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1996 애틀랜타 올림픽)] [include(틀:역대 올림픽 야구 우승국)] [include(틀:대한민국 아마야구 국가대표팀)] ||<-2> [[1996 애틀랜타 올림픽|[[파일:1996 애틀랜타 올림픽 로고.svg|width=50]]]] || ||<-2> {{{#fff '''올림픽 야구'''}}} || ||<-2> [[파일:1996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픽토그램_블랙.png|width=200]] || || '''종목''' ||[[야구|{{{#black,#white 야구}}}]] || || '''참가 인원''' ||160명 || || '''참가국''' ||8개국 || || '''기간''' ||1996년 7월 20일 ~ 8월 2일 || || '''경기장'''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 [목차] == 개요 == 1996년 올림픽 종목으로 애틀랜타에서 7월 20부터 8월 2일까지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이전과 같이 대륙별 예선을 거치고 올라온 8개국이 경기를 치뤘다.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 참가했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으로, 아마추어 선수들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마지막 대표팀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마지막 대표팀은, [[1998년]] 7월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이다. 그해 12월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부터는 프로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가 허용하면서 실제로 프로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룬다.] 당시 대표팀은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문동환]](현대 피닉스), [[손민한]], [[진갑용]](이상 고려대)을 포함한 [[이병규(1974)|이병규]](단국대), [[강혁(야구)|강혁]](한양대), [[김선우(1977)|김선우]](이상 고려대), [[조인성(야구)|조인성]](연세대), [[임선동]][* 임선동은 원래 1996년 2월에 졸업해야 했으나 졸업 이수 학점 미달로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이와는 별개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 호크스]]와의 계약 건으로 올림픽 출전 자격이 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등 대학 선수와 [[현대 피닉스]]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대표팀 사령탑은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김충남(연세대 감독)이 맡았고 코치로 장순조(경성대 감독), 조두복(고려대 감독), 최한익(현대 피닉스 감독)이 선임되었다. == 경기장 == || '''{{{#ffffff Atlanta–Fulton County Stadium}}}''' || || [[파일:애틀랜타-풀턴_카운티_스타디움.jpg|width=500]]|| || 애틀랜타-풀턴 카운티 스타디움 (52,000석) ||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해 있던 야구장으로 다목적 용도로 사용된 구장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전경기를 이 경기장에서 치뤘다. 과거 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NFL [[애틀랜타 팰컨스]]의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팰컨스는 1992년 [[조지아 돔]]으로 홈구장을 옮겼고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된 센테니얼 올림픽 스타디움을 올림픽이 끝난 후 [[터너 필드]]라는 이름의 야구장으로 개조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새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결국 계획대로 풀턴 카운티 스타디움은 올림픽이 끝난후 1997년 철거해서 현재는 터너 필드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참가국 == ||<-7>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ffffff 20%, #F4C300 40%, #009F3D 60%, #0085C7)" [[국제올림픽위원회|[[파일:오륜기(여백X)_흰색.svg|width=50]]]] {{{+1 {{{#ffffff '''애틀랜타 올림픽 참가국'''}}}}}}}}} || || {{{#000000 '''팀'''}}} || {{{#000000 '''출전자격'''}}} || {{{#000000 '''출전확정일자'''}}} || {{{#000000 '''진출횟수'''}}} || {{{#000000 '''최근 출전'''}}} || {{{#000000 '''최고성적'''}}} || {{{#000000 '''WBSC 랭킹'''}}}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html 미국 }}}]]'''||개최국 자동진출 || [[1990년]] [[9월 18일]] || 2회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야구|1992]] || 4위 || '''-''' || ||[[파일:쿠바 국기.svg|width=30]]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html 쿠바 }}}]]''' ||1995 [[팬아메리칸 게임]] 우승 || [[1995년]] [[3월 26일]] || 2회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야구|1992]] ||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width=20]] || '''-''' || ||[[파일:니카라과 국기.svg|width=30]] '''[[니카라과 야구 국가대표팀|{{{#!html 니카라과 }}}]]''' ||1995 [[팬아메리칸 게임]] 준우승 || [[1995년]] [[3월 26일]] || 1회 || 첫 출전 || 첫 출전 || '''-'''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html 네덜란드 }}}]]''' ||1995 [[유럽야구선수권대회]] 우승 || [[1995년]] [[7월 16일]] || 1회 || 첫 출전 || 첫 출전 || '''-'''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html 이탈리아 }}}]]''' ||1995 [[유럽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 || [[1995년]] [[7월 16일]] || 2회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야구|1992]] || 7위 ||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html 일본 }}}]]''' ||1995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BFA 아시아선수권]] 우승 || [[1995년]] [[9월 23일]] || 2회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야구|1992]] ||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width=20]] ||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html 대한민국 }}}]]''' ||1995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BFA 아시아선수권]] 준우승 || [[1995년]] [[9월 23일]] || 1회 || 첫 출전 || 첫 출전 || '''-''' ||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html 호주 }}}]]''' ||1995 오세아니아-아프리카 PO 1위 || [[1995년]] [[12월 31일]] || 1회 || 첫 출전 || 첫 출전 || '''-''' || == 예선 풀리그 == 당시 대표팀은 (쿠바는 어렵지만) 미국과 일본 중 한팀만 잡으면 메달획득은 가능할거라고 판단했지만,[* [[1996년]] 9월 월간스포츠매거진 <루키>에 게재된 [[허구연]] 칼럼에 의하면, 올림픽 출국 직전 [[대한야구협회]] 관계자가 [[허구연]]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면서 자신만만해했다고 한다.] 최종 성적은 1승 6패로 최하위였다. 대표팀은 이해 대회에서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네덜란드]]에게 11:3으로 승리한 것이 이 대회 유일한 승리였을 정도로 부진했는데, 당시 제대로 된 야구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와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호주]]에게도 패하며 "아무리 아마추어라지만 너무한거 아니냐!"라는 반응을 얻었다. 이해 대회에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일본 대표팀]]과의 맞대결이 있었는데 '''4대14'''로 7회 콜드게임을 당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였다. === 7월 20일 === ==== 1경기 : 미국 4 : 1 니카라과 ==== ==== 2경기 : 쿠바 19 : 8 호주 (8회 콜드게임) ==== ==== 3경기 : 일본 12 : 2 네덜란드 (7회 콜드게임) ==== === 7월 21일 === ==== 1경기 : 대한민국 1 : 2 이탈리아 ==== ||[youtube(6GQ1wBFArD0)]||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타선이 5안타 1득점으로 힘을 쓰지 못하며 1:2로 패배했다. [[문동환]]은 8이닝 2실점 삼진 11개를 잡으며 호투했지만 완투패를 당했고 상대 이탈리아 투수인 로베르토 카발리스티[* 이탈리아 야구리그 소속의 리미니 베이스볼팀에서 뛰는 선수였다.]는 한국 대표팀을 상대로 9이닝 1실점 완투승 거두었다. ==== 2경기 : 일본 7 : 8 쿠바 (10회 연장전) ==== === 7월 22일 === ==== 1경기 : 네덜란드 16 : 6 호주 (8회 콜드게임) ==== ==== 2경기 : 이탈리아 2 : 7 니카라과 ==== ==== 3경기 : 대한민국 2 : 7 미국 ==== 미국과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2:7로 패배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에는 [[트로이 글로스]], [[브랜든 루퍼]], [[자크 존스]], 크리스 벤슨[* 1999~2010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며 70승 75패를 기록한 우완투수다. 올림픽 출전 당시는 [[클렘슨 대학교]] 소속이었다.], 트래비스 리[* 1998~2006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좌완투수다. 올림픽 출전 당시는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소속이었다. 데뷔 당시 [[김병현]]과 애리조나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제프 위버]], [[R.A. 디키]]등이 포진되어 있었고 이중 한국전 선발투수로 등판했던 [[세스 그레이싱어]][* 올림픽 3경기에 나서 3승으로 공동 다승왕.]는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6번재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지명된 유망주였고 6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한국 타선을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제프 위버]]가 나머지 3이닝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았고 한국 대표팀은 [[손민한]]이 수비진들의 실책에 흔들리며 7이닝 6실점(4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타선에서는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한 [[강혁(야구)|강혁]]과 3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한 [[진갑용]]이 유이한 멀티 안타를 치며 활약했다. === 7월 23일 === ==== 1경기 : 네덜란드 2 : 18 쿠바 (7회 콜드게임) ==== ==== 2경기 : 니카라과 8 : 3 대한민국 ==== 니카라과와의 경기에서 선발 [[김선우(1977)|김선우]]가 3이닝 4실점, [[문동환]]이 2이닝 4실점으로 각각 무너지며 3:8로 완패했다. 남은 경기에서 다 승리해야 4강이 가능하지만 쿠바, 일본 등과의 경기가 남아있어서 사실상 4강은 힘들어 졌다. ==== 3경기 : 호주 9 : 6 일본 ==== === 7월 24일 === ==== 1경기 : 미국 15 : 3 이탈리아 (7회 콜드게임) ==== ==== 2경기 : 쿠바 14 : 11 대한민국 ==== 페드로 라조와 에두아르도 파레트, [[호세 콘트레라스]]가 소속되어 있던 아마 야구 최강팀 쿠바와 맞붙은 대표팀은 의외의 난타전을 펼쳤고 최종 11:14로 패배했다. 한국 대표팀은 선발 사이드암 [[전승남]]을 비롯해 [[김선우(1977)|김선우]], [[오철민]], [[임선동]],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 등 5명의 투수를 투입했으나 김영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난타를 당하며 실점을 했다. 누구하나 3이닝 이상 투구를 하지 못했다. 반면 타선은 [[강혁(야구)|강혁]]이 4타수 3안타 2타점 1볼넷, [[안희봉]]이 3타수 2안타 3타점 1볼넷 등 [[진갑용]]과 [[백재호]]를 제외한 선발 공격진이 안타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 7월 25일 === ==== 1경기 : 니카라과 5 : 0 네덜란드 ==== ==== 2경기 : 이탈리아 12 : 8 호주 ==== ==== 3경기 : 미국 15 : 5 일본 (7회 콜드게임) ==== === 7월 27일 === ==== 1경기 : 일본 13 : 6 니카라과 ==== ==== 2경기 : 이탈리아 6 : 20 쿠바 (7회 콜드게임) ==== ==== 3경기 : 호주 5 : 15 미국 (7회 콜드게임) ==== === 7월 28일 === ==== 1경기 : 네덜란드 3 : 11 대한민국 ====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11:3으로 대회 첫승을 거둔다. 선발로 나온 [[조진호(야구)|조진호]]가 3회를 넘기지 못하고 2실점으로 강판 당했으나 이후에 나온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와 4이닝 1실점으로 막은 [[전승남]]이 타선의 지원을 받고 잘 마무리 해서 쉽게 승리했다. 공격에서 5타수 3안타 3타점의 [[최만호]]와 5타수 4안타 3타점의 [[이병규(1974)|이병규]]가 이끄는 [[테이블 세터]]진이 공격을 이끌며 활약 했다. ==== 2경기 : 쿠바 10 : 8 미국 ==== ==== 3경기 : 호주 0 : 10 니카라과 (8회 콜드게임) ==== === 7월 29일 === ==== 1경기 : 네덜란드 8 : 7 이탈리아 ==== ==== 2경기 : 니카라과 7 : 8 쿠바 ==== ==== 3경기 : 대한민국 4 : 14 일본 (7회 콜드게임) ==== 올림픽에서 열린 [[한일전/야구|한일전]]. 당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일본 대표팀]]은 [[후쿠도메 고스케]], [[마쓰나카 노부히코]], [[이구치 타다히토]], [[이마오카 마코토]], [[다니 요시토모]][* 일본 유도의 여왕 다무라 료코(결혼후 다니 료코)의 남편으로 유명한 야구선수. 올림픽 당시 .421 4홈런 11타점으로 맹활약 했으며 2000 시드니 올림픽,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일본 대표팀에 차출되며 활약했다. 참고로 부인과 자신의 메달(은1개, 동1개)을 모두 합치면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총 6개의 올림픽 메달을 가지고 있었다.]가 버티고 있었기에 올림픽 당시 대표팀이 가장 주목해야할 경기로 꼽았다. 한국 대표팀은 선발투수 [[손민한]]이 1⅓이닝동안 4실점하며 무너졌고 뒤이어 올라온 [[김선우(1977)|김선우]]가 1이닝 6실점(4자책)을 기록하는 등 투수진이 난타당하며 졸전 끝에 7회 4:14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 7월 30일 === ==== 1경기 : 미국 17 : 1 네덜란드 (7회 콜드게임) ==== ==== 2경기 : 이탈리아 1 : 12 일본 (8회 콜드게임) ==== ==== 3경기 : 호주 11 : 8 대한민국 ==== 호주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8:11로 패배했다. 초반 7:0 으로 앞서 있어 쉽게 이길 것 같았으나 4회초 선발 [[임선동]]이 흔들리며 대량실점의 빌미를 마련했고 뒤이어 나온 [[전승남]]도 불을 끄지 못하며 4회에만 대거 8실점으로 역전을 당해 경기에 흐름을 내주었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패배로 대회 최하위를 기록하며 쓸쓸하게 귀국해야 했다. === 예선라운드 순위 === || '''팀''' || '''경기''' || '''승''' || '''패''' || '''득점''' || '''실점''' || '''승률''' || '''승차''' || '''승자승''' || '''비고''' || ||[[파일:쿠바 국기.svg|width=30]]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html 쿠바 }}}]]''' || 7 || 7 || 0 || 97 || 49 || 1.000 || ― || ― ||<|4> 4강 진출 ||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html 미국 }}}]]''' || 7 || 6 || 1 || 81 || 27 || .857 || ― || ― ||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html 일본 }}}]]''' || 7 || 4 || 3 || 69 || 45 || .571 || 3 || 1승 0패 || ||[[파일:니카라과 국기.svg|width=30]] '''[[니카라과 야구 국가대표팀|{{{#!html 니카라과 }}}]]''' || 7 || 4 || 3 || 44 || 30 || .571 || 3 || 0승 1패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html 네덜란드 }}}]]''' || 7 || 2 || 5 || 32 || 76 || .286 || 5 || 2승 0패 ||<|4> 조별예선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html 이탈리아 }}}]]''' || 7 || 2 || 5 || 33 || 71 || .286 || 5 || 1승 1패 ||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html 호주 }}}]]''' || 7 || 2 || 5 || 37 || 78 || .286 || 5 || 0승 2패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html 대한민국 }}}]]''' || 7 || 1 || 6 || 40 || 59 || .143 || 6 || ― || == 결선토너먼트 == === 준결승 1경기 : 니카라과 1 : 8 쿠바 === === 준결승 2경기 : 일본 11 : 2 미국 === === 동메달 결정전 : 미국 10 : 3 니카라과 === === 결승전 : 일본 9 : 13 쿠바 === == 최종 성적 == ||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패 || 비고 || 최종 성적 || || [[금메달|[[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width=30]]]] ||[[파일:쿠바 국기.svg|width=30]]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쿠바}}}]]''' || 9 || 9 || 0 || || 금메달 || || [[은메달|[[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width=30]]]] ||[[파일:일본 국기.svg|width=30]]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일본}}}]]''' || 9 || 5 || 4 || || 은메달 || || [[동메달|[[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width=30]]]] ||[[파일:미국 국기.svg|width=30]]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미국}}}]]''' || 9 || 7 || 2 || || 동메달 || || 4 ||[[파일:니카라과 국기.svg|width=30]] '''[[니카라과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니카라과}}}]]''' || 9 || 4 || 5 || || 4위 || || 5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30]]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네덜란드}}}]]''' || 7 || 2 || 5 || 2-0 || 조별리그 || || 6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30]] '''[[이탈리아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이탈리아}}}]]''' || 7 || 2 || 5 || 1-1 || 조별리그 || || 7 ||[[파일:호주 국기.svg|width=30]]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호주}}}]]''' || 7 || 2 || 5 || 0-2 || 조별리그 || || 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000000 대한민국}}}]]''' || 7 || 1 || 6 || || 조별리그 || ||<-2>
'''{{{+2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우승}}}''' || ||<-2> [[파일:쿠바 국기.svg|width=300]] || || 두번째 우승 || '''쿠바''' || == 여담 == * [[황금세대]]라고 불렸던 '''92학번''' 스타들 중 [[조성민]], [[차명주]], [[박재홍(야구)|박재홍]], [[김종국(야구인)|김종국]], [[홍원기]], [[최기문]] 등등이 [[1996년]]에 프로로 진출함과 동시에 대표팀에서 빠져나가고, 그나마 남아있던 '''92학번''' [[임선동]]마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지라 대회 전부터 불안한 예상도 많았다. 사실 올림픽 직전해인 199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올림픽 지역예선도 겸한 대회였다.] 당시도 이들 '''92학번'''들의 활약이 절대적이었으니 무리한 예상도 아니었다.[* 특히 199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당시는 (그 전까지 에이스였던 91학번 [[문동환]]보다) '''92학번''' [[임선동]]의 활약이 더욱 돋보였다.] 결국 92학번들을 대신해 주목을 모았던 [[손민한]], [[김선우(1977)|김선우]] 등이 부진하면서 다시 한번 '''92학번'''들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 '''92학번'''들의 위력은 그들이 재학 중에 있었던 국제대회에서의 한국대표팀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 [[1994년]]까지는 91학번인 [[문동환]]과 [[심재학]]의 맹활약도 함께 있었다.] * 1993년 2월 호주[* [[퍼스]].]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위.[* 우승 일본. 대신 전년도 바르셀로나올림픽 은메달팀인 대만을 2번이나 격파했고, 그 중 한번은 [[임선동]]의 1실점 완투승도 있었다.] * 1993년 7월 미국[* [[버팔로(미국 도시)|버팔로]].] [[유니버시아드]] 2위.[* 우승 쿠바. 참고로 [[박찬호]]가 미국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다저스에 입단하는 계기가 되었던 대회이기도 하다.] * 1994년 8월 니카라과[* [[마나과]].] [[세계야구선수권대회]] 2위.[* 우승 쿠바. 결승 쿠바전은 [[조성민]]과 [[임선동]]이 이어던졌다. 참고로 준결승 일본전에서는 [[문동환]]의 완봉승으로 8대0 승리했다.] * 1994년 10월 일본[* 히로시마 [[히로시마 시민구장]].]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야구|아시안게임]] 2위.[* 우승 일본. 결승 일본전은 91학번 [[문동환]]과 92학번 [[조성민]]이 이어던졌다.] * 1995년 8월 일본[* 후쿠오카 [[후쿠오카 돔]].] 4개국 친선대회 2위.[* 우승 쿠바. 참고로 쿠바전 당시 [[조성민]]의 호투가 있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계기가 되기도 한다.] * 1995년 9월초 일본[* 후쿠오카 [[후쿠오카 돔]].] [[유니버시아드]] 2위.[* 우승 쿠바. 결승 쿠바전은 93학번 [[손민한]]과 92학번 [[조성민]]이 이어던졌다.] * 1995년 9월말 일본[* [[쿠라시키]].]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위.[* 우승 일본. 참고로 결승 일본전 당시 [[임선동]]의 호투가 있었고, [[다이에 호크스]]와의 계약 계기가 되기도 한다.] * 1995년 11월 쿠바[* [[아바나]].] [[대륙간컵]] 4위.[* 우승 쿠바.] * 올림픽 직전해였던 [[1995년]] 9월 일본 [[쿠라시키]]에서 열렸던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한국과 일본은 1점차의 대등한 승부를 펼쳤는데,[* 3대2로 '''일본''' 승리. 9회말 시작때까지는 2대1로 한국이 리드했으나 9회말에 역전당한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양국의 운명이 너무 극명하게 갈려버렸다. * 대학시절 내내 대표팀 부동의 에이스였던 [[문동환]]이 대학졸업 후인 [[1995년]]부터 조금씩 부진에 빠졌고,[* 공교롭게도 부진의 시작이 실업팀 [[현대 피닉스]] 입단과 맞물린다.] 결국 그 여파는 이듬해인 올림픽 본선까지로 이어져 버린다. * 4번~5번을 친 진갑용은 26타수 9안타 .346 1홈런 3타점, 6번 타자로 나선 조인성은 19타수 5안타 .263 2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강혁은 미국의 선발이었던 [[세스 그레이싱어]]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며 자신의 파워를 보여주기도 했다. * 당시 [[진갑용]]이 경기 중에 포수-1루수-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등[* 그 과정에서 수비실책도 다수 발생.] 이해못할 장면들이 계속 나오자, 중계방송 중이던 방송사에 야구중계를 중단하라는 시청자들의 항의전화가 엄청나게 들어왔다고 한다.[* [[1996년]] 9월 월간스포츠매거진 <루키>에 게재된 [[허구연]] 칼럼 중.] * 당시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임선동]]의 대표팀 '''발탁'''과,[[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6072600239114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6-07-26&officeId=00023&pageNo=14&printNo=23437&publishType=00010|19960726 관련기사.]] 당시 대학 최고타자 중 1명이었던 [[김동주(타자)|김동주]]의 대표팀 '''탈락'''이 나란히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허구연]] 해설위원이 이러한 점들을 많이 비판했다.] 후술하겠지만, [[김동주(타자)|김동주]]는 그 이듬해에 일본투수진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면서 아시아를 제패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 미국전에서 심판판정에 불복해 김충남 대표팀감독이 퇴장을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선수들까지 덕아웃으로 단체로 철수시키면서 미국 언론의 비판과 조롱도 적지 않게 받았다.[* '''경기에서도 지고 매너에서도 지다'''. [[1996년]] 9월 월간스포츠매거진 <루키>에 게재된 [[허구연]] 칼럼 중.][[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6072600239114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6-07-26&officeId=00023&pageNo=14&printNo=23437&publishType=00010|19960726 관련기사.]] * 올림픽 최하위의 여파로 한국야구는 이듬해인 [[1997년]]에 스페인에서 열린 [[대륙간컵]]에 초대장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다. * 대신 1997년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에하라 고지]] 등이 포함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 때 [[김동주(타자)|김동주]]가 대회 내내 일본과 대만의 투수진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더더욱 [[김동주(타자)|김동주]]의 전년도 올림픽 엔트리 '''제외'''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 1998년 8월, [[국제야구연맹]]은 긴급총회를 가지고 프로선수의 올림픽 출전 허가를 놓고 논의를 가졌는데 압도적인 표차이로 가결되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프로선수가 참여한 [[농구]]에 이어 올림픽에서 프로선수를 보게 된 종목이 되었다. 그 결과 1998년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프로선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단,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우 방콕 대회 때까지는 아마추어와 프로선수가 섞인 형태로 구성되었고,[* 프로 12명, 아마 10명.]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프로 17명, 아마 5명.]ㅡ2000년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시드니 올림픽]][* 프로 23명, 아마 1명. 참고로 아마추어 1명의 주인공이 바로 [[정대현(1978)|정대현]]이다.]부터 로스터에 프로선수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 [[애틀랜타 올림픽]] 기간과 겹쳐 KBO [[올스타전]]이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는데,[* [[1996년]] 7월 26일.] 당시 올림픽에 쏠린 국민적 관심의 여파로 [[잠실야구장]]에는 불과 '''7000여명'''의 관중들만이 입장하는 흥행참패를 겪는다. 그 이듬해부터 KBO [[올스타전]]은 기존의 서울-부산 격년 개최 방식에서 벗어나 전국의 야구장들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는 2020년대 현재까지도[* 단, 2020~2021 시즌은 코로나19 여파로 올스타전이 열리지 못했다.] 이어지고 있다. * 당시 멤버였던 [[진갑용]]은 [[타이중 참사|2013 wbc]]까지 대표팀에 참여하며 가장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약빤 사실도..~~ [[분류:올림픽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