7|AIM-7F]] 운용능력을 살려 지대공 미사일 사거리 바깥에서 시리아 공군기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며 그 예봉을 꺾어놓는 임무는 다른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F-15만의 영역이었다. ===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 === [[1984년]]에 사우디아라비아 소속 F-15C 2대가 [[이란]] 소속 [[F-4 팬텀 II|F-4]]E 2대를 격추해 버렸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문에 이란, 이라크가 서로 유조선 격침하기 놀이를 하던 와중에 이란 소속 F-4가 자주 사우디 아라비아 영공을 넘어왔고, 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또 [[영공]]을 침범한 F-4를 격추해 버린 것. 이때 미군 소속 [[공중급유기]]나 [[조기경보기]]가 사우디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맥도넬 더글러스]] 사의 전투기 간 유일한 공중전 사례이기도 하다. === [[걸프전]] === 1991년 1월 24일, [[사우디 아라비아]] 공군의 아예히드 살라 알 샴라니 대위가 조종하는 F-15C가 [[엑조세]] 대함 미사일을 탑재했던 이라크군 미라주 F1 3기 중 2기를 격추했다. 나머지 1기는 도주하였다. [[https://youtu.be/LA_BQGJravI|격추 순간의 교신과 건카메라 기록]]. === 우든 레그(Wooden Leg) 작전 === [[1985년]]에 이스라엘은 키프로스 근처에서 PLO에 의해 요트에 있던 이스라엘 민간인 3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튀니지]]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PLO 기지를 공습하였다. 지중해 3/4 거리를 왕복하는 '''공습거리 2060km'''짜리 대장정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F-15를 공습 임무에 투입하였다. F-15A/B/C/D가 지상 공격 능력이 뒤처지기는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보니…. 당시 총 10대의 F-15가 투입되었으며 이 중 6대는 F-15D, 나머지 4대는 F-15C였다. 실제 폭격 임무는 8대가 맡았으며 2대의 F-15C는 백업 개념으로 중간까지 함께 비행하다가 되돌아갔다. 이들 F-15들은 공중 급유를 받아가며 사우디아라비아나 리비아의 레이다망을 피하여 저고도로 비행하여 목표 지역인 튀니지 근처에서 급상승, 고도를 4만 피트까지 올렸다. 놀라운 점은 임무를 맡은 F-15D는 단순 비유도 폭탄이 아니라 GBU-15 유도 폭탄을 탑재한 점이다. 허나 이것의 운용을 위해서는 데이터링크 포드까지 달아야 하는데 GBU-15급의 2000 파운드 폭탄은 주익 하부에만 달 수 있고 데이터링크 포드는 주익과 동체 하부에만 달 수 있다 보니 남는 연료 탱크 탑재소가 없었다. 이에 F-15D는 각각 주익에 1발씩의 GBU-15를 탑재하고 나머지 주익에는 연료 탱크를 달았다(기체 하부에는 데이터링크). 또한 이 당시 투입된 F-15D는 당시 막 개발된 CFT틀 탑재하였다(F-15E 개발보다 CFT가 먼저 F-15 성능 개량 방안의 일환으로 개발된 시점이다). 이 F-15D의 GBU-15 운용 능력은 처음 도입시부터 있었던 것인지, 이후 이스라엘이 개량한 것인지는 불명. 뒤따른 F-15C는 일반 비유도 폭탄만 탑재하였다. 비행 중 1기의 F-15D의 폭탄 투하 장치에 이상이 생기는 악재에다가, 해당 지역 기상이 생각보다 안 좋아 F-15D들은 GBU-15 투하를 위해 구름 아래로 고도를 낮춰야 했다(초기형 GBU-15는 투하 후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자가 영상을 보며 유도해야 했기에..). 본래 GBU-15는 고고도에서 투하 시 40km 정도까지 활공(에 가까운 자유낙하)할 수 있으나 이렇게 고도를 낮춰야 했기에 F-15편대는 더 위험 지역 근처로 진입해야 했다. || [[파일:external/orig14.deviantart.net/operation_wooden_leg_by_idfrss-d9tz6zc.jpg]] || || 폭격 당시 F-15 건카메라에 찍힌 사진 || 결국 폭탄 투하 장치가 고장난 F-15D를 제외한 나머지 F-15D들이 5발의 GBU-15 폭탄을 투하하였으며 그중 4발이 명중하였다. 같이 동행한 F-15C들은 비유도 폭탄을 투하하였으나 앞서 폭발한 GBU-15에 의한 연기 때문에 표적에 대한 정밀 조준은 어려웠다(F-15C/D는 비유도 폭탄 투하시 레이다 조준 방식이 아닌 CCIP 모드, 즉 표적을 직접 눈으로 보며 투하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스라엘은 이 사건 이후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으나 자신들은 '''정당한 자위적 행동'''을 강조하였다. 지중해의 거의 절반을 날아가 남의 나라 땅에 폭탄 떨구고 온 행동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크게 화를 냈으며 회담을 준비 중이던 다른 아랍 국가들도 이스라엘과의 회담을 전면 중단하였고, 튀니지의 경우에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UN 안보리까지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이 작전을 전후로 제공형 F-15가 직접 폭탄 배달 임무에 나선 예는 거의 없다. 적어도 공식적으론...... 하지만, [[http://www.airliners.net/photo/Israel---Air/McDonnell-Douglas-F-15D/1521650/L/&sid=6d3aa092b787dca85fea80cf91e0be69|실제로는 본 작전의 예와 같이 여전히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플랫폼으로 CFT를 단 D형을 활용하고 있다.]] === [[예멘 내전(2015년)]] === 사우디 공군의 F-15가 SAM을 맞아 격추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거짓 선전임이 밝혀젔다. [각주] [[분류:F-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