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 Das Lied der Deutschen / Das Deutschlandlied [include(틀:국가(노래))] [include(틀:독일 관련 문서)] ||||<:>{{{#DD0000 {{{+1 '''Deutschlandlied'''}}}}}} || ||||<:> [[파일:독일 국장.svg|width=300]] || ||||<:> || ||<:> '''작사가''' || '''August Heinrich Hoffmann von Fallersleben''' || ||<:> '''작곡가''' ||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 || [목차] [clearfix] == 개요 == ||[youtube(ULIPcqoDorU,width=100%)]|| || 공식 가사(3절 가사) || ||[youtube(e6eXyYJ4h5o)]|| || 전체 가사(1·2절 포함) || [[독일]]의 [[국가(노래)|국가]](國歌). 제목은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schen)"[* 노래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제목이다.]이며, 흔히 약칭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 독일어 발음은 "도이칠란트리트"] 라고 부른다.[* 일단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Deutschlandlied'를 문서명으로 정하고 있으며 독일어 위키백과에서는 'Das Lied der Deutschen'이 문서명이다. 이 문서 내에서도 두 명칭이 혼용되니 유의할 것.] [[요제프 하이든]]이 작곡한 현악 사중주 황제의 선율에 가사를 붙인 곡이다. 이 곡에는 황제를 찬양하는 가사가 붙여져 [[황제 찬가|Gott erhalte, Gott beschütze]]{{{-2 (하느님 보우하소서, 하느님 보호하소서)}}}라는 제목으로 1797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및 [[오스트리아 제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찬가이자 국가로 사용되었다. 이후 1841년에 시인 팔러슬레벤이 같은 곡에 기존 황제를 찬양하는 가사 대신 독일을 찬양하는 애국적인 가사를 붙여서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라 했고, 독일의 애국가요로 널리 애창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패망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자,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정부는 황실을 찬양하는 가사의 이 곡 대신 다른 곡으로 국가를 바꾸었다. [[독일 제국]]에서도 제정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오스트리아가 기존 국가를 다른 곡으로 바꾸자 오스트리아 정부의 양해를 구하고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를 공식 국가로 채택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는 기존 국가에 대한 향수가 엄청났기 때문에 새 국가가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1929년 기존 하이든 곡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국가로 재지정했다. 그리하여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같은 곡에 가사만 다른 국가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독일에게 오스트리아가 합병]]되면서 독일의 가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다시 독립한 오스트리아는 1946년 새로운 곡으로 국가를 교체하였고, [[동독]] 역시 1949년 새로운 국가를 제정하였으나, [[서독]]에서는 이 곡을 계속 국가로 사용했고, 1990년 통일 독일의 국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 국가로서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의 가사는 1841년에 원래 3절로 작사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시대적 상황이 변함에 따라 1952년부터는 원 가사의 3절만 부르고 있다. 독일이 [[축구]]강국이라 [[축빠]]들은 [[FIFA 월드컵|월드컵]]이나 [[UEFA 유로|유로]] 대회에서 이 곡을 자주 듣는다. [[라 마르세예즈]]나 [[영국의 국가|God Save the King]], [[마멜리 찬가]]처럼 친숙한 곡인 셈. 또한 [[포뮬러 1]] 팬들에게도 친숙한 노래인데, 2000년대 초중반엔 [[미하엘 슈마허]]가, 2010년대 초중반엔 [[제바스티안 페텔]]이 우승하는 경우가 많아 자주 국가가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2014년부터는 강력한 레이스카를 보유한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포뮬러 원 팀|메르세데스]]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역시나 독일 국가가 자주 연주되고 있다. 일부 팬들은 반 농담으로 아예 독일 국가를 포뮬러 1 공식 주제가나 공식 엔딩곡이라고 부를 정도. 높지 않은 키(E♭)로 느리게 진행되는 장엄한 곡조 덕에[* 원곡은 G장조이고 템포도 좀 더 빠르다. 국가로서는 일부러 키를 낮게 깔고 느리게 연주하는 것.] 인기있는 국가 중 하나로도 꼽힌다.[* [[유튜브]] 등지에서 Best Anthems 투표를 하면 10위 안에 꼭 들어간다. 또 다른 고정멤버는 [[라 마르세예즈]]와 [[러시아 연방 찬가]](또는 [[소비에트 연방 찬가]]).] == 역사 == || [youtube(mBmCcSz6HWw)] || || [[요제프 하이든]] 현악4중주 제62번 "황제" 2악장 || 원곡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프란츠 2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성된 송시에 붙인 일종의 [[황제 찬가]]였고, 제목도 [[영국]] 국가와 비슷하게 '[[야훼|하느님]],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였다. 참고로 이 곡도 시대에 따라서 가사가 몇 번 개정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에서의 이 곡의 쓰임은 '오스트리아에서의 사용' 문단으로. 이곡은 1797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의 황실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찬가이자 국가로 사용되었다. 당시 독일은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신성 로마 제국 제위를 세습했기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의 국가 역시 같은 음악이 사용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의 압력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이 무너졌고, 나폴레옹 전쟁 직후 신성 로마 제국을 대신하여 [[독일 연방]](Deutscher Bund, German Confederation)이 창설되었다. 독일 연방의 수장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다시 맡게 되었고, 국가 역시 똑같이 이 음악이 계속 사용되었다. 1841년 독일의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August Heinrich Hoffmann von Fallersleben)이 이곡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schen)"라 제목을 붙였다. 한창 [[독일 통일]]이 거론되던 시점에 오스트리아 황제를 찬양하는 가사 대신 독일 통일의 열망을 담은 가사를 지어 붙인 것이다. 이후 독일의 통일 운동이 거세지며 이곡 또한 민중 사이에서 애창되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보오전쟁]] 이후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북독일 연방]]이 결성되면서 독일 연방은 사실상 해체되었고, 하이든의 이 곡 역시 전(全) 독일 국가로서의 역할이 끝났다. 1866년 이후 독일은 개별 왕국 및 공국의 국가가 각기 별도로 사용되었고, 이 곡은 오스트리아에서만 국가(황실 찬가)로서 계속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라,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지막 황태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장례 미사|장례 미사]]에서도 제창되었다.] 1871년 프로이센 주도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독일 제국]]이 세워졌다. 이 시절에도 공식 국가는 아니었지만 영국 국가 가사를 [[독일어]]로 번안하고 일부 수정한 가사를 붙인 '그대에게 승리의 왕관을([[Heil dir im Siegerkranz]])'라는 제목의 황실 찬가로서 주로 제창되었다. 그래서 [[독일 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이 곡이 등장한다. 아울러 독일 대중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폰 팔러슬레벤 가사에 의한 '독일인의 노래'로서 여전히 널리 애창되었다. 즉 당시 독일에서 일종의 [[애국가요]](Patriotic Song)였던 셈. [[대한민국]]의 [[아리랑]]같은 제 2의 [[국가(노래)|국가]] 수준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대놓고 국가라고 하는 건 고증오류. 영화 [[북경의 55일]]에 독일 제국 국가를 연주한답시고 독일의 노래를 연주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은 [[Heil dir im Siegerkranz]]를 불러야 고증에 맞으며 독일의 노래는 오스트리아 국가의 선율이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국가를 연주할 때 [[산의 나라, 강의 나라]]를 연주해야 하는 셈이다(...).] 다만 독일인의 노래가 독일제국의 공식 의전에서 쓰여지기 시작한것은 1890년 헬골란트-잔지바르 조약 이후의 일부터였는데 헬골틴트 섬에서 이 독일인의 노래를 부르는것이 적절해보인다고 해서 이때부터 불러졌고, 1차 세계대전때에도 독일제국군에서 널리 애창되던 노래 중 하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패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자, 오스트리아 공화국 정부는 황실을 찬양하는 가사를 가진 이 곡 대신 다른 곡으로 국가를 바꾸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도 제정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오스트리아가 기존 국가를 다른 곡으로 바꾸자 오스트리아 정부의 양해를 구하고 하이든의 곡을 바탕으로 한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를 공식 국가로 채택했다. 이후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며 [[일당 독재]] 체제가 되었는데, 나치는 기존 국가인 '독일의 노래' 1절을 먼저 제창한 후 이어 나치당가였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부르도록 하면서 공동 국가화했다.[* 두 곡이 워낙 달라 자연스럽다는 느낌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패망 후 독일이 동쪽 영토를 대거 상실하게 되면서 '독일의 노래' 1절 가사 내용의 상당수가 독일 영토가 아니게 되었다. 때문에 [[연합군 점령하 독일|연합군 군정 기간]] 동안에는 독일 민요를 바탕으로 한 '[[나는 헌신했도다]](Ich hab' mich ergeben)'[* 한국에서는 '어여쁜 장미'라는 독일 민요로, [[개신교]]인에게는 찬송가 57장(새찬송가에서는 43장) '즐겁게 안식할 날'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 19세기에 이 곡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우리들은 새 교사를 세웠다(Wir hatten gebauet ein stattliches Haus)'라는 학도가로 개사되어 당시 대학생들에게 애창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요하네스 브람스|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에서도 여타 학생가들과 함께 인용되었다. 현재 이 곡의 멜로디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국가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라는 노래를 임시 국가로 쓰기도 했다. 한편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다시 독일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유서 깊은 하이든 곡의 국가를 포기하고 1946년 모차르트 등의 선율을 이용한 [[산의 나라, 강의 나라|새로운 국가]]를 채택했다. 서독 정부와 독일인들은 하이든이 작곡한 기존 곡을 계속 국가로 사용하고 싶어했으나, 시대에 맞지 않게 된 1, 2절 가사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일단 독일이 양차 세계 대전에 계속 패배하면서 영토를 많이 잃게 되어 1절 가사의 지명 상당수가 현재는 [[프랑스]]나 [[폴란드]] 등 타국의 영토가 되어 버렸다. 2절 또한 현대 기준으로 보면 남성 우월주의적 요소가 있는데데가, 와인을 대놓고 권하는 권주적인 내용도 들어가있다보니 [[카니발]]이면 몰라도 공식석상에서 써먹기에는 품위가 없었다. 이 가사 문제로 한동안 채택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가 1952년 1, 2절을 아예 없애고 문제의 소지가 없는 3절만을 가지고 공식 국가로 재지정하게 되었다.[* 2차대전 후 독일 국가의 연주는 예전보다 더 템포(빠르기)를 느리게 하고, 원곡(G)보다 2키를 낮춰 연주(E♭)해 장엄함을 더한다.] 따라서 독일 국가행사나 FIFA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에서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3절만 부른다. 반면 [[동독]]은 1949년 아예 새로운 국가를 작사, 작곡하여 [[폐허에서 부활하여]]를 국가로 썼다.[* 이 노래도 현재 부를 일이 있을 때는 '인민의 적' 운운하는 지라 논란의 소지가 있는 2절을 빼고 부른다.] || [youtube(Gu6-jlHchP4)] || || 1990년 10월 3일 새벽 베를린 국가의사당(Reichstag)에서 거행된 [[독일 재통일]] 기념식에서 제창된 '독일의 노래' || 1990년 동서독이 통일한 뒤 새로운 국가지정에 관한 논란이 오가기도 했지만, 결국 흡수통일의 주체였던 서독이 사용하던 '독일인의 노래'가 국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독일인의 노래'야말로 19세기부터 널리 사용된 독일의 역사적인 노래이자 국가였기 때문에 동독 시민들도 대체로 별다른 불만이나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 [[오스트리아]]에서의 사용 === 이 곡은 오스트리아에서 일찍이 1797년부터 황실찬가로 쓰였는데 사실상의 국가 역할을 하였다.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는 가사는 다소 수정을 거쳤다. [[황제 찬가|해당 문서]] 참조. [[제1차 세계 대전]] 후 제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선 후 오스트리아 공화국 정부는 패전으로 제정이 무너진 만큼 꽤나 적극적으로 제정 체제 청산 정책을 펼쳤는데, 하이든이 작곡한 유서깊은 국가 역시 가사는 물론 곡조도 새로운 곡으로 교체했다. 그리하여 'Deutschösterreich, du herrliches Land(독일 - 오스트리아, 아름다운 나라여!)'[* 오늘날에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대통령과 오스트리아군의 찬가로 쓰이고 있다.]라는 새로운 곡을 국가로 썼으나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고, 명곡인 하이든 곡에 대한 향수가 엄청났기 때문에 결국 하이든 곡에 '끊임없이 축복받으세(Sei gesegnet ohne Ende)'라는 새로운 가사를 붙여 다시 국가로 채택했다. 그런데 보수적 정서가 강한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국가 제창 때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새 가사를 무시하고 예전 황실 찬가 가사로 불러 버리는 경우가 생겼고, 또 독일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나 나치 지지자들은 같은 곡에 가사만 다른 걸 사용하는 독일 국가인 '독일인의 노래(Deutschlandlied)' 1절을 불러 버리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오스트리아는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고, 병합 후 독일 쪽의 가사인 독일의 노래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어쨌든 이로써 오스트리아에서도 가사는 달라져도 곡조만큼은 기존의 곡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었다. 오스트리아도 19세기에 독일 연방의 일원으로서 독일의 노래를 사용한 바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다시 독립하게 된 오스트리아는 서독에서 계속 국가로 사용하던 이 곡 대신에 아예 새로운 곡을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1946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모차르트]] 혹은 요한 홀처 작곡의 선율을 채용해 다듬은 [[산의 나라, 강의 나라]]를 새 국가로 채택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근래에는 1989년과 2011년에 타계한 지타 전 황후, [[오토 폰 합스부르크]] 대공(합스부르크 출신 마지막 황태자)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장례 미사|장례 미사]]에서 추모곡들 중 하나로서, 유족들을 포함한 장례식 참석자들이 제창했다. 현재 이곡은 [[독일연방공화국]]의 국가로 더 알려지게 되었지만, 원작자인 하이든 시절의 본래 작곡 취지에 맞게 쓰인 드문 사례가 된 셈. == 특징 == [[개신교]] [[찬송가]] 127장인 '[[예수]]님의 귀한 사랑', 245장인 '[[시온성과 같은 교회]]'의 곡조와 같다. 21세기 새찬송가엔 '예수님의 귀한 사랑'은 삭제되었고 '시온성과 같은 교회'는 210장이다. 이 때문에 "개신교가 [[나치 독일]] 국가를 찬송가로 부른다"는 말도 있지만 이 곡은 초등학생도 알만한 클래식 명곡인 하이든의 현악4중주에서 나온 곡이며, 이미 작곡된 이후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쓰던 곡이고 현 독일 국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헛소리일 뿐이다.[* 이처럼 기존에 있는 곡의 가사를 바꾸어서 세속 가곡을 찬송가로 만들거나 그 반대로 만드는 작곡법을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고 한다.] 가톨릭에서도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Tantum ergo|지존하신 성체(Tantum Ergo)]]'라는 찬미가의 멜로디로 사용된다. 또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영웅 열사를 위한 노래인 영웅 추도의 곡조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태클은 [[찬송가]] 작법의 하나인 콘트라팍툼(contrafactum)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속에 존재하는 잘 알려진 곡조에 찬송가 가사를 붙여서 찬송가를 만드는 것은 13세기의 정선율 미사나 [[루터교회]]에서도 잘 썼던 방식이다. 잘 알려진 곡조이기 때문에 그냥 부르기 쉽도록 찬송 곡조를 붙인 것인데, 이는 대개 [[유럽]]의 전통 곡조들이 고정된 운율을 가지고 있어서 고정된 운율을 가진 시와 결합하면 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사에 여러 곡조, 한 곡조에 여러 가사가 붙는 경우도 있다. 찬송가집에 오른쪽 어깨에 붙은 제목이 바로 그 곡조의 제목이다. 심지어 [[종교개혁]] 시기에는 일부러 상대 진영의 찬송가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는 [[수정전쟁]]도 유행했다고. 현재 유일하게 국가로 지정돼 있는 3절의 첫 부분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통일과 정의와 자유)'는 현재 독일의 표어(motto)이기도 하다. 1절은 19세기 [[독일 통일]]기부터 널리 불린 곡이며, 민주적인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국가이기도 하지만 [[나치 독일]] 시절 국가였던 기억도 있고, 가사에서 작사 당시(19세기 중반) [[독일어권]] 최외곽 경계 지역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이들 영토 상당수가 폴란드 등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들 지명을 읊는 것은 영토 재수복 의지로 오해될 소지가 생기고 말았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큰 책임이 있기 때문에, 통일할 당시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https://world.moleg.go.kr/web/wli/lgslInfoReadPage.do?1=1&AST_SEQ=1261&CTS_SEQ=41006&ETC=0|동서독 통일 조약]]에서 그 무렵 [[서독]]과 [[동독]] 영토 이외에는 독일의 영토가 아니라고 못을 박아놨다. 그러나 [[네오 나치]] 등 극우들은 정치 집회 등에서 1절을 제창하기도 한다. [[https://m.youtube.com/watch?v=-8P2ab40LaA|#]] 그러나 상당수의 [[독일인]]들은 이런 오해살 만한 행동은 애초부터 하지 않길 원하기 때문에 1절을 터부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1절 가사를 독일에서 불렀다가는 [[극우]] 혹은 [[네오 나치]]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인종 차별을 하는 독일인을 [[네오 나치]]라고 조롱하기 위해 부르는 경우도 있다-- 2절은 1절처럼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가사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이라는 논란이 있어 제외되었다. "독일 여자가 좋다"는 등의 말이 있어 남녀 차별을 금기시하는 현 시대의 국가로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독일 여자 입장에선 동성애자가 아닌 이상 부를 때 어딘가 이상하기 때문. 가사가 쓰여질 당시에는 남성 중심의 문화가 워낙 당연해서 별 문제 의식이 없었겠지만 더군다나 와인을 권하는 구절도 있기 때문에 시적이지도 않고 [[카니발]]같은 술판이면 몰라도 공식석상에서 쓰기에는 너무 경박해보인다는 평도 있다. == [[독일어]] 가사 == {{{#black,#e5e5e5 𝄆}}}와 {{{#black,#e5e5e5 𝄇}}}(도돌이표) 사이에 있는 부분은 2번 부르라는 표시이다.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80deg, #000000 30%, #ED2939 40%, #ED2939 60%, #FAE042 70%)" {{{+2 {{{#ffffff '''Deutschlandlied'''}}}}}}}}} || ||<-3> '''1절''' || || {{{#white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br] '''über alles in der Welt''' }}} ||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br] '''위버 알레스 인 데어 벨트''' || '''독일, 그 무엇보다 독일''', [br] '''세상 그 무엇보다도!''' || || {{{#white Wenn es stets zu Schutz und Trutze [br] Brüderlich zusammenhält }}} || 벤 에스 슈테츠 추 슈츠 운트 트룻체 [br] 브뤼더리히 추자멘핼트 || 방어와 공격을 할 때에도 [br] 형제처럼 함께 서 있다네. || || {{{#white '''Von der Maas bis an die Memel,''' [br] '''Von der Etsch bis an den Belt.''' }}} || '''폰 데어 마스 비스 안 디 메멜''' [br] '''폰 데어 에치 비스 안 덴 벨트''' || '''[[뫼즈 강|마스]]에서 [[클라이페다|메멜]]까지 [br] [[아디제 강|에치]]에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벨트]]까지!'''[* 아래 문단에서 서술.] || || {{{#white 𝄆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br] über alles in der Welt 𝄇 }}} ||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br] 위버 알레스 인 데어 벨트 || 𝄆 독일, 그 무엇보다도 독일 [br] 세상 그 무엇보다도! 𝄇 || ||<-3> 2절 || || {{{#white Deutsche Frauen, deutsche Treue, [br] Deutscher Wein und deutscher Sang }}} || 도이체 프라우엔, 도이체 트로이에, [br] 도이처 바인 운트 도이처 장 || 독일의 여인은, 독일의 성실은, [br] 독일의 와인은, 독일의 노래는 || || {{{#white Sollen in der Welt behalten [br] Ihren alten schönen Klang }}} || 졸렌 인 데어 벨트 베할텐 [br] 일렌 알텐 쇠넨 클랑 || 온 세계에 간직되어야 하리라, [br] 이들의 오랜 아름다운 메아리는 || || {{{#white Uns zu edler Tat begeistern [br] Unser ganzes Leben lang. }}} || 운스 추 에들러 탓 베가이스턴 [br] 운저 간체스 레벤 랑 || 고귀한 행동을 고무하였도다 [br] 우리의 온 일생에 걸쳐. || || {{{#white 𝄆 Deutsche Frauen, deutsche Treue, [br] Deutscher Wein und deutscher Sang! 𝄇 }}} || 도이체 프라우엔, 도이체 트로이에, [br] 도이처 바인 운트 도이처 장 || 𝄆 독일의 여인, 독일의 성실, [br] 독일의 와인, 독일의 노래! 𝄇 || ||<-3> '''3절''' || || {{{#black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br] Für das deutsche Vaterland! }}} || 아이니히카이트 운트 레히트 운트 프라이하이트 [br] 퓌어 다스 도이체 파타란트 || 통일과 정의와 자유, [br] 조국 독일을 위하여! || || {{{#black Danach laßt uns alle streben [br] Brüderlich mit Herz und Hand! }}} || 다나흐 라쓰트 운스 알레 슈타리벤 [br] 브뤼더리히 미트 헤어츠 운트 한트 || 우리 모두가 노력하자 [br] 형제애를 가지고, 마음과 손을 모아서! || || {{{#black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br] Sind des Glückes Unterpfand; }}} || 아이니히카이트 운트 레히트 운트 프라이하이트 [br] 진트 데스 글뤼케스 운터판트 || 통일과 정의와 자유는 [br] 행복의 근거가 될 지어니 || || '''{{{#black 𝄆 Blüh' im Glanze dieses Glückes, [br] blühe, deutsches Vaterland! 𝄇 }}}''' || '''블뤼 임 글란체 디이제스 글뤼케스,''' [br] '''블뤼에, 도이체스 파타란트''' || 𝄆 '''이 번영의 광명 속에서 피어나리라, [br] 번성하여라, 조국 독일이여!''' 𝄇 || === 1절 가사에 나오는 지명의 역사적 배경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50px-Maas_memel_etsch_belt.svg.png]] || || 1841년 기준 독일어권 및 독일계 국가들의 영토. 붉은색 선은 [[독일 연방]]의 경계, 가는 검은색 선은 당시 각국의 경계, 굵은 청록색 선은 가사 속에 등장하는 마스, 메멜, 에취, 벨트이다. 진녹색은 당시 독일어가 주로 쓰이던 지역이며, 연녹색은 그 가운데 저지 프랑크어 방언 사용 지역이다. || * '''마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를 지나는 마스(Maas) 강.[* 벨기에와 프랑스에서는 [[뫼즈 강|뫼즈(Meuse) 강]]으로 부른다.] 좀 더 정확히는 [[룩셈부르크]]를 의미한다. 작사 당시인 1841년에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결성된 [[독일 연방]](Deutscher Bund)이 독일 민족의 영토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룩셈부르크]] 대공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룩셈부르크의 서쪽 경계는 마스 강과는 한참 떨어져 있지만, 1839년 런던 조약으로 상당한 영토를 [[벨기에]]에 떼어주기 전까지는 대체로 마스 강이 독일어권 최서방 경계라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1841년 기준으로도 [[독일 연방]]의 일원이던 [[림뷔르흐|림부르크 공국]](Herzogtum Limburg)[* 1839년 런던 조약 당시 [[룩셈부르크]] 상당 부분이 [[벨기에]]로 떨어져 나가면서 [[독일 연방]]에서 제외되자, 반대 급부로 [[네덜란드]] [[림뷔르흐(네덜란드)|림뷔르흐 지방]] 일부를 공국으로 만들어 독일 연방에 포함시킨 곳이다. 그래도 여전히 [[네덜란드 왕국]]의 지배를 받는 이중적 위치에 있었다. 결국 1867년 런던 조약에서 다시 네덜란드의 림뷔르흐 주로 편입되었다.] 영토에 마스 강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지역의 언어는 저지 프랑크어 방언으로, 룩셈부르크 방언보다도 더 갈라져나온 독일어 방언이었다.] 이처럼 작사 당시에는 룩셈부르크 및 림부르크 공국 일대[* [[마스트리흐트]], 펜로(Venlo), 루르몬트(Roermond) 등이 포함되어 있다.]만을 염두에 둔 가사였지만, [[독일 제국]]이 성립되면서 [[알자스-로렌]]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보불전쟁]]으로 분할된 뒤의 독일 제국령 로트링겐에도 베르됭(Verdun) 등의 마스 강 유역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마스 강 양안은 여전히 데파르트망 뫼즈로 프랑스령 로렌에 남아있었다.] * '''메멜''': 한때 [[프로이센]] 최북동단이었던 메멜(Memel, 현재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 시)을 의미한다. 혹은 그 주변을 흐르는 네만 강을 말하기도 한다. [[그단스크]] 등 [[폴란드]]의 해안 전역 및 서부 상당부분,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옛 쾨니히스베르크), 소베츠크(틸지트, 메멜 강 유역)를 포함한다. 이곳은 13세기 중반 [[튜튼 기사단]]이 [[동방식민운동]]의 일환으로 이 지역을 정복하고 메멜부르크(Memelburg) 성을 건설한 이래 독일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 통일의 주역인 [[프로이센 왕국]]의 뿌리 중 하나가 [[독일 기사단국]]에 있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수도 [[베를린]]이 있던 [[브란덴부르크]].], 이곳은 독일 고유의 영토라는 인식이 다른 세 경계선보다도 훨씬 강했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 이 지역을 차지한 소련과 [[리투아니아]]는 영토 회복 여지를 없애고자 아예 독일계 주민들을 철저히 몰아냈다. * '''에치''': [[스위스]]와 [[이탈리아]] 북부를 지나는 [[아디제 강]]의 [[독일어]] 명칭. [[오스트리아 대공국]] 영토였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 왕국]]에 할양된, 오늘날의 [[볼차노]](보첸), 메라노(메란)가 있는 [[쥐트티롤]] 지방을 의미한다. 조금 더 확장하면 오스트리아가 점령하고 있던 [[롬바르디아]] 및 [[베네치아]]도 포함되지만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이 지역은 이탈리아에 할양되었고 [[독일어권]]인 앞선 지역들과 달리 완전한 [[이탈리아어]] 사용 지역이었다. 지금도 이 가사가 염두에 뒀던 쥐트티롤 지역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 '''벨트''' 해: 정확히는 소 벨트 해협이다. [[덴마크]]의 퓐 섬에서 [[유틀란트 반도]] 사이의 해역이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 및 해당 해역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덴마크 하데르슬레우(Haderslev, 하데르슬레벤 Hadersleben) 지역의 해안이 해당된다. 위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4곳 중 현대 독일 영토에 포함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 Deutschland über alles의 해석 === 1절의 도입부와 후렴부에 나오는 "Deutschland über alles"의 의미가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이것을 영어 식으로 직역하면 "Germany above all"이므로 '모든 것 위에 있는 독일', 더 나아가 '만물 위에 군림하는 독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따라서 이 1절 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잘난 국가'''라는 '''오만함의 상징'''으로 오해되어왔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공공연히 확장 정책을 노골화하던 [[독일 제국]],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제3제국 건설을 표방하던 나치 정권, 전후 그 잔당들인 극우, 네오 나치들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오용당한 것이다.[* 폴란드볼에서는 다른 나라가 자기 나라의 만세를 외치는 걸 보고 "독일 만세"를 외쳤다가 신문에 "독일의 국가(전체)주의가 다시 발생했다"는 기사를 내보내는 이야기도 있다. [[독일#s-9]] 부분에 있다.] 사실 "Deutschland über alles"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어 표현법과 작사 당시 독일 민족의 상황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독일어의 "über alles"는 개인적인 애착, 존경의 뉘앙스가 담긴 '그 무엇보다도'라는 의미의 표현이다. 예컨대 "Ich liebe dich '''über alles'''"라고 하면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라는 뜻이다. 즉 "über alles"는 영어로 번역하자면 "more than anyone/anything else"가 더 정확한 번역이다. 오해하듯이 '만물 위에 있는 독일'이라는 위계적 의미가 되려면 "Deutschland über alles"가 아니라 "Deutschland '''von allem'''"이라고 써야 한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는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이 "Deutschland über alles"는 독일이 갈가리 분열되어 있던 1840년대 시점에서 독일 통일의 열망을 담은 구절이다. 당시에는 민족주의 정서가 움트면서 독일어권에서도 통일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빈 체제 하에서 오스트리아와 주변 열강에 의해 이런 움직임이 억압된 상태였다. 작사자 하인리히 호프만은 이 때문에 독일인의 노래를 지으며 '다른 모든 사안보다 통일 독일 건설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자 했다. 즉, 여기서의 'Deutschland'는 '새로운 통일 독일', 'über alles'는 '모든 것(특히 [[프로이센 왕국]], [[바이에른 왕국]], [[작센 왕국]] 등 독일어권 개별 국가)에 우선하여'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1절 도입부는 '''통일 독일, 그 무엇보다도 통일 독일(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세상 그 무엇보다도(Über alles in der Welt)'''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 메시지가 공감을 얻으면서 이 구절은 뒤이은 1848년 3월 혁명에서 시위대에 의해 널리 불렸다. 이후 독일 제국이 성립되며 통일 독일이 달성된 이후에는 이미 만들어진 '통일 독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바뀌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노래로 자주 불렸다. 어느 쪽이든 이는 독일 민족 내부의 단합을 각성시키는 의미이지, '''독일 외부의 국가와 민족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다'''. 이러한 해석이 옳다는 사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독]]의 국가 제정 논쟁에서도 여러 번 지적되었다. 전통주의자 진영에서 독일인의 노래를 서독 국가로 쓰자고 주장했던 중요한 근거도, 원곡의 의도가 순수히 독일 민족 내부의 열망을 대변했다는 것이었다.[* 관련 문헌: Feinstein, M. M. (2000) "Deutschland über alles?: The National Anthem Debate in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Central European History, 33(4), 505-5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이 구절이 금기시된 이유는, 1절이 나치 시대에 국가로 쓰인 전력이 있는데다 당시 독일에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던 점,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19세기 중반 기준으로 잡힌 가사 속 독일 민족의 분포지역이 20세기 정치 지형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사 액면 그대로라면 동·서독이 다시 통일하여 동프로이센 등 독일 제국의 고토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독일어권 지역을 회복하고 또 나치 독일도 차지하지 못했던 땅까지 차지하자(예를 들면 스위스의 독일어권 지역)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제기되었다. 1950년대 이러한 치열한 논쟁을 거친 결과 1절이 포기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오해의 소지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19세기 독일 제국이 부상하던 시기에도 이 구절은 독일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널리 여겨졌으며, [[프리드리히 니체]]도 1절 첫 부분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 über alles in der Welt"가 지나치게 거창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가사를 비틀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구절'''(die blödsinnigste Parole der Welt)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 구절을 들어 "I fear that was the end of German philosophy(나는 이것이 독일 철학의 종말이 될까봐 걱정스럽다)."라고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전 세계적으로 이런 오해가 널리 확대된 데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이 컸다. 원래 영국은 [[윈저 왕조|왕가]]가 독일계 뿌리를 가지고 있을만큼 독일과 긴밀한 관계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반 독일 여론이 급격히 고조되었다. 이에 영국 언론들도 바로 이 'Deutschland über alles' 구절을 직역하여 독일은 국가에서부터 우월주의를 담아 세계 정복에 나서는 호전적인 야만인들이라고 적개심을 퍼뜨렸고, 세계적으로 오해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 영상들 == || [youtube(4MdOaqG--UM)] || [youtube(Hfj4vocW-Xs)] || || [[독일 재통일]] 20주년 기념행사에서 || 가창 없는 올림픽 현악 버전. || || [youtube(oq6_OVgQwfk)] || [youtube(No9rTavOLrQ)] || || [[FIFA]] 버전 || 한국어 버전. || || [youtube(Mtcqd5cKmLs)] || [youtube(f04hD55EvG8)] || || 1절에서 3절까지 다 부른 버전. || 전기 영화 Hitler: The Rise of Evil 중 독일의 노래 1절 제창 부분.[br]--왠지 히틀러 배우가 젊다--[* 한국에서는 28주 후로 유명한 영국 배우 [[로버트 칼라일]]이 열연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히틀러의 광기에만 집중하여 역사적인 히틀러의 모습 고증은 엉망이다.] || || [youtube(ylEwBSP9S88)] || [youtube(iV7Pw27n1wM)] || || 독일의 공영방송 [[ZDF]] 방송종료영상.[br]10초부터 국가가 나온다. || 독일의 공영방송 [[ZDF]] 방송종료영상.[br]보다시피 독일도 한국과 비슷하게 방송사의 정규 방송 시작/종료 때 국가를 송출한다. || || [youtube(1QxYgW40Lq0)] || [youtube(LkLEXxy_KeI)] || ||<-2>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텔레비전 방송인 BR의 방송종료영상. 독일 국가는 6분 40초, 바이에른 주가는 5분 23초에 나온다. || || [youtube(vWVZLXuf7ds)] || [youtube(N_xdSD6tW-Y)] || || 이것도 BR 바이에른텔레비전의 영상이다.[br]바이에른 주가는 처음부터 나오고, 독일국가는 1분 12초, [[유럽연합]] 찬가는 2분 15초에 나온다. || 독일의 공영방송 [[ZDF]] 1990년도의 방송종료영상.[br]함바흐 성과 그 성에서 열린 함바흐 축제를 소개하는 독일 국가는 2분 7초, 유럽연합 찬가는 3분 18초에 나온다. || || [youtube(McJIqFLQ6Qk,start=45)] || [youtube(k0rNdLF47X4)] || || 사우디 군악대에서 연주한 버전 || [[오르골]] 버전 || || [youtube(wJAqmEXZURQ)] || [youtube(jxlMvlp6qm4)] || || [[바이마르 공화국]] 버전 || 1절부터 3절까지 끊김 없이 원곡 속도로 재생한 버전 || || [youtube(Jh3qH4UjwGM)] || [youtube(64AoaE1ARaQ)] || ||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차이코프스키]]가 1874년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버전. || [[1936 베를린 올림픽]] || == 역사적 영상 == 1890년대 포노그라프 녹음 [youtube(7GJv3vq-Ajo, width=50%)] 1910년 [youtube(z89BGLpWA88, width=50%)] [[바이마르 공화국]] 버전 [youtube(wJAqmEXZURQ, width=50%)] 1927년 [[바이마르 공화국]] 베를린 근위대 [youtube(MVOu_J_umdc, width=50%)] 1930년 [youtube(u28erV98LRA, width=50%)] 1931년 [[바이마르 공화국]]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 사열식 군악대 연주 -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경례에 독일군들이 [[하일]]을 외친다. [youtube(8B5xlF3JES0, width=50%)] 1936년 베를린 올림픽 [youtube(64AoaE1ARaQ, width=50%)] 1940년대 [youtube(ukod3VAls40, width=50%)] 1954년 스위스 월드컵 - 1952년부터 3절이 국가로 지정되었으나, 결승전 당시 스타디움의 서독 팬들은 1절을 재창했다. [youtube(Ps8-XjCrIvI0, width=50%)] 1957년 서독의 [[자를란트]] 재통합 [youtube(3-L7bOekc8s, width=50%)]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기념식 [youtube(Gu6-jlHchP4&t=10s, width=50%)] [각주] [[분류:국가(노래)]][[분류:독일 음악]][[분류:제목이 독일어인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