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3><:>{{{#ffffff {{{+1 526 Antioch earthquake 526년 안타키아 지진}}}}}}|| ||<:>{{{#ffffff 발생일시[br]^^(UTC+3)^^}}}||<-2><(>[[526년]] [[5월 20일]]-[[5월 29일]] 사이 오전 TRT || ||<:>{{{#ffffff 진앙}}}||<-2><(>[[튀르키예]] [[안타키아]][br]36.23°N 36.12°E || ||<:>{{{#ffffff 규모}}}||<-2><(>'''M,,s,, 7.0'''|| ||<:>{{{#ffffff 진도}}}||<-2><(><#4C2600>{{{#fff '''IX(Violent)'''}}} || ||<:><|6>{{{#ffffff 피해}}}||<(> '''최대 250,000여명 사망''' || [목차] [clearfix] == 개요 == [[526년]] [[5월 20일]]에서 [[5월 29일]] 사이 [[안타키아]]와 [[시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 == 피해 ==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인해 도시가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산에 위치한 건물들을 제외하면 모두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지은 8각형의 대성당 [[도무스 아우레아]]도 이 때 파괴되었다. 지진이 일어난 당시 [[주님 승천 대축일]]로 인해 지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더 큰 사상자가 발생했다. 약 250,000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지지만, 기록에 따라 300,000명까지로 보기도 한다. 정부의 기능이 상실해 도시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으나 이들을 노리던 강도들에 의해 강도사건과 살인사건이 일어나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또한, 18개월동안의 [[여진]]으로 인해 지진의 여파는 더 길게 이어졌다. == 이후 == [[콘스탄티노플]]에서 [[유스티누스 1세]]는 소식을 듣자마자 왕관과 망토를 벗고 곧바로 교회를 찾아 애통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지원금과 함께 사절단을 보내 도시 재건설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때 재건설된 건물들은 [[528년]] 지진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유스티누스 1세 황제는 자신의 조카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황제로 세웠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안타키아]] 복구를 위한 지원금을 더 늘려 [[기독교]] 성지 위주로 재건설 사업을 진행한다. 그의 부인 [[테오도라(6세기)|테오도라]]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여러 교회들이 지어졌다. 재건설 뿐만 아니라 도시의 사회 복지 관련해서도 지원하였으며, 병원과 목욕탕, 물탱크 등을 지으면서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안타키아로 돌아올 수 있게 끔 했으며, 지진 당시 강도와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직접 기소할 것을 제시했다. == 관련 문서 == * [[지진/튀르키예]] * [[115년 안타키아 지진]] [[분류:지진]][[분류:튀르키예의 사건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