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프랑스의 주요선거(5공화국))] ||<-5> {{{#ffffff {{{+1 '''1986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 ||<-5> {{{#!wiki style="margin: -0px -11.7px -5px" {{{#!wiki style="margin-top: -6px; margin-bottom: -8px"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2 [[1981년]] [[6월 21일]]}}}}}}[[1981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1981 선거]] ||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2 [[1986년]] [[3월 16일]]}}}}}}'''1986 선거''' || → || {{{#!wiki style="letter-spacing: -.5px; margin: 0 -10px" {{{-2 [[1988년]] [[6월 12일]]}}}}}}[[198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1988 선거]] || }}}}}} || || {{{#002395,#7469E9 '''일정'''}}} ||<-4>3월 16일[*A 결선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였다.] || || {{{#002395,#7469E9 '''투표율'''}}} ||<-4>78.50%{{{-3 [[1981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red,#ff0000 ▲}}} {{{#blue,#0000ff ▼}}} 0%p]]}}}[*A 결선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였다.]|| ||<-5> {{{#ffffff '''선거 결과'''}}} || ||<-5> [[파일:1986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결과.svg|width=100%]] || ||<-5> || [목차] [clearfix] == 개요 == 1988년에 실시된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이다.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 동거정부가 구성된 첫 사례로, 자세한 내용은 후술. == 배경 == [[1981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프랑수아 미테랑]]은 개혁정책을 의욕있게 추진하였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계속된 경기침체와 높아진 실업률로 인해 지방선거에서는 참패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81년에 선출된 [[프랑스 국민의회]] 의원들의 임기가 거의 만료되기 시작하고 총선이 다가왔다. == 투표 == ||<-6> '''{{{#fff 1986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 || '''{{{#fff 연합}}}''' || '''{{{#fff 정당}}}''' || '''{{{#fff 성향}}}''' || '''{{{#fff 득표수}}}''' || '''{{{#fff 득표율}}}''' || '''{{{#fff 의석수}}}''' || ||<|5> 좌파 || [[사회당(프랑스)|{{{#fff '''사회당'''}}}]] ||<|5> 좌파 || 8,693,939 || 31.02% || 206석 || || [[프랑스 공산당|{{{#ffffff '''프랑스 공산당'''}}}]] || 2,739,925 || 9.78% || 35석 || || {{{#fff '''기타 좌파'''}}} || 301,063 || 1.07% || 5석 || || {{{#fff '''좌익급진당'''}}} || 107,769 || 0.38% || 2석 || || {{{#fff '''UNG'''}}} || 56,044 || 0.20% || 0석 || ||<-3> 합계 || 11,898,740 || 48.85% || 248석 || ||<|4> 우파 || {{{#fff '''RPR-UDF 연합'''}}} ||<|4> 우파 || 6,008,612 || 21.44% || 147석[* 공화국연합 73석, 민주연합 74석] || || [[공화국연합|{{{#fff '''공화국연합'''}}}]] || 3,143,224 || 11.22% || 76석 || || [[프랑스 민주연합|{{{#000 '''민주연합'''}}}]] || 2,330,167 || 8.31% || 53석 || || {{{#fff '''기타 우파'''}}} || 1,083,711 || 3.87% || 14석 || ||<-3> 합계 || 12,565,714 || 44.84% || 290석 || || || [[국민연합(프랑스)|{{{#ffffff '''국민전선'''}}}]] || 강경우파 || 2,703,442 || 9.65% || 35석 || || || {{{#ffffff '''극좌'''}}} || - || 430,352 || 1.54% || 0석 || || || {{{#ffffff '''생태주의자'''}}} || 생태주의 || 340,109 || 1.21% || 0석 || || || {{{#ffffff '''극우'''}}} || - || 57,432 || 0.20% || 0석 || || || {{{#ffffff '''지역주의자'''}}} || - || 28,379 || 0.10% || 0석 || |||||| 유효표 || 28,024,168 || 의석수 || 573석 || 1986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는 유일하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였고 결선투표도 없었다. == 선거결과 == 선거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출현하면서 우파에게 원내 다수를 내주게 되었고, 결국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동거정부]]가 구성된 사례가 되었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하고 군사, 외교 분야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자크 시라크에게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자크 시라크는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정부의 총리로 임명되었을 때와 다르게 평판이 좋지 못했고 지지율도 떨어져갔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자크 시라크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을 기회로 삼았고 그 결과 [[198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다음 대선]]과 같은 해에 실시한 [[198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조기총선]]을 통해 실책을 만회하였고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렸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는데 이것 때문인지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프랑스)|국민전선]]이 처음으로 35석의 의석을 확보하였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미테랑이 2차 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복무했던 것, 그리고 프랑수아 드라로크의 "불의 십자단"에 가입했던 전적과 맞물려서 이것이 국민전선을 비롯한 프랑스 극우파들을 뒤에서 키워주기 위한 미테랑의 속마음이 아니었냐는 음모론이 1990년대에 꽤 나돌아다닌 적이 있다.] == 여담 == 프랑스 총선 역사상 유일한 비례대표제가 사용된 총선이다. 비례대표제 전환은 프랑수아 미테랑의 대선 선거 공약에서도 나와있었던거라 그대로 실천한것이기는 한데, 선거제도를 변경했을때가 미테랑의 지지율이 30% 남직했을때라서 우파의 과반확보를 막기위한 얘기가 나돌아다녔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파진영이 근소하게 과반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사회당의 대패가 예상된것과는 달리, 예상보다는 선방한 결과가 나오기는 했다. 다음 선거에서는 다시 결선투표제로 환원된다. == 관련 문서 == * [[프랑스/정치]] * [[프랑스 국민의회]] *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분류:프랑스 국민의회 선거]][[분류:1986년 선거]][[분류:프랑스 제5공화국]]